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0년 5월 24일 - 아브람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창17:1-8)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20-06-14 |
첨부파일: 아브람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hwp(22K) |
아브람에게 주신 영원한 언약(창17:1-8)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통치자이시다. 하나님의 주권은, 온 우주에 미치며,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운행하시며, 돌보신다.
개혁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이 세상에, 단 한 치도 없다. 즉, 하나님의 피조 세계인, 온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며, 이 세상 어느 한 뼘이라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다스리심이, 미치지 않는 영역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간은, 무슨 일이든지,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고, 모든 것의 기준은, 내 유익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부모도, 형제자매도, 부부도, 친구도, 내게 유익하면 선이 되고, 내게 유익하지 않으면 악이 된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며, 오직 믿을 수 있는 건, ‘내 자신 뿐이다.’라고 외친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내 중심’으로 판단하던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판단하고, 나는 죽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이, 이 땅의 교회이다.
오늘 본문에, 아브람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는 이스마엘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온갖 시름을 잊고, 지낸 것 같다. 하지만, 아브람 편에서는, 이스마엘을 키우며, 행복한 기간이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아브람에게,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은, 영적 침묵의 기간이었다.
이제는, 사래가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갈등도 사라졌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아브람도 사래도 모두 체념했다. 그 13년 동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잊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흘러가는 그 시간을, 다 계산하고 계셨다.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을 새롭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 중에,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표징이 되게 하신다.
1. 다시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아브람의 나이 99세에, 다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말씀하셨다. 이는 지금까지의 아브람의 삶은, 하나님의 뜻에도, 하나님의 약속에도, 합당하지 않으니, 이제,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라고 소개하셨다. 이는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는 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능력의 하나님이 지금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고 말씀하신다.
‘내 앞에서 행하여’는 내 뒤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내 앞에서 똑바로 행하라는 것이다. 결국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이 말씀은, 아브람에게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요청하시는 동시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라는 신앙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낳은 지 13년이나 지난 후에, 왜 갑자기 다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을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견딜 수 있었던 인내의 시간은, 10년이었다. 그는 10년이 지나자, 믿음을 잃고,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 실수를 범했다. 그 결과로 하갈을 통해, 아들 이스마엘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25년이었다.
지금은 24년째 되는 해이고, 이제 1년만 더 기다리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는, 바로 그 시점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1년을 앞두고 나타나셔서, 아브람을 부르시고, 믿음을 깨우며,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키며, 그가 끝까지 기다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나타나신 것이다.
하나님이 오셔서, 아브람에게 준 말씀은 무엇인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이것이 아브람에게 주는, 첫 번째 메시지였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가능하거나, 불완전한 것이 있다면, 전능자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능치 못함이 없으시며, 약속하신 것을, 꼭 이루시는 하나님 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스스로 ‘자신은 전능하다.’는 선언을 하셨을까? 그것은 아브람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이제는 실현 불가능하고,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기에, 하나님께서 또다시, 자신에 대해 가르치셨다. ‘아브람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사래의 생리가 완전히 끊어지고, 임신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지만, 나는 언약을 분명히 지킬 것이다.
하나님은 그 말씀만 하시지 않고,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네 생각을 버리고, 내 말을 믿으라는 것이다. 이제는 모두 다, 잊혀진 줄 알고 살았던 아브람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아브람은 이 말씀을 듣자, 곧 엎드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과 새로운 언약을, 세운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이미 세운, 상속자에 대한, 그 언약을, 성취하시겠다는 말씀이다.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브람의 상속자가 될 수 없고, 사래를 통해 태어날 아이가, 상속자임을 말씀하신다.
이제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3년이 지나,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과거의 이 언약을 상기시켜 거듭 말씀하시는 것은, 이전의 그 언약이, 이스마엘의 출생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이제 곧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될 것이라는, 예언적 선포의 성격을 담고 있다.
2.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는 것이다.(3-4).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 약속의 말씀은, 24년 전에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에, 하나님이 하셨던 말씀이다. 그때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 말씀을 듣고서, 그는 큰 기대와 꿈이 넘쳤었다.
그리고 그는, 고향,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갔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잘 견뎠지만, 10년이 지나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하나님께 이렇게 투정하기도 했다. (15:2中)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 이니이다.“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즉 양자로 세우겠다는 말이다. 한 술 더 떠서, 아내 사래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통해, 아기를 얻자고 제안했다. 이들의 이러한 불신앙적 태도 때문에, 끝까지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아브람과 사래에게는, 상처가 남게 되었다. 여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난 것이다.
언제나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상처만 가져온다. 그런데 이제는 다 잊을 만한 때에, 다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아브람은 그의 나이 99세까지의 이름이고, 그 후 175세까지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고쳐서 살았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이름을, 고쳐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브람은 ‘높은 아버지’라는 뜻이며, 아브라함은 ‘모든 민족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존재를, 그의 이름을 통해서 가르치신다. ‘모든 민족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새로운 이름을 얻은 것은, 믿음의 계보를 새롭게 만들어 갈, 아브라함의 영적인 위상을 말해준다. 한 개인에서 언약 백성의 조상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즉, 그 이름에 하나님과의 언약이, 비로소 반영된 것이며, 그에 따른 요구 사항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자였다. 100세가 되어 얻은 자식 이삭, 그 귀한 아들을,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제물로 드리는, 순종의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기 전, 바로 일 년 전에, 아브람의 이름은 바뀌었고,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이삭을 주셨다.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던 아브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에, ‘한 가족의 아버지’에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로 바뀌는, 놀라운 복을 받게 되었다.
(6-7)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러 민족들의 아버지로 삼겠고, 이제 ‘너와 너의 대대 후손이, 대대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정말 놀라운 복의 약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이것은 24년 전에, 아브람에게 언약하신 것이고, 지금 다시 거듭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과 언약의 내용은, 아브람과 하나님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나와 너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네 후손 대대로 유효할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약속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은, 후손들에게 대대로, 계승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성경은, 저주는 삼 사대에서 그치지만, 축복은 천대에 이른다고 말씀한다. (출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천대까지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인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약속과 복이, 우리 자녀들에게, 이어지고 있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구원하신 분이시며,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의미이다. 즉 내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 가정과 자손들에게 대대로 하나님이 되신다.
아침저녁 읽으시던 성경 말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부르시던 찬송 소리, 홀로 숨어 눈물로 기도하신 내 부모님, 우리 자녀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신앙의 유산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내 자녀가, 기억할 만한, 믿음의 유산은 무엇인가? 믿음은 자녀들에게 전승되며, 축복은 천대에까지 이어진다.
3.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약속이다(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의 언약은, 일시적인 것도, 시간이 지난다고, 희미해지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날수록, 더 단단하고, 분명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다. 하나님은 ‘땅의 복’까지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은,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들에게 땅은, 축복의 통로이자, 근본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후손에 대한 것 외에도,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고,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이 땅에서의 기업을 너머, 하늘나라를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12:1中)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했다. 네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은, 축복의 땅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저주의 땅’에서 떠나 ‘축복의 땅’으로 옮겨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났고, 믿음의 여정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지리적 의미의 이스라엘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약속의 땅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가야만 한다.
성경은 그것을 ‘영원한 기업’이라고 말씀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보는, 땅의 개념과 다르며, ‘영원한 기업’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을 통해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허락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한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다시 깨어났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깨어나고, 하나님을 만날 때, 살아난다. 이제 언약의 성취가, 1년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아시고,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믿음을 깨워주셨다. 하나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인내는 결코 쉽지 않고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헤아리고 계신다. 정확한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신다. 온전한 믿음은, 내 생각 내 방법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잊지 않으셨다.
갈등도 고통도, 영원하지 않다. 아브람에게 약속의 성취가, 1년밖에 남지 않았듯이, 우리 앞의 고난에도 반드시 끝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견디며, 기다리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참고, 인내함으로, 우리의 믿음의 여정이, 마지막 날에, 예수님에 까지, 천국에까지, 이르게 하시기 위함을, 우리 모두가 깨닫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결론이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이 태어나고, 13년 동안 아브람에게,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 기간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다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이전의 언약을 상기시키시고, 그 언약을 새롭게 하시며,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구십구 세, 무엇을 의미하는 나이일까? 이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며, 체념하게 되는 지금, 아브람과 사래의 믿음은, 한계가 이르렀지만, 하나님은 그 시간을 다 알고, 헤아리고 계셨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은 받았지만, 내 믿음이 흔들리고, 연약해지고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
이전글 : 2020년 5월 17일 - 피로 맺은 언약(창15:8-17) | |
다음글 : 2020년 5월 31일 - 감사하는 절기, 맥추절(레23:15-22)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