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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9년 9월 15일 - 믿어야 할 이유(막8:35-38)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9-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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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야 할 이유(8:35-38)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믿음의 본질을, 3가지로 말씀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다. 이렇게 따르기는 쉽지 않다. 그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착하다(7:14). 의인들이 겨우, 구원을 받을 정도라고 했으니(벧전4:18), 참된 믿음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이고, 참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고난이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영광이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그 다음에 면류관이 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뒤에 영생이 있기 때문이다.

1. 예수님의 경고와 약속(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원어성경은 왜냐하면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가 앞에 나온다.

(34)에서, 이렇게 말씀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앞에서 말씀한 이유를, 역설적으로 설명한 말이다. 일반적인 사람은 구원하고자 하면, 구원할 것이요, 잃고자 하면 잃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말씀했다.

누구든지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잃으면 구원하리라.”했다. 언뜻 들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모순처럼 들리지만, 음미할수록 진리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역설적인 말씀으로, 진리를 가르친다. 역설의 말씀은, 경고와 약속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잃으면”(아폴뤼미)“(스스로) 멸망하다, 파괴되다.”는 말이다. “자기 목숨을은 강조형으로, “그 목숨 자체를 위하여라는 말이다. 목숨 자체를 위해 살면, 어떻게 되는가?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는 경고의 말씀이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누구든지 스스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공은, 세상이 아니라, 영생을 얻는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을 누렸던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스스로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이겠는가? 대답은 자명하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다(딤후3:2).

이 땅에서 자기 목숨을 스스로 지키려다 보니, 자기를 부인하기 싫어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으며, 예수님이 걸어간, 고난의 길을 따르기도, 원하지 않는 자들이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며, 넓은 길을 걸어가기에, 당연히 멸망이 그를 기다리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잃을 것이요.”라고 경고한다.

구원을 받지 못하기에, 영생을 잃고 만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님의 약속이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누구인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다. 자연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며, 좁은 길을 간다.

당연히 생명이 그를 기다린다. “구원하리라.” 그는 구원을 받기에, 영생을 얻고, 영생을 누릴 것이다.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천하 사람들 중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없다.

예수님 이외에, 다른 이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다. (딤전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따라서 이 세상에는, 2종류의 문밖에 없다. 좁은 문과 넓은 문이다.

예수님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이다(10:9). 예수님 이외에는, 모두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문일 뿐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이다(14:6). 예수님 이외에는, 모두 지옥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다. 예수님은 경고와 약속으로, 2가지 중에서, 1가지를 선택하도록 했다.

넓은 문과 넓은 길이냐, 좁은 문과 좁은 길이야? 자기 목숨이냐, 아니면 예수님과 복음이냐? 현재의 안일이냐, 아니면 장래의 영광이냐? 예수님의 경고이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넓은 문과, 넓은 길의 마지막은, 멸망이다. 그러나 좁은 문과, 좁은 길의 마지막은, 영생이다.

예수님의 약속은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나?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목숨을 잃고자 하면,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질문과 대답 촉구(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잃으면”(제미오데나이)의 원형 제미오오, 모두 수동태로만 쓰였으며, “손상을 당한다는 의미다.

자기 목숨을 잃는다.”는 표현은, 인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3자의 의지에 의해, 자기 목숨을 상실된다는 의미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으려 하다가, 또는 이미 얻어 누리면서도, 자기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 목숨과 생명을 박탈당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온 천하는 일찍이, 사단이 그리스도께 보였던, 천하만국과 영광, 즉 쾌락과 권력, 재산과 명예 등, 인간이 구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4:8). 예수님은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려고, 질문 형태로 만들어 물었다. 누구라도 쉽게, 바르게,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을 물어보았다.

질문이다. 이 세상에서 온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어떤 사람이, 온 천하를 다 얻었다고 가정했다. 일종의 과장법을 사용해서 말씀했다. 어떤 사람이, 온 천하를 얻었다 했다. 세상의 모든 땅과, 건물들과 모든 보석과, 모든 지식과, 모든 권력과, 모든 명예를 다 얻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을 잃었다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대답은 전혀 유익하지 않다.” 죽은 사람은 아무 것도,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다. 또 죽은 후에는, 영원토록 지옥에서 고통당해야 하기에, 온 천하를 얻었다 하더라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그에게는 전혀 유익이 없다는 말이다.

(12)에 어리석은 부자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듯, 그의 곳간을 더 크게 새로 지었다. 스스로 만족해서, 평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12:20)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라고 말씀한다. 오늘 밤에, 네가 죽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자기 곳간을 크게 짓고, 거기에 여러 해 쓸 물건들을, 많이 쌓아 둔 들 무슨 유익하겠는가? 더군다나 그의 영혼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때부터 영원토록, 끊임없는 고통을 당해야 하니까, 그는 정말 불행한 자이며, 어리석은 자임에 틀림이 없다.

사람의 목숨은 영원하지만, 온 천하는 영원하지 못하기에, 온 천하보다, 귀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예수님은 올바른 선택을 촉구한다. 온 천하보다 목숨이 더 소중하다.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 영생을 얻기 때문이다.

질문이다.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이 질문에 누구든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나이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다시 강조한 질문이다.

어리석은 부자를, 다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도로 찾을 때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모두 다 내놓겠다는 말을 한다고, 그가 과연 죽음을 면할 수 있는가? 아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의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온 천하를 얻었다 하더라도, 그의 목숨을 바꿀 수 없다. 사람의 목숨은 온 천하보다, 더 귀하기 때문이다. (19)에 나오는, 부자 청년도,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19:21)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재물 때문에,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 버렸다. 자신의 많은 재물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재물과 바꾸고 말았다. 그러면 이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했다. 위의 것을 생각하지 않고, 땅의 것을 생각했다. 고난을 통해서, 영광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고, 고난 없는 영광만을 바랐다. 그러니 이 때 그들도, 역시 어리석었다. 우리도 사업 때문에, 주님 앞에 나오지 못한다면,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항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자. 참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그 결과는 예수님의 심판이다.

3. 예수님의 심판(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성도가 생각하는 영광과 수치는, 세상 사람의 것과는, 달라야 한다. 예수님은 그 시대를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라고 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여인이, 자신의 남편과 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처럼, 그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르지 못했다.

산상수훈에서 지적한 것 같이, 그들의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전부 외식이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듯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 멀었다.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는, 유대교를 신봉했다. 외식과 형식에 잡힌 종교이니, 예수님이 유대교를 철저하게 배격했다.

예수님은 그 시대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이제 예수님이 전파한 복음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서, 그를 대신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기 때문이다.

온 천하보다 더 귀한 것이, 사람의 목숨이다. 온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의 목숨이기에, 우리 목숨을 구해주려고,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냈다. 예수님의 피만이, 온 천하보다 귀한, 우리의 목숨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고, 다시 살았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의 말씀을, 부끄러워할 수 있는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베푼 대속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 예수님을 더욱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푼, 대속의 은혜를 무시하고, 예수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를 부인하지도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도 않고, 예수님을 따르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이 경고한대로, 그러한 사람은 자기 목숨을, 영영 잃고 말 것이다. 그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심판뿐이다. (38)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초림의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받고, 버린바 되고,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고, 그 후 승천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며, 우리의 거처를 예비한다. 때가 되면 예수님은 다시 오는데, 재림의 예수님은, 초림의 예수님과, 다른 모습으로 온다. 다시 올 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온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심판을 다 맡겼기 때문이다(5:22). 예수님이 다시 올 때는,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 거룩한 천사들은 추수꾼이다(13:39). 추수꾼은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13:30). 말하자면 천사들은 추수꾼이 되어, 예수님의 심판을 수행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다시 올 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온다. 초림의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로 왔지만, 재림의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주로 온다. 그러면 예수님은 다시 와서, 그와 그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는 자를, 어떻게 심판하는가? 예수님도 그를 부끄러워한다.

예수님은 도무지 그를, 알지 못하니, 예수님에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할 것이다. 그 결과 그는,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거기서 영벌을 당하며,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을 사랑하며, 말씀한 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른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은 그를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2:11). 그는 예수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릴 것이다. 이 때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서, 무리와 제자들은 불안한 생각과, 기대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들도, 예수님이 가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씀하니,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고난 너머에 영광이 있다고 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다시 올 것이라 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했으니, 그들은 기대도 되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안한 생각도, 또 기대하는 생각도, 다 알았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로하며, 소망을 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본문 바로 다음에서, 예수님은 장차 그가 다시 올 때, 나타낼 하나님의 영광을, 미리 보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이른바, 변화 산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형된 일이다.

잠시 예수님은, 육체를 벗고, 하나님의 본체로서의 영광을 드러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깊이 늘 생각하면서,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또 예수님이 말씀한 대로,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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