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지금 델리에 나와 있습니다. 열 여섯시간의 버스여행을 마치고 내일 방글라데시로 가는 아침 비행기를 타기 전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머무르며 편지를 드립니다.
델리에 도착할 무렵부터 스모그로 뿌연 하늘을 바라보니 눈이 시리도록 푸르른 마날리 하늘이 자꾸 떠오르는 게 저희도 거반 마날리 사람이 다 되어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공식적으로 병원 일을 끝냈습니다. 4년 반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요. Bittersweet, 혹은 시원섭섭이란 단어가 지금 저희 마음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표현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복한 시간 만큼이나 눈물도 많이 흘렸던 5년 가까이의 시간 이었는데 돌이켜 보니결국은 “감사” 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얼마 전엔 미국에서 저희 단체를 통해 의과대학 졸업반 학생이 단기ㅅㄱ 로 다녀갔습니다. 매 해 한명씩 다녀 갔었지만 이번엔 특별히 저희와 오랜 친분이 있는 ㅅㄱ사 님의 아들이고 한국 학생이서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같은 언어,같은 식습관, 같은 문화권이 주는 어쩔 수 없는 편안함을 맘껏 누리며 오히려 저희가 위로 받는 느낌이었으니까요. 바라기는 그 학생도 글로벌 ㅅㄱ 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부르심을 경험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해 부터 저희가 매주 해오던 마날리 꿀루밸리의 부흥과 특별히 전임 병원장과 현재 병원장간의 화해와 회복을 위한 기도모임을 기억하실런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올해 초부터 로컬 사역자들이 각자의 사역으로 바빠지기도 했고, 저희는 외국인으로서의 분명한 한계가 있음에도 자발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 로컬 사역자들에게 적잖이 실망하며 거의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매주 모이던 기도 모임도 중단 되었구요. 그런데 지난 달 갑자기 저희 병원의 스태프 두명이 로컬 사역자들이 모두 모이는 모임을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첫 모임을 가진겁니다. 십여년만에 처음으로 전임 병원장 부부가 병원 안의 ㄱ회에서 나누게 되었고 이번 달에는 전임 병원장이 사역하고 있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좋으신 아버지! 우리의 하나됨을 그 누구보다 원하시는 분, 그래서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계신 분은 아버지 자신이셨던 겁니다!
저희는 혼자 열심을 내다 혼자 실망하고 혼자 다른 형제 자매들을 원망하며 포기했을 때 신실한 아버지께서는 끝까지 당신의 열심 가운데 일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 찬양을!
저희의 이후 사역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올해 말로 끝나는 비자때문에 일단은 마날리를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지난 몇 달간의 하루 하루는 참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병원 안에서는 같은 스태프로, 혹은 환자와 의사로, 또 병원 밖에서는 야채가게에서, 식당에서, 옷 수선집에서 이렇게 저렇게 관계를 맺은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나마스떼”가 예전과는 달리 참 고맙고 애틋했습니다.
한편 저희가 떠나는 걸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떠나기 전 치료를 받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많이 바빴습니다. 특별히 동네의 유지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 주었는데 결국 제가 깨달은 건 관계 혹은 신뢰라는 것은 결코 단시간에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저희는 5년 전 부터 늘 거기에 있었지만 그 분들이 저희를 믿고 찾아 오기 까지는 그 5년의 세월이 걸렸던 겁니다. 좀 더 나은 진료를 위해 더 먼 곳까지, 더 비싼 값을 내고 찾아 갔던 분들이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저희가 떠나는 걸 진심으로 아쉬워 해 줄 때면 저희도 힘들게 쌓은 관계와 신뢰를 두고 가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고민이 되곤 합니다.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러 온 지금까지도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저희가 방문하려고 하는 병원의 급한 사정을 들었을 때는 당장이라도 가서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마지막 몇 달간 마날리에서 경험한 관계의 귀함, 그리고 그런 관계를 맺기까지 필요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이제야 이런 관계 위에서 무언가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 그렇게 말씀해 주시기도 하셨구요.
그래서 아버지께 여쭈었습니다. 이번엔 아주 아주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야 한다고요. 고민하지 않고 아, 이 길로 아버지께서 인도하시는구나 알 수 있게 말이지요. 그리고 그렇게 확실한 아버지의 인도하심을 깨닫기 위해선 그 어느때보다 여러분의 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기억해 주세요. 저희는 정확히 10월 20일부터 29일 까지 방글라데시에 머무르고 30일 마날리로 돌아와서 짐을 정리해서 병원 밖에 보관해 놓고 마날리에 얼마간 머무르며 이곳 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Home assignment 를 위해 떠날 예정입니다.
이렇게 비장하게 여러분들께 기도부탁을 드리고 나니 갑자기 프로스트라는 시인의 “가지 않은 길” 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그 시인은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서’ 한 길을 택했고 가 보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회환을 얘기하며 그가 어떤 한 길을 택해서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수 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제가 한 선택들이, 그것이 옳았던 글렀던, 현명했던 어리석었던과 상관 없이 결국 아버지께서는 모든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었다는 겁니다.
물론 후회도 회개도 있었고 때론 뼈아픈 댓가도 치뤄야 했을 수 있겠지만 결국 아버지께서는 그런 저의 어리석음이나 무모함, 성급함으로 인한 선택의 시간 조차 “선” 을 이루시는 데 사용하셨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쓰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방글라데시건 마날리건 또 다른 어디이건 아버지께서는 결국 아버지의 일을 하실 것이고 그것은 결국 선할 수 밖에 없을테니까요!
혹시 저희처럼 인생의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서 계신 분이 계시다면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아버지를 신뢰하며 담대하게 한 발을 내딛으시면 좋겠습니다,물론 아버지의 뜻을 전심으로 구하는 가운데 말이지요.
ㅎㄴ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ㅎㄴ님의 뜻대로 부르심은 받은 사람들 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 8;28)
기도해 주세요!
- 방글라데시에 머무르는 동안, 그곳의 병원을 방문하고 그곳의 사역자들과 교제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도록
- 10/27 마날리 로컬 사역자들의 기도모임에 놀라운 ㅅ령 의 기름부으심이 있도록 - 특별히화해와 치유의 역사가 일어 나도록
- 마날리 사역을 정리하며 그간 관계를 맺었던 모든 사람들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 짐을 정리하고 옮기고 보관하는 모든 절차가 순조롭게 이루어 지도록
신창은 신태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