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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5년 1월 11일 - 데려가는 사람, 버려두는 사람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5-01-11
  첨부파일:   데려가는 사람 버려두는 사람.hwp(36K)

데려가는 사람 버려두는 사람(24:40-51)

 

팔레스타인에서는 겨울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다가, 봄이 되면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피었다. 그래서 그들은, 무화과나무에 잎이 핀 것을 보고, 여름이 다가 온 것을 알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이미 다 이루어졌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노아의 때처럼, 갑자기 임한다고 말씀했다.

노아 때에 사람들은, 홍수 심판이 있다고 했지만, 믿지 않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결혼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홍수가 나서, 멸망할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임하시는 날에도, 이와 같이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때에, 임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1. 대조되는 두 사람(40-41).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른 비유를 주었다. 예수님이 설명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그 날이 되면, 밭에서 일하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받고, 한 사람은 버림을 받게 된다고 했다.

그 날에는 맷돌을 갈고 있던 두 여자 중에, 한 여자는 데려감을 받고, 한 여자는 버림받게 된다고 했다. 이런 일은, 밭에서 일하던 남자만 아니라, 집에서 맷돌을 갈던, 여자들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팔레스타인에는 당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이 있고 사람의 손으로 돌리는, 작은 맷돌이 있었다.

여자가 갈던 맷돌은, 우리나라의 맷돌과 같이 작았다. 이 비유는, 그 날 직장에서 일하던 사람이나 집안에서 일하던 사람을 막론하고, 예수님 앞으로 데려감을 받는 사람과, 버려둠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의 재림은, 심판과 분리의 때다.

그렇다면 누가 들어가고, 누가 들어가지 못하는가? 그것은 데려가는 자의 뜻에, 달려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라면, 누가 들어가고, 누가 못 들어가는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가,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찬송하도록 지었다. 찬송은 칭찬하고 자랑함을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 사실을 안다면, 찬양과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죽음에서 건져주셨는데, 부족한 나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는데, 찬양하지 않고, 감사를 모른다면, 주님의 뜻을 모르는 자이다. 따라서 그 날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데려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그대로 두어서, 심판을 받게 된다.

그 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되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천사들을 통해,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부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버림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

(42-44)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히브리 개념에서 미래2종류가 있다. 명확한 미래와 불명확한 미래다. 예를 들어,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되고,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된다는 것은, 명확한 미래다. 하지만 내일 바람이 불지, 어떨지는 불명확한 미래다. 이런 사상에 근거하여, 명확한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다.

메시아가 오시는 것은, 히브리 개념에 있어서, 명확한 미래에 속했다. 즉 메시아는 반드시 오신다. 하지만 그 시기와 시간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 오시는 것은 아니기에,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그레고레오, 정신을 차리다.)고 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깨어있으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면서, 세상에 취하지 말고, 영적으로 깨어서, 거룩한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종말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윤리적인 면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한다. 그들은 언제든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 한다. 깨어 있는 사람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밤중에 주인이 오면,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종과 같은 사람이다(12:35).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명령한 이유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항상,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예수님은 다시 한 가지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이 깨어 있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도둑은 집 주인에게, 아무런 예고를 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집에 들어간다. 만일 도둑이 집 주인에게, 언제 집을 털겠다고 말한다면, 그 집을 뚫지 못하도록, 준비하게 될 것이다.

뛰어난 도둑은, 미리 예고하고도, 도적질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일은 쉽지 않다. 도둑은 항상 예고하지 않고,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집에 들어가서 그 집을 턴다. 이런 일은 제자들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항상 안전에 주의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도둑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예수님의 재림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일어난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고 권고했다. 예수님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다시 오시기에,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예비하고, 준비된 사람인가?

2.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종말을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 제자들에게 다른 비유를 더해주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과, 미련하고 악한 종을 대조하여, 성도들이 어떻게 재림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예수님은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고 했다. 준비된 사람은, 충성된 종이다.

수많은 종을 거느린 한 주인이, 먼 여행을 떠나야만 했다. 그의 주인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충성된 종에게, 자신의 그 집 사람들을 맡겼다. 종은 주인의 모든 그 집 사람들들을 맡아서, 관리해야 했다. 충성된 종은,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나, 교회 지도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제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교회를 맡아 관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회를 충성되게 맡아 인도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는, 교회 지도자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뜻을 행하고, 영적,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들을 돌아보는 일은, 종말을 맞은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다.

(46-47)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예수님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충성되게, 그 집 사람들을 돌보는 종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충성되고 신실한 종은, 주인이 있을 때만 아니라, 없을 때에도, 최선을 다해, 가족을 돌볼 것이다. 그는 일찍 일어나서, 가족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고, 종들을 소집하여 일을 맡기고, 그 일이 잘 완수될 수 있도록 지도하고 확인한다. 그의 수고로, 그 집은 윤택하고, 재산이 증가하게 될 것이다.

그 후에 주인이 집에 돌아와서, 모든 일을 충성스럽게 한 종을 보고, 무엇이라 하겠는가? 아마도 그 주인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 종을 칭찬할 것이다. 이러한 종에게, 복이 있다고 했다. 그 주인은 충성되고 신실한 종에게, 자신이 모든 소유를 믿고, 맡길 것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일을 맡은 성도들 역시, 최선을 다해, 예수님이 맡겨 준 일을, 돌보아야 한다. 교회를 맡은 지도자들은, 맡겨진 양들에게 영적, 물질적 양식을 공급해주고,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양육해야 한다.

모든 성도들 역시, 예수님이 맡겨준 일을 행하고, 영적, 물질적으로 궁핍한 자들을 먹이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예수님이 마지막 날에, 세상에 오셔서, 이러한 성도들을 보고, 그들을 크게 칭찬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새로 오는, 하나님 나라에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이다.

이런 영광과 축복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고대하면서, 충성되고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48-51)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예수님은 반대의 경우도 말씀했다. 악한 종은 주인이 집을 떠난 후, 주인이 늦게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하루하루를, 긴장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주인의 그 집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마음대로 지내다가, 주인이 돌아올 때가 되면, 열심히 일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충성된 마음이 없었다. 그는 오직 주인의 눈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척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가식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사랑으로 동료들을 돌아보는 대신, 그들을 엄하게 매로 다스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악한 독재자처럼 행동했다. 또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술친구들을 모아서 먹고 마셔댔다. 주인의 그 집 사람들을 돌아보고, 주인의 재산을 늘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친구들을 불러서, 마음껏 먹고 마셨다. 술에 취해서, 방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서, 악한 종이 행한, 악한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주인은 악한 종이, 그 집 사람들을 돌보지 않고, 동료를 구타하며, 자기 재산으로, 친구들과 먹고 마시면서, 허비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경우에 그 주인은, 악한 종을 어떻게 대우하겠는가?

예수님은 이런 경우에, 그 주인이 악한 종을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에게 내릴 형벌을, 받게 할 것이라고 말씀했다. 그는 자기 동료들을 구타했듯이, 주인에게 매를 맞을 것이다. 또한 그는 주인의 눈을 속였기에, 외식하는 자가 받을, 형벌을 내릴 것이다.

이로 인해 그 날에, 그 악한 종은 밖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다.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지 못하며 살던 사람들도, 비슷한 일을 당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재림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그는 귀한 시간에, 동료들과 싸우고, 다투며, 분당을 짓고, 쾌락을 좇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정력과 재산과 시간을 향락과 쾌락을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는 방탕하고, 사치하며, 향락적인 삶을 살면서, 쾌락에 빠져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이 와서, 이런 사람을 보면 무어라고 하겠는가? 아마도 예수님은, 그를 엄히 책망하고, 외식하는 자가 받을 형벌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이를 갈며 애통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충성되고 신실한 종인가? 아니면 악한 종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자. 또한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데려사는 사람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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