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 5월 15일 - 악한 자들을 멀리하라(잠19:27-29)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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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들을 멀리하라(잠19:27-29)
비엔나 의과대학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유명한 외과 의사이면서, 의과대학 교수가, 의과대학을 지망해서,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앞에 놓고, 첫 강의를 하게 됐다. 첫 강의에 들어 온 이 학생들은, 긴장한 가운데, 교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교수님은 “여러분은 책임 있는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기 위해, 이 학교에 왔다.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려면 중요한 2가지 자질은, 꼭 갖추어야 된다.” ① “역겨운 냄새, 더러운 분비물, 썩은 고름 같은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참 끔찍한 일이지만, 학생들은 전부 고개를 끄떡였다.
② “예민한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고, 교수는 더러운 냄새나는, 고름이 담긴 그릇에 손가락을 담갔다가 꺼내서, 입으로 핥았다. 그리고 나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와, 나처럼 해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끔찍했지만, 한 명씩 나와서, 더러운 곳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핥았다.
일이 다 끝난 다음, 교수님이 평했다. “여러분은 첫째 자질에 대해서는, 아주 우수하게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둘째 자질에 대해서는 형편없다.”고 했다. 그때 교수님은 “나는 이 더러운 곳에 넣은 손가락은 빨지 않고, 다른 손가락을 빨았다. 그것을 너희들은 못 보았다.”
제자는 전적으로, 선생님을 따라야만 하지만, 깊은 관찰력을 가져야 한다. 복음서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 없고, 심지어는 열두 제자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따랐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좋은 스승을 만남은, 큰 축복 중에 하나다.
하나님은 좋은 스승을 통해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나 사단은, 거짓스승을 통해, 사람을 미혹하고 있다. 거짓스승의 가르침에 미혹된 사람은, 수치와 멸망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거짓스승을 분별하고, 이를 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마24:24-25)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1. 거짓 스승을 멀리하라(27).
“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전도자는 말씀을 받는 자들을 ‘내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 스승은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아들처럼 대하고 있다.
잠언에서 스승들은, 부모님의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지혜를 가르쳤다. 사람들을 진리로 안내하는 스승은, 영적으로 부모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해서 이웃을 구원하는 사람은, 영적 부모와 같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가리켜, 복음으로 낳은 아들이라 했다.
본문은 지혜의 스승이 ‘지식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거짓교훈을 듣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 아니다. 종교가 우선이다. 이스라엘의 가정은, 종교를 심어주는 학교다. 어머니의 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배우게 된다.
히브리어로 부모를 ‘호림’(םירוה)이라 한다. ‘호림’은 동사 ‘야라’에서 왔다. 야라는 ‘쏘다, 교훈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든다.’에서 왔다. 부모(호림)는 토라와 의미가 같다. ‘토라를 가르친다.’는 말로부터 부모가 유래했다. 출세를 위한 교육이 아니라, 바른 인간을 만듦이 교육이다.
그렇지 못한 세상이기에 바울은 (고전4:15)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삶에 모본을 보이지 않거나, 희생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을, 나쁜 의미로 스승(파이다고고스, 데려다주는 노예)라고 했다.
그리고 올바른 보본을 보이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희생하려는 사람을, 아버지로 표현했다. 잠언이 말하는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세상에는 진리를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다 진리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일부는, 말씀 대신에 자기 생각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이단들과 거짓 교사들이 있다. 하나님 말씀과 다른 것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 중에,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든지, 성경에 나오는 기적은,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은, 우리를 진리에서 떠나게 하는, 거짓교훈이다. 따라서 듣지 말아야 한다.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거짓스승과 참된 스승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거짓 스승은 교묘하기에, 이를 분별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더욱 더 깊이 연구하고, 거짓 가르침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사단은 지금도, 거짓 스승들을 통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거짓 교훈에 속지 않도록, 성령님의 인도와 돌보심을 항상 구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 주변에서, 이단에게 미혹된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따라서 거짓 교훈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2. 거짓 스승은, 헛된 것을 쫓아, 죄를 부른다(28).
“망령된 증인은, 정의(미스파트)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아벤, 고통, 헛됨)을 삼키느니라.” ‘망령’(벨리알)이라는 말이다. 벨리(무, 없다.) + 야알(이익이 있는, 되는) = ‘이익이 없는’ 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벨리알은 종종, 사단과 악령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고후6: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라고 했다. 벨리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대적하는 악한 자를 말한다.
거짓 선생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하고, 악이 주는 쾌락을 즐긴다. 진실을 왜곡하고, 공의를 짓밟는다. 온갖 거짓과 불법을 동원해서, 악인을 무죄로 만들고, 의인을 죄인으로 만들어서, 재판에서 이기면, 자신이 능력이 있어서, 이겼다고 자랑한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어떤 것이, 이익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죄 없는 사람을 옥에 보내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인을 죄인으로 만드는 악인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의인을 악인의 손에서 구원하고, 악인은 자기가 판 함정에, 빠지도록 만든다.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악인의 입’은 앞에 나온 ‘망령된 증인’과 대조했다. 망령된 증인은, 법정에서 공의를 무너뜨리지만, 악인의 입은, 죄악을 통째로 삼켜버린다.
뱀은 은밀하게 숨어 있다가, 갑자기 먹이를 덮쳐서, 통째로 삼켜 버린다. 이같이 악인도 사람들을 속여서, 통째로 삼켜버린다. 그러나 의인은 거짓이나 악을 행하면, 가책을 받고 회개하지만, 악인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악이 자연스럽다.
그들의 마음은 마치, 길가의 흙처럼 단단해서, 전혀 권고나 책망을 받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죄악을 행하는 기술이 발전한다. 그러므로 악인은, 점점 더 큰 죄를 짓고, 마음이 점점 더 악해져 간다. 따라서 자녀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지식의 말씀이다.
말씀만이 정확한 기준이기에, 자녀를 바르게 교훈할 수 있다. 말씀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바른 삶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자녀를 바로 인도할 수 없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확신이 없었기에, 뱀의 유혹에 넘어갔다.
그러므로 말씀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분명한 지식과 확신이 있었기에, 사단의 유혹을 이길 수 있었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홍수같이 쏟아지는, 세상의 많은 말들을, 조심스럽게 분별하여,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들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악인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공의로운 하나님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악인을 위해, 심판의 때를 준비하면, 갑자기 임하여서, 멸망하게 만든다. 악인이 형통함을 보고, 시험에 든 일은 없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 계시기에, 성도들이 악인의 형통을 보고, 낙심할 필요가 없다.
3. 거만한 자에게는 채찍이 기다린다(29).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니라.” 여기서 ‘심판’(쉐파팀)은, 일반 법정에서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거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은 공의롭기에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거만한 자’(레쯔, 비웃는)는 악을 행하고, 끝내 돌이키지 않고, 하나님을 희롱하는 자를 말한다. 자기 멋에 살고, 사람을 업신여긴다. 교훈과 책망으로 다룰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겨드려야 한다.
(24-28)은, 돌이키기 어려운 자들이 나온다. (1) 손을 그릇에 넣고도, 그 음식을 입에 넣는 것조차 괴로워하는, 게으른 자(아짤, 의지하는 자(24), (2) 거만한 자 ① 부모를 구박하고, 내쫓는 불효자(26) ② 진리에서 떠나도록, 미혹하는 거짓 스승(27), ④ 공의를 무너뜨리는 거짓 증인이다(28).
이러한 악한 자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그 마음이 거만하기에, 책망을 들어도, 돌이키지 않는다. 이렇게 거만하고 완악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준비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니라.’ 채찍이 아니면, 돌아서지 않기 때문이다.
채찍은 죄인에게 가해는, 법정형벌이나 하나님의 징계를 말한다. 이 말은 앞의 ‘심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담대하게 그 뜻을 거부하는 자로, 앞의 ‘거만한 자’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죄를 범한 후에,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는 사람은, 그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많은 권고나 경고를 받고도, 끝내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때때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참고 기다려 준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죄에 대한 심판이 없음을 보고, 더욱 담대하게 악을 행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악에 익숙해지고, 더 나아가서 악이 주는, 쾌락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때에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채찍을 준비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적당한 때가 되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고난의 채찍으로 때려서, 겸손하게 만든다. 따라서 거만하고, 완악한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말씀과 충고를 즐겨 받을 수 있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마음을 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하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면서도, 몸이 성한 수재라도 입학하기 어려운, 명문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인문학 및 법학 박사의 칭호를 받은, 헬렌 켈러가 ‘삼중고를 이긴 성녀’가 될 수 있었던 힘은, 앤 설리번이라는, 위대한 스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위대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이다.
진정 우리가 닮아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바울은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다.
(마23:7-8)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 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예수님만 우리의 참 스승이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말세에 예수님을 팔아먹는, 가짜가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이렇게 된다고 했다.
(딤후4: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자신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지 말라. 진리에서 돌이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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