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7월 1째주 - 다른 언어인 방언(행2: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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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bibleman |
작성일 : 2014-0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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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인 방언(행2:5-15)
하나님이 약속한 성령님이 오신 날은, 유대인들이 오순절로 지키는 날이었다. 이 날은 밀 추수를 시작하고, 감사하는 맥추감사절인 동시에,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 날 성령님이 오셔서, 영혼의 열매를 추수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셨다.
또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겨놓았다. 성령님이 임할 때, 그 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를 들었으며, 그 소리는 온 집을 가득 찼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은 타오르는 불이, 혀와 같은 모습으로 갈라져 나타났고, 사람들 위에 임한 것을 보게 되었다.
또 그 곳에 있던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오순절에 성령강림은, 민족과 계급과 신분을 넘어서,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1. 경건한 유대인들이, 제자들이 하는 방언을 듣고 소동(5-6).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경건하다’(율라베스)는, 신약에서 유대인들에게 사용된다. 경건한 유대인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각국으로부터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찾아온, 신실한 유대인을 말한다. 유대인들은 바벨론에게 유다가 멸망한 후, 포로가 되거나, 나라를 떠나서 흩어져 살던 자, ‘디아스포라’를 말한다.
이처럼 디아스포라들 중에, 경건한 유대인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곤 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직후부터, 제자들은 성령 충만을 받고, 각각 자기들의 나라 말로, 방언을 하기 시작했다. 120여명이 동시에, 다른 언어로 말하게 되자, 그 소리는 예루살렘 거리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일을 보면, 제자들이 모인 장소가, 사람들이 많은 혼잡한 곳이었다. 제자들의 방언 소리는, 다락방에서 시작하여, 주변골목과 안뜰로 퍼져나갔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 경계 지역에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각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은, 제자들이 전하는 말을, 그들이 살고 있는 말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언급된 ‘방언’(디알렉토스)은 (고전14장)에 언급된,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이 아니라, 외국어 방언이었다. 이방인의 구원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다.
오순절은 떡 2개를 흔들어 드렸다. 이는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됨을 의미한다. 바벨탑의 저주로 혼잡해졌던 언어는, 성령을 통해 다시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인간 중심의 나라는,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지만, 성령의 하나님 나라는, 언어를 통일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이 되게 만들었다.
(7-8)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 곳에 모인 무리들은, 제자들이 자기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모두 다 크게 놀랐다.
무리들은 배우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1:11) 각 나라말로, 말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그들은 크게 당황해서, 2가지 질문을 던졌다. ① 그들이 던진 질문은,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이 질문은 제자들의, 출신에 관한 것이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배우지 못했기에, 언어 구사력이 없는, 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요1: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따라서 제자들이, 다른 나라의 말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②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들 나라 말을 배우지 못한 갈릴리 사람들이 ‘그들의 나라 말들’을 하는 것을 듣고,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셈어, 헬라어, 라틴어(로마) 등과 같은 여러 종류였기에, 그들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2.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찾아온 나라들(9-11).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글롯사이스, 글로사)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동쪽에서 시작해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당시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언급했다. 이 지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동방 또는 바벨론(9上) :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동방 또는 바벨론에서 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갔다가, 그 곳에 정착했던, 유대인의 후손들이다(왕하 17:6, 단1:1-2).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주로 셈어였다.
② 소아시아, 터키(9下)-10上) :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일부 학자들은 유대를, 메소보다미아와 갑바도기아 사이에, 기록한 것을 보고, 여기에 언급된 유대는 유대 지역뿐 아니라, 아르메니아를 포함하는 팔레스타인과 수리아 전역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주석가들은 유대를 ‘유대인’으로 해석하고, 이 부분을 ‘메소보다미아와 갑바도기아에 사는 유대인들’이라고 말한다.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는, 소아시아(터키)지방으로, 당시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다(벧전1:1).
당시 소아시아의 지방에는,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13-19장). 브루기아와 밤빌리아는 아시아와 갑바도기아의 중간에 위치한, 로마의 행정 구역이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셈어(유대)와 헬라어였다.
③ 북아프리카 지역(10中) : 애굽, 구레네, 리비아: 사용언어(라틴어)
유대인들은 주전 6세기 초부터, 계속해서 애굽에 거주해 왔다. 주님 당시 애굽에는 약 1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때 알렉산드리아의, 5구역 중, 2구역이 유대인이었다고 한다.
애굽의 톨레미 1세는, 그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유대인들을, 구레네에 정착시켰다. 이로 인해, 구레네와 그 곳에서,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방에도, 유대인들이 흩어져 살게 되었다(6:9; 11:20; 13:1).
④ 지중해를 건너, 로마로부터 온 유대인과, 개종자들(10下-11上): 사용언어(라틴어)
주전 2C경에, 로마에는 유대인 거주지역이 있을 정도로,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은, 주전 62년 폼페이 장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갔다가, 후에 자유롭게 된 사람들로 보인다.
그들 중에는 나면서부터, 유대인들이었던 사람들과, 이방인으로 있다가,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 당시 로마에서,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는, 유대인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⑤ 그레데 사람들과 아라비아인(11中).
그레데는 그리스 남방의 섬이고, 아라비아는 홍해에서, 유브라데에 이르는 지역, 요르단의 나바티안 왕국, 아라비아 반도와 예멘을 가리킨다.
이처럼 예루살렘을 방문한, 15개 나라에서 살던 유대인과, 이방인개종자들에 대해, 자세히 말했다. 이 나라들은 당시에, 지중해를 중심으로, 근동과 유럽지역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유대인과 개종자들에게, 그들이 사용하는 말로, 제자들은 하나님이 행한 위대한 일을 전했다.
(11下) ‘하나님의 큰 일’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는, 구원사역을 말한다. 사도들은 성령을 받게 되자, 모든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하신 일’을 전파했다. 이 이적들은 이미, 주님이 제자들에게 약속했다(요16:13-1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이러한 예수님의 약속은, 성령의 오심으로 그대로 성취되었다.
3. 무리들의 반응(12-13).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각 나라에서 온, 경건한 무리들은, 제자들이 자기 나라 말을 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당황하며 말했다. 여기서 놀라며(엑시스테미)는, 엑스(…밖으로) + 히스테미(서다) = ‘제 정신이 나가다.’이고, ‘당황하여’(디아포레오)는 디아(사방으로) + 포류오마이(가다) = (몹시) 난처하다, 당황하다는 말이다.
미완료형으로, 제자들을 보고, 계속 놀라고 몹시 당황했다는 말이다.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무리는 이러한 현상을 보고, 좋은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일도, 나쁘게 사는 사람이 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제자들을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했다. 그들이 누구인지 9-11절에 언급된 사람들인지, 다른 사람들을 가리키는, 분명하지 않다. 당시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외국에서 온 사람들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살던 유대인들도, 많이 있었다(14).
그러므로 제자들을 조롱하던 사람들 중에는, 외국에서 온 사람들 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바울이 아덴에서 죽은 자의 부활을 전했을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그때에 아덴 사람들 중에 일부는, 바울을 조롱했다(17:32).
초자연적인 일을 모르는 사람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미쳤다고 한다(고전14:23). 자연인은 초자연적인 일을 알지 못하기에, 자기 나름대로 그 일을 바꾸어, 해석하기 마련이다. ‘새 술’은 술은 아닌데, 술 취한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조롱하게 된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괜히 시비를 건다. (14-15)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조롱하는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바란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했던, 방언에 대하여 말했다. 이 방언은 성경에서, 독특한 것이기에, 자세히 보자. (행2장)에 나타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한 방언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1) 술에 취해 한 행동이 아니다. 분명한 정신 속에서, 성령에 의해 일어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과 함께 서서, 큰 소리로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알게 할 테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외쳤다.
베드로는 자신들이 새 술에 취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은 제3시라, 술을 마실 때가 아니라고 했다(15). 유대인들은 하루를, 12로 나누었다. 그 중에서 제3시는 아침9시에 속했다. 이 시간은 유대인들에게,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제4시까지는, 식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침에는 술고래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특히 오순절 같은 명절에는, 유대인이 아침예배가 끝날 때까지 금식했다. 따라서 그 시간에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거리를 다니면서, 떠들고 다닌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방언을 하게 된 것은, 새 술에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이 말하게 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한 방언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지껄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정신 속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서 한 말이었다.
(2) 청각적인 착각에 의해,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이 실제로, 다른 나라 말로 말하지 않았으며, 단지 무리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6中)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8)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11中)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 도다.” 했다.
(3)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아니다. 이적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주의 학자는, 이때 120명의 성도들이 황홀경에 빠져서, 마구 떠들어 댄 것을, 누가가 임의로 해석해서, 그들이 다른 나라 말을 한 것처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이적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일 뿐이다.
누가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누가는 오순절에 제자들이 했던 방언은, 사람들이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언어였으며, 성령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일어난, 현상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때 제자들이 했던 말이, 갈릴리에서 사용되던 아랍어, 헬라어, 그리고 라틴어였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무리들이 이때 놀란 것은, 제자들이 했던 방언 때문에 아니라, 하나님이 한 큰일을 말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제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크신 일을 듣고, 놀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태어난 나라말로, 제자들이 유창하게 말하고 있었기에, 진짜 놀랐다.
그 곳에 모인 많은 지역을 언급한 것도, 바로 이러한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9-11절에 언급된 15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아람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보다, 더 다양한 말을 사용했다. 그들은 모두 다, 제자들이 하는 말을, 자기 모국어로 들었다. 그러므로 크게 놀라고, 당황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4) 이 방언은 (고전12, 14장)에 언급된 방언과는 다른 것이었다. 오순절에 제자들이 했던 방언은, 몇 가지 점에서 (고전12, 14장)에 언급된 방언과 달랐다. ① 말하는 대상이 달랐다. 고린도전서의 방언은 하나님을 향한 말이었지만, 사도행전에 언급된 방언은, 무리들을 향한 말이다(고전14:2, 행2:14-17).
②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방언(글로사)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어, 통역자가 필요했지만, 사도행전에 언급된 방언은, 모든 무리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③ 이 방언은 성령이 임하셨음을 증언하기 위한, 하나의 표적이었고, 고린도전서에 언급된 방언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성령님이 주신 은사였다.
그러면 이 방언의, 진정한 의의는 무엇인가?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임한 방언은, 교회가 성령 안에서 인종적, 국가적, 언어적 장벽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그 곳에 모였던 무리들의 국제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물론 그 곳에는, 온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온 세계의 민족들을 대표하고 있다. 이 목록에서, 셈과 함과 야벳의 자손들을, 다 포함시키고 있다. 이 목록은 (창10장)에 나온 것과 비교할 수 있는 ‘민족들의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셈족에 속한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함족 사람들(애굽, 리비아)과 야벳에 속하는 사람들(그레데(깃딤), 로마 거주자)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제자들이 했던 방언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인종을 초월하고, 민족을 초월하고, 언어를 초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 교부들을 비롯한, 수많은 주석가들이, 오순절 사건을, 바벨탑의 저주가 역전된 것으로 보았다. 바벨에서 사람들은, 인간 중심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다가, 언어가 혼잡하게 되어, 각 지역으로 흩어져야 했다(창11:7, 9).
그러나 성령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셨다. 이러한 점에서 오순절에 임한 방언은, 다가올 구원이 모든 민족과, 인종을 포함할 것을 보여준다. 바벨에서 인간이 교만하게, 하늘로 오르려고 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성령님이, 겸손하게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므로 거룩한 성령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 바란다. 겸손하자. 성령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로, 민족과 계급과 신분을 뛰어 넘어, 한 언어, 한 꿈을 말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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