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8년 5월 13일 - 성경적인 효도(창47:7-12)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8-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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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인 효도(창47:7-12)
오늘은 어버이 주일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5월 8일, 어버이 날로 지킨다. 한국교회는 5월 둘째 주일을 어버이 주일로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는 5월 8일이 어버이 날이지만, 어버이에 대한 공경은, 성경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흔히 기독교는, 부모님 제사를 안 드리기에, 부모에 대한 효도가 없다고, 오해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모르는 소리다. 성경 많은 곳에서, 효에 대해 가르친다. 효도를 잘못하면,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가르친다. 성경 구절들 가운데, 몇 가지만 보자.
(출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보다 더 무서운 경고가 있다.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객사한다는 말이고, 죽어도 누구 하나,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많은 구절에서, 하나님은, 부모님 공경을 명령하고 있다.
복을 약속하면서, 효도를 명령함은, 효도가 어렵지만, 그만큼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린이날은 공휴일인데,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다. 문제다. 공휴일로 고쳐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고령화현상이다.
과학의 발달로, 의학이 발달하면서, 사람의 평균수명이 높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 2월 21일 기준으로, 세계보건 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전 세계 1위로, 여자는 평균 90.82, 남자는 84.07살이라고 한다.
기대수명이 90살을 넘는 집단은, 한국 여성이 유일했으며, 다른 국가들과의 차이도 현격하다. 그러니 60세에 은퇴하면, 30년은 돌봄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30년이 노후다. 30세에 취직해서, 30년 일하고, 30년 놀아야 하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
문제는 어른들이 나이가 많아지는데, 자식은 1-2명이다 보니, 부모님을 모시기가 어려워진다. 친부모 모셔야지, 장인장모 모셔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어른들 복지문제다. 어떻게 해야 우리 부모님들이, 노후를 행복하게 살까? 흔히들 정부가, 노인 복지를 해결하라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세금은 걷어서 해야 하는데, 그 세금은 누가 내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기독교인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부모님을 섬겨야 할까? 성경 속에 해답이 있다. 따라서 성경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효자인 요셉을 통해, 그 해답을 찾자. 성경적인 효도는, 어떤 것인가?
1.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7).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요셉은 자기 아버지 야곱을, 바로 앞으로 인도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양을 치는 목자였다.
그러기에 야곱의 12아들도, 목축이 직업이었다. 그런데 애굽은 달랐다. 애굽에는 나일강 물이, 항상 흐른다. 아프리카 중부 정글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애굽을 거쳐 지중해로 들어간다. 그러기에 이강은, 사시사철 물이 흐른다. 그러기에 애굽인들은, 농업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다.
신기한 것은, 농업을 주로 하는 문화권에서는, 소나 양을 기르는, 목축하는 사람들을, 천민으로 분류하였다.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과거 우리나라도 소를 잡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해서, 사람을 무시하던 문화가 있었다. 애굽도 목축업을 천시했다. 애굽의 총리인 요셉이, 애굽의 그런 문화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요셉은, 애굽에 찾아온, 자기 아버지를 사랑하고, 또 공경했다. 목축업을 하는 아버지, 나이 많아 볼품없던 아버지를, 애굽 왕 앞으로 모셔갔고, 자랑스럽게 아버지를, 바로에게 소개했다. 하나님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분이기에, 당당하게 소개했다. 당시 요셉은 국무총리였다.
따라서 자기 출신이나, 성장 배경이 드러나면, 애굽 귀족들에게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할 수도 있었다. 당시 애굽은, 풍년이 칠년 들었다가, 흉년이 닥쳤다. 그것도 2년이 지나, 백성들의 삶은 파탄 직전이었다. 그것을 대비해, 7년 동안 악착같이, 세금을 거두어 들였던 요셉이다.
세금 내는 것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리고 흉년이 닥치자, 백성들에게 곡식을, 돈을 받고 팔았다. 그러니 당대 귀족들이나, 지방 호족들이, 요셉에 대해 얼마나 불평불만이 많았을까? 그런데도 요셉은 그런 염려나 걱정 때문에, 자기의 출신과, 자기 아버지를,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어떤 자녀가 효자인가? 자기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식이 효자다. 자기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녀 되지 말기를 바란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떤 시대를 살았는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격변의 시대를 살았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를 살았다. 해방, 6.25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 시대를, 몸소 겪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고난과 역경을 견딘 분들이다. 어떤 분은,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 되어,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지 못한 분들이, 태반인 시기였다.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 없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자식들 중에는, 부모가 글을 모른다고, 창피하게 여기는 자식들이 있다.
글을 모르니, 자식들을 가르쳐 줄 수 없었다. 그러니 부모가 부끄러운 것이다. 그래서 학교도 오지 말라고 한다. 내 체면 때문에, 부모를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가, 혹시 이곳에 있지는 않는가? 부모님의 초라할 몰골, 초라한 직업, 그것이 부끄럽다면, 과연 그런 우리는 누구인가?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모습을, 면할 수가 있었는가? 누구 때문에, 그 초라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가? 지금까지의 삶이, 누구의 은혜로 되었나? 부모를 창피하게 여기는 자는, 자신을 창피스럽게 여기는 자요, 더 나아가 그 부모를 만나게 한 하나님을, 창피하게 여기는 자다.
그런 자식을 어찌, 하나님이 복 주겠는가? 요셉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 애굽의 총리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이유를, 여러 가지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형통하게 했기 때문이다(창39:3, 23). 왜 요셉에게, 그런 엄청난 복을 주셨는가?
성경에 하나님이, 약속한 것이 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약속했다. (엡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여기서 공경하라(티마, 티마오)는 ‘가치를 두다, 높이 평가하다, 명예롭게 여기다.’는 뜻이다.
그러면 잘된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따라서 부족한 것이 많고, 배운 것이 없고, 볼 품이 없어도, 하나님이 허락한 부모다. 우리를 위해, 피눈물을 흘린 분들이기에, 부끄러워 말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기를 바란다. 그것이 바로 효도요, 그것이 바로 공경이다.
2.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낸다(11).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요셉은 형들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거주할 곳으로 주었다.
요셉의 형들은 과거에, 요셉에게 정말 못된 짓들을 했다. 시기 질투는 물론, 아버지의 심부름을 간 동생을, 죽이려하다가, 애굽에 노예로 팔아버렸다. 요셉 입장에서, 어찌 그 고통을 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그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지 13년, 풍년7년, 흉년2년, 도합 22년을 감쪽같이, 아버지를 속였던 형들이다. 그런데 요셉은, 그들을 용서한다. (창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50:14-15)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두려웠다.
(창50:16-21)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이렇게 요셉은, 형들의 죄를 용서한다.
한마디로 요셉은, 성숙한 사람이었다. 요셉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살아서, 보고 계시니, 죽어서도 이것이 아버지 뜻이니, 이를 근거로, 용서도 하고, 그들을 품을 수 있었다. 이것이 효도다. 형제간에 화목 하는 것이 효도다.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 부모가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자식들이 서로 싸우며, 원수지간이 되어 사는 것이다. 그래서 불효 중에 불효가, 형제들이 반목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를 용서하고, 우애하는 것이, 효도 중에 효도다.
요셉은 과거를 근거로, 얼마든지 형들을, 심판할 수 있었다. 그럴만한 힘과 권세가 있었다. 그렇지만 한사람도 처벌하지 않았다. 우리는 어떤가? 형제들과, 불편한 사람은 없는가? 유산문제로, 물질문제로, 예의문제로, 서로 불화는 없는가? 그렇다면,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부모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나?
비록 부모님이,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형제간에 불화는, 엄청난 불효이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의 백성인 우리 기독교인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형제는 세상에 올 때, 어머니 모태를 같이 사용했다. 세상에서 그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용서하지 못하는가?
상대를 안 하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겠는가? 부모님 앞에서, 최고의 효도는, 형제 사랑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다. 성도들 간에 형제자매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 서로 미워하나? 따라서 주님 앞에, 모든 죄를 고하고, 형제 우애를 새롭게 결단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늙은 부모를 봉양한다(12).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봉양하다’(예칼켈, 쿨)는, ‘간직하다, 보존하다, 공급하다, 양육하다.’는 뜻이다.
옛날 개역 성경은 ‘공궤하다’로 번역했다. 요셉이 아버지를 봉양했음은,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책임졌다는 말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생활비를 드렸다는 말이다. 요셉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난과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국무총리로 삼았다.
야곱과 형들은, 이미 요셉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죽었다고 생각했던 요셉이, 야곱의 노후를 봉양했다.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서, 모친 마리아를 요한에게, 봉양을 부탁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육신의 모친 마리아에게, 효도를 했다.
우리도 멀지 않아, 노년을 맞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천년만년 이 상태로, 사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심은 대로 우리도, 거두게 된다. 우리들과 부모님의 나이 차이는, 몇 살인가? 그 차이만큼 지나면, 우리도 지금의 부모님처럼 된다.
그때 우리가, 지금 부모님에게 하는 모습 그대로, 우리의 자식에게 대접을 받아도 좋다면, 그냥 계속하면 된다. 그러나 “내 자식은, 절대 그렇지 않기를 원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삶을 지금부터 바꿔야만 한다. 내 자식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추가해서 말씀드리겠다. 부모님에게 복음을 통해,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도록 도우라. 부모님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님을 믿게 하면, 그것은 정말 큰 효도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심각하게 여겨야 한다.
아무리 효도한들, 믿지 않아 지옥가면, 어찌 그것이 효도이겠는가? 눈물로 호소하고, 복음을 전하라. 그리고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드려야 한다. 입으로만 교회가라고 하지 말고, 교회 갈수 있도록, 부모님 집을 찾아가서, 함께 모시고 교회에 나가, 등록시켜드리고, 교회에 부탁해야 한다.
결론이다. 성경적인 효도, 진정한 효도는 누구인가?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공경하는 자이다. 성경적인 효도는, 형제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자다. 성경적인 효도는, 부모님을 공양하는 자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가정과 교회에서, 멋있는 효도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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