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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16년 5월 29일 - 하나님의 구원계획(롬8:29-30)
  작성자 : 이건기 작성일 : 2016-05-29
  첨부파일:   하나님의 구원계획.hwp(36K)

하나님의 구원계획(8:29-30)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준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간구해준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준다고 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갑자기 된 것이 아니다. 창세전부터 준비되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계획한 구원을, 5단계로 제시했다. 미리 알았다.’ 예지 미리 정하셨다.’ 예정 부르셨다.’ 소명 의롭게 하셨다.’ 칭의 영화롭게 하셨다.’ 영화이다.

여기에 빠진 개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성화다. 성화는 지금까지 계속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 하나님이 미리 아심, 예지(29).

하나님이 미리 아신에서 구원은 출발한다. ‘미리 안다(프로에그노), 프로(앞에, 미리) + 기노스코(알다) =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안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은 미래를 아는 하나님이, 누가 예수님을 믿고, 믿지 않을지, 미리 알고 계셨다.”한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이, 미래에 누가 예수님을 믿을 것인지, 미리 알고 선택했다면, 구원은 은혜가 아니라, 믿는 행위에 있다. 이러한 주장은, 그 동안 바울이 말한, 로마서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행위가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라고 말해왔다. ‘안다는 히브리어 동사(야다),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깊은 애정을 갖고, 안다는 의미다. 단순히 지적으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6)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요데아).” (144:3) “그를 알아주시며인정하다, 알아준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히 사랑하고 돌본다.’는 의미이다. (13:5) “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알았다는 말이 사랑했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예는 구약만 아니라, 신약에도 역시 나타난다. (11:2)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했다. 여기에서 미리 알았다, ‘사랑했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미리 알았다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이다.

2. 미리 정하심, 예정(29)

미리 아신 자들미리 정했다!’했다. 바울이 말하는, 구원의 두 번째 단계는 하나님의 예정이다. ‘미리 정하셨다.’(프로오리조), 프로(앞에, 미리) + 호리조(경계를 짓다, 지정하다.)의미다(4:28).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했다고 했다(1:4, 5). 우리의 구원은 창세전에, 하나님이 정한 것인데, 장로교와 감리교가 주장이 다르다. 감리교회는 예지예정설을 주장한다. 하나님이 우리가 믿을 것을, 미리 아시고, 선택했다는 말이다.

우리의 믿음이, 기초가 되어야 함은 맞지만, 개인의 믿음을 강조하기 위한 교리다. 인본주의 헬라 사상이다. 그러나 본문에서, 주어가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다. 신본주의다. 우리가 하나님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했다. 성경 곳곳에서 이런 사상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을 택하였다(12:1-3). 하나님이 이삭을 택하고, 이스마엘을 버렸으며, 야곱을 택하고, 에서를 버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택했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택한 것이 아니다.

신약에도 복음서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택하지 않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택했다고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정은, 만세전에 그리스도 예수님을, 보내주기로 예정한 것이며(3:20) 하나님의 초청을 받아들이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한 것이다(3:16, 5:39-40, 10:27-28).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로 예정했지만, 그 예정은 하나님이 누군가를, 구원으로 초청했을 때,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를, 구원하기로 예정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또한 개인예정은, 한 사람도 없고, 오직 공동체 예정만 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예정했다고 말한다(1:3-14). 이러한 진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해 주셨기 때문이다. 예정론은 운명론이 아니다. 신앙 고백적이다.

우리가 복음을 믿음은, 성령님의 특별한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정의 목적은 (29)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는 일에, 힘을 쓰지 않는 사람은, 구원받은 상태가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은, 단지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데에만 있지 않다. 하나님의 예정에는, 2가지 목적이 있다고 바울은 말했다.

하나님의 예정은 그 아들의 형상,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이 성도들을 자녀로 예정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자녀들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주어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함께 기도하며 도와준다.

하나님의 예정한 것은 맏아들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된다는, 탁월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는, 탁월한 자가 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알 때, 구원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3. 부르심, 소명(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불렀다. 자기 백성을 부르심, 소명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미리 사랑한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정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종을 파송했다. 파송 받은 사람은,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한다. 하나님이 정한 사람은 복음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예정교리가, 복음전도를 불필요하게 만들며, 전도에 소극적이 되게 만든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사실 예정교리는, 오히려 전도에 더 적극적이 되게 만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복음을 전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도 승천하면서,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수많은 종들을 보내어, 갖은 고생과 희생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게 했다. 그들의 희생을 기초로 해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으니, 전도자의 희생과, 수고를 잊지 말자.

2,000년 전에 작은 땅인,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복음이, 오늘날 전 세계로 확장된 이유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전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로 생각하고, 전심으로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의 부름에는 2가지가 있다.

일반적인 복음전파다. 하나님은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했다. 따라서 모두를 부르기에 일반적인 부르심’, ‘외적인 부르심이라고 한다. 이러한 부르심은 외적으로만 받아들이고, 내적으로는 거부하는 것이다. 교회까지만 왔지만, 지옥 가는 사람이다.

택한 백성들 속으로 부르는, 성령의 부름이다. 하나님이 복음이 전파될 때에, 선택한 성도들의 마음을 성령으로 감동하여 받아들이게 한다. 이러한 부르심이, 특별히 선택된 사람들에게 임하기에 특별한 부르심또는 내적인 부르심,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외적인 부르심을 받지만, 내적인 부르심은, 받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외적인 부르심과 내적인 부르심을, 동시에 받는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성도들은, 복음을 듣고,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복음에 믿음으로, 응답하게 된다.

복음 안에 있는 사람은, 특별 부르심에 참예한 사람이다. 이스마엘은 선택받지 못했다, 선택받지 못했으나,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일반 부르심에 해당되는 사람이다. 일반 부르심에 해당 되는 사람은 부름을 받아서, 오기는 했지만, 자녀가 되는데 까지는, 들어가지 못한다.

우리는 유업을 받는데 까지, 참예한 자다. 얼마나 감사한가? 복음을 아는 사람은, 정말 감사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참 많지만 그 사람들이 다, 특별 부르심에 참예한 자가 아니다. 특별 부르심을 받은 자는 누구이고, 어떻게 되는가?

4. 의롭다 하심, 칭의(30).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를 행할 수 없다. 물론 세상에서, 의롭게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의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가 될 수 없다. 어떤 사람도 자기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없다.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의는, 구원과 관계된 의를 말한다. 내가 조금 의를 행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의가 있어야 된다.

이렇게 의를 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혀 주셨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응답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죄를 용서하며, 의롭다고 인정해 준다. 이를 칭의라고 한다. ‘칭의는 의를 입혀주셨다는 말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가 의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의를 입혀주어, 천국에 가게 된다.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용서함으로, 아무도 그들을 정죄할 수 없게 했다.

이러한 칭의에 대해서, 이미 로마서에서, 계속 언급했다. ‘의롭다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혀 준다. 예수님의 의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나님과 신실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

5. 영화롭게 하심, 영화(30).

하나님이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불러서, 의인으로 인정해 주셨으며, 성령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삶을 살게 한다.

미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게 한다.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 목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을,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삼아주셨다.

성화의 과정은 영화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성화의 과정은 믿는 즉시 시작된다. 성화의 과정이 완성될 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영광에, 참여할 수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성화의 완성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장차 자기 자녀를,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는, 이러한 일들을 미리 바라보고, 소망하면서 즐거워하고,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기꺼이 고난에 참여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5가지 단계를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신 백성을, 미리 정하셨고, 때가 되어 자기 종을 보내서, 그들을 부르셨고, 그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복음을 받아들인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다.

이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서, 장차 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5단계는, 깨뜨릴 수 없는 고리로 연결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가리켜 구원에 이르는, 다섯 걔의 황금 사슬이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는, 견고한 사슬이다.

우리의 완전한 구원은,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과거 시제를 사용해서, 우리가 이미 영화롭게 되었다.’고 말씀했다. 이렇게 말한 이유는, 우리가 참여할 영광이,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한 경험을 통한, 신앙고백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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