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14년도 8월 4째주 - 복음을 반대한 종교지도자들(행4:1-7)
  작성자 : bibleman 작성일 : 2014-08-24
  첨부파일:   복음을 반대한 종교지도자들.hwp(48K)
복음을 반대한 종교지도자들(행4:1-7)

유대인은 하나님의 언약의 주인공이었다. 하나님은 먼저,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보내서, 회개하고 구원받기 원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이 한 일을 보고 받았다. 그들은 소식을 듣고, 급히 사도들을 체포하기 위해서,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1. 복음을 반대한, 유대 지도자들(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사도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할 때,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왔다.

‘말할 때에’(랄룬톤)는 현재분사로, 계속적인 의미이다. 사도들은 그 곳에 모인 무리에게, 예수님을 계속 증언하고 있다는 소식을, 종교지도자들은 듣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급히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복음을 반대하고, 거부한 세력들은, 셋으로 구분된다.

(1) ‘제사장들’이었다. 제사장들은 산헤드린의 핵심인물로, 모든 성전 예배의식을 집행하는 성직자다. 제사장들은 사도들이 성전에서, 군중을 모아 놓고, 연설하는 것을 불법이라고 단정했다. 제사장들은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섰다.

그런데 또 다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대적노릇을 했다(마26:3-4). 당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로마정부와 협력해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므로 기득권을 침범하는 인물이 나타나면, 거침없이 대적하고 제거했다.

(2) ‘성전 맡은 자’였다. 성전 맡은 자는 성전 수비대 대장을 말하는데, 안토니아성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대의 장교라고 한다. 그러나 요세푸스는, 제사장으로 임명된 사두개파 출신 중에서, 이 일을 맡았다고 했다(5:24, 26). 성전 수비대는, 레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모든 내용을 종합하면, 성전 맡은 자는, 사두개파 출신 레위인으로 구성되었으며, 로마정부의 영향력을 크게 받고 있었다. 그 당시 ‘성전 맡은 자’(성전 수비 대장)는, 대제사장 다음 가는 지위를 가진 권력자였다.

(3)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사독의 후손이며, 영웅 마카비의 후손으로서, 하스몬 왕가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마카비시대의 영웅들을 메시아로 간주했다. 사두개인들은 열조가 시작한 메시아시대를,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제사장들을 포함한,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정통성을 주장하지만, 초자연적인 것을 부인하는 합리주의자다. 세속적인 현실주의자였다. 전통을 고수하고, 율법에 대한 진보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합리주의자였기에, 초월적인 존재들, 천사나 마귀, 부활교리를 믿지 않았다(23:8, 막12:18-27). 장차 올 메시아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아는, 이미 마카비 시대의 영웅이 시작했으며, 자신들이 계속해서, 그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두개인에게는, 메시아는 하나의 이상이고, 실존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치, 경제적인 권력을 소유하기 위해, 로마와의 관계를 유지했다.

성전을 지키는 경비는, 레위인이 담당했으며, 대제사장이나 성전 수비대장은, 고위직의 사두개인이 맡았다. 이렇게 세 종류의 무리들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못 걷던 이를 고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왔다. 그들의 의도는, 매우 종교적이고 악했다(눅20:1, 24:4).

이들은 나면서부터 못 걷던 자를 고치신, 놀라운 하나님의 사건을, 제일 먼저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사해야 할 성전에서, 봉사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놀라운 역설이 있다. 주님을 가장 잘 섬기고,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 사람이, 가장 주님을 반대하는 세력이 되었다.

2.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체포함(2-3).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 예수 안에 죽은 자들에게는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파했다.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고 했다.

예수가 부활했고, 부활을 가르치는 것’이 싫어했다. ‘싫어하다’(디아포네오)는 디아(통하여, 때문에) + 포네오(수고, 고통)으로, ‘고통으로 심히 격노하고, 크게 불안해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싫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과 다른,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이 가르쳤고, 백성들에게 전파했다. 이 놀랍고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는 큰 위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불안했다.

이런 기쁜 소식이 전파되면, 종교 지도자들의 안전과 인기에, 문제가 생긴다. 예수님이 메시아요, 부활한 분이요, 이적을 베푼 분이라면, 그들의 신앙의 허구성이 드러날 뿐 아니라, 위치가 흔들린다. 자기의 위치가 흔들리면, 생활의 문제, 즉 생존권을 위협당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나온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초대교회를 박해하는 세력들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었다. 교회의 성장과 축복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박해와 고난이 아니라, 내부의 비판과 분열과, 거짓과 위선이다.

오늘날의 교회성장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 자체다. 세상 사람들이나, 타종교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그 동안 자신이 누려왔던, 조그만 이익이 타격을 입을까봐,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부인하고, 거룩한 역사를 오히려 방해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2)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전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고, 범죄자로 몰아서 사형을 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들이 죽인 예수님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증언했다. 베드로의 이러한 증언은, 예수님을 범죄자로 몰아서 죽인 제사장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부활 증언은,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다. 자기들의 기대와 생각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자,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함을 보고, 크게 노하고 불안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했을 때, 자기 권위와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고, 솔직히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어떤 어려운 상황 때문에, 자기가 잘못한 줄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끝까지 변명하고, 그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결국에는 할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할 때조차도, 변명한다. 그런 사람을 보면, 추하고 불쌍하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더 이상, 무리를 가르치고,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지 못하도록, 즉시 사도들을 체포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지배 하에 있었기에, 범죄 한 사람에 대해, 형을 집행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성전을 더럽히는 일은, 종교적 문제로, 최고형도 선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들을 체포한 후에, 즉시 처리하지 못했다. 사도들을 체포했을 때, 이미 날이 저물었기 때문이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가두었으나.’ 당시 랍비 법은, 해가 진후에 어떤 심문이나 재판도, 하지 못하도록 금했다. 그래서 날이 저문 후에는, 의회가 모일 수 없고, 어떠한 송사도 제기할 수 없었다. 유대 지도자들은 할 수 없이, 사도들을 감옥에 감금시켜 놓고, 다음 날이 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사도들은 체포되었지만, 그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말씀을 듣고 믿은 사람이,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남자의 수만 5000명이 되었음은, 실제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5000명이, 어떤 사람인지, 2가지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① 이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② 그 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믿은 사람이 아니라, 오순절 때부터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되었더라’(에게네데)가, 부정과거로 되어 있기에, 5000명이 믿은 일은 지나간 모든 일을 언급하고 있다. (행2:41中)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고 했다.

‘더했다’(프로세테데산)도, 미완료 동사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일어난 과정을 의미한다. 한 번에 삼천 명이 믿은 것이 아니라, 몇 차례의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5000명은 (행2:41)에 나타난 3천명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예수님을 믿은, 모든 성도들의 숫자이다(6:7, 16:5).

어떤 견해를 받아들이든지, 종교 지도자들의 방해와 박해에도, 예수님의 교회는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령님은 방해와 박해 속에서도, 폭발적인 능력으로, 복음을 증언하여, 교회를 신속하게 증가하도록 만들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면, 고난과 박해는, 결코 무서운 것이 아니다.

성령의 바람과 불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긴다. 말씀이 없으면, 믿음은 자라지 않는다. 생각으로 자라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야,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와 같기에, 뿌려지면, 자라게 된다.

3. 산헤드린 공회가 열림(5-7).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다음 날 아침,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사도들을 심문하려고 예루살렘에 모였다. 여기 언급된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산헤드린 공회회원이다. 산헤드린 공회는 원로원으로, 최고법원으로서, 극형을 제외한 모든 사건을, 판결할 권한이 있었다.

‘관리’(아르콘타스)는 종종, 대제사장과 같은 말로 사용되었다(행23:5). ‘장로들’(프레스뷔테루스)은 각 족속의 지도자로, 이스라엘 공동체를 대표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었다. 장로제도는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기 위해 ‘덕과 경험을 지닌 사람’을 세운데서 시작되었다(출3:16, 4:29, 민11:16-17).

‘서기관들’(그람마테이스)은,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율법교사로,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다. 누가는 그 자리에는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요한과 알렉산더, 그리고 대제사장 문중이 모두 참석했다고 밝혔다. 대제사장 안나스는 전에,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재판에, 개입했던 원로였다.

그는 A.D. 7-15년까지, 9년간 대제사장으로 있었고, 그 후에도 계속,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 배후에서, 실제적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요18:13-24). 가야바는 안나스의 사위로 A.D. 18-36년까지 18년간 대제사장으로 있었으며, 당시에는 산헤드린 의장으로 활동했다.

요한과 알렉산더가 정확히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요한은 36년에, 가야바를 대신해서 대제사장이 된, 안나스의 아들 요나단으로 보고 있다. 또한 대제사장의 문중은 사두개인 가문인데, 그들은 초기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주동했다. 예수님을 처형했던 자들이, 다시 뭉쳤다.

대제사장 가문이, 이 재판에 참석함은, 그들의 영향력이 산헤드린 공회에,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도들을, 재판 법정 가운데 세웠다. 산헤드린 최고 권력자들은, 긴 옷을 입고, 높은 단상 위에, 반원형으로 앉았다. 피고는 낮은 마룻바닥 위에 서서, 심문을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피고를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고 물었다. ‘무슨 권세’는 ‘어떤 종류의 능력이냐?’는 뜻이다. 사도들은 그들이 마술적 주문이나, 악령의 힘으로, 이적을 행한 것처럼 추궁했다(신13:1-4).

그들은 사도들이, 하나님이 아닌, 불법적인 능력을 힘입어서, 활동하는 것처럼 몰아붙였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누구의 이름으로’ 이러한 일을 행했느냐고 말했다. 사도들에게 ‘누가 시켜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었다.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들에게, 성전에서 가르치는 권한을, 준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에게, 누가 시켜서 이런 일을 했는지, 추궁했다. 물론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러한 일을 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이단인 동시에, 신성모독 자였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고, 이러한 일은 그들에게 신성 모독죄에 해당했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간교한 질문을 던졌다. 만일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했다고 말하면, 사도들은 이단 괴수의 말을 좇아, 불법적인 일을 한, 삶이 될 것이다. 만일 사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했다고 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했다고, 정죄 받을 수 있다.

그들은 어떻게 대답해도, 정죄 받을 수 있는, 간교한 질문을 사도들에게 던졌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온전하게 된 일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하나님의 역사가 정말 나타났는지, 이적이 사실이라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본질의 문제는 젖혀놓고, 비본질적인 문제를 제시함으로, 문제의 핵심을 흐린다. 중요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허비하며 세월을 보낸다. 그들이 관심은, 누가 시켜서 이런 일을 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전에 예수님도 대제사장들에게, 이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간계를 알고, 지혜롭게 대답했다(마21:23-27). 사도들 역시 산헤드린에서 이러한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종교 지도자들의 간계를 드러내고, 그들을 책망했으며(9),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기회로 만들었다(10-12).

교회의 위기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윤리도덕을 말하고, 전설을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말하면서도,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성령을 말하면서도, 이상한 성령을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핍박이 와도, 진리를 외치는 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잘못했을 때,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끝까지 감추려고 하면, 진짜 용서받을 수 없게 된다. 복음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부활이 있다는 말이다. 다른 복음은 없다. 복음을 믿으면, 죽음 앞에서도 담대해질 수 있다. 이런 복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

  이전글 : 2014년도 8월 3째주 - 회개하고 돌이켜 영접하라(행3:19-26)
  다음글 : 2014년도 8월5째주 -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행4:8-12)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