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9월2째주 -핍박과 기도(행4:23-31)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4-09-14 |
핍박과 기도(행4:23-31)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나 걷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이 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사도들은 예수님이, 이 놀라운 이적을 행했다면서, 영광 돌렸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사도들을 불러서,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이 일을 행한 분은 예수님인데, 너희가 죽였다. 예수님은 다시 부활했고,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산헤드린 회원들은 정식 랍비교육을 받지 못한, 베드로와 요한이, 유창하게 답변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병이 나은 사람도, 그곳에 함께 있었기에,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의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잠시 내보낸 후에, 대책을 논의했다.
사도들이 행한 표적이, 온 예루살렘에 알려졌으니, 그 일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이상 백성들에게 확산되지 않도록,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사도들의 그들의 말에 불복하고,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1. 핍박은 교회를 한마음으로 기도하게 만들었다(23-24).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이디우스)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사도들은 공회에서 석방된 후, 즉시 동료들을 찾아갔다. 여기서 ‘동료’는 같은 자를 말하는데, 다른 사도들이 아니라,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은 새로운 제자들이다. 그러나 문맥으로 보면, 여기 언급된 동료는, 오천 명이 넘는 수많은 무리보다는, 더 작은 무리로 보인다.
따라서 여기서 동료는, 예수님을 주로 고백한 신앙공동체, 즉 교회를 말한다. 사도들이 체포되었다는 말을 듣고,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다. 사도들은 석방된 후, 즉시 그들을 찾아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 이름을 말하거나, 가르치지 말라고, 위협했다고 전했다.
사도들의 말을 들은 성도들은,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기도하고 찬송했다. 이때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소리 높여 기도했다. 여기서 ‘소리’가, 원문에는 단수로 되어있다. 모든 무리가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 되어 기도했다. 기도에는 개인기도와 합심기도가 있다. 합심하여 기도했다.
마음을 모아 하는, 합심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어떤 한 사람이 대표기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은 마음을 같이하며, 그 사람이 기도할 때, 아멘으로 동의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대표기도는, 회중을 대표하는 기도로 간주된다.
또 하나는 소리를 내며, 같은 주제를 놓고 하는 통성기도이다. 여기서 소리를 높여 말했다고 하니, 부르짖는 통성기도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통성기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마음을 토해내는 기도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기도의 특징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다.
성령님은 박해받는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 되게 했다. 하나 되게 만드는 기도가, 성령님의 기도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주재’로, 또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 즉 ‘창조주’라고 불렀다. ‘대주재’는 ‘주, 주인’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 통치자’로 사용되었다.
초대 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한다고, 분명히 믿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는 통치자이니,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이 다스리는 교회를, 해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믿음이 없으면, 흔들리게 된다. 이런 하나님을 믿게 되면,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주제가 됨을 믿어야 하는 이유? (25-26)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교회는 성령이 충만하여,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을,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했다. 무슨 예언을 말했는가? 그리스도가 핍박받는다고 예언했다. 성령이 다윗을 감동해서, 선포한 말씀이다. 성령님이 다윗의 입을 통해 한 말씀이, 무엇인가?
(시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열방)이 분노하며, 민족(족속)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성령님은 이 말이, 메시아를 핍박하는 말씀이라고 했다. ‘이방나라들’(에드네)은 복수형으로, 열방을 의미하고, ‘족속’(라오이)도 복수형인데,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 백성들을 가리킨다.
‘분노한다.’(에프뤼악산)는 열심히 달려온 ‘말’이, 콧김을 내쉬는 것처럼, 거칠고 거만한 태도를 의미한다. 이방나라들과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대적하기 위해서, 거만한 태도로, 거친 호흡을 내쉰다는 말이다. ‘경영하다.’(에멜레테산, 신경쓰다)는, ‘실행에 옮긴다, 주의하다.’는 뜻이다.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군왕들과 관리들이, 메시아를 대적하게 된다고 예고했다. 여기서 군왕은 헤롯 왕을, 관리는 로마총독, 유대관리들을 말한다. ‘나선다.’(파레스테산)은, 대적과 싸우려고 ‘정렬해 서있는 것’을 말한다. 전쟁에서 진치고, 대열을 지어, 싸움할 준비를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헤롯과 유대관리들은, 메시아를 대적하기 위해, 대열을 갖추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둠의 세력들이 연합해서, 메시아를 거역하고 대적했다. 교회는 이러한 다윗의 예언이, 헤롯과 빌라도 또한 유대 관리들을 통해서, 그대로 성취되었다고 고백했다.
2.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했다(27-28).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다윗의 예언처럼 헤롯과 빌라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해서, 메시아를 대적했다. 그런데 (눅23:12)을 보면,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원래 헤롯과 빌라도는 원수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해 ‘친구’가 되었다. 적과의 동침이다.
그들은 거룩한 종을 해치기 위해, 뜻을 하나로 모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거룩한 종 예수’라고 불렀다. 여기서 ‘종’(파이스)은 ‘아들, 어린 아이’의 뜻이다(마2:6; 눅2:43). 연약함을 강조하는 용어다. 이 말 앞에 ‘거룩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어 있다.
이는 예수님이, 보통 인간이 아니라, 신성을 가진, 거룩한 분임을 말씀한다. 예수님은 종의 몸인 인간으로 와서, 인류를 위해 돌아가셨지만, 신성을 가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눅1:35). 헤롯과 빌라도가 교회를 대적하고, 박해한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따라 예정된 일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교회를 대적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말(케이르)은 원래 ‘손’을 의미한다. 성경에 2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다. ① 사람에게 사용되면, 사람의 ‘손’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마12:10, 행19:26).
② 하나님에게 사용되면, 하나님의 손, 하나님의 능력이나, 권능을 의미한다(행7:50, 눅1:66). 따라서 ‘하나님의 권능’의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은,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손’, 하나님의 계획을 ‘기록해 놓은 손’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뜻을 세우고, 그 뜻을 기록하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는 분이다. 제자들은 교회를 박해하는 일이, 하나님의 예정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예정하셨다’(프로오리센, 프로오리조)는, 프로(앞, 이전에) + 호리조(표시하다, 경계를 짓다.)는 ‘미리 결정했다.’는 말이다.
교회 박해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예정이란 말은 주로, 누가와 바울이 사용한 용어였다. 그러나 베드로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가는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박해사건이,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안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대한 박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일어났다고 생각했기에, 박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더욱 더 담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다. (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제자들이 당한 어려운 상황이, 성경에 예고되고, 하나님의 예정된 일이라고 했다. 이제 사도들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요구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그 상황에서 필요한 것을 기도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고 있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 ‘대적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라고 했다. ‘굽어보시옵고’(에피데)는 에피(위에서) + 에이도(보다) = ‘눈을 떼지 않고, 위에서 지켜본다. 주목한다.’는 말이다.
(1) 대적들이 지금 교회를 위협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지켜보고 대적들의 손에서, 교회를 지켜달라고 간구했다. 이렇게 기도했던 이유는 ① 하나님이 모든 역사를 감찰하고, 주관한다는 것을 믿었고 ② 교회가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2) 제자들은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라고 기도했다. 그들은 위기와 박해 속에, 대적들이 멸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박해 속에,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했다.
여기서 ‘주시오며’(도스, 디도미)는 ‘지금 즉시 주옵소서’라는 뜻이다. 이 말은 위급한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할 때에 사용하는 말이다. 제자들은 박해와 위협 속에서, 절박하지만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간절히 요청했다.
(3) 제자들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했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능력의 손을 내밀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해 달라.’고 했다.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능력(손)을 통해 나타나는, 모든 이적’을 말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나는, 치유와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기를 원했다.
성령님은 사도들을 통해,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예수님이 메시아요(요10:25),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증언해주었다. 그 결과 하나님나라가 확장되었다. 사도들에게 주어진 ‘표적과 기사’는 성령님이 그들의 사도권을 인정하는 표시 중에 하나였다(행14:3).
3. 성령 충만으로 나타난 기도 응답(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제자들이 기도를 마쳤을 때 ‘그들이 모인 곳이 진동했다.’
‘진동했다’(에살류데)는, 성경에서 2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1)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상태’(마11:7)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2) ‘지진을 통해 일어나는 진동 상태’(행16:26)를 의미한다. 본문에서는 두 번째 의미, 즉 ‘지진을 통해 일어난, 진동 상태’로 사용되었다.
지진과 진동은 구약에서, 하나님이 임할 때에 나타난 현상이었다(사6:4). 여기서 성도들의 기도가 끝났을 때, 모인 곳이 진동했음은, 하나님이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했음을 뜻이다. 그때 성도들이 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신약에서 성령 충만은 2가지로 나타난다.
① ‘플레도’(핌플레미) 어떤 사람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할 때, 일시적으로 나타났다(행13:9). 이런 현상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도하는 일이다. 그러나 신약에서 성령 충만은, 성도들이 계속 사모해야 할 능력이다.
② ‘플레로오’이다(엡5:18).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고,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권면했다. 여기에서 바울은, 성령 충만을 성도들이 사모해야 할, 덕목으로 보았다. 여기서는, 복음 전파를 위해, 일시적으로 임한,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임했고, 이로 인해서 그들은 박해 앞에서도, 담대히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다. 성령 충만의 결과로, 믿는 무리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예수님을 믿기가 힘들어진다고 주님은 말씀했다.
(마10:22, 24: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했다. 그래서 핍박을 받을 때, 하나가 되어서 기도하자, 진짜 믿음의 사람임을 확인하자. 그래서 성령 충만하여 오히려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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