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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아이티[Ayiti, Haiti, Haïti ] 조회수 : 2835
  작성자 : 이찬용 작성일 : 2014-09-02

아이티의 국기

아이티는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Hispaniola) 섬의 서쪽 부분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도미니카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도서국가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1,771㎞에 이른다. 정식 국명은 아이티공화국(Republic of Haiti)이며, 인구는 2009년 기준으로 1,000만 명에 이른다. 수도는 인구 약 310만 명이 거주하는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이다.

국토 면적은 27,750㎢로 한반도의 1/3 수준이다. 행정구역은 10개 주(州) 및 1개 수도로 나뉘고, 주는 다시 41개 군(郡), 133개 구(區)로 구분된다. 주요 도시로는 제레미(Jérémie), 레카이(Les Cayes), 자크멜(Jacmel), 생마르크(Saint-Marc), 고나이브(Gonaives), 포르트페(Port-de-Paix) 등이 있다.

주요 경제지표를 보면, 2009년도 추정치로 국내총생산(GDP)1) 67
억 2000만 달러, 1인당 국내총생산 673달러, 경제성장률 2.9%, 인플레이션 15.8%를 기록했다. 수출 규모는 5억 5000만 달러이다. 주로 미국(70.7%), 도미니카공화국(8.9%), 캐나다(3.1%)에 의류, 카카오, 망고, 커피 등을 수출했다. 수입 규모는 20억 달러로 미국(35%), 도미니카공화국(23.1%) 등에서 연료, 식료품, 기계, 자동차 등을 수입했다. 외채는 15억 달러에 달한다. 보크사이트, 구리, 금, 대리석, 석탄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아이티 개관

국명

아이티공화국(Republic of Haiti)

위치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 섬의 서쪽

면적

27,750㎢(한반도의 1/3)

민족

아프리카계(95%), 물라토(흑인과 백인 혼혈) 및 백인(5%)

언어

프랑스어(공용), 토속어 크레올어(Creole)

기후

고온 열대성 해양성 기후

인구

1,000만명(2009년 추정치)

수도

포르토프랭스(Port-au-Prince)

정치체제

과도정부

정부형태

대통령제

의회

양원제, 상원 30석(임기 6년), 하원 99석(임기 4년)

종교

가톨릭(80%), 개신교(16%), 기타(4%)

교육

6세부터 11세 초등교육 무상의무교육, 주요 고등교육기관 아이티 대학(1920년)

GDP

2009년 추정 67억 2,000만 달러, 1인당 GDP 673달러

화폐단위

구르드[gourde(프랑스어), groud(아이티어)]

국경일

독립일 1804년 1월 1일(프랑스로부터 독립)

1. 아이티의 지리

북아메리카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Hispaniola) 섬 서쪽 1/3과 인근의 작은 섬들로 구성된 아이티(Haiti: 정식 국명 Republic of Haiti)는 면적이 27,750㎢로 한반도 면적의 1/8에 이른다. ‘아이티’는 아라와크어로 ‘산이 많은 땅’을 의미한다. 아이티는 동쪽지역이 높고 서쪽지역이 낮은 지형이며, 국토의 2/5가 고도 490m 이상 지점에 위치한다. 중ㆍ서부 지역은 내륙 고원지대, 해안일대는 평야지대이다. 남부반도 일대는 지진벨트 지역에 있어서 수시로 지진이 발생한다.

아이티의 지형도

아이티의 지형도

2. 아이티의 기후

아이티는 고온 열대의 해양성 기후를 보이며 대부분의 지역에서 평균 30℃ 전후의 무더운 날씨가 지속된다. 3월에서 11월 사이의 우기에 강수량이 집중되고 15℃에서 35℃ 사이의 고온 다습한 기후가 형성된다. 건기인 12월에서 2월에는 평균 기온이 25℃ 전후에 이르며, 비교적 강수량은 적지만 따뜻하고 습한 날씨가 지속된다.

8월에서 11월에는 홍수, 열대성폭풍, 허리케인 등의 자연재해가 빈발한다. 게다가 불법 벌목이 횡행하여 전체 삼림의 3%만 남아있는 상황에서 홍수 피해가 가중되고 있다. 연 강수량은 1,200㎜에서 2,000㎜(한국 1,000㎜~1,200㎜)에 이른다.

3. 아이티의 자연재해

아이티는 국토의 대부분이 험하고 높은 산악지대이며, 허리케인 영향권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 매년 6월에서 10월 사이에 허리케인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한 나라이다. 2010년 1월에는 수도를 중심으로 진도 7.0의 강진이 일어나 많은 피해가 났으며, 진도 5.0의 여진만 20차례 넘게 일어나서 거의 무정부 상태가 빚어졌다.

아이티의 역사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위치한 아이티는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된 이래 스페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804년 1월 1일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으로서 독립했다. 이후 아이티는 1915년부터 1934년까지 미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아이티는 1987년 4월 신헌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아이티 역사

날짜 내용

1492년

콜럼버스 도착

1492~1697년

스페인 식민통치

1697~1803년

프랑스 식민통치

1804년 1월 1일

프랑스로부터 독립
※ 흑인노예들이 해방운동을 전개(1791년), 흑인노예들의 혁명 성공으로 최초의 흑인 공화국 설립

1822~1844년

도미니카 공화국 점령

1915~1934년

미국이 19년간 아이티 점령

1957년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cois Duvalier) 대통령 집권

1987년

신헌법 비준

1988년 2월

레슬리 마니가(Leslie Manigat) 대통령 취임

1988년 6월

군사 쿠데타 발생

1990년 3월

에르타 파스칼 트루이요(Ertha Pascal Trouillot) 임시 대통령(당시 대법원 부원장) 취임

1991년 2월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 대통령 취임(최초의 민선 대통령)

1991년 7월

군사 쿠데타 발생, 아리스티드 대통령 해외 망명

1994년 10월

아리스티드 대통령 복귀(미국 주도의 다국적군 개입)

1996년 2월

르네 가르시아 프레발(Rene Garcia Preval) 대통령 취임

2001년 2월

아리스티드 대통령 취임

2004년 2월

반군 및 국제사회 압력으로 아리스티드 대통령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

2004년 3월

보니파스 알렉상드르(Boniface Alexandre) 임시 대통령 취임
제라르 라토르튀(Gerard Latorute) 총리 지명

2004년 6월

유엔 아이티 안정화군(MINUSTAH) 주둔

2006년 5월

프레발 대통령 취임(제2기 집권)
자크에두아르 알렉시스(Jacques-Édouard Alexis) 총리 임명

2008년 4월

알렉시스 총리 해임(소요사태 발생)

2008년 9월

미셸 피에르 루이(Michéle Pierre-Louis) 총리 내각 출범

2009년 11월

장 막스 벨레리브(Jean-Max Bellerive) 총리(기획대외협력부장관 겸임) 내각 출범

2010년 1월

강진 발생으로 사실상 정부기능 마비

아이티 정치

아이티는 2004년 4월 국제연합 아이티 안정화군1)이 주둔한 이래 어느 정도 안정적인 치안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아이티는 제반 국가시설이 열악한데다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일반 국민의 시민의식이 결여되어 있는 등 여러 이유로 인해 정치·사회적 안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평가된다.

또한 아이티는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cois Duvalier) 대통령이 30여 년간 독재를 해온 데다 군사쿠데타와 정쟁, 정치폭력, 부정선거가 난무하는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했다.

아이티의 정치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아이티의 최근 정치 정세

2. 아이티의 주요 인물
  1) 르네 가르시아 프레발(René García Préval)
  2) 장막스 벨레리브(Jean-Max Bellerive)
  3) 마리 미셸 리(Marie Michéle Rey)

아이티 경제

아이티는 지난 60년 동안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를 제공받아 왔으나 아직까지 세계 최빈국이자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분류된다. 또한 아이티는 국가 재건을 시작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2010년 강진이 발생하여 사실상 국가 경제기능이 마비되었다. 이에 국제사회는 2010년 3월 뉴욕에서 원조 공여국 회의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아이티 재건사업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했다.

아이티의 최근 경제동향

아이티는 1986년 개방경제체제를 도입한 이후 시장을 개방하고 경제구조를 개편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다자간 자유무역협상을 벌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등 외형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아이티는 국내 정치가 불안하여 1991년에서 1994년까지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조치를 당하는 등 세계 최빈국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아이티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등의 원조(정부 세입 예산의 30~40%를 차지)와 해외이주자 송금액[국내총생산(GDP)1)의 1/4]으로 경제를 지탱하고 있다. 아이티는 인구의 80%가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의 비용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더해 실업률은 60%를 상회하고 문맹률은 52%에 이른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적 불평등과 높은 실업률로 야기된 높은 사회적 불안 지수, 새로운 유혈분쟁 발발 가능성, 불법 마약 및 무기 밀매 성행은 아이티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힌다.

한편, 아이티는 인구의 6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경작지가 부족하여 식량의 4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더군다나 유가와 곡물가가 인상될 때마다 식료품 가격이 폭등한다. 2008년 4월에는 유류 및 국제곡물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식료품 가격이 전년 대비 50% 나 상승하였으며, 이에 식료품 가격 급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달아 발생하였다. 또한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많은 주민들이 숯을 만들어 판매해 생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산림 황폐화가 심화되고 자연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2008년 허리케인이 강타했을 때, 산림 황폐화로 인한 수해 피해가 가중되어 800명이 사망했으며 이재민이 수천 명이나 발생하고 막대한 재산피해가 나기도 했다.

아이티는 단순 조립부품의 대미 수출과 농산물 수출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관광자원이 풍부한 반면, 도로, 통신, 전기, 호텔 객실(약 950실) 등의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국내 제조업이 미약한 실정이라 수입초과에 따른 만성적 무역적자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티의 주요 수출품목은 섬유, 의류 제품이며, 이 분야에 총 고용인력의 70%가 종사한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미국이다. 국내 유통제품도 70% 이상을 미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국은 아이티산 섬유제품에 대해 무쿼터·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으며, 이 정책은 2018년까지 실시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요 수입품목은 섬유, 의류제품 원자재, 가전제품, 자동차, 플라스틱 제품 등의 공산품, 그리고 곡물, 육류, 야채 등의 식료품이 주를 이룬다. 주요자원으로는 보크사이트, 구리, 금, 대리석 등이 생산되지만, 외국자본이 대다수의 자원을 독점하고 있다.

2002년 1월 국제통화기금(IMF)2)은 아이티 경제지원 방안을 마련하였지만, 선이행조건이었던 모든 정파간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6년 7월 26일, 유럽연합(EU, European Union), 국제연합개발계획(UNDP)3), 미주개발은행(IDB)4), 세계은행 등 주요 원조국가와 국제기구 대표 400여 명이 참석한 아이티 원조국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자크에두아르드 알렉시스(Jacques-Édouard Alexis) 총리가 전력, 도로, 치안 등 경제 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해 총 54억 달러 규모의 5개년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원조국들은 2006년 8월부터 2009년 7월까지 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관심과 아이티 정부의 준비가 부족한데다 국제사회와 아이티 양자 간에 이견이 있어서 본격적인 재건사업은 신속히 실시되지 않았다.

2009년 초부터 프레발5)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하루 빨리 사회를 안정시켜야 하며, 외국인 투자유치를 통해 단기간에 고용을 창출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이 부여한 섬유제품 무관세혜택(HOPEⅡ, 2018년까지 유효)을 활용한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런 일환으로 프레발 정부는 한국과 브라질에도 정부 투자유치단을 파견하였다.

한편, 2009년 10월 프레발 정부는 최저임금을 70구르드(gourde: 1달러는 약 40구르드)에서 200구르드로 인상하라는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안을 거부하고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125구르드로 확정했다. 이에 소나피(SONAPI) 수출 공단에서 정부의 최저임금 억제정책에 반대하는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다가 아이티는 2010년 1월 진도 7.0의 강진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여 정부기능이 사실상 마비되었으며, 180만 명의 이재민이 국제사회로부터 긴급구호 지원을 받았다. 아이티 재건·복구 작업은 2010년 3월 31일 뉴욕에서 열린 아이티 재건공여국회의를 기점으로 본격 실시되었다. 이에 대한 예산은 115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아이티 외교

1. 아이티와 서방 선진국들과의 관계

아이티는 식민통치에 반기를 든 흑인 노예들이 봉기하여 1804년 프랑스로부터 중남미지역 최초로 독립을 쟁취하고 중·남미 각국의 독립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스페인 등의 서방 선진국들은 아이티의 독립이 노예제도와 식민지배체제를 유지하는데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고, 이에 아이티를 오랜 기간 외교적으로 고립시켰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아이티는 독재로 인해 국내정치가 불안하고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대외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이티는 1990년대부터 미국과 캐나다, 프랑스 등의 서방 선진국들과 전통적 우호선린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 캐나다, 프랑스를 비롯한 10개국은 1990년대 초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의 비공식 모임으로 ‘아이티 공여국 그룹’을 결성하여 아이티 재건지원을 추진했다. 아이티는 1945년 10월 국제연합(UN)에 가입했다.

아이티는 현재 국제연합(UN), 아메리카 대륙의 지역적 협력을 위해 창설된 미주기구(OAS)1), 카리브해 연안국가들의 지역공동체인 카리브공동체(CARICOM)2), 제3세계의 46개국으로 구성된 경제기구인 아프리카카리브태평양제국연합(ACP)3)에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세계 40여 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아이티는 미주기구(OAS)와 카리브공동체(CARICOM) 등의 가입을 통해 그동안의 고립에서 탈피하여 역내 국가들과 교류를 활성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미국과는 1964년 프랑수아 뒤발리에(Francois Duvalier) 독재정권 시절에 잠시 관계가 단절되었지만, 이후부터 현재까지 협력 외교노선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연합(UN), 미주기구(OAS), 카리브공동체(CARICOM) 등에서 활동하며 아이티의 정치와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발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불법 이민하는 아이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미국은 아이티 사람들의 이민을 금지하고 불법 이민자들을 강제 송환하는 조치 등을 취함에 따라 양국 간에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2. 아이티와 역내 국가들과의 관계

아이티는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등의 역내 국가들과 실질적인 협력을 증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05년 9월 베네수엘라는 카리브해 주변의 중남미 개발도상국들에게 시장가격 이하로 원유를 공급하는 에너지 동맹 카리브석유협력기구(Petrocaribe, 페트로카리브)4)를 창설했다. 아이티는 2008년 이 기구에 가입했다. 특히 아이티가 이 기구에 가입한 이후 아이티와 베네수엘라의 관계가 강화되었다.

아이티는 도미니카공화국과 히스파니올라(Hispaniola) 섬을 공유하고 있어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불가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가급적 상대국의 국내 문제와 관련해서는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 도미니카 공화국에 불법으로 이민하는 아이티인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불법 이민자 수는 약 1 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또한 양국 국경지대에서 아이티인들은 산림을 훼손하고, 총기와 마약을 매매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등 범죄를 많이 저지르고 있다. 불법이민과 범죄 문제는 양국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최대 현안으로 부상했다.

2010년 1월 아이티에 강진이 발생한 이후 도미니카 공화국은 가장 먼저, 신속하게 아이티에 구호물자를 지원하였으며, 도미니카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아이티 원조를 촉구하기 위해 공여국 준비회의를 2회에 걸쳐 개최하는 등 아이티를 주도적으로 지원했다.

최근 브라질은 국제연합 아이티 안정화군5) 사령관직을 수임하고, 가장 많은 수의 병력을 파견하였다. 또한 브라질은 아이티에 대규모 인프라구축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아이티 정부도 브라질을 주요 우방국으로 대우하고 있다.

아이티 사회·문화

아이티의 사회문화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1. 아이티의 사회
  1) 아이티의 주민
  2) 2010년 아이티 지진
    ① 2010년 아이티 지진 발생 현황
    ② 아이티 지진 복구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 동향
  3) 아이티의 국경일
  4) 아이티의 종교
  5) 아이티의 복지
  6) 아이티의 위생환경

2. 아이티의 문화
  1) 아이티의 국민성
  2) 아이티의 음식
  3) 아이티의 미술
  4) 아이티의 관습 및 금기사항

한국과 아이티의 외교관계

1. 한국과 아이티와의 외교관계

아이티는 한국과 1962년 9월 22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2002년 11월 에르타 파스칼 트루이요(Ertha Pascal Trouillot) 전 대통령이 종교단체의 초청을 받아 비공식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것 외에 양국 간의 대통령급 인사 교류는 없었다.

아이티에 거주하는 한국의 재외국민은 2010년 3월 기준으로 유엔평화활동(PKO)1) 병력 240명을 포함하여 310명이다. 교민은 총 65명으로 봉제업체 종사자 37명, 발전소 종사자 16명, 선교사 및 개인사업 6명, 비정부기구(NGO)2) 종사자 6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 진출한 업체는 봉제업체 7개, 전력관련 업체 2개, 자수 업체 1개, 상자제조 업체 1개 등 11개에 이른다.
아이티는 북한과 아직까지 수교하지 않았다.

2. 한국과 아이티의 협정체결 현황

한국과 아이티는 1977년 5월 11일 무역협정, 1984년 7월 26일 경제·기술·문화 및 과학협력협정, 1990년 2월 19일 사증면제협정을 체결했다.

3. 한국과 아이티의 통상관계

아이티는 한국에 주로 수송기계, 전자부품, 석유화학제품, 정밀화학제품, 고무제품, 직물 및 섬유제품, 산업기계, 철강제품 등을 수출하며, 한국으로부터 주로 섬유제품, 수산물 등을 수입한다.

단위: 천 달러

구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수출

15,863

17,521

11,688

15,063

13,915

51,511

16,570

14,613

수입

3

43

373

521

11

340

5,940

414

수지

15,860

17,479

11,315

14,542

13,904

51,170

10,630

14,199

출처: 무역협회 통계

4. 한국과 아이티의 경제협력 현황

날짜 내용

1991년~2007년

· 물자지원(현금 포함) 및 연수생 초청: 143만 달러

2008년

· 긴급구호(아이티 허리케인 피해지원): 2만 3000달러
· 연수생 초청 13명

2009년

· 크루어 데 부께시 식수공급체계 확장사업(2008년~2009년): 130만 달러
· 연수생 초청 2명

2010년

· 긴급구호(아이티 지진 피해 지원): 250만 달러
· 중장기 재건·복구 사업: 1,0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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