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11월 1째주 - 순종과 거부(행5:17-2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4-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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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거부(행5:17-29)
사단은 위선과 박해로,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기도로, 유혹과 박해를 훌륭하게 극복했고, 오히려 성장했다. 사도들은 기도를 힘입어서,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다. 베드로를 통해,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병든 사람들을 메고, 거리에 나왔다.
환자를 길거리에 눕히고,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기다렸다.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모두 나음을 받았다. 이러한 일로 예수님을 믿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큰 무리가 되었다. 유대인들에게 사도와 성도들이, 칭찬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시험과 시련이 지나가면, 부흥과 축복이 온다. 그러나 사단은 교회의 부흥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유대 당국을 통해, 교회를 공격했다. 사탄의 시기와 박해는, 계속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되기에, 우리의 신앙은 성숙되고 부흥한다.
1. 박해가 오는 이유(17-18).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나자, 백성들은 사도들을 따랐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함께 하는 자들이, 시기가 가득하여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교회의 박해한 사람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있던, 사두개인들이었다. 이들은 대제사장 주변 성직자들 중에서, 선발한 사람들이었다.
대제사장이 어려운 일을 결정할 때, 곁에서 조언해주던 자들이다. 당시 대제사장이 뽑은 사람들은, 공정한 재판을 위해, 뽑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두개파에 열심히 헌신하던 사람들이 뽑혔다. 당시에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은, 주로 사두개파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모든 백성이 사도들을 따르자, 시기심이 일어나서, 조직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박해의 배후에는 언제나, 사단이 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부패한 종교지도자들은 신앙의 이름을 빌려서, 무고하고 의로운 자들을 박해해왔다. 시기심을 채우기 위해, 잔인하고 포악한 박해를 했다.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산다고 한다. 이들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박해하지 않는다. 안다는 사람이 한다. 사두개인들은 시기심에 불타올라, 사도들을 체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거룩하게 말하고, 합리적으로, 신앙적으로 말하지만, 그 뒤에는 시기심이 있다.
존경을 하루아침에 빼앗겼을 때,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뛰어날 때, 사람들은 시기를 하고, 아주 교묘하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게 된다. 시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자는, 사탄이다. 서로 비교하는 것은 아주 좋지 못한 방법이다. 하나님이 그에게만 주신 달란트를, 내 마음대로 평가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교하게 되면, 나보다 못났으면, 우월감을 갖게 되고, 그를 지배하려고 한다. 자기 이론과 생각이 가장 옳다고 여기기에, 이런 사람은, 가르침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질투하게 된다. 상대방을 자꾸 깎아내리거나, 자격지심을 가지고, 자학하게 된다. (아마데우스)
사두개인들은 지난번엔 베드로와 요한만 체포했지만, 이번에는 대부분의 사도들을 체포해서, 옥에 가두었다.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판단이다. (19-20)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그러나 주님은, 밤에 자신의 사자(앙겔로스), 천사를 보내서, 사도들을 구원했다.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의 사자가 사도들을 구원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천사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게 동조했던 간수들이나, 내부 동조자들이 구원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천사가, 사도들을 구원했다. 이런 일들은 성경에 자주 나타나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천사에 관한 일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보냄을 받은 주의 천사는,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예수님은 사도들은 제자들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었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천사는 주의 은혜를 성도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사자를 보내어, 교회를 돌보신다. (저의 삶에도…). 이 사실을 믿으면, 어려움 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적을, 그 밤에 행했다. 주의 사자가 사도들을 구해낸 후, 이적을 베푼 목적을 말했다.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공개적으로 선포하라고 말했다. 만일 감옥에 있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더 되었다면, 빼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옥에서 나오는 것이 더 영광이 되기에, 하나님은 옥문을 열고, 그들을 빼냈다. 그리고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성도는 사명 때문에 산다. 투옥된 사도들은 석방되어, 박해에 굴복하지 말고, 계속 복음을 전파했다.
사도들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성전에 서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했다. 때때로 어려움으로, 의기소침해서 입을 닫고, 침묵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가 박해와 위협에도, 계속 복음을 증언하기 원한다.
대적들은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사도들을 감옥에 가두었으나, 예수님은 옥문을 열고, 그들을 구해 주었다. 주의 천사는 복음을 ‘생명의 말씀’이라 불렀다.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다해서 복음을 증언해야 한다.
2.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도들(21).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주의 사자는 사도들에게,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지 말라는, 공회의 명령을 거부하고, 주의 사자의 명령을 따랐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따를 때,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어려움도 따르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순종하고 따른다. 이것이 제자다.
다음 날 아침, 대제사장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다 모였다. 사도들을 처리하려고, 산헤드린 공회와, 이스라엘 원로들을 소집했다. 그 이유는, 폭력과 횡포로 탄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소집했다.
다른 분파를 무시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고, 법적인 모양새를 갖추기 원해서 소집했다. (22-23) “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그들이 감옥에 갔을 때에, 사도들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천사들이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돌아와서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어 본즉, 그 안에 한 사람도 없었다.’며 보고했다. 신앙의 세계에는, 이해될 수 있는 일만 아니라, 이해될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
(24-25)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은, 이 말을 듣고 당황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였다. 그때 한 사람이 왔다.
그는 감옥에 가두어 둔 사도들이, 지금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사두개인들은 이 보고를 들었을 때, 사도들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어느 정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을 박해하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실을 밝히기보다, 경쟁세력을 제거하기 원했다. 법적인 형식과, 절차보다, 그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행했다. 이러한 일들은, 부패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일이다. 중세교회의 교황들은, 성도들에게 비성경적인 일을 요구했다.
비성경적인 일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은, 이러한 비성경적인 요구를 거부했다. 그러자 그들은, 자기 권위에 맞서는 자들을, 다 축출해 버렸다. 부패한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 야심을 채우려고, 여러 가지 제도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세우기보다, 오히려 무너지게 만들었다.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은, 로마에 뇌물을 바치고, 직분을 얻었는데, 자신의 직책이 거룩하니,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보다, 자기의 야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고후11:14) 말씀처럼, 불의한 종교 지도자들은 언제든지 ‘빛의 천사’를 가장한, 사단의 도구가 될 수가 있다. (26)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사도들이 성전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성전 맡은 자는, 부하들과 같이 가서, 사도들을 체포하여 공회로 데리고 왔다. 그러나 그들은, 백성들이 돌로 칠 것을 두려워해서, 사도들을 강제로 끌고 오지는 못했다.
3. 예수를 전하지 말라(27-28).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들은 소란을 일으키기 않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순순히 심문을 받았다. 대제사장은 그들에게 2가지 죄를, 뒤집어 씌웠다. ① 공회의 결정을 따르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공회와 제사장의 명령에, 불복종 죄였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다.
② 사도들이 폭동을 교사한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 일이, 정당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도들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죽인 일이 부당하며, 그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죄 없는 예수님을 죽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들을 협박해, 예수님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사도들이, 폭동을 선도하고 있다고, 뒤집어 씌웠다. 유대 공회는 예수님을 정죄하고 죽였다. 또한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입 밖으로 부르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금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감옥에 가두기도 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의 지시를 듣지 않고, 계속해서 온 예루살렘에,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 유대당국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공회에서 대답한 사도들의 답변은, 하나의 설교 형태를 띠고 있다. 사도들의 관심사는, 자신에 대한 변호에 있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높이는데 있었다. 공회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추궁하는 자들에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아무리 대제사장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일을 지시하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그 말을 따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양심적으로 살고, 또 건전한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당국의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때때로 당국이, 하나님이 금하신 일을 하도록, 지시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당국의 권위를 거슬릴 수 있다.
인간의 권위와 하나님의 뜻이 충돌될 때에는, 사람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도들은 생각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좇기 위해, 유대 당국의 지시를, 어길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에게 권위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들에게 마땅히 순종해야만 한다. 그러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지시를 하는 경우에는, 그들의 권위는 유효하지 않는다.
어떤 통치자가 우상을 섬기고,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 성도들은 그 지시를 따를 수 없다. 이러한 일은, 교회에서 일하는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세움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그 뜻을 소개하고,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성도들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한,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지시하면, 그들의 영향력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사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대제사장의 지시를 좇지 않은 일은, 정당한 일이었다. 사도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을, 결단코 중단할 수 없었다. 그들은 유대 당국에 의해서 박해를 받고, 투옥된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에 거역할 수 없었다.
사도 바울은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주님의 말씀에 벗어난다면, 거부할 수 있는 믿음,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순교적인 믿음이다. 이런 믿음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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