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526 생기야 불어라!(겔37:1-10)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06-06 |
첨부파일: 생기야 불어라(주일).hwp(91K) |
(1-10)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
2020, 10, 11일 태국에서, 관광버스와 열차가 충돌하여, 19명이 죽었다. 왜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기관사는 경적을 울리고, 경고등도 작동시켰다. 그런데 관광버스 기사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상태여서 화물 열차 경적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한다.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된다. 생명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생명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열차가 달려오니까, 그 자리에 잠깐 서라.’하고, 알려주는 소리가 하찮은 일로 여기고, 바빠서 경고 소리를 못 들었다. 그런데 본문에, 이 경고 소리를 무시한 자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여러 해 동안, 죄악을 범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수없이 선지자를 통해서, 심판을 경고했다. “사망의 길이니 멈춰서라, 돌아서라…”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돌이키면, 죄를 용서해 주고, 복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외면해서, 결국 사고가 나고, 심판이 임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비참하게 살게 되었다. 너무 비참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깊은 골짜기에 버려진, 마른 뼈와 같았다. 왜 마른 뼈가 되었나?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는, 좋으신 하나님이다. 그래서 우리가 죄 중에 있을 때, 돌이키라고 말씀하시고, 낙심할 때는 용기를 가지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부담으로 느끼지 말라. 이 소리가 바로 생명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1. 백골의 참상(1下-2).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혹시 해골을 본 적이 있는가? 저는 어려서, 화장터가 있던 곳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시체를 태우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사람이 처음 보면 잠자다가, 놀라기에 보지 못하게 하였다. 해골은 이스라엘의 신앙 상태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내 백성의 영적 상태가 이렇다.”고, 에스겔에게 보여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도 드렸고, 기도도 했는데, 왜 영적 상태가 해골과 같은가? 그 이유는, 신앙 형태는 있었지만, 해골과 같이 생명 없는, 종교 행위만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으니, 소망도 없고, 활동도 없고, 미래도 없음이, 꼭 해골 같았다.
특히 본문의 골짜기는, 힌놈의 골짜기인데, 이 힌놈의 골짜기는, 이방의 신들에게 어린아이와 처녀를, 제물로 바쳤던 곳이다. 또 후일에는 쓰레기를 태우느라, 1년 내내 불과 연기와, 온갖 악취가 가득했던 골짜기다. 그래서 성경은, 이 골짜기를 지옥으로 비유한다.
항상 불이 꺼지지 않았고, 연기와 악취가 가득하고, 제물로 드려지는 어린아이의 비명과 그 부모의 절규가 있었다. 또한 살이 타는 냄새와, 그곳에 버려진 시체에서, 구더기와 벌레들, 이루 말할 수 없는, 잔혹한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비참한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다.
하나님이 진단하기에, 이스라엘이 지옥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면 이스라엘만 이러한 상태였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세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겉으로 볼 때, 회칠한 무덤, 공동묘지와 같다. 무덤 밑에는, 해골 골짜기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뼈들과도 같았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전쟁의 난민들, 이북의 굶주린 우리 동포…, 또한 우리 가정과 사회의 현실, 그리고 경제와 영적 상태…, 이미 해골이 되었고, 해골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 가운데, 일부만 사용해도, 전 인류는 해골로 변한다. 이 사회를 보면, 끔찍하고 상상할 수 없는 범죄들, 생명도, 인정도, 감정도 없는, 해골과 같다고, 누구나 말하지 않겠는가? 생명이 없기에 소망도 없고, 송장 썩는 역겨운 냄새와, 해골 같은 추함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말세의 교회 중에서, 많은 교회가, 마치 해골과 같다. 하나님이 보실 때, 교회는 생명이 넘쳐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 중에서, 한 교회가 해골 같은 교회였고, 나머지 6교회 중의, 4교회는 해골처럼 되어가던 교회였다.
생명이 없고, 종교의식만 있는 교회… 소망도 없고, 기쁨도 없고, 믿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있다면 있다면 장례식 같은, 의식과 절차뿐이다. 또 우리 심령 상태는 어떤가? 성경이 말하기를, 인생은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말했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영은 죽어서 느끼지 못하고, 삶에 대한 소망도 없이, 그저 살다가 떠나갈 뿐이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지만, 사랑이 식어서, 마치 송장처럼 차디차다. 그냥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살았다고 하지만, 실상은 죽은 모습이 아닌가?
2. 말씀의 필요성(4-6).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이러한 환상을 보고, 망연자실한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이 뼈에게 대언하라.”고 명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가진 자들이다. 에스겔이 순종하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7)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이 뼈와 저 뼈들이, 서로 들어맞아 연결되었다. (8)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그러한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붙고, 그 위에 가죽이 덮여, 육체가 되었다. 생명이 없었던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올바른 모양, 조직을 갖출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직도 모양을 갖춘, 잘 맞춰진 시체일 뿐, 생기가 없었다.
온 세계가 해골의 골짜기와 같지 않은가? 해골 골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이 사회가 해골 골짜기와 같지 않은가? 복음으로 이 사회를 올바로 세우자. 우리 심령도 해골 골짜기와 같지 않은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와 가정과 교회에 임하게 될 때, 분명히 부활과 부흥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말씀이 선포된 후에,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가?
(1) 뼈들이 서로 연결되었다(7下).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이 뼈, 저 뼈가 자기 뼈를 찾고, 맞았다. 하나가 되는 운동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하나 되어야 한다.
(2) 힘줄이 살과 살을, 뼈와 뼈를 서로 연결해 주었다(8上).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힘을 쓸 수 있는, 성도들의 연합을 의미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다. 말씀이 임하면, 자기의 할 일을 찾아서, 일하게 된다.
(3) 살이 올랐다(8中).
“…살이 오르며…” 풍성한 삶, 풍성한 꿈을 말한다. 미래에 대한 소망과, 희망과 비전을 말한다. 소망이 없는가? 비전이 없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4) 가죽으로 덮였다(8下).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사랑으로 서로 덮어준다는 뜻이다. 사랑 없는 성도와 사랑이 없는 교회는, 벌거벗은 모습과 다름이 없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벌거벗은 모습은, 사랑이 없기에 책망했다.
사회에 사랑이 부족하고, 가정에 사랑이 부족하고, 교회에 사랑이 없는가? 말씀을 통하여 힘을 얻고, 사랑의 옷을 덧입게 만드는 우리가 되자. 그러나 아직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3. 살아있는 군대가 되려면(9-10).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생기’(루악)는, 하나님의 기운이며, 생명의 기운이다. 사람의 모양은 갖추었지만, 아직 생기가 없기에, 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자, 생명이 살아났다.
흩어져 있던 백골이, 이제는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다 갖추게 되었다. 성령의 바람이 불어야, 생명을 갖게 된다. 오순절에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가, 한번 말씀을 외치자, 3,000명의 해골이 부활했다. 부활한 요나도, 해골 같은 니느웨 성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자, 12만의 해골들이 부활했다.
루터가 말씀을 전하는 말씀 운동으로, 독일이 부흥했고, 웨슬리의 대언으로 영국이 부흥했다. 무디의 대언으로 미국이 부흥했다. 평양 회개 운동으로, 한국이 부흥했다. 이제는 우리의 차례다. 성령의 바람이, 우리 사회, 가정, 교회, 심령에 불기를 바란다.
신앙의 모든 모습과 조직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성령을 받지 않는다면, 그 신앙 조직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의 역사를 나타내려면, 반드시 2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말씀과 성령이다.
어떤 사람은 말씀만이 제일이라며, 성령의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말씀 시대는 갔고, 이제는 성령의 시대라며,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성경은 똑같이 강조하고, 성령도 똑같이 강조한다.
말씀을 떠난, 성령의 역사는, 있을 수 없고, 성령의 역사를 떠난, 말씀의 능력도 있을 수 없다. 마치 기차가 레일 위에서만 달리듯, 말씀과 성령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행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에, 강한 성령의 바람이 불자, 시체처럼 다락방에 숨어 있던 자들에게, 죽음을 무릅쓴 군인과 같이, 거리로 뛰쳐나가, 담대히 복음을 증언하였다. 성령 받지 못한 심령은, 죽은 심령과 다를 바 없다. 이목구비가 다 있어도, 사지가 멀쩡해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어 놓았다 할지라도, 운전사가 없으면 달리지 못하듯이, 성령 받지 못한 심령은, 결코 생명의 지체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하나님의 생기가 송장에 들어가서, 살아있는 군대로 만들었듯이, 성령은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을, 능력 있고 강력한 십자가 군대로 만든다.
성령이 없이는, 모든 신앙 행위가 형식적이고,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베드로는 성령을 받기 전에는, 변덕이 죽 끓듯 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도, 절대 변심하지 않았다. 성령 받은 자의 공통점은, 모두가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
변덕쟁이 베드로가 그랬고, 겁쟁이 웨슬리도 그랬고, 나약한 루터도 그랬고, 다락방에 숨어 있던 120명의 성도도 그랬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자, 하나님의 군대가 되었다. 성령을 부어주겠다는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에 순종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가정과 교회와 심령이, 마른 뼈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군대로 바꾸기 위해, 말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해야 한다. 저 해골 골짜기의 뼈들이, 큰 군대가 된 것처럼,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여, 하나님 앞에 큰 군대로 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이전글 : 20240519 오순절 맥추감사절(레23:15-22) | |
다음글 : 20240602 이 나라를 살려주소서(삼상12:19-25)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