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07. 10. 이스라엘의 쉐마교육(신6:4-9)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2-07-15 |
첨부파일: 이스라엘의 쉐마교육(주일).hwp(32K) |
(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
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는, 정치, 경제, 사회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문제다. 교육이 바로 되지 않고는 모든 것이 헛수고다. 오늘 전 세계에서, 가장 교육에 힘을 쓰고, 성공적인 교육을 한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이들은 2천년 동안, ‘디아스포라’(나라 없이,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으며 유랑자)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독일의 나치정부, 히틀러 치하에서 600만 명이 학살을 당하면서도, 민족의 얼과 생명을 이어온 그 놀라운 힘은, 바로 성공적인 교육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 시대 때, 불과 35-6년의 짧은 통치기간 속에서, 말과 글은 물론, 민족의 혼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의 부제에 있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서구의 민주 문화보다, 경제적 발전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정신을 배우는데 있다. 이스라엘의 정치체제는, 자유 민주주의요, 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체제에 가깝다.
집단생활을 하는 키부츠에서,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성실하게 일하면서도, 개인 소유는 없다. 키부츠 농장을 떠나고 싶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자기 개인의 소유도 없고, 일하기 싫으면, 얼마든지 안 할 수 있는데도, 불평 없이, 게으름피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국민정신은,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성실히 일하지 않기에, 생산 능률이 적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성실하게 일하기에, 이런 문제가 극복되고 있다. 수상 월급이 운전기사와 같고, 대학 교수와 정치인들의 월급이, 노동자와 차이가 적은데, 헌신적인 정치를 하고, 성실한 학문 연구가 이루어지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교육에서 이루어진다. 지금 전 세계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가,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없다는 것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 아니다.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이스라엘 민족은 항상 외국의 침략으로, 성전이 파괴되고, 학교가 없어지고, 성벽이 무너지는 환난 속에서도, 교육만은 무너지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 나라가 없는 민족으로 있으면서도, 세계 석학들이 받는 노벨상의, 30% 이상을 차지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쉐마 교육이다. “쉐마”는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뜻이다. 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이다. 부모들이 먼저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알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이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1. 쉐마 교육의 교과서는, 하나님의 말씀(토라)이다(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쉐마 이스라엘, 예호바 엘로헤누 예호바 에하드). 들으라는 말은, 순종하라는 말이다. 말씀을 받는데, 순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교육은, 철저하게 신앙에 근거를 둔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말씀을 배운다. 유일하신 여호와에 대한 신앙고백과, 절대자 되는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함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척도로, 삼아야 한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읽어보면 “랍비 아키바”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로마가 예루살렘을 처서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멸망 직전에 있을 때, 3일 후면 함락 당할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가운데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유대인의 위대한 지도자인 “아키바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냈다. 그는 자기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음날 그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리고 스스로 관속에 들어가, 성 밖으로 나갔다.
그날 밤에 아키바는, 로마의 장군을 만나, 마을 한가운데 있는, 조그만 집만 절대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만 해주면, 내일 아침에 성문을 활짝 열고, 대항도 하지 않고, 로마 군인들을 맞아들이겠다고 했다. 약속을 받고, 성안으로 돌아온 아키바는, 유대의 믿음의 어머니들을, 그 조그만 집으로 불러 모았다.
울고 있는 어머니들에게 “어머니! 다 없어도 된다. 다 빼앗겨도 된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어머님의 가슴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집에 있는 성경만 있으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존속된다. 희망이 있다. 우리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날이 올 것이다.”라고 설교했다.
어머니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성경 위에 엎드려 울며, 기도로 밤을 샜다. 이튿날 예루살렘은 적에게 점령이 되어,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재물은 탈취당하는, 비참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믿음의 어머니의 가슴속에, 하나님 말씀과 정신이 살아서, 가슴과 가슴으로 전승이 되어, 오늘의 이스라엘을 있게 했다.
지금 우리 자녀 교육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어린 학생들을,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장래를 내다보면서 가르치고 있는가? 아니면 마지못해, 임무라고 하니, 억지로 시간 때우려는 교육으로 임하는가? 인간의 가치의 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세상 출세에 목적을 두고, 인류대학 진학, 일류직장에 취직에 있는가? 그래서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데, 두고 있지 않는가? 이런 잘못된 교육이, 오늘 사회를 병들게 만들었고, 국가와 사회, 윤리와 도덕을 망쳐놓았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이 시대의 가치 중심이, 하나님 말씀을 떠났기에,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따라서 가치를 몰라 방황하는 자에게, 급히 가르쳐야 할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모든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만들어야 한다. 부모님 가슴에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식에게 심어 줄 때, 우리 가문과 우리나라는, 새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녀들이 될 것이다.
2. 쉐마 교육의 중심 장소는 가정이다(6-9).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부모님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우리의 삶의 원리가 되고, 자녀들을 가르쳐야 한다.
쉐마 교육은, 먼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유대 이스라엘의 가정은, 교육을 심어주는 학교이다. 이스라엘 사람 집에는 (신6:4-9)까지 기록된, 쉐마가 기록된, 조그만 가죽상자 메주자가, 문설주에 붙어 있다. 출입할 때마다, 손을 댄 후, 자기 입에 대고, 아침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한다.
이마와 팔에 경문을 매고, 새벽기도를 한다. 저녁이면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것을, 감사드린다. 쉐마가 기록된 테필린을 팔목에 차고, 이마에 붙이고 다닌다. 테필린을 손목에 차는 것은, 내 손으로 하는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임을 깨닫도록, 손목에 차라는 것이다.
미간에 붙이는 이유는, 사람의 지혜와 생각이, 불완전한 인간의 지식보다, 하나님의 지혜로 행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받지 않으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교육은 하나님이 없고, 하나님을 반대하는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교육을, 학교에 맡기고, 선생님이 모든 교육을, 다 맡아서 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래서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이사 가기를 원하고, 그러한 지역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실정이다. 오늘날 학교 교육은, 신앙이나 인격교육이 아니다.
지식을 팔고 사는, 학원교육, 상업교육이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되는, 출세교육이다. 그래서 학생과 가르치는 사람은 있어도, 제자와 스승은 없다. 우리는 모든 교육이, 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교육의 장소는, 학교가 아니다. 가정과 교회임을 명심하시기 바란다.
따라서 가르쳐주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모범이 되어야만 한다. 말씀에 마음에 새겨, 그것을 삶의 원리로 삼지 않으면, 아무리 말씀을 알고 있어도, 헛된 것이요, 범죄를 피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선민 교육을 아무리 잘 시켜도, 복음을 믿지 않기에, 예수님을 믿지 않기에 구원이 없다.
따라서 유대인에게는, 구원을 위해 복음과 예수님이 필요하다. 기독교인에게는 유대인의 선민교육인, 즉 쉐마 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녀들을 제자로 삼아서, 말씀을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3. 쉐마 교육의 교사는 부모(호라)다(7上).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부모가 자기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말이다. 부모가 교사다. 이스라엘 사람은, 자녀를 가르치기에, 전도할 필요가 없다. 부모님의 신앙을 이어받는, 전승 신앙이다.
어떤 사람이 집안에서, 잡견 한 마리를 키웠다. 그런데 이 개가, 주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자기 멋대로 행동했다. 대소변을 마무 데나 보고, 모든 행동이 제멋대로였다. 주인은 종자가 나빠서, 그런 줄 알고, 그냥 참고 있다가, 혹시 몰라서 개 훈련소에 데리고 갔다.
그런데 개를 훈련시키는 교사가, 개는 훈련시키지 않고, 개 주인인 자신만, 훈련시키는 것이 아닌가! 개를 훈련시키려고, 훈련소에 찾아간 개주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훈련생이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교육받은 대로 개를 훈련시켰더니, 개가 변하기 시작했다.
말을 잘 알아들었다. 대소변도 가리고, 말귀도 잘 알아듣고, 순종도 잘했다. 개 주인이 뒤늦게 깨달은 것은, 개의 행동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개가 잡종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개를 훈련시키는, 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자신이 몰랐고, 가르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유대인 부모는, 자녀에게 철저히 성경을 가르쳐, 제자로 삼는다. 따라서 기독교인들도 먼저 자녀들을, 제자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자녀에게 신앙교육을 시킬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요셉의 족장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방 받은 출애굽의 이야기,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도와주신 모든 이적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을 공경 하는 예절을 가르친다. 공경함이 없으면 배울 수 없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느 민족도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자자손손 전한 민족이 없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가 황폐화되었고,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가 있던 터키에도, 성령님이 지나가 터만 남아,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스, 로마, 스페인, 북유럽, 영국, 미국 한국까지 수평적으로 전파되었다.
타민족에게 수평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자기 가정과 민족의 교회는, 사라지고 말았다. 한국 교회도, 교회성장이 멈추고, 교회학교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그런데도 유대 민족은 모세 때부터, 지금까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성공했다. 수직적인 전도를 성공했다.
그 이유는 부모에게 있다. 그러면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들려주는가? 무엇을 보여주는가? 자녀를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자신이 먼저, 삶의 현장에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은 자기 자식들에게, 하나 하나 안수하며, 축복기도를 해준다. 이것은 삶이 바로 되지 못하면 어렵다.
미국의 뮬러 목사는, 부모의 신앙생활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계적으로 조사를 했다. 부모가 교회예배에 정규적으로 출석할 때는 72%, 어머니만 출석할 때는 15%, 부모가 모두 출석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6%가, 성인이 된 후에, 믿음을 지켜 나가고 있다고 했다.
이 연구를 통해, 자녀에게 주는 신앙 영향은, 주일학교 교사나 목사보다 ‘대부분의 영향이 부모님의 평소생활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들이여, 자기 자녀를 제자로 삼기를 바란다. 율법은 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내용이다. 율법은 구원의 도구가 아니라, 성화의 도구다. 오직 복음만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한다.
결론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자. 집에서, 교회에서, 항상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게 하자. 교사는 부모님이 되어, 모범을 보이자. 이번 여름에, 우리 자녀들이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열심히 교육하자. 먼저 가정에서, 또한 교회 신앙 수련회를 위해 기도하고, 자녀들을 꼭 보내주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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