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4년도 2월 1째주 -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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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bibleman |
작성일 : 2014-0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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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16)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다. 여기서 ‘너희’는,
① ‘강조형’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빛이 필요할 만큼, 어둡다고 보았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계관이며, 성경적인 세계관이다. 따라서 너희가, 이 역할을 하라는 말씀이다.
② ‘복수형’이다. 빛은 집합적으로 사용된다. 빛은 입자들이 모여서 이뤄지고, 어둠을 밝힌다. 이처럼 제자들이 모인 곳을 ‘교회’라고 한다. 교회는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쳐야 할 성도들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의 빛이요, 이 시대의 희망이다.
③ ‘선언’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라.’고, 하지 않았다. 너희가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을 했다. 성도는 천천히, 빛이 되어 가는 존재들이 아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그는 이미 빛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 살면서, 세상의 어두움을 밝혀야 한다.
빛으로 존재하는 자들은, 산이나 세상 밖으로 도피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캄캄한 세상 속에서, 어둠을 몰아내며 사는 사람들이다. 잘못된 신자들은, 죄 많은 세상을 피해서, 신앙 속에서만 살려고 한다. 현실은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만 바라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연약하고 보잘것없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우리를, 이미 세상의 빛으로 삼았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하게 사용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귀하게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1. 이 세상은 암흑의 상태다(14上).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세상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만,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세상은 타락했기에, 죄와 죽음으로 어둡고, 절망적이다. 따라서 생명의 빛이 필요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8:12)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준, 유일한 구원의 빛이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어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고, 빛을 잃은 세상에, 영생의 길을 가르쳐 주는, 유일한 빛이다. 또한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했다.
진리의 성령을 성도들에게 보내주었기에, 성령님을 통해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엄밀히 성도들은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반사체는 될 수 있지만, 빛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하자.
① 빛은 어둠을 밝힌다. ② 빛은 어둠을 몰아낸다. 어둡다는 사실을 알아야, 빛을 밝혀서 어둠을 몰아낼 수 있다. 예수님은 죄로 인한, 영적인 어둠을 말했는데, 사람들은 지식적으로의 어둠, 무지로 생각해서, 15-16세기에 세상을 ‘계몽’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경을 대신할, 헬라 고전에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 자리에 인간과, 인간의 이성을 올려놓았다. 중세시대까지 권위의 근거로 생각했던 성경과, 하나님의 계시의 자리에, 인간의 철학과 사상을 놓았다.
그래서 성경보다, 과학지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간을 꿈에서 깨어나, 바로 보게 한다는 의미로 ‘계몽주의’라고 했고, 이 시기를 ‘계몽시대’라고 불렀다. 18세기에도 계몽과 비슷한, 문예부흥(르네상스)이 일어났다. 지식과 정보의 발견은, 21세기 지금,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인간의 지식은, 세상과 우주를 이해하는데,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가 이렇게 많은 지식과 정보 속에서, 여전히 어둠 속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가, 계속 발전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방황하고, 갈급해 한다.
세계 곳곳에, 전쟁과 테러, 지진의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지식을 많이 갖고 있지만, 우주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진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람들은 원자력을 발견한 후, 그 기술로 핵무기를 만들어서, 인류를 파괴할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고 말았다. 또한 이기심으로 인해, 환경을 파괴하며,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다. 지식과 과학은 증가하고 있지만,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는, 실패하고 있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인간의 본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하나님 대신, 돈과 쾌락을 더 섬기고, 짐승과 인간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지식이 많은 사회일수록, 이혼율과 성적 타락이, 가속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인류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단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많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자신이 한 약속도, 손해가 되면, 헌신짝처럼 버린다.
인류는 많은 지식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사라졌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데 실패했다. 진리의 빛을 잃고,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면서, 수고와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적극적으로, 어두움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소금과 빛은, 역할이 똑같다.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나 소금이 간접적인 역할이라면, 빛의 역할은 보다 더 직접적이다.
소금은 소극적인 역할을 하고, 빛은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소금은 은밀하게 역사한다. 그 안으로 스며들기에,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나 빛은, 밝히 드러난다. 밖으로 발산된다. 빛이 비치기에, 사람들의 눈에 환하게 보인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이 천국 백성들을, 세상에 둔 것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세워주신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① 산 위에 있는 동네에 관한 비유다. 예수님은 ‘산 위에 높이 있는 동네가, 사람들에게 숨겨질 수 없다!’고 말씀했다. 예루살렘도, 베들레헴도, 나사렛도, 전부 산 위에 있는 동네들이다. 팔레스타인의 산은, 나무가 별로 없어서, 산 위에 있는 도시가,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겨지지 못한다. 낮에는 햇빛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밤에는 집집마다 켜놓은 등불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낮이나 밤이나 숨겨지지 못한다. 이와 같이 성령님을 따라 사는 빛의 자녀들도, 사람들에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질 수 없듯이, 성령님을 따라 사는 천국 백성들도 세상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그 소문은 세상에 퍼져나가게 된다. 비록 우리가 겸손하게, 자신을 숨기려고 해도, 성령의 열매를 계속 맺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②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는다(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여기서 언급된 ‘말’은, 흙으로 만든 토기로, 곡식을 재는 말과 같은 도구다.
사람들이 등불을 켜는 것은, 집안을 환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말(곡식을 담아 재는 그릇)로 덮어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등불을 켠 후, 그 빛이 집안을 비치게 하기 위해, 그것을 받침대에 올려놓는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집은 작았기에, 등불 하나로 충분히 집을 비췰 수 있었다. 그리고 각 가정에는 등불과 그것을 올려놓는, 작은 선반이 있었다. 사람들은 등불을 켜서, 그것을 작은 선반에 올려놓아 집안을 비치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잘 때가 되면, 말로 덮어서 등불을 껐다.
하나님은 천국 백성들을, 세상을 비치는 등불로 사용한다. 성령님을 따라 사는 천국 백성들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등불과 같다. 하나님은 천국 백성들을 통해서,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추시기를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빛의 사명을 다하는, 천국 백성들을, 은밀한 곳에 숨겨두지 않는다.
어두운 밤에 사람들은, 잠을 자고, 술에 취하며, 여러 가지 방탕한 일들을 행한다. 성령님은 천국 백성들을 잠에서 깨어, 정숙하고 단정한, 빛의 삶을 살도록 한다. 그러나 소금이, 맛을 잃는 것처럼, 천국 백성들도, 세상에 빛을 비추지 못할 수 있다.
복음은 산 위의 동네와, 선반 위에 놓인 등불과 같아서, 숨기거나 덮어 둘 수 없다. 복음을 전하지 않고, 숨겨두는 것은, 산 위의 동네를 숨기고, 등불을 말로 덮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또 어떤 성도들은, 등불이 계속해서 타오르도록, 기름을 공급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빛은 꺼지고, 또 다시 어둠에 묻히게 된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세상에서 빛을 비추기 위해, 계속적인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그러나 성령 충만을 구하지 않고,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성도들이 많다. 기름이 없는 등불은, 가물거리다가 결국 꺼져 버려, 세상을 비출 수 없다.
3. 빛의 역할의 결과(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여기에 우리의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한 결과가, 2가지로 나타난다.
(1) 착한 행실을 볼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아래 놓이게 되었다. 하나님은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셨다. 그리해서 이 어두운 세상을, 복음의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마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서, 죄악 속에 살고 있음을, 모두 다 드러냈다.
또 어떻게 하나님과 회목하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 가르쳐 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진리와 구원의 길을 비추어 주었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도덕성은, 더 진보되지 못한다.
동성애자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증가하고, 자살과 성범죄자도 증가한다. 과학이 발전하면, 사람들은 이기심으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자기 행복만 추구하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은, 왜 이러한 일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말해준다. 세상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죄의 노예가 되어, 어둠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 죄를 해결하는 길은, 복음과 성령님뿐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감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서, 사람들이 죄와 싸워 승리할 수 있게 한다. 성령님은 어둠 속에 살던 사람들을, 빛의 자녀로 살아가게 한다.
성령님은 교만한 사람을, 겸손하게 하고, 죄를 즐기던 사람을 죄에 대해 애통하며, 의를 갈망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킨다. 성령님은 무자비한 사람에게, 긍휼한 마음을 주시고, 시기하고 다투던 사람을 평화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한 삶을 살아야 한다.
(2)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방에 불을 켜면, 어둠 속에 있던 것이, 환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빛이 비치면 죄가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어둠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었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선한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요셉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가는 곳마다 축복을 가져왔다. 그가 보디발의 집에 가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고, 감옥에 가면 감옥이 복을 받았으며, 또 궁궐에 가면, 궁궐이 복을 받았다.
애굽 사람들은 요셉을 통해서, 그와 함께 하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애굽 왕 바로는 요셉을 통해, 세상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발견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고, 그를 통해서 온 세상에, 진리의 빛을 비치게 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다니엘도 선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서,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바벨론 사람들에게,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사실을 나타냈다. 그는 매사에 온전하게 행함으로,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높여서, 그를 통해 세상에 빛을 비치게 했다. 바벨론 관리들이, 그를 시기하고 모함을 통해, 사자 굴에 던져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자들로부터 구원해 주셨다. 느부갓네살은 이를 통해, 하나님이 참된 신임을 발견하고, 온 나라에 조서를 써서, 하나님만 섬기도록 지시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 영광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께 누를 끼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선한 삶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게 해야 한다.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란다.
12사도들도 세상에,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다.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상을 섬기던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성령님은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했다. 이처럼 성도들은 선한 행실과 복음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고, 또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천국 백성들이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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