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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7년 4월 30일 - 로마서를 쓴 이유(롬15:14-16)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7-04-30
  첨부파일:   로마서를 쓴 이유.hwp(40K)

로마서를 쓴 이유(15:14-1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실한 약속을 위해, 할례의 추종자, 섬기는 분이 되었다. 이는 조상들에게 준 약속들을 견고하게 하고, 이방인들도 그 긍휼함으로 구원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려 함이라,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고 했다.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고, 이새의 뿌리,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5:13)로 바울은, 강해와 권면을 끝맺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를, 여기에서 끝내지 않았다. 사적인 이야기로 전환했다. 자신의 사역과, 로마교회를 방문하지 못했던 이유, 또한 로마교회 방문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로마 교회는 바울이, 설립한 교회가 아니었다. 바울은 아직 한 번도, 로마를 방문한 적도 없다. 여기서 목회를 하지도 않았고, 방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긴 편지를 쓴 후에,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서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한 번 로마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열어놓고, 겸손한 자세로 성도들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동시에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1. 나는 확신하노라(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나는 확신된다.’(페페이스마이, 페이, 확신하다의 완료 수동태), 맨 앞에 나온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을 내 형제들아하고, 겸손하게 불렀다. 바울은 앞에서, 로마교회 좋은 교회임을 확신하고, 성도들에게, 몇 가지 부탁과 책망을 했다. 먼저 로마교회 성도들을, 높이 평가하고 칭찬하고 있다. 칭찬한 것은 다음과 같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선함이 가득한 교회라고 칭찬했다. ‘선하다’(아가쉬네), ‘아가에서 파생한 말로 참함, 덕행, 선행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은 선하며, 하나님의 구원과 연결된 말이다. 바울은 로마교회가 구원의 선한 열매가 많이 맺힌, 교회라고 칭찬했다.

바울은 이미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선함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무슨 말인가? 선함은 야비하고, 사악한 것과 반대되는 미덕이다.

본문의 선함은, 천성적으로 착한 성품을 말하지 않는다. 성령님이 내주해서 맺게 하는, 열매로서 맺어지는 선한 열매를 말한다.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라 했는데, 양선이 선함이다. 참된 교회는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교회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모든 지식으로 가득한 교회라고 칭찬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기독교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말한다. 로마교회는 기독교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었다. 로마서와 같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편지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기독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여기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했다.

그러면 신천지가 주장하는, 지식을 말하는가? 아니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 이다.”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지식이다. 참된 교회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어, 이단에 미혹되지 않고, 구원에 이르는 교회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능히 서로, 권하는 교회라고 칭찬했다. ‘능히’(뒤나마이)능력이 있다, 할 수 있다, 가능하다.’라는 뜻이며, ‘권하는’(테오)잘못된 것들을 고치기 위해, 책망과 훈계를 서로 하는 교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권면하다는 단어, ‘파라칼레오’(자기 곁으로 부르다, 격려하다)와는 다르다. 로마교회는 형제들을 위해서, 잘못을 고치려고 할 때, 책망과 훈계를 잘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교회였다. 참된 교회는 잘못을 꾸짖을 때,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교회다.

바울은 로마교회에게 선한 열매참된 지식이 가득하고 사랑의 권면을 할 수 있는, 성숙한 교회라고 칭찬했다.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으로, 복음과 진리의 지식이 차서, 서로 권면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어떤 사람은, 바울이 로마교회를 책망하다가, 갑자기 칭찬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아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러한 칭찬은, 아첨이 아니라, 로마교회의 성숙함에 대한, 진심 어린 칭찬이며, 또한 그들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험을 통해 보면, 100가지 책망보다, 한두 가지의 칭찬과 격려가, 사람들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 이런 점에서 책망 후에, 바울이 로마교회를 칭찬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바울이 편지를 쓰게 된 이유(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로마 교회는 사도 바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따라서 권면의 말들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더욱 담대히’(톨메로테론), ‘톨마오’(위험을 무릅쓰다, 용기를 내다)의 비교급으로, ‘다른 것보다, 더욱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더욱 담대하게썼다고 했다.

로마교회는 아름답고 훌륭한 교회였기에, 특별히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썼다. 바울은 성숙한 로마 교회에, 편지를 써서 보낸,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들이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였다(15). 로마교회 성도들은, 이미 복음에 대해서 듣고,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을 위해, 복음의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전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도들이 로마교회를 방문해서, 체계적으로 복음을 가르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시 정리해서, 설명해 줄 필요를 느꼈다. ‘대략’(메로스)부분을 취하다.’는 말이다. 너희에게 썼다는 말은, 대충대충 썼다는 말이 아니라, 어떤 부분은 강조하고, 권면할 부분이 있어서, 말한다는 말이다.

너희가 지금 다 잘하고 있는데, 내가 어떤 부분에서는, 너희에게 강조하고, 권면해 줄 것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강조하고, 권면하는 이유는, 내가 너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부분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생각나게 한다는 것은, 없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을 권면한다고 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그냥 가르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상대방은 기분이, 몹시 상하게 된다. 네가 무엇이기에, 나를 가르치려고 하는가? 하면서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너도 다 알고 있는데, 너에게는 선한 것도 있고, 지식도 너에게 있는데, 내가 너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려고 하는 거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로 인하여, 내가 너에게 이야기를 줄 부분이 있다. 이것은 꼭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오늘도 특별한 지도자가 없이, 세워진 교회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교회 성도들은, 복음에 대해 이미 들었기에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성숙한 지도자에 의해서,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한지, 잘 알 수 있고, 더 잘 기억할 수 있다.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하고, 너보다 더 알고, 있는 것도 많으니까, 내가 가르치겠다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는데, 받은 그 은혜를 너와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하는 말씀이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권면했다.

3. 바울은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으로, 부름 받았음을 알리기 위해서다(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말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했다.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맡게 했다.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게 했다.

그냥 이방인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만들어 드리는 직분을 받았다. 사도바울이 받은 이 직분, 일꾼의 직분을, 우리도 받은 줄 믿어라.

그리스도는 바울을 부르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워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로마교회를 세우지 않았지만, 이방인의 사도로서, 그들의 신앙을 지도할 책임이 있었다. ‘일꾼’(레이투르고스)은 원래 공적인 종,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꾼은 성경에서 종교적인 예식을 행하는 사람을 말하고, 신약성경에서는 이 말이 제사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여기서 제사장이, 일꾼(레이투르고스)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 직분을 복음을 위한 제사장 직분이라고 했다. ‘제사장 직분’(히에루르게오)히에론’(성소, 성전) + ‘에르곤’(행위, 수고) =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프로스포라)로 보았다.

자신은 그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으로 간주했다. 복음을 그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수단으로 제시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했다. 바울의 사역은 이방인을 하나님을, 제물로 드리는 것’(유프로뎈토스)과 같다.

바울은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사야는 오래 전에, 이미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께 나와 제사를 드릴 것을 예언했다(66:20). 이 예언은 바울의 선교를 통해, 성취되었다.

이 원리는 오늘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오늘 전도자는, 복음으로 죄인을 하나님이 받을만한 제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제물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오늘 우리는 제사장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을, 하나님이 받을 제물로, 만드는 사람이다.

이방인들은 전도자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세상으로 나가서, 또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로 변한다. 복음 전도자는 이러한 일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전도해야 한다.

바울 당시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죄수가, 인류의 구원자라는 메시지는, 있기 있는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메시지요, 헬라인이 보기에, 미련한 것이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이렇게 사람들이 보기에, 인기가 없는 십자가의 복음사역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는, 영광스러운 제사장 사역으로 보았다.

헬렌 켈러의 스승 설리번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기고,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유일한 가족이던 동생도, 병으로 죽고, 설리번 자신은, 안질이 악화되어 실명했다. 두 번씩 자살을 기도했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설리번은, 십자가를 통해, 모든 상처를 치유 받고, 하나님의 사모하는 구원의 믿음을 갖게 된다. 믿음으로 회복된 설리번은, 보스턴 퍼킨스 맹아학교에 입학하고, 6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최우등생으로 졸업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을 받아, 시력도 회복되었다.

그리고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헬렌 켈러의 소식을 듣고, 가정교사로 자원을 했다. 그 뒤로 48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모든 인류에게 소망이 된, 헬렌 켈러를 길러냈다. 설리번은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설리번은 헬렌 켈러를,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제물로 드렸다.

얼마나 힘든 일이 많았겠는가? 우리의 직장생활이 힘들고, 시집살이가 힘들고, 자녀가 힘들어도, 바울보다, 설리번보다 더 힘들겠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전 세계의 제사장이다. 복음의 제사장이라는 말은, 복음으로 하나님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복음의 생명을 낳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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