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11월 5째주 - 난리와 박해와 실족(마24:6-13)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4-1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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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와 박해와 실족(마24:6-13)
예수님은 성전 건물을 자랑하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성과 성전건물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진다고 했다. 제자들은 감람산 위에 앉았을 때 조용히 와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이라 했다. 세상 끝은 성령의 시대이기에, 예수님의 재림은 언제라도, 이루어질 수 있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올바로 서야만 한다.
1. 난리와 난리의 소문(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예루살렘의 멸망이 다가올 때, 난리(플레모스, 전쟁)와 난리의 소문을, 듣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두려워하다.’(로에오)는 ‘놀라서 당황하며, 무서워서 불안해하며, 겁을 먹는다.’는 말이다. 성도들이 여러 가지 전쟁의 소문을 듣고, 세상의 마지막이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두려워할 수 있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난리의 소문을 들어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니, 하나님이 성도들을 보호하기에,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 마가복음이 기록될(62-66년), 전쟁이나 재난으로, 곳곳에 사회적 불안이 발생하였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55-117년)는, 그의 책 ‘로마제국의 역사’ 서문에,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피의 전투로 얼룩지는, 싸움에 말려들었다. 간혹 싸움이 멈춘 경우도, 공포에 휩싸이는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엄청난 사건들을 다루게 되었다. 4명의 왕이, 칼로 죽임 당했다.
3번의 내전과, 그보다 훨씬 많은 다른 나라와의 전쟁, 그리고 때때로 이 2가지가 동시에, 발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타키투스는 그 후에도 계속, 수많은 혼란과 반란, 전쟁들이 반복된 일을 언급했고, 이러한 전쟁들로, 로마와 고대 사원들이, 폐허가 된 일을 기록했다.
이러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이젠 끝이 왔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있지만, 예수님은 아직 세상의 끝은 아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7-8) “민족(에노스, 같은 습관을 가진 백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야욕은, 민족과 민족 간의 충돌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일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에, 절정에 달할 것이다.
마지막 종말을 향해 갈수록, 종교와 문화, 영토와 이권문제를 놓고,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전쟁과 무력충돌에 대하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재난(오딘)은 해산의 고통과 수고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재난들도, 해산의 고통과도 같다. 처음에는 비교적 참을 만하고, 그렇게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은 점점 잦아지고 심해져, 결국에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바울 사도는 (살전5:3)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이른다.
예루살렘 멸망직전에, 지진과 기근과 같은, 천재지변이 나타났다. 유대의 역사가 요세푸스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 대지진이 일어났고, 예루살렘 멸망의 징조였다고 했다(유대전쟁사 4장). 긑라디우스 황제 때에도, 로마가 다스리던 전 지역에, 세계적인 기근사건이 일어났다(행11:28-30).
그때 제사장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먹고 남은 부스러기를 먹었고, 백성들은 더 큰 고통을 받았다. 강한 사람들은 먹을 것을 두고도, 더 차지하려고 강탈했다. 없는 자들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서, 굶주린 채로 울부짖었고, 집집마다 죽은 시체들로 가득했다.
예루살렘 거리에, 죽은 노인의 시체가 즐비했다. 길에서는 젊은이들이 비틀거리며, 걷다가 쓰러져 죽기도 했다(유대전쟁사 5장). 그때 지진이 있다고 했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 날 밤에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동시에 진동과 지진이 일어났다.
이러한 천재지변은, 인간에게 파멸이 다가오며, 세상의 체계가 혼란해질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엄청난 재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라는 예측하게 만들었다.” (유대전쟁사 4장 4:5). 그는 이러한 일들을, 멸망의 징조로 간주했지만, 예수님은 이러한 것들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했다.
재난은 여자의 해산의 고통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이런 징조들이 일어나지만,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성도들은 이러한 말씀으로, 평안과 위로를 받았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을 예고함으로, 성도들이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때, 당황하지 말라고 했다. 그 이유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적절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 아주 적절한 메시지였다.
2. 종교적 정치적 박해(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극심한 정치적, 종교적 박해가 나타나는데, 마태는 3가지로 요약했다.
① 환난 ② 순교 ③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들에게 미움을 받게 된다. 그 때 제자들은 공회에 넘겨져, 이단으로 정죄 받고, 공개적으로 매질 당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잡아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보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이 참 많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고, 순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회개의 메시지와, 예수님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몰아세움으로, 제자들은 큰 박해와 죽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염려하거나 회피할 필요가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언할 때,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당하는, 여러 가지 재판과 심문은, 하나님이 준비한 과정이니, 당황하거나 낙심하기보다,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승천한 후, 복음을 전하다, 산헤드린 공회와 유대인들에게 끌려가, 이런 고난을 받았다. 박해는 결국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되었음을, 역사가 증언한다. 따라서 예수님은 이런 때가 오지만, 넘길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미리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산헤드린 공회나 로마법정에 서게 될 때,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눅21:14-15)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환난당할 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난 일임을 알고, 담대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그때 통치자들 앞에서 말하는 분은, 제자들이 아니라, 성령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미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또 많은 반대자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시험했지만, 그런 음모에 말려들지 않았다.
예수님은 오히려, 완전한 지혜와 언사로, 그들의 음모를 드러내고, 그들이 아무 답변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세가 바로 앞에 섰을 때에도, 그들이 대답할 적절한 말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출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도 (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베드로와 스데반이, 법정에 섰을 때에도, 대적들이 능히 답변할 수 없도록, 완전한 답변을 주었다.
사도바울이 로마총독과 유대 왕 앞에 서서, 재판을 받을 때에도, 성령님은 그에게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었다. 이처럼 복음의 증인들이, 세상법정에 설 때에, 친히 할 말을 준다. 따라서 복음의 증인들은, 세상법정에 서게 될 때도 두려워하거나, 변명할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복음증거에 필요한 일임을 인정하고, 그때 성령님이 주는 말을 하면 성령님이, 완전한 은사와 지혜를, 허락해 주실 것이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복음전파 과정을 살펴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약속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볼 수 있다.
3. 많은 사람이 실족(10).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된다. 실족하다(스칸달리조, 걸려 넘어지다, 함정에 들다, 배반하다. 배신하다.)
박해받을 때 시험에 빠져서, 실족하게 된다고 했다. 배신과 배반이 일어난다. 따라서 실족하는 자, 즉 주님을 배신하고 배반하는 자들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었던 자들이 아니며, 입으로만 예수님을 부르던 자들이다. 박해는 거짓신자들을 구별하여, 진짜신자로부터 분리되게 한다.
참된 신자는 박해를 당해도,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지만, 거짓신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배신하게 된다. 거짓신자들은 축복만 원하지, 희생과 섬김은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고난이 오면, 즉시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간다. 이러한 배교의 현상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일은 아니다.
어려움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있어왔다. 그러나 예수님은 배교현상이, 예수님의 재림 때는, 다른 때보다 더 심하게 나타난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서로 잡아주고 미워하게 된다. 심판이 다가올수록, 거짓 신자들은 교회를 배반하고, 자기 이웃과 동료들을 고발하여, 당국에 넘길 것이다.
요세푸스는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을 때,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이기적으로 행동했는지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때 예루살렘에 사는 부자들은, 자기 배를 채우기에 급급했고, 가난한 자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외면했다. 권력자들이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백성들로부터 빼앗았다.
로마군대의 계속포위하자, 성 안에는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그때 강한 자들은, 약자들을 강탈했고, 약자들은 한줌의 곡식을 얻기 위해, 이웃이 숨겨놓은 곡식을 밀고하여, 성안은 생존을 위한 배신과, 살인의 전쟁터가 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조국을 배반하고, 목숨을 구하려고, 로마 편에 섰다.
로마역사가 타키투스는 초대교회에 있었던, 배교를 이렇게 기록했다. “처음에 기독교인이라 고백했던 사람들이 체포되자, 그 후로는 그들의 배신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이렇게 서로 잡아주고, 죽이는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믿음을 배신하는 일들이, 나타난다.
(11) “거짓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거짓 선지자의 출현이었다. 예수님은 그때가 되면,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날 것이라 경고했다. 거짓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전해서, 성도들을 혼란시킨다.
예루살렘 멸망 직전에는, 실제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요세푸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그때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폭도들에게 사주를 받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거짓 위로로, 백성들의 탈주를 막고, 용기를 주려고 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은, 이러한 약속에 쉽게, 설득을 당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자신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헛된 기대를 갖게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로마군대의 손에서, 구원받는다고 미혹했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을, 굶어죽거나 로마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는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받는다고 말한다. 기사와 이적, 그럴듯한 논리나 궤변들을 통해서, 백성들을 미혹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 유혹에 속아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기존교회와 목회자들을 비난하고, 자신은 굉장히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이들은 교회를 비난하며, 교회를 없애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이상한 칭호를 잘 사용한다. 선지자, 예언자, 사도, 불의 종, 능력의 종…, 성경은 이런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우리는 교회를 비난하면 안 된다. 비난하지 말고, 교회의 연약함을 보면, 기도하고, 개혁해야 한다.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불법(아노미아) ‘무법, 불의’를 말씀한다. 법을 지키지 않고, 도덕과 예의가 없게 된다. ‘성하고’(플레데나이: 증가하다, 많아지다)는 말이다. 또 사랑이 식어진다. 사람들의 죄는, 더욱 증가하게 되고, 사랑이 극도로 식어진다.
불법은 역사에서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예루살렘 멸망의 때는, 불법이 크게 증가하여 넘쳐나게 되었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성이 무너지기 직전에, 불법이 성행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 역시 역사의 종말에, 불법이 성행할 것을 예고했다(딤후3:1-5, 살후2:1-12).
법을 지키는 자들의 특성은, 다른 사랑을 사랑한다. 왜 율법이 주어졌는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주어졌다. 율법이 있고, 은혜가 있어야 한다. 은혜만 말다면, 무법천지가 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해야 한다. 자신은 일하지 않으면서, 하라고 하면, 무법자가 된다.
마지막 때가 되면, 교회가 사랑이 식어간다. 교회 안에 똑똑한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꾸 따지므로 교회 분위기가 냉랭해진다. 교회가 법을 지키지 않아서,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베풀지 못해, 이기적인 집단이 될 수 있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지막 때가 다가올수록, 우리 그리스도인은, 끝까지 견뎌야 한다. 어떻게 견딜 수 있나? (골2:6-7)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난리의 소문이 들려올 때, 당황하지 않고, 더욱 믿음으로 서기 바란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하나님이 믿음의 훈련인줄 알고, 배반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서로 섬기고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은혜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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