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6월 5일 -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시면(롬8:31-3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6-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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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아끼시면(롬8:31-34)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대해, 5단계로 이야기했다. 하나님은 미리 알았다(예지). 하나님은 미리 정했다(예정). 때가 되어 그들을 부르시고(소명), 의롭다고 인정했으며(칭의), 또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영화)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 얼마나 확실하고, 견고한지 말한다. (31上)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이 일에(앞에서 말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누가 감히 하나님께 도전하겠느냐는 말이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음을 설명했다. 또한 계속해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자세히 말했다. 긴 논증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된다고 증명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용서해 주고, 그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줌으로, 강력한 죄의 세력에서 지켜주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질문한다.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아끼면, 누가 우리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한다.
1. 대적하겠느냐?(31中).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한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다면, 감히 누가 반대할 수 있나?
잘 아는 것처럼, 이 세상에는 성도들을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많다. 사단은 어둠의 영들을 동원해서,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러한 악한 영들을, 과소평가하면 안 되고, 과대평가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보호해주는 강한, 하나님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악한 세력이, 자기 백성을 해치지 못하도록, 우리를 붙들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편에 되면, 아무도 우리를 대적할 수 없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사단은 우리를 정죄하고 공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어느 누구도 취소시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덮어준다. 그러나 사단은 죄의 세력으로, 계속 우리를 죄와 정욕으로 이끈다. 그러나 성령님은 강력한 능력을 통해,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좇게 만든다. 따라서 사단은 성령을 좇는 사람을, 대적하여 승리할 수 없다.
거인 골리앗 앞에, 왕도, 장군도, 군인들도, 다 떨고 있을 때에,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는 17세밖에 안 되는 다윗이었다. 다윗은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임을 믿고 있었다(삼상17:47).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다른 모든 사람들이 다 떨어도, 그는 떨지 않았다.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있기에,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시18: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또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했기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 때나, 전쟁이 일어나도, 여전히 태연하리라.’(시27:3)고, 고백했다.
‘여호와가 환난 날에, 자기를 초막 속에, 비밀히 지켜준다.’고 고백했다(시27:5).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는 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감히 누가 세상에서 우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마28:18, 20).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사람이 없다는, 이 최종 구원에 대한 확신은,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신자들이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는 바로 이런 점을, 이단들과 사이비들이 노리고 있다. 사이비 종교들이 이런 틈을 타서, 들어오게 되어 있다. 힘들수록 확신을 갖기 바란다.
2. 모든 것을 주지 않겠느냐?(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있다면, 아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세상에서 친구를 위해, 자기 아들을 희생시키는 일은, 발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에게 자녀는,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아들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었다. 이러한 일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주셨다면, 하나님은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들도, 우리에게 당연히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정말 사랑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친구를 구하기 위해, 아들을 희생했다면, 그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아들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무엇을 주지 못하겠는가? 바울은 (롬5:6, 8, 10)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원수였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다.
좋은 것을 주는 분이, 그보다 못한 것은, 당연히 줄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다.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을 받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한없이 기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면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으면,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모두 채워준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에, 준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구하기 바란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힘든 문제들을 만날 때,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결정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확신에 찬 기도에 있다. 필요한 능력, 필요한 물질, 필요한 사람, 모든 것을 확신을 갖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주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왜 얻지 못하나? 구하지 않고, 찾지 않기 때문이며, 두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구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모두 준다고 했는데 확신이 없어서, ‘정말 줄까?’하며,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 구하면 주신다고 했다. 무엇이 필요한가?
3. 택한 자를 고발하겠느냐?(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믿는 성도들을 택한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도들을, 창세전에 예정했다.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미리 야곱은 택했고, 에서를 버렸다. 이러한 선택과 예정은, 영원 전에 이루어졌으며, 취소되거나 변경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확고한 신분이 보장된 사람들이다. 아무도 고발할 수 없다고 했다.
‘고발하다.’(엥칼레오)는, 엔(안에) + 칼레오(부르다) = 불러들이다, 책망하다, ‘법적으로 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재판이 일어나면, 검사는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 피고인의 죄를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일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고발’의 의미다.
우리를 고발하는 것은, 율법과 우리 양심, 다른 사람들, 그리고 마귀다. 그 중에서 가장 흉악한 고발 자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마귀이다(계12:10). 그는 양심과 다른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정죄하고 공격한다. ‘너는 죄를 지었으니까, 구원은 틀렸다.’고 우리를 고발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고발당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우리의 죄를 씻어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지불해주었으며, 믿는 성도들을 의인으로 간주해 주었다. 그러므로 사단은 더 이상 성도들을, 고발할 수 없다.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그 모든 죄 값은, 다 지불되었기에, 사단은 우리를 정죄할 수 없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차를 타고 가다가, 실수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했다고 한다. 이 경우에 다친 사람과 합의를 해야만, 형사처분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해서, 합의금을 지불할 수 없으면, 형사처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를 사랑한 사람이, 그 사정을 알고, 돈을 대신 내주었다. 합의금을 대신 내주었기에, 우리는 검사들과 형사들에게, 고발 받을 필요가 없다. 다친 사람이 고소를 취하하고, 합의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께 지은 죄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거역하고,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의 고발을 받아야했고, 하나님 앞에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스스로 죄 값을 지불할 힘이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고, 우리를 위해, 죄 값을 지불해주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죄라고 선언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고발 받을 필요가 없다.
만일 사단이 계속해서, 우리를 고발한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죄 값을 지불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나는 그를 이미 용서했다. 그러므로 너는 더 이상, 그를 고발하지 말라!’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감히 하나님이 택한 성도들을, 정죄할 수 있는가?
‘정죄한다’(카타크리노)는 카타(아래, ~관하여) + 크리노(결정하다, 판결하다.) 피고인에게 ‘유죄선고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한 성도들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중보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유죄선고를 받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심은, 그를 믿는 성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다. 성도들은 죄를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도들에게, 유죄선고를 내릴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 때에, 때때로 죄를 지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마귀는, 그들을 고발하고 정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신, 중보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죄를 짓고, 고발당할 때에,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저는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하나님은 나를 믿는 자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그 약속과, 나를 믿었다. 그러므로 약속대로, 그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듣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고발이 우리를 정죄하는 검사라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변호해 주는, 변호사라 할 수 있다. 우리를 정죄하던 모든 근거는, 그리스도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 그러므로 재판장인 하나님은, 무죄선고를 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언한 성도들에게, 유죄선고를 누구도 내릴 수 없다.
불신자는 죽으면, 죄 때문에, 지옥으로 간다. 하나님이 자비롭기에, 지옥의 고통이 없다고 말해도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지옥의 고통이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여, 하늘에서 우리의 변호사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확신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확신을 죄를 짓도록 조장한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했으니, 그러므로 이제 죄를 많이 지어도, 하나님은 나를 구원한다는, 엉뚱한 적용은 잘못된 신앙이다. 올바른 신앙으로 세상과 죄악을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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