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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8년도 2월 18일 - 우리가 아노라
  작성자 : 이병진 작성일 :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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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노라(요일5:18-21)

 

지난주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향해, 담대하게 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게 된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만 빼고,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했다. 죄는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 사망에 이르게 죄는, 성령을 모독하고, 성령을 거역하는 죄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언하는데도, 믿지 않으면, 용서받을 수 없는 죄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안다고 했다. 무엇을 아는가? 하나님은 성도들을 지켜준다. 성도는 하나님께 속했고, 온 세상은 악한 자에 속했음을 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자신을 지키고, 우상에게서 멀리해야 함을 안다 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지켜준다고 안다(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 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우리는안다.’(오이다멘)고 했는데, 여기서 안다’(호라오)보다, 주목하다, 체험하다.’는 말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범죄 하지 아니’(우크 하마타네이)하는 줄, 안다고 했다. 현재형으로 계속 범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가 범죄 하면,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라는, 말씀이 아니다.

여기에서 범죄는, 지난주에 말씀한 죄, 성령님이 역사해서, 생명으로 이끌지만, 계속해서 성령님의 인도를 거부함으로, 사망에 이르는 범죄, 회개 하지 않아, 용서받지 못하는 범죄, 예수님의 은혜를 거절하는 죄를 말한다.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일을 말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그리스도인들이라도, 보통 사람들같이, 죄를 지을 수 있다. (1: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후에도, 범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성도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에,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성도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만큼은, 짓지 않는다. 왜냐하면 (18)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그를 지키신다.’했는데, 누가 누구를 말하는가? 2가지로 해석된다.

난 자가 그를 지키신다.’ 난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를 지킨다는 말은 성도들을 말한다.

난 자가 자기를 지키매’ ‘난 자,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로, 성도들을 말하며, 자기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말로 해석한다. KJV자기가 자신을 지켜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번역했다.

그러나 우리 성경과, 대부분의 영어성경(NIV, NASB, NEB, RSV)예수 그리스도의 지키심이라고, 번역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의지는 중요하다. 그래서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의지만으로는, 절대 죄를 이길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있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다.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없기에, 주님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킨다는 말씀으로, 해석해야 옳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을 어떻게 지키는가?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지켜준다. 예수님을 믿으면, 계속해서 짓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진리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에 계속 말씀한다. 성령님도 그것을 죄라고 지적하고, 우리 안에서 탄식하므로, 결국 죄를 버리게 만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은 그가 지키시기에’(테레이, 보존하다의 현재형), 계속 지키기에, 계속 죄를 범하지 않는다.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사랑하는 다윗도, 육체의 정욕에 사로잡혀, 죄를 범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죄를 범하는, 죄의 노예가 될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보호함이다.

물론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과 기도도 필요하다. 그러나 주님의 도움이 없이는,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주님이 우리를 지킨다는 확신을 가지고, 죄에서 떠나야 한다. 악한 사탄이 우리를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보호를 받기에, 악한 자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다.

사단은 불신자들의 영에 역사하여, 그들을 어두움 가운데 처하게 하고, 하나님과 등진 채로 살게 만든다(2:2). 그러나 정작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붙들고 있는 성도에 대해서는, 만지지도 못한다. ‘만지지도’(합토마이)손을 대다, 만지다, 잡다.’인데, ‘합토’(단단히 고정시킨다)의 중간태다.

단순한 접촉이 아니다. 단단히 고정시킨다는 말이다. 어떤 교제와 관계로 묶어놓는 만짐이다. 따라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은, 어떠한 능력과 영향도 묶어놓을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사단은 성도들에게, 일시적인 영향을 즐 수는 있다. 그러나 그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지키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미 악한 자에 대하여, 승리한 분이기에 악한 자는, 주님의 영향력 아래 있는 자들에게,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사망에 이르는 범죄를, 하지 않게 된다.

2. 우리와 세상을 안다(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우리는 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요, 온 세상은 악한 자에게 속했음을 안다.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은 (요한일서)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그래서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인지 증언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사람, 세상을 이기는 사람, 하나님의 증언을 믿는 사람, 나를 대신해서 죽은 예수님을,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했다.

이 확신이 없기에, 이단들에게 속게 된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교회 공동체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따르는 공동체, 곧 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따라서 분명하게 예수님을 믿는 내가, 구원 받은 사람이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고 안다.

나는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자임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이 확신이 있기를, 축원한다. 이 확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준다고 했다. 이 말씀을 분명하게 붙잡을 때, 더욱 확고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믿음의 연조나, 신앙의 경력, 직분과 상관없다.

다만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이면, 내가 하나님께 소속된 사람임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신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답게, 멋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세상 속에 휩쓸려가, 죄를 범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사랑하고 좇아가면, 죄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과 세상을 구분하고 있다. ‘세상’(코스모스)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하나님이 만든, 만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성도를 포함한 인류를, 나타내기도 한다. 악한 영들이 역사하는, 타락한 사회의 죄악의 영역을 가리킨다.

악한 마귀에게 처한 자들은,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있다. 즉 하나님께로 난 자만이, 하나님의 승리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악한 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공동체와 개인만이, 하나님에게 속하여 그리스도가 이루어 놓은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얼마나 우리를, 견고하게 만드는가?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라. 나는 어디에 소속된 사람인가? 주님은 이렇게 말씀한다. 너는 내게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한다. 너는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하나님인 나에게, 속한 자라고 말씀한다.

따라서 우리는, 분명하게 해야 한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이 확신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물들지 않게 한다. 나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분명한 신분의식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따라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고, 자부심을 갖게 한다.

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각으로, 영생을 가졌음을 안다(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우리가 아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확신은,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참된 자를, 알게 한다고 했다. ‘지각을 주사’(디아노이아)디아’(통하여, ~말미암아) + ‘노에오’(지각하다, 생각하다) =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지각을 주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이렇게 사용된다.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다. 여기서 총명(디아노이아), 생각하는 능력,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지각이 어두워지면, 말씀을 들어도, 바르게 듣지 못하고, 왜곡해서 듣는다.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죄를 지적당하면 아파하고, 회개하지 않고, 원한을 품고 떠나간다. 이것이 총명이 어두워진 상태다. 그래서 (4:18)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고, 영생이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 속한 사람이다. ‘참된 자’(알레노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이, 총명이 어두워진 사람이다. 이를 죽었다고 표현했다. 왜 이들이 이렇게 되는가?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마음의 굳어짐이라.’(4:18)고 했다.

무지는 진리의 예수님과, 죄와 세상에 대해, 무지함이다. (16:7-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예수님은 말씀했다.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을 말씀해 준다, 그런데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악한 세상이, 주님을 대적하게 됨을 안다.

따라서 우리는, 죄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없다. 그런데 총명이 어두워진 사람들은, 죄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다. 죄에 대한 무지함은, 마음의 굳어짐으로 고착화된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총명을 준다. 하나님을 아는 지각을, 선물로 준다. 그 지각이 우리에게 있어, 참된 자를 알게 했다. 여기서 안다’(기노스코멘), 피상적인 앎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아는 것처럼, 주님을 알고 체험할 수 있게, 확고한 지각을 준다.

하나님의 아들이 주는 지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성령을 아는 지식과, 세상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우리는 참된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고, 영생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 생명의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따르게 된다. 이런 믿음을 갖게 되니 (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했다. 너희 자신을 스스로, 지키라 의미이다. 사도 요한은, 이것들의 배후에 있는, 선택에 주목한다.

스스로 자신을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 마음을 드리고, 우리 의지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기하라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은 결국 성령님의 도움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 함께 이뤄내는 길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지각을 주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가, 스스로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

우상’(에이돌론)에이도스’(바라보는 것, 모양, 형상)에서 나왔다. 자신을 위하여 바라보는, 것들이 우상이다.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나님은 스스로 우상에게서, 우리를 지키기를 원한다.

모든 우상들은, 욕심과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 우상에게서 멀리하라는 말씀은, 결국 세상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라는 말씀이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답게, 세상 사람들보다, 멋있게 살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마지막 말씀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성령님의 도움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이다. 마음을 드리고, 의지를 드려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우상에게서 멀어지는 것에, 너무 중요한 요인이다. 요한일서는 사랑을 강조하지만, 그 사랑을 통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지켜준다고 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자요,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영생을 가졌음을 안다. 이 확신이 평생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고, 이 모든 확신과 함께, 자신을 지켜, 우상에 물들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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