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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4년도 2월 4째주 - 간음하지 말라(마5:27-28)
  작성자 : bibleman 작성일 : 2014-02-23
  첨부파일:   간음하지 말라.hwp(44K)
간음하지 말라(마5:27-2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을 문자적 형식적으로 강조하다가, 율법의 정신을 버렸고, 또한 성경의 정신에서 벗어난, 여러 가지 규정들을 만들고, 그 규정을 율법과 동등하게 취급했다.

예수님은 형식적인, 율법해석의 사례들을 보여주며, 올바로 잡아주었다. 그 중에 살인을 금지하는, 6계명을 지난주에 나눴다. 오늘은 간음을 금지하는 7계명(로 틴아프, ףאָ󰘁󰚝 א󰗟)을, 예수님이 어떻게 말씀했는지 말씀드리겠다. 간음은 (니우프, ף󰔡󰗼)이고, 간음하다는 (나아프, ףאַ󰗺)이다.

결혼한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 이외의, 다른 사람과, 자기의 의지를 따라, 성교함을 말한다. 성경은 간음에 대해, 아주 단호히 말씀한다. (레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모두 죽음으로, 그 대가를 받게 된다.

탈무드는 간음을, 살인과 우상숭배와 더불어, 아주 중대한 범죄로 취급되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맺은 서약을 위반하는 것이고, 인간의 뜻을 하나님의 뜻 위에 놓음으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간음은 부부간의 신뢰를 의심하며, 육체와 함께, 정신적 심리적 분열을 조장한다.

간음은 종교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무서운 죄로 인식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위험성은, 가족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고대 공동체가, 커다란 가족공동체로 이루어졌음을 생각해 볼 때, 간음은 공동체가 깨지는, 큰 재앙이 되었다. 지금도 간음으로, 많은 가족 공동체가 깨지고 있다.

1. 간음에 대한 바리새인의 해석(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해석을, 부정적으로 말씀했다. 너희가 지금까지 그렇게 들었지만, 잘못 들어서 그렇지,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간음을 금지하는 계명을 주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십계명을 낭독하고, 해석해 주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7계명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간음을 문자적으로, 불법적인 성행위로만 해석했다.

육체적으로 불법적인 성행위만 하지 않으면, 7계명을 지켰다고 가르쳤다. 사람이 마음으로, 음욕을 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이러한 잘못된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을 성적방종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다스리지 못해서, 결국 음욕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 당시의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이루려고, 아주 손쉬운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이 바로 이혼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이혼을 아주 쉽게 생각했다. 이혼하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남편에게 무안 주었을 경우도, 이혼사유가 되었다. 심지어는 아내가 요리하다가, 음식을 태우거나, 소금을 많이 넣어, 짜게 만든 경우도,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 남자들은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별 이유를 붙여서, 아내를 내버렸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증서 한 장만 써주면 끝났다.

그런 뒤에 남자는,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들과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그러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다. (마19장)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와, 이혼에 관해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난 뒤, 결론적으로 말씀했다. (마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그런데 그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제자들이, 무엇이라 말했나? (마19: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혼이 그렇게도 어려우면, 차라리 장가들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말할 정도니까,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이혼을 쉽게 생각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잘못된 해석은, 그 당시 사람들을 성적 방종상태로 몰고 가서, 도덕적으로 문란한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2:39, 16:4)라고, 탄식했다.

2. 예수님의 해석(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권세로, 말씀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했는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간음을, 육체적인 불법 성행위로만, 제한하지 않았다. 여자나 남자를 보고서, 음란한 마음을 품는 것도, 간음에 포함시켰다. 예수님은 행위와 동기를, 똑같이 보았다.

마음속에 더러운 생각과, 나쁜 동기를 가지는 것도 죄지만, 그것을 숨기고, 겉으로 의로운 척하며, 위장하는 것은, 더 가증스러운 죄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죄에 대한 관점은 언제나, 내면에 있었고, 행위보다, 그 동기에 있었다.

육체적인 성관계는 없지만,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플라토닉 러브도,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매음도, 야한 것을 보는 것도, 예수님은 간음으로 보았다. 문자로만 해석하지 않고, 율법정신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자기 배우자를 사랑하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는 말은, 의도가 무엇인가?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뜻인가? 여자 앞에서는 눈꺼풀을 땅에 내려 깔고, 땅만 보며 가라는 뜻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지금 이 말씀을 통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깨뜨린다.

(마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음욕이 불일 듯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간음죄를 저지르지 않고, 계명을 잘 지키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했다.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했던, 바리새인의 기도내용을 잘 알고 있다. (눅18:11中)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마음에는 음욕이 불붙었지만, 겉으로는 계명을 잘 지킨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눈으로 드러나는 간음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가차 없었다. 혹독하게 다루었다. 그 예가 (요8장)에 잘 나타나고 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와서,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요8:4-5)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 가련한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돌로 치려고 했던 자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몸을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을 쓰고 (7中)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자, 그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었다. 그제야 그들은, 한 사람씩 그 자리를, 다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질책했다. 그러니 어찌 그들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로는,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들의 의는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 우리도 간음한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너무도 잘 알기에, 스스로를 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세리와 같이, 애통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긍휼히 여긴다.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혀 주신다. 이제 우리에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없는 의가 있다. 그들보다는 더 나은 의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의, 온전한 의다. 그리스도의 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살고 있기에, 천국의 시민이 된 것이다.

3. 성적으로 타락하지 말라.
성경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간음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통, 간음하는 도시와 같다. 음란한 장소가 얼마나 많은가! 내적으로 타락했는가!

미국은 법원정문에 붙어있던 십계명을, 철거하도록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는 재판관들이, 성적인 일에 대해 판결할 때, 선입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가정들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적개방과 무질서로 인해, 온갖 문란한 사건들이, 매스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나라도,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원조교제, 부부교환, 동성애 같은 문제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성개방과 무질서는, 문화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더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이 만연함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과 쾌락을 신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적인 타락은, 거룩한 가정을 원하는,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세상풍습과 가치관을, 강하게 배격해야 한다. 음란은 정부나 군대가 막지 못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부패한 세상에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날마다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이렇게 하여, 가정의 거룩함을 지킬 때,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과,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취는 등불이 될 수 있다. 창조원리에 따라, 간음을 금하는 7계명이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남편과 아내가 순결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성욕을 갖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준 성욕이 나쁜 것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음란한 욕심이 나쁘다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을 통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이 창조한, 가정의 원리들은 무엇인가?

(1) ‘성’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남성과 여성’을 만든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좋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기에, 좋지 않은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담이, 외롭게 혼자 사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후에, 그의 갈빗대를 가지고, 돕는 배필,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거룩하고 선하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영적인 일은 거룩하지만, 성적인 일은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올바른 사상이 아니다.

불교에서 승려들은 머리를 깎고, 여인을 멀리하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고 한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결혼한 목사보다, 결혼하지 않은 신부가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성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거룩하고 선하다고, 성경은 말한다.

(2) ‘가정’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고, 직접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다.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을, 하나가 되도록 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주례자가 되어, 최초의 결혼식을 주례를 섰다. 그때 하나님의 주례사는 이렇다.

(창2:24) “이러므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 지로다!”라고 선언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세상에 가정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가정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선한 것이다. 남녀가 사랑하고, 결혼하여 하나 됨은 하나님의 뜻이다. 가정과 성은, 아름답고 선한 일이다.

하나님은 가정을, 친히 축복했다. 아담도 하와를 보고 (창2:23上)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면서 감탄했다. 아담은 하와를 본 순간, 깊은 일체감을 느꼈다.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는 직역하면, 원래 ‘내 뼈로부터 나온 뼈요, 나의 살로부터 나온 살이다.’이다.

즉 ‘내 뼈요 내 살이라.’는 말이다. 아담은 여자를 보는 순간, 한 눈에 그녀가, 자신과 하나라는 사실을 느꼈다. 따라서 혼자 외롭다면, 죄짓지 말고 결혼해서, 가정을 가져라. 동성과 근친만 아니면,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다.

(3)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순결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했다. (말2:15) “그(여호와)에게는 영이 충만하였으나, 오직 하나를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에게는 영이, 충만했다.’고 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 때, 남자와 여자를 여러 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한 남자를 만들고, 그 남자로부터 오직 한 여자를 만들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이유는, 그들을 통해 한 자손,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나님은 여러 남자들과 여자들이, 혼잡하게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통해서, 경건한 자손을 얻기 원했기에,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고, 그들을 통해 경건한 자손이 태어나기를 원했기에, 마음을 지켜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라고 했다.

7계명을 이런 창조원리로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가정을 만들고, 남자와 여자가 경건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결혼을 한 후에, 서로 마음과 몸을 지켜서, 정결한 관계를 지킬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가, 문란하게 섞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새들이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머리에, 둥지를 트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다. 건강한 남자나 여자가, 순간적으로 성욕을 느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불륜의 관계로 이어진다면, 이미 마귀에게 이용되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을 사용하지 말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을 조심하라.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요소들을 근본적으로 잘라버리라. 성도의 능력은 순결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 있도록 성결하기를 바란다.

(약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우리 육체도 거룩하고, 우리 영혼도 거룩해야만 한다. 형식과 내용이 함께 가기를 바란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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