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 11월 2째주 - 산헤드린의 심문과 사도들의 답변(행5:30-42)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4-11-09 |
첨부파일: 산헤드린의 심문과 사도들의 답변.hwp(75K) |
산헤드린의 심문과 사도들의 답변(행5:30-42)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뒀다. 그러나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이끌어내, 성전에서 생명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말하라고 했다. 사도들은 순종해서,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가르쳤다.
대제사장과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가서보니 사도가, 한 사람도 옥에 없었다. 천사들이 옥에서 사도들을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하자, 옥을 지키는 부하들에게,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는 사도들을, 잡아오라고 했다.
잡아와서 예수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했는데, 너희가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 돌리려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대답하면서, 예수님에 대해 증언했다.
1.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언함(30-32).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여기서 사도들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사도들은 자기를 심문하는 사람에게 전도했다. 미워도 욕하지 말고, 예수님을 전하자. 욕하고 미워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 안에 없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3가지 사실을 선언했다.
①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이는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죽였다는 말이다.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저주하고 죽였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렸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려서, 그들의 판단이 잘못되었고 했다. 그들의 잘못을 증명한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었지만, 죄가 없기에 다시 부활한 예수님이, 복음의 내용이다.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구원자 예수님을 전했다. 원수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예수님이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생명이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망이다.
② 예수님을 살린 이유는, 예수님을 몰랐던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임금과 구세주로 세워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려고, 예수님을 부활시켰다.
③ 사도들은 이 모든 일의 증인이며, 성령님도 이러한 일을, 증언한다고 말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증인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라 지시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이 일의 증인이다.
목격한 일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은 없다. 전도할 때, 우리의 간증이 설득력을 더해준다. 자신의 체험 때문이다. 경험했다는 말이다. 간증하면, 순종하면 마음의 문을 연다. 마음 문이 열려야 말씀이 들어간다. 마음 문이 닫히면, 말씀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들은 대제사장의 지시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순종함이, 더 중요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주었다. 성령님도 사도들과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최고의 증인은 성령님이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고, 구주와 임금으로 높였으며,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 임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으로 시작해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성령의 증거로 끝을 맺는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었다.
2.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함(33-35).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 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사도들의 말씀이 산헤드린 공회의 아픈 데를 건드리자, 그들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다. 화가 났다. 살기가 생겨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 찔림이 있을 때 회개하라. 말씀을 전하는 자를, 죽이려고 하면 안 된다.
그때 가말리엘의 중재가 없었다면,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역시 사도들도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공회 회원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자기 행위를 진지하게 돌이켜야만 했다. 사도들이 말이, 양심을 건드리자, 오히려 분노를 터뜨리며, 그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완악해졌기에, 하나님이 어떤 증거를 제시해도, 돌아설 가능성은 없었다. 하나님은 사도들을 통해, 범죄 한 유대 지도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줬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그러나 회개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증언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했다.
사도들의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히려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회가 사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지켜주었다. 가말리엘을 통해, 사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었다. 가말리엘은 백성들에게 존경받던, 바리새파 사람이다.
그는 경쟁상대 사두개인보다, 사도들에게 훨씬 관대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는 유명한 진보적인 랍비 ‘힐렐’의 손자였고, 그의 문하생이었다. 백성들은 그를 ‘라반’으로 불렀다. ‘우리의 선생’이라는 존경과, 사랑이 가득담긴 칭호이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 가말리엘 문하생이었다(행22:3). 학식과 지혜의 중용으로, 유대에서 명성이 높았고, 모든 백성들에게 존경받았다. 이때 그가 취한 행동은, 공적인 이미지와 완전히 일치했다. 그는 말하기 전에, 잠깐 사도들을 밖에 나가 있으라 했다. 이렇게 한 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1) 사도들을 은밀하게 의논하기 원했다. (2) 사도들이 자기 말을 듣고, 담대해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밖에 내보냈고, 그 후에 공회원들이 감정으로, 성급히 사도들을 죽이지 말라고, 권면하며, 두 사람의 예를 들었다.
(36-37)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① ‘드다’ :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요단강을 마르게 해,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건너가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4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자, 군대는 그의 난동을, 강제로 진압하여, 백성들에게 많은 재난들을 겪었다. 드다가 죽자, 그를 좇았던 사람들이 다 흩어졌다.
② ‘유다’ : 갈릴리에서 유다도, 백성들을 미혹하여, 자기를 좇게 했다. 그 난동을 신속하게 진압했고, 유다가 도망치자, 그를 좇던 사람들도 모두 흩어졌다. 유다가 일어났을 때, 유대 당국은 사도들처럼, 신속하게 대응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선동한 폭동이 커져서, 백성들에게 많은 재난을 초래했다.
만일 이때 로마가 파견한 ‘파더스’가, 빨리 그 난을 타도하지 않았다면, 백성들에게 더 많은 해를 입혔을 것이다. 유다와 드다 때는 오히려, 유대 당국이 더 신속하게 대응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드다와 유다와 같은, 거짓 선지자와 동일시했다.
그는 사도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지도 않고, 거짓선지자와 난동자로 몰아붙여, 장차 사도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은 사도들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조사해야 했다. 모든 진상을 솔직하게 밝히고,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3.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내버려두라(38-39).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가말리엘은 드다와 유다의 이야기를 한 후에,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고 했다. 그들의 감정이 격해져, 성급하게 사도들을 처리하지 못하도록 했다. 사도들을 해치지 말고, 그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고 권면했다.
만일 사도들이 전하는 사상과 행동이, 사람으로부터 났다면, 결국 무너질 것이다. 그 사상과 행동이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면, 무너뜨릴 수 없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고 했다. 그는 공회원들에게 사도들을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도록 권면했다.
가말리엘의 조언은, 지혜롭고, 적절한 조언이었다. 성령님은 가말리엘을 통해, 사도들을 해치려는 공회원들의 손에서, 사도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가말리엘의 무간섭 방임주의 원칙이, 항상 옳은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지도자들이, 옳은 편에 서있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 이단 사상과 운동을, 제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불의한 자들이, 지도자로 있었기에, 차라리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했다. 그러나 올바른 지도자라면, 불의한 사상이나, 운동에 대해 자세히 조사하고, 막아야 한다.
앞서 성령님은 베드로를 통해 위선된 행동을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그 자리에서 죽일 정도로, 엄히 징계를 했다. 올바른 지도자가 있을 때는, 그릇된 사상을 전하거나, 그릇된 운동으로 성도들을 미혹하는 경우에,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그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40-41)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산헤드린 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받아들였다.
성령님은 가말리엘을 통해, 유대 공회원이 사도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었다.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사도들을 죽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도들을 그대로 풀어주지는 않았다. 그들은 밖에 나가있던 사도들을 불러들인 후에, 그들에게 채찍질을 가했다.
사도들에게 가한 채찍질은, 사십에서 하나를 감한 매로, 39대를 때리는 무서운 형벌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매를 맞다가, 죽는 일을 피하기 위해, 40대까지 매를 치지 않았다. 이러한 매를 맞은 사람은, 죽기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만류로, 사도들을 죽이지 않았지만, 아주 무자비한 방법으로, 사도들에게 형벌을 가했다. 그들은 사도들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사도들을, 풀어 주었지만, 매를 맞았던 사도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등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움직이기도 어려웠지만, 크게 기뻐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능욕 받음을, 크게 기뻐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고난이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쳐준 대로, 의를 위해서 고난 받음을,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그들의 육체는 심한 매질로 인해서, 큰 고통을 느꼈지만, 마음은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으로, 가득 찼다. 성령님은 그들이 당한 아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용기와 기쁨을 부어주었다. 이처럼 때로 인간들에게, 치욕적인 일이, 하나님 앞에는, 영광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받았던 고난과, 사도들이 당한 고난이, 바로 이런 예에 속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뿐만 아니라, 고난에도 동참하기를 원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자부심과 기쁨을 느꼈다. 이런 기쁨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거룩한 기쁨이었다.
기독교가 로마에서 국교가 될 때까지, 교회는 로마 황제들에게, 많은 박해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모든 박해를, 기쁨으로 극복했다. 성도들이 받는 박해로, 하나님께 인도된다면, 그 박해와 고난은, 축복의 선물이 된다.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사도들은 예수님을 위해, 매를 맞고, 고난 받음을 기뻐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산헤드린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다.
공식 석상에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복음을 전했다. 집에 있을 때에도, 복음을 전했고, 성전에 있을 때에도, 복음을 전했다.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사단은 유대 당국자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지 못하도록, 박해하고 위협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가, 사도들의 입을 닫지 못했다. 사도들은 고난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했다. 목숨을 내놓고, 공회의 지시를 거부했고, 쉬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가르쳤다.
채찍을 맞은 후에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담대해졌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사도들을 막을 것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히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는, 초대교회 초창기에 있었던, 두 박해에 대한 기사를, 마무리 짓고 있다.
① 유대 당국자들의 박해에서 의회는, 사도들이 가르치는 일을 금지하는, 금지령과 경고를 내렸다. 그러나 사도들과 교회는 더욱 더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더, 성령이 충만하여,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② 유대 당국자들의 박해에서 의회는, 사도들에게 매질했고, 예수님을 더 이상 전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 받는 일을 명예롭게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의회의 명령을 어기고, 날마다 어디에서나,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쳤다.
사단은 박해와 위협으로,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그러나 성령님은 더욱 더 담대히 복음을 전했다. 우리 다운교회가 어려움 속에서, 더욱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여, 하나님을 더욱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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