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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4년도 1월 4째주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5:13)
  작성자 : bibleman 작성일 : 2014-01-26
  첨부파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hwp(23K)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마5:13)

(마5장, 6장 7장)은, 예수님이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내용이기에, 산상수훈, 또는 후세에 길이 전하여질, 보배로운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산상보훈(山上寶訓)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세상에서 피하지 말고, 좋은 영향을 끼쳐서, 변화시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물들지 않기를 바란다. 배가 바다에 떠 있어야 하지, 배에 물이 들어와 잠겨버린다면, 끝장나게 되는 것과 같다.

성도는 불교도와 같이, 사회에서 격리되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속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한 후, 세상 속으로 파송했다. 따라서 성도는 수도원 같은 곳에서, 명상만 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이, 교회에만 모여 있고, 흩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행8:2)을 보면 하나님은 교회에 박해를 일으켜, 강제로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했다. (행8:4)을 보면, 곳곳에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서, 복음은 짧은 시간에,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1.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라(13上).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고 했다. 여기서 ‘너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제자(탈미드)는 ‘스승을 보고 배우는 사람’을 말한다. 세상은 헬라어로 ‘게’(γη)인데, ‘땅’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천국백성들을, 교회나 천국의 소금이라 하지 않고, 이 땅의 소금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천국백성은, 교회나 산속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세상에 나가,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이 세상은 소금을 필요할 만큼, 부패했기 때문이다.

(창1장)을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창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나님이 금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었다. 그때부터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렇게 타락한 세상에서,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소금은, 팔복 다음에 나온다.

팔복은 제자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 특성을 보여준다. 제자들의 특성을 이해하면, 예수님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불렀는지, 알 수 있다. 제자들은 성령님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피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천국백성이 되어야 한다.

성령님을 통해 제자들은, 죄에 대해 애통한 마음을 가지고 살며, 온유한 영을 받았고, 의에 대한 소원을 회복한 사람들이다. 이웃을 긍휼히 여기면서,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세상에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제자들은 세상으로 나가서, 소금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만 나오면 저절로, 세상의 소금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세상의 소금이 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고, 죄를 해야만 한다. 또한 성령님을 의지하고, 죄의 세력들을 능히 극복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8복의 과정을 통과해야, 진정한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성령 충만한 제자를 키우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없으면, 그 교회는 세상의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창22:17中) “…네 씨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복은 아브라함과, 그 후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고, 그의 후손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기 원해서, ‘복이 되라.’(창12:2)고 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바벨탑 사건으로, 온 땅에 흩어진 인간들을, 구원하기 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사명을 망각했다.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다른 민족들을 멸시했다. 자신들이 세상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할,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의 역할을 하지 못하자, 그들을 대신해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할, 새 공동체, 교회를 만들었다. 이러한 공동체의 핵심이 될, 12제자들을 선택했다. 그들과 함께, 3년 동안 동행하면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기초가, 될 수 있도록 훈련했다.

예수님은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했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온 세상에 확장되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교회를 통해 복음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했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세상에 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을 ‘세상의 소금’이라 했다. 또 예수님은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에 보내노라.’ 이 원리는, 신약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2. 소금의 기능(13中).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소금은 여러 가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소금의 역할 중에서, 맛을 내는 조미료 역할과, 짜게 하는 방부제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 소금은 음식 맛을 내는, 조미료의 역할도 한다.
음식을 먹을 때, 소금이 없으면, 맛이 없다. 그러나 음식에 소금이 들어가면, 여러 가지 맛을 내게 된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맛을 내는 존재다. 성도는 삶의 의미를 주는 존재다.

성도는 허무하고, 의미 없는 세상에, 복음과 성령을 통해, 맛과 의미를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솔로몬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씩 시험해 보았다. 그는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큰 규모의 무역을 했다. 재산을 많이 모아서, 은금을 돌처럼 사용했다.

큰집을 짓고, 정원을 만들고, 어장도 만들었다. 수많은 노비도 거느렸지만, 이 모든 것에서 만족을 얻지 못했다. 또한 천하에 알려질 정도로, 큰 명예를 얻었다. 역사상 솔로몬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사람도 없다. 그러나 명예를 통해서도,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 지혜와 지식도 한없이 얻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지혜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도, 완전한 것이 아님을 발견했다. 여러 나라에서, 천 명의 미녀들을, 아내로 맞았다. 그러나 많은 미녀들을 통해서도, 만족을 얻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들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다가,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가져보았다. 그러나 모든 것들을, 다 누려본 후에, 다음같이 고백했다.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인간들의 삶은, 의미가 없고 헛되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생수가 아니라,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일으키는, 바닷물 같다. 그리스도와 복음이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고 헛되다. 이렇게 허무한 인생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그들은 복음을 통해, 인생에 참된 의미와 가치를 제공하게 된다. 복음은 인생이 제자리를 찾게 해주고, 인생에 참된 의미를 부여해준다.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인생의 참된 가치와,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했다. “인간의 심령은, 그리스도를 모시기 전까지는, 안정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은 자기를 만든,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인생의 의미와 참된 만족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천국백성들은 무기력하고, 불의한 세상에, 힘과 의를 제공해 줄 수 있다.

(2) 방부제 기능
소금이 음식에 들어가면,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한다. 이처럼 천국백성들도,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 세상은 부패해 있고, 부패하기 쉽다.

그런데 사람들은, 과학과 교육을 통해,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과 교육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부패는 계속된다. 고기는 그대로 두면 썩고, 썩은 고기는 아무데도 쓸모없어, 버리게 된다. 따라서 제자들은, 세상에서 잘못된 것을, 잡아나가야 한다.

노아 때에 세상은, 완전히 부패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을, 홍수로 심판했다. 소돔과 고모라 역시, 부패로 희망이 사라졌다. 그때 하나님은, 그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했다. 이러한 부패의 영향은, 지금 도시와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부패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따라서 제자들은, 세상의 부패를 방지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10명의 의인만 있으면,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의인 10명만 있어도, 부패한 소돔과 고모라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원은 5% 정도만 있으면, 한 나라를 공산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령님의 힘으로 살아가는 천국백성도, 세상의 부패를 막을 수 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로 인해, 온 나라가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도,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지만, 온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냈다. 이처럼 소수의 의인들이, 온 나라를 부패와 어둠에서, 건져낼 수 있다. 구약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부패했을 때, 온몸을 던져, 사회와 나라를 바로 잡았다.

중세 기독교회가, 부패와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에, 루터와 칼빈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서, 부패한 교회를 바로잡아 보려고, 최선을 다했다. 웨슬리의 개혁운동은, 부정과 타락으로 물든 영국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도 성령님을 따라 사는 제자들은, 이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될 수 있다. 천국백성들을 교회가 부패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며, 사회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성령님으로 거듭나고, 성령님을 따라 사는 성도들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소금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 때문이다. 요셉이 애굽 땅에서,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성령님 때문이다. 12 사도들이 세상에 나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도, 성령님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고, 성령님을 통해 능력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면서,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3. 소금이 맛을 잃으면(13中).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은 소금도 맛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가 없어, 버려야 한다. 사람들에게 밟히게 된다.

그러면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천국백성들이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은, 천국백성다운 특성과 맛이 있어야 한다. 그 특성은 바로 8복에 나타나는 성령의 특성들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은 성령님과 동행할 때,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천국백성의 특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다. 그래서 아무 일에도 쓸데없어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게 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이, 이런 사람이다. 그는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이상을 보지 못했다. 그의 두 아들은 하나님을 무시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을 빼돌렸다. 성전에서 수종을 들던 여인들과 동침함으로, 하나님의 신이 떠났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싸워서 패배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말았다. 하나님의 신이 떠난 성도는, 이처럼 힘을 잃고,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다. 삼손도 마찬가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 되었고, 특별한 능력을 받았다.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동안에는,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그때 삼손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면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그는 나실인으로, 마시면 안 되는 술을 마셨고, 기생을 가까이하면서, 문란하게 생활했다.

결국 음란한 여인의 미혹을 받고, 영적능력의 비밀을 누설했다. 머리털을 잘린 후에, 하나님의 신이 떠나,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에게 붙잡혀서, 두 눈을 뽑힌 채, 연자 맷돌을 돌리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의 능력을 잃은 성도들은, 세상에서 맛을 잃은 소금처럼 된다.

이러한 사람은, 쓸데가 없어서, 버림을 받고,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성도들이 왜, 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가? (눅14:26-27).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기거나, 하나님 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와 세상에 모두 쓸모없으며, 무기력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오늘 교회 안에,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성도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성도들이, 성령님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욕과 이익을 좇아 살아간다.

많은 성도들이 세상을 포기하지 못하고, 예수님과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하는 데 실패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보면 믿는 사람 같은데, 세상에서 보면, 믿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성도들은, 세상의 부패를 막지 못한다. 오히려 더 부패된다. 세상의 소금은,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성령님을 따라 산다. 예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성령님께 순종한다. 양다리 걸치기 식의 신앙으로는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교회도 맛을 잃은, 소금이 될 수 있다.

(계2장)을 보면, 예수님이 교회에 대해, 경고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반복되어 나오는 말은, 교회가 이세벨의 교리를 받아들이, 발람의 교훈을 좇는다는 경고이다. 이세벨은, 이단 사상과 거짓 종교를 말하고, 발람은 탐욕과 우상숭배, 성적인 타락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 당시에 존재했던, 지역 교회들이 이단 사상과, 탐욕과 성적 타락에 물든 것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했다. 지역 교회가 이단사상을 받아들이고, 탐욕과 성적타락에 빠지게 되면,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버림을 받게 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반대로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히며, 수치를 당하는 부끄러운 교회가 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소금 같이, 맛을 내고, 썩지 않도록 만드는, 귀한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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