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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4년도 5월 3째주 -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고함(눅24:33-48)
  작성자 : bibleman 작성일 : 2014-05-18
  첨부파일: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고함.hwp(23K)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고함(눅24:33-48)

예수님의 죽음에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너무도 기뻤다. 마음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너무 기뻐서, 식사하다 말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 밤에 제자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이미 날이 어두워서, 여행하기에 적절하지 않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곳에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어두움을 해치고, 부활소식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이는 성령님이 눈이 열어서,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의 모습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은, 감격을 혼자 간직하지 않는다. 즉시 일어나서, 그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게 되어 있다. 글로바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열한 제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여자들과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무덤에 가서, 빈 것을 확인하고 돌아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때 엠마오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두 제자도, 그곳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에 대해, 제자들에게 이야기했다.

1.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 보이셨다(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글로바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말하고 있었다.

먼저 여자들이 부활을 전했고, 그 다음에는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했다. 제자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은, 그들에게 계속해서 전해졌다.

언제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지, 기록하지 않았기에,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전15:5上) “게바에게 보이시고…” 제자들은 처음에, 여자들이 전한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그러나 제자들의 대표인 베드로가, 같은 소식을 전하게 되자, 서서히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드로의 증언으로, 성도들은 새로운 기대를 갖게 했으며, 한 장소에 모여, 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소식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제자들에게 전파되었다. 예수님은 계속 증인을 보내서, 굳게 닫힌 제자들의 마음과 눈을, 서서히 열어주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자들은, 완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는 못했다. (막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눅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세 번째 증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글로바 일행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제자들에게 전했다. 글로바 일행도, 베드로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음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을,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들은 길에서, 예수님이 성경을 해석해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진 일과, 예수님과 함께 떡을 뗄 때에,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일, 그리고 갑자기 예수님이 사라진 일 등에 대해, 상세하게 이야기 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여러 증인을 세워서, 부활을 증언했다. 제자들은 계속해서 전해지는, 부활소식을 듣고,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지만,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소식은, 너무도 엄청난 일이기에, 예수님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완전히 믿지 못했다.

이러한 부활소식은, 마가복음의 독자였던,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메시지였다. 로마교회 성도들은 제자들처럼, 순교와 박해의 위협 앞에, 놓여있었다. 이로 인해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처럼, 슬퍼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 일부는, 자기와 함께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을 보여주었다. 부활한 예수님을 발견하는 순간, 모든 순교와 박해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부활한 예수님을 보지 못한 사람은,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가는 그들에게, 부활한 예수님에게, 눈을 돌리게 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죽으신 분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다. 그러나 눈이 닫혀 있으면,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기에, 말씀을 통해서, 우리 눈을 열어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이 눈을 열어 주시면, 글로바 일행처럼, 부활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 글로바 일행처럼 기쁨과 감격으로 달려가서, 부활소식을 전하기 바란다. 부활의 예수님, 살아계신 예수님과 동행하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성령님께 눈을 열러달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2.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심(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 동안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자신을 나타냈지만, 이제는 11명의 제자들에게, 동시에 나타내셨다.

여자들과, 막달라 마리와, 베드로와, 글로바 일행은, 개인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그들이 전하는 증언을, 믿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셨다. 이는 모든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최종적으로 확증한 사건이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때 문이 굳게 닫혀 있었으며, 제자들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을, 요한은 강조한다.

당시에 제자들은, 위험한 선동자의 추종자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은밀한 곳에, 은신하고 있었다. 산헤드린과 로마 군사들을 피하기 위해, 한 곳에 은밀하게 모여서,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이 사건은 부활한 예수님의 몸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증언해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19)에, 예수님은 문을 닫은 상태에서, 방으로 들어왔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공간의 장애를 받지 않고, 초월하는 모습을 강조한다. 부활한 예수님의 몸은, 공간을 초월하여,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던 방에 나타났다.

살아계실 때에 가졌던 몸을, 예수님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동시에 원하기만 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몸으로 변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인사했다.

‘평강’(에이레네)는 ‘평화, 화평, 복지’등의 뜻을 가진 말로, 히브리어의 ‘솰롬’에 해당하는 말이다. ‘솰롬’은 유대 전통 인사말로, 길에서 사람을 만났을 때(왕하5:21), 헤어질 때(삼상1:17, 행16:36), 또는 이웃을 방문할 때(마10:12)에 주고받는 인사이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일상적인 인사가 아니라,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평강’은, 세상이 주는 평강과는 다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특별한 평안, 어떤 경우에도 두렵지 않은 평강이다(14:27). 예수님은 산헤드린의 군사들이 두려워서, 은밀하게 모여 있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선포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며, 유대인의 보복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부활한 후에, 그들에게 나타나서, 평강을 선포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일시적으로, 제자들을 근심하게 했지만, 부활로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이 태어날 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땅 위의 평화’를 노래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선포했다. (눅24:37-38)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제자들은 그들 앞에, 유령이 나타났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예수님을 보고, 죽었던 예수님의 ‘영’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다(도케오, 처럼 보이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며, 그 시신이 무덤에, 장사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었던 예수님이 나타남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다(가현설). 이렇게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예수님이 굳게 닫힌 문을 열고,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죽었던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남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함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여러 번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예고했기 때문이다.

3번 이상,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왜 의심하고 무서워하느냐?”고 책망했다. 그들은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믿지 못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였다. (39-40)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예수님은 자신을 보고, 유령으로 생각하는 제자들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고, 나를 만져 보라!’고 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 박았던, 못 자국이 남아 있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보라고 말씀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분명히 살과 뼈를, 가지고 있다.’면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자기 손과 발을 보여주었다. (요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님의 손에는, 못 자국이 있었고, 예수님의 옆구리에는, 창에 찔린 흉터가 남아있었다. 당시의 이단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본 것은, 환상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와 요한은 그들의 주장이 옳지 않다고,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다. 제자들이 본 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한 후에, 살과 뼈를 가지고 계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보고, 기뻐했다. 제자들은 사랑하는 예수님을 잃고, 은밀히 숨어서, 목자 잃은 양처럼 슬퍼했다. 그러나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기뻐했다. 제자들처럼 부활한 예수님의 손과 발, 그리고 몸을 만져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도, 부활을 믿게 해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더욱 더 복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들 역시, 기쁨으로 예수님을 찬양해야 한다.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분이 계신가? 그렇다면 지금, 부활한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바란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바로 지금, 예수님을 찬양하기 바란다.

3. 예수님이 생선을 드심으로 부활을 증거(41-43).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예수님의 손과 발을 확인한 제자들은, 처음에 긍정적인 반응했다. 예수님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러나 여전히,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보고, 놀랍게만 여겼다. 이제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을 넘어서, 기쁨과 놀라움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의 불신을 종식시키기 위해, 한 가지 일을 더 행했다. 제자들에게 “여기에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언하기 위해, 함께 앉아 식사하려고 했다.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생선을 들었다.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다. 누가는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제자들과 식사한 일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이러한 언급을 통해, 제자들이 본 것이 유령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임을 강조하고 있다.

(44-45)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생선을 드신 후, 부활이 구약성경에, 미리 예고된 일임을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살아계실 때부터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에 대해 예고했다. 예수님은 실제로 부활한 후에, 전부터 말해왔다며,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 즉 구약성경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래 전부터, 이 일을 가르쳐 주셨지만, 그때는 제자들이, 이런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알게 되었다. 이제 예수님이 예고한 일이, 성취되었기에, 그 일을 이해하기가 가능해졌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던, 구원계획을 자세히 다시 설명해주었다. 제자들에게 구원계획을 가르쳐 주는 동시에,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눈을 열어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셨다.

그 후에 다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의 눈을 열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제 또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구약에 예언된 구원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성령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은 이제 ‘열리게’(디아노이고) 되었다.

디아(통하여, 사방으로) + 아노이고(열다) = 철저하게 열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높이 쌓여있던 불신과 오해가, 모두 다 무너졌다. 제자들은 그 동안,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계획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항상, 예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일들을, 행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제자들은, 성령을 통해 마음이 열리게 되었고,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을 열어주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우리도 깨닫지 못하게 하는, 높은 담이 놓여 있다.

우리도 예수님의 뜻과 다른, 삶을 살아 왔지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주신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환경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말씀을 통해 이를 확증하신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깨닫게 해주신다.

(46-48)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며, 성령님이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예수님이 우리 눈을 열어 주고, 성경에 예언된 구원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신다. 눈이 열린 자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을 안다.

또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되는, 회개를 안다. 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됨을 믿는다.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이렇게 될 때, 우리도 제자들처럼, 담대히 세상에 부활을 증언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성경과 성령을 통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그래서 내가 실망하고 떠났던 자리로 돌아가서 소망을 잃고, 평강을 잃고, 좌절가운데 살아가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부활의 증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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