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7월 2째주 - 베드로의 설교(행2:1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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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bibleman |
작성일 : 2014-0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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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행2:16-32)
사도행전에는 많은 설교들이 등장한다. 여기 나오는 설교들 중에서, 8개는 베드로, 9개는 바울의 것이다. 스데반과 야고보의 설교가, 각각 하나씩 있다. 베드로의 설교는 다른 언어를 말하는 놀라운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다.
1. 말세에 모든 육체에, 성령이 임한다는 약속의 성취(16-17上)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베드로는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각각 다른 언어로, 하나님이 하신 위대한 일을 말함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겠다고 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욜2:28-32)이 성취된 것이라고 했다. 베드로는 ‘이것이 요엘에 했던, 바로 그 예언이다.’라는 말로, 그의 설교를 시작했다. 그 예언은,
(욜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여기서 ‘그 후에’를 의도적으로 ‘말세에’라는 표현으로 바꾸었다. 이는 성령이 오심으로, 말세가 도래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유대인에게 ‘말세’는, 메시아가 와서, 만인이 모여들 때를 의미했다(사2:2, 미4:1). 베드로는 말세를, 성령님이 와서, 만민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에 적용했다. 말세에 성령님이 와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가는, 마지막 시대를 가리키는 말로 베드로는 사용했다.
(욜2:32上)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씀했다. (행2: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요엘이, 주님 여호와가, 죄인들을 죄와 심판에서 구원해 줄, 예수님이라고 말했다.
신약의 저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마지막 메시아 시대를 열었고, 성령의 부음이, 이 일에 대한 최종증언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말세에, 자신의 영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 이 약속은 말세에 대한,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다.
성령이 오심은, 말세가 도래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언다.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대는, 성령이 가장 활발하게 사역하는 시대이다. 여기서 ‘부어준다’는 말은, 마치 열대성 폭우가 쏟아짐을 생각나게 한다.
하나님은 말세에 쏟아지는 폭우처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준다. 여기 언급된 ‘모든 육체’는 외적인 지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말세에 성령은 신분, 성별, 연령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쏟아 부어준다.
말세에 성령님은, 이방인을 포함하여,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다. 지금까지 성령님은 유대지역에서, 그것도 특별한 사람에게만 임했다. 그러나 오순절 이후부터는, 성령님은 온 세상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임하실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1) 모든 성도가 예언자가 된다(17下-18).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요엘의 예고다.
‘예언’과 ‘환상’과 ‘꿈’은, 구약시대에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계시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오순절 이후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신약시대에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오순절의 성령강림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시이며, 모든 교회를 위해 주어진 것이다. 요엘은 그때 하나님이 ‘자기 영을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고, 그들은 예언할 것이라!’고 했다. ‘종’으로 번역된 말(둘로스)은, 노예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들을 말한다.
‘예언한다.’는, 17절에 나오는 ‘환상’과 ‘꿈’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 임하여, 예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고 했다. 예언은 미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다. 남녀노소 종들에게까지 임하시는 성령님이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예언자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동시에 주어진 명령이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성령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이런 점에서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예언자라고 말할 수 있다. 성령을 받고,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다.
(2) 말세에 일어날 징조와 구원의 시대(19-20).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욜2:30-31)을 보면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라고 예고했다. 기사와 징조는, ‘피와 불과 연기’라는 표현에 의해, 구체적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이 임할 때의 모습이다.
‘영화로운’(에피파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사용된, ‘나타나심(아피파네스)’과 동일한 어근이다(살후2:8).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심판과 구원은 완성된다. ‘주의 날’은 구약에서(사13:10, 암8:9)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말한다.
이러한 예언들은 문자적으로는, 말세에 일어날 자연의 대변동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금요일에 시작되었으며, 종말이 오기 전에, 이러한 격변들이 더 일어나게 된다.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엘은 이때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욜2:32). 오순절(성령이 오심으로, 마지막 날을 시작)과 나팔절(예수님이 그 날을 맺기 위해, 다시 오심) 사이에는, 긴 시간이 흐르게 된다. 이 기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이 전파되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이때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도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함을 의미한다(롬10:9-10, 13).
말세는 오순절로 시작되고, 예수님의 재림(주의 날)으로 끝날, 구원의 시대에는,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기는, 마지막으로 온 인류에게 주어지는, 위대한 은혜의 시대이다.
2.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해 말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 말을 들으라.’고 했다. 요엘 선지자가 했던 예언에 대해, 베드로를 통해 들은 무리는, 예수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이제 베드로를 통해, 그토록 기다려왔던, 메시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 소식은 모든 구약의 성도들이, 보고 듣기를 원하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마땅히,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통해,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셨으며, 이를 통해 예수님을 증언했다고 말했다. 성령사건의 주체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 앞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예수님은 권능으로, 하나님
의 크신 능력을 보여주었고, 놀라운 기사들을 통해, 무리들을 놀라게 했다. 여러 가지 표적을 통해, 무리들에게 자신이 메시아 되심을, 나타내 보였다. 가장 놀라운 일은,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다.
이 일은 예수님이,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 온, 메시아임을 증언했다. 이 일들은 은밀히 행해진 것이 아니다.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일어난 일이다.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
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유대인들은 주님을 믿지 않는, 로마 군인들의 손을 빌려, 죽이고 말았다. 이는 하나님의 정한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바 되었다고 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이 이미 결정되었다.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예수님을 통한 인류의 구원계획을 세웠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에 의해, 결코 변하지 않는다.
자기 제자에게 배신당했으며,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체포되어, 온갖 모함과 조롱을 받고, 또한 채찍으로 심한 매질을 당했다. 또한 유대인들은 법 없는 자들, 즉 로마인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죄수를 사형할 권한이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해, 로마총독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고 나서, 아무 죄도 찾을 수 없기에, 놓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놓아주면, 민란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해, 결국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허락받는데 성공했다.
실제로 일반 백성들은, 예수님을 죽인 일과, 상관이 없었지만, 베드로는 모든 유대인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인 일은, 개개인의 죄가 아니라, 유대 민족 전체의 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려주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났다.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 된다. ‘사망의 고통’은,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기 위해 놓은, 덫과 같은 것으로 ‘죽음의 덫’이나 ‘매는 줄’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사냥꾼이, 죽음의 덫을 치는 것처럼, 덫을 놓고 예수님을 잡아 죽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고, 죄가 없었기에, 사망의 덫에 매여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했다. 사망이 예수님에게, 왕 노릇 할 수 없었던 것은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시편에 예고되었다(25-31).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베드로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구약의 시편(16:8-11)을 인용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 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이는 다윗이 (시16:8)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한 것을, 성경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대표적인, 메시아의 예언 중에 하나며, 메시아 부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베드로는 잘 알려진
이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입증하려고 했다. 이러한 베드로의 논증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해석에 기초한다.
(막12:35-37)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부활후의 기독교 전통과 일치했으며, 또한 당시에 인용된 미드라쉬의 해석 방법과도 일치했다. 베드로는 다윗이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25)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여기서 언급된 ‘주’는 예수 그리스도다. 다윗은 메시아가, 자기를 요동하지 않게 하려고, 자기 곁에 계심을 보고, 크게 기뻐했으며,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송했다.
또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었다(26). 희망을 갖게 됨은,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지 않게 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27). 따라서 다윗은, 주님이 보여주신 생명의 길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크게 기뻐할 수 있었다(28).
그러나 베드로는, 이 시에서 언급된 사람이, 다윗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지금까지, 그들 중에 있기 때문이다(29). 베드로는 다윗은 선지자로, 하나님이 다윗의 자손들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한다고 맹세했음을 알고 있었다(30).
다윗은 성령의 영감으로, 하나님이 예고하신 메시야를 미리 보았으며, 장차 그 메시야가, 부활할 것을 예고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윗이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는 말은, 다윗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예고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31).
베드로는 이러한 다윗의 예고대로, 하나님이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했다.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살리신 일에 대해, 자신들이 증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의 손과 발을 만졌으며,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고,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밀을 들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부활을, 세상에 증언하라고 위임을 받았다. 성령이 임함으로, 이방인의 구원이 시작되는 말세가 되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하고, 예수님을 일으킨 부활의 능력이 임하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 예고된 일이니, 우리는 성령을 받고서, 이 일의 증인이 되기 바란다. 우리는 성령을 받았는가? 그리스도의 증인의 삶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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