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10월 4째주 - 구원과 감사의 열매(눅17:11-1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4-1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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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감사의 열매(눅17:11-19)
추수감사절의 기원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령한 절기이다. (출23:16中) “…수장(收藏)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수장절은 추수한 것들을, 거두어 창고에 저장하는 감사절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던, 삼대절기 중에 하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과 맥추절, 그리고 수장절을 지켰다. 하나님의 은혜로, 추수하게 됨을 감사하는 절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절대적인 절기였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절기이므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 된 기독교인들도, 추수감사절을 잘 지켜야 한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신 희생으로, 구원받았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감사절에만 하지 말고, 항상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받되, 헛되이 받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을 배은망덕하다고 한다. 따라서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자가 되자.
1. 나병환자들의 요청(11-13).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날, 사마리아와 갈릴리의 경계 지역으로 지나가다, 그 곳에서 10명의 나병환자를 만났다. 10명의 나병환자들 중에, 사마리아 사람도 있었다. 당시 관습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은, 함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따로 놀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버림받았기에, 서로 용납하며 함께 지냈다. 예수님은 전에도, 나병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예수님 당시에 나병환자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어,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기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거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들을 보면 기피했다. 혹시 전염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병환자들도 사랑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은, 막지 못했다. 예수님은 인간의 어떤 절망적인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다.
나병환자들 역시, 예수님이 그들의 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함께 모여서,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에피스타타)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은, 가르치는 교사(디다스칼로스)가 아니다.
누가는 7번 사용했는데 (눅5:5, 17:13)에서 ‘선생’으로, 나머지 5번(8:24, 45, 9:33, 49)에서는 ‘주’로 사용된 단어다. ‘선생’(에피스타타, 에피스타테스)은, 에피(위에) + 히스테미(서다)이다. 즉 ‘(위에)서 있는 자, 사령관, 주인’을 의미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는 의미로, 이 칭호를 사용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명령을 해도, 당신의 밑에 있으니, 즉시 순종하겠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이미, 병 고침을 받을,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은 그들을 고치기 위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는 말은, 제사장에게 가서, 나병이 고침 받았다고, 진단을 받으라는 말이다. 그 당시 나병의 진단을, 제사장들이 했다. 제사장들은 나병이 걸린 자를 진단하여, 공동체로부터 추방했으며, 그들이 완치되면 진단해서, 다시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도록 허락했다.
일단 나병환자로 판정받으면, 제사장의 허락이 있기 전에는, 공동체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들이 제사장에게 갈 때는, 병이 완전히 나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지도 않고, 무조건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리라고 지시했다. 순종의 시험, 믿음의 시험이었다.
나병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일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였는데, 몸이 낫지 않았다면, 큰 수치와 좌절감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 명의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듣고, 한 마디 이의를 달지 않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다 즉시 순종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 몸이 완전해지게 되었다. 모두다 시험에 합격했다. 예수님은 병자들에게 순종의 신앙을 요구했고, 그 말에 나병환자들은 즉시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순종이 이적을 만들었다.
2. 감사하는 한 사람(15-16).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그런데 열 명의 나병환자들 중에 한 사람이,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다른 아홉 나병환자들도, 깨끗이 치료되었지만, 나머지 아홉 명의 나병환자는, 병에서 놓임 받은 자신의 몸을, 빨리 제사장들에게 보이기 위해, 달려갔다.
그들은 이제 그리운 가족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안고, 고향을 향해 달려갔다. 오직 그들 중에 한 사람만, 자기를 고쳐주신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드렸다. 누가는 이때,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람이, 사마리아인이었다고 소개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많지만, 그 은혜에 감사한 사람은 적다. 이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한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 즉 혼혈족이다. 앗수르 사람들은,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이곳으로 주민들을 데려왔고, 외국에 데려가 살게 했다.
이 일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는, 순수한 유대인이 아니라, 혼혈족이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개처럼 여기고, 그들과 상종하지도 않았다. 예수님도 사마리아 사람을 ‘이방인’(18)이라고 불렀다.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다. 많은 은혜를 받고도, 그것이 귀중한 줄 알지 못했으며, 그 은혜를 이웃에게 나누어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어떤 모습이, 은혜 받은 사람의 참된 모습인가? 받은 은혜를 감사하며, 나누는 사람이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고침 받은 아홉 사람은, 그냥 가버리고 말았다. 이들은 모두다 유대인이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이었다. 믿음이 좋고, 믿음의 전통도 있다는, 유대인들이었다. 그러나 자기 길로 갔다. 나병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예수님에 대한, 한마디 감사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서 예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고 말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만들지 못했다.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그 은혜를 모두다 삼켜버리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흔히 본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는 자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직장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도 부탁까지 한다. 하나님이 직장을 주셨다. 그는 기뻐하며 직장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잊어버린다. 직장이 바쁘다고, 교회 출석을 안 한다. 우리가 은혜를 잊고 산다면, 은혜를 헛되게 하는 것이다.
은혜를 삼킨, 배은망덕한 자가 된다. 은혜를 망각한 아홉 명의 나병환자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가 되게 만들자. 어떻게 해야, 은혜가 은혜 되는가?
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한다. 자기가 나은 것을 보았다(15). 은혜를 은혜로 보아야 한다.
② 영광을 돌려야 한다(15).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은혜를 주신 분을 찾아가서, 엎드려야 한다(16).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머리를 조아렸다.
③ 은혜를 주신 분께, 먼저 감사해야 한다(16). 당시 고침 받았을 때, 사마리아 사람은, 함께 생활해 왔던 동료들에게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를 고쳐주셨으니, 어서 예수님께 감사하러 가자. 서두르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실지 모르니, 빨리 가자고 했을 것이다.” 그는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었다.
3.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님은 돌아와서 감사하는, 사마리아 사람을 보고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물었다. 열 사람이 모두 깨끗하게 되었다면, 그들이 모두 함께 와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렸어야 했다. 그러나 아홉 명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예수님은 배은망덕한 태도를 보인, 나머지 아홉 명의 나병환자들에게, 몹시 마음 아파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심각한 질병에서 자유롭게 되었지만,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지 않았다. 그들은 병이 나은 후에,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하는 일조차 귀찮게 생각했다.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드린 사람은, 오직 이방인인, 단 한 사람뿐이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즉시 돌아와, 감사드린 사마리아사람에게, 일어나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선언했다.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와서, 그 믿음을 표시했기에, 그는 육체적인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질병에서도 해방될 수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더욱 큰 은혜, 구원을 받았다. 다른 아홉 사람도, 나병을 고침받긴 했지만, 그들이 가진 믿음은, 기적을 믿는 믿음뿐이었다.
진정한 구원과는, 관계가 없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고,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졌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통해, 진짜 필요한 영혼의 구원을 받고, 참된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될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의 복음과, 은혜에 대한 참된 반응은, 유대인보다 이방인들을 통해서, 더 크게 나타났다. 하나님 나라의 적자였던 유대인들은, 복음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방인들과 사마리아인들, 그리고 유대인들 중에서, 세리와 죄인들은, 복음과 그 은혜를,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보다 이방인과, 세리와 죄인들이 더 먼저 들어가게 되었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은혜와 복이, 계속해서 주어질 것이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은혜와 복을 잃게 될 것이다.
감사는 모든 은혜와 복을 누리는 열쇠이다. 오늘도 단지 육신의 은혜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많다. 육신의 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더 큰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감사하지도 않는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차있어, 감사가 입술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 입술의 열매인 찬양이 있어야 한다. (출23:15下)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라.” 감사 후에, 하나님께 바칠 예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세무서 직원이 아니다. 그러므로 억지로, 물질로 바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릴 때 기뻐한다. 얼마나 은혜를 은혜 되게 하고자, 준비했는가? 돈 몇 푼을 들고 왔는가? 참으로 감사하는 감격스런 마음으로 왔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잊지 않는, 우리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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