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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카자흐스탄(Kazakhstan) 조회수 : 4011
  작성자 : adminstrator 작성일 : 2008-04-11




카자흐란 이름은 "유랑자" 또는 "독립인"이라는 말로 이들 민족은 13세기 징키스칸의 후예로 전통적인 유목민족이다.
중앙 아시아에 위치하고 있고, 면적은 272만 4900㎢로 세계에서 9위이며, 남한의 27배에 달한다. 인구는 2001년 1673만여명으로 한국의 수도권 인구와 비슷하다. 정식명칭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이다.

◈수도 : 아스타나(Astana)
* 1998년 12월에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이전
◈인구 : 약 16,731,303(2001년 7월 기준)
◈면적 : 2,724,900㎢ (면적상 세계9위, 남한의 27배)
◈주요도시 : 알마티, 카라간다(61.5만) (췸켄트 40만)
◈주요민족 : 카자흐인 51%, 러시아인 32%, 우크라이나인 4%, 독일인 3%
◈주요언어 : 카자흐어 40%, 러시아어 66%(공식 언어로 널리 사용됨)
◈종교 : 회교(수니파), 러시아정교


1991년 구소련의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하여 독립국가연합(CIS)의 하나가 되었다. 현재는 공화제의 형태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고, 90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방한을 한 후 우리 나라와 북한에 각각 92년 1월에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공관이 설치되어 있다. 1998년에는 수도를 알마티에서 아스타나로 옮겼다.

북쪽은 러시아연방에 접해 있고, 동쪽으로 중국과 몽골에 남쪽으로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에 접하고, 서쪽으로 카스피해(海)에 닿아있다.

역사적으로 카자흐는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나라이다.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 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현재 고려인은 11만명 정도가 있으며, 교민도 10만 5천여명으로 추정된다.
쓰라린 한인들의 역사
나라없는 한인들의 한많은 수난의 역사가 쓰여진 중앙 아시아의 국가 카자흐스탄. 1937년 스탈린의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강제 이주에 따라 수십만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일본인이 한인을 이용해 간첩으로 쓴다는 우려와 한인수의 증가에 따른 자치요구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 농업(벼농사)기술을 중앙 아시아의 농업 개척에 이용 하기 위한 목적, 소수 민족 분산 지배 정책 등의 정치적 이유로 화물차와 가축 운반철도로 이송되었다.

10월과 12월 추운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한달여에 걸친 이동중 추위와 굶주림으로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한인들이 당도한 곳은 인가하나 없는 황량한 반사막 초원지대인 우슈토베란 곳으로, 소련당국은 이 황무지에 수십만의 한인들을 내려 놓고 아무런 대책없이 생활을 하도록 강요했다. 2차 세계대전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되자, 한인들이 적성민족이라는 누명을 쓰고, 후방의 노동전선(탄광, 군수공장, 북극권 산림벌체 등)에 동원되어 추위, 기아, 강제 사역으로 고통받았던 것이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CIS 유일의 한글 주간 신문 (한,노어판)인 고려일보(구, 레닌기치)가 발행되고 있고, 한인 교포로만 구성된 조선 극장이 창단 6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1997년은 한인 중앙 아시아 정착 6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가 개최 되었다.

90년 11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과의 경제 협력이 논의되어 91년 8월 22일 알마아타 한국 교육원 개설되었다. 대구시와 알마아타시간 자매 협정 (92년 4월)을 맺고 경제 및 문화 교류를 위한 협의서에 서명함. 95년 5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2번째로 한국을 방문하고 카자흐 종합대학과 아바이 사범대학, 외국어 대학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였다.

정식 국명은 카자흐스탄 공화국(Republic of Kazakhstan)이고, 동경 50-90도, 북위 40-55도로 중앙아시아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은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키즈스탄,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접경하고 있다.

면적은 271만7천km로 구소연방 영토의 12%이며 세계에서 9번째로 큰 나라이며, 한반도의 11.6배, 남한의 약27배 크기이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서 강우량이 적고 계절별 온도차가 심하다. 가장 추운 달인 1월 중 북부지역 평균 기온은 -19도이나, 남부지역은 -2도, 가장 더운달인 7월중 평균 기온은 각각 20도, 30도이다.

약1,7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카자흐인 약40%, 러시아인 약38%, 한인약 0.6%.
인구밀도 1평방 킬로미터당 6.2명(한국은 440명)

카자흐어를 공용어로 하나 일반적으로 러시아어가 통용된다. 공식적인 국교는 없지만 이슬람(수니파), 러시아 정교, 신교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인종구성으로 인해 타 중앙아시아처럼 이슬람을 신봉하는 인구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카자흐의 역사
카자흐인은 BC 1세기경 이 지역에 거주하던 몽골과 터키족의 후손임. 카자흐스탄 지역은 카자흐족(터키유목인)들의 방목지로 사용되어 오다, 18세기 중반 이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19세기 후반 카자흐스탄 북부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카자흐는 러시아 혁명후 1920년 러시아 공화국내 키르키즈 자치공화국으로 되었다. 1925년 거대한 투르크메니스탄 공화국을 분리할 목적으로 행해진 중앙 아시아의 국경정리 결과 카자흐 자치 공화국으로 개명되었고, 1930년대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소연방의 가장 커다란 수용소가 되었다.

2차 대전중 스탈린에 충성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 많은 소수 민족(한인 포함)들이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 결과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인구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카자흐스탄 공화국은 1936년 12월 5일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구소련의 일원이 되었고, 구소련 붕괴과정에서 여러 공화국들의 연방 이탈이 계속되자 1991년 12월 10일 국명을 카자흐스탄 공화국으로 변경하고 12월 16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2월 21일 CIS창설 협정에 조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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