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1006 동성애를 왜 반대하는가?(요일1:8-10)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10-11 |
첨부파일: 동성애를 왜 반대하는가(주일).hwp(92K) |
(8-10)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이 설계하신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성적 차이에 기초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상징한다. 우리는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똑바로 말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구해야 한다.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때, 오직 예수님만이 차별 없는 완전한 사랑으로, 그들을 올바로 이끄시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음란과 방탕과 허무 속에 신음하며, 고통하고 멸망하기에, 교회와 성도는 그들을 위하여,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치며, 인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1. 성경은 분명히 동성애를 반대한다(창19:4-5).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아나쉼, 남자들)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천사들이 남자의 모습으로 왔기에, 그들을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서 ‘상관하리라’(야다, 안다, 성교하다)는 뜻이다. 소돔 사람들은 두 천사에게, 성폭행하려고 했다.
그래서 (창19:7)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며,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을 주겠다고 했다. 차악으로 최악을 막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동일한 사건이 있었다. 어떤 레위인이, 기브아의 한 노인의 집에서 유숙할 때, 불량배들이 성폭행하려고 위협했다.
(삿19:22-23)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집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 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고 했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이쉬, 남자)을 끌어내라고,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야다)하고 하자, 집주인은 이는 악행이요, 망령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자기 딸과 첩을 주면서, 그들을 너희 좋은 대로 행해도 되지만, 동성애는 절대로 안 된다며, 막으려고 했다. 그러면 왜 동성애를 하면, 안 되는가?
(레18:22)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가증함’(토에바, 몹시 싫어함, 혐오)라고 분명히 말한다. (레20:13)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반드시 죽일지라.’(모트 유마투) 죽이고 죽일지니라는 말이다. 확실히 없애라는 말이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그들을 죽일 수 없는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하다.’ 분명히 말씀했다.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는, 혐오하는 일이며 죄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더러움에 내버려두고, ‘욕되게 하게 하셨다’(아티마조)는, 경멸한다는 말이다.
(롬1:26-27)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기서 ‘순리’(퓌스코스, 퓌시스(본성, 자연), 대로 쓰지 않고 ‘역리’(파라 퓌시스, 반대편)로 표현했다.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인간의 창조 본성에서 벗어난 행위다. 또한 ‘부끄러운 일’(아스케모쉬네, 보기에 흉한)이라고 했다.
2. 동성애를 주장하면 이단이기에, 마땅히 거부하고, 반대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것이 다 죄이지만, 다른 죄는 지적하면, 대부분 죄를 인정하지만, 이 죄에 빠진 자들은, 이것이 왜 죄냐며, 오히려 비난하고 대든다.
따라서 죄라고 인정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모습이다. 다른 죄보다, 하나님께 대드는 죄이기에, 더 무섭고 큰 죄다. 성경은 동성애가 죄라고 말씀한다.
(롬1:26-28)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며,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그들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이며, (1:34)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동성애자는 이것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니,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가?
예수님은 죄를 미워하셨지만, 죄인들을 사랑하셨고,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셨다. 세리와 창녀와 같은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사람과 함께하셨으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다. 사랑과 자비를 베풀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그렇지만 동성애 지지자들은, 이것이 왜 죄냐고 따진다. 동성애자들이 죄라고 시인한다면, 얼마든지 안타까워하고, 고침을 받을 수 있다. 죄로 인정하면 회개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품고,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명백한 죄인데도, 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니, 이는 이단일 뿐이다.
죄인을 불쌍히 여길 수 있지만, 어떻게 축복할 수 있는가? 강도에게 강도짓을 잘 할 수 있도록 축복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고 (요5:14下)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셨다. 불쌍하게 여겨 고쳐주셨지만, 죄로 온 병이었기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다.
또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시험할 때, 예수님은 (요8:7)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녀를 구해주시고 (요8:11)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죄의 깨닫고, 돌이키려는 마음을 가졌기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죄를 돌아서려 할 때,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끝까지 죄를 주장하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 주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강도를, 잘 되게 해달라고 축복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왜 목사들이, 동성애자들을 두둔하고 축복하는가?
그들이 돌아설 수 있도록 해야, 이것이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종이다. 예수님은 창녀를 결코 축복해 주신 적이 없다. 그리고 아무리 거룩한 모습처럼 보여도,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꾸짖고, 심하게 질타하셨다.
(요일1:8-9)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성경은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자세는,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라고 말한다. 사도 요한은 스스로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음을 말했다. 그 당시 이단, 영지주의를 염두에 둔 말씀이다. 영지주의자는 죄를 지으면서도, 전혀 죄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이단으로 정죄할 수밖에 없었다.
감리교단에 동성애를 인정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정죄했다. 맞는 말이다. 이단이다. 제4차 로잔대회(서울선언문)에서, 창조 섭리를 거스른 죄로 천명했다(국민일보24, 9, 27).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죄를 죄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영지주의자는, 죄가 아니라고 하기에, 스스로 속일 뿐 아니라, 구원의 자리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 죄를 자백하는 자는, 하나님이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신다. 그런데 동성애자들과 인정하는 자들은, 이것이 왜 죄냐면서 반항하기에, 구원파와 같은 이단일 뿐이다.
범죄를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다.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이 죄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여 주신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야, 회개와 구원의 출발점이 된다.
진리가 없는 자는, 진리로 자신을 비춰 보지 못하기에, 자기 안에 있는 죄를, 깨닫지 못한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진리가 없다.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범죄하고도 죄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들기에, 하나님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다. 죄로부터의 깨끗해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역이다. 동성애는 말씀을 떠난 죄다. 하나님께서 절대로 하지 말라 했는데, 하면서 죄가 아니라고 하면, 분명히 더 큰 죄다. 어떤 말로도 죄를 포장할 수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도 거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서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다. 진리가 그 속에 없기에, 진리대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3. 동성애는 마르크스주의다(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라, 박광서).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정신이 아니라, 인간과 물질이다.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인간이 만물의 중심이 되었다. 인간이 주인이 되어, 유토피아를 이루기를 원한다.
공산사회는 ‘함께 생산하고 공유하는, 이상적인 평등사회’를 의미한다. 완전한 평등을 이루려면, 사유재산이 없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사유재산이 없는 평등한 사회는, 인간의 탐욕 때문에, 결국 실패했다. 마르크스는 국가, 가족, 종교와 같은 권위를 무너뜨리면, 필연적으로 공산사회가 도래한다고 믿었다.
마르크스주의 영양에, 다양한 좌파 운동이 나타났다. 마르크스 사상은 위험한 것은, 약자를 지지하고, 약자를 위한다고 하니, 약자를 변호하는, 변호사처럼 들리지만, 모순과 위선이다. 어떻게 북한이 약자를 사랑하는가? 짓밟고 있을 뿐이다.
(고후11:14-15)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광명한 천사처럼 말하고 활동도 하지만, 거짓 사상에 불과하다. 이들은 죄를 지어도, 죄의식이 전혀 없다. 이런 사상의 뒤에는, 악한 영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① 마르크스 추종자는, 과학성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책상에 앉아, 병든 철학과 사상만을 만들어낼 뿐이다. 현실이 아니라, 상상에 기초해서, 논리를 펼친다. 국가, 가족, 종교와 같은 권위를 무너뜨리면, 공산사회가 도달하며, 노동자들은 이러한 위계질서의 구조를 박살 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② 위선적인 도덕가다. 사랑을 외치지만,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다.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정권들을 보라.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푸틴, 등이 보여준 모습을 보라.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본이 되는 모델이 있는가? 저들은 구원자가 아니라, 착취자일 뿐이다.
평화와 해방을 말함이, 가증스러울 뿐이다. 사랑을 말하면서, 특정 단체만 지지하고, 반대편은 무조건 비방 반대한다. 마르크스 사상과 기독교는, 같이 갈 수가 없다. 그렇기에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그토록 반대하고, 핍박한다. 교회를 없애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니,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
이들은 성소수자를 차별한다고 주장하며, 인권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역행하기에, 우리는 차별이 아니라 분별이다. 동성애는 죄다. 그래야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다. 그들이 돌아설 수 있도록,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어야 하지만, 동성애를 결코 축복할 수 없다. 물러서면 안 된다.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지기에 너무 위험하다. 저들은 성평등을 외친다. 양성평등이 아니다. 그래서 남자가 여자라고 주장하면, 미국처럼 여자 목욕탕에도 들여보내야 한다. 파리올림픽에 남자 권투선수가 여자라고 했기에, 여자들과 권투 시합에서, 금메달을 땄다. 말이 되지 않지만 현실이다.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길로 가고 있기에,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동성애’ ‘성전환’ 같은 단어를 접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나와 내 자녀와,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말하며, 물러설 수 있지만, 이미 우리 자녀들의 삶과 아주 가까이, 맞닿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시행되고, 인권 교육이 강화된 국가에서는, 예외 없이 동성애, 성전환에 빠지는 아이들이 폭증한다는 통계가 나온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만 한다. 교회와 성도는, 동성애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배면에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도 혐오 책으로 전락시키는, 무서운 실체를 깨닫고 ‘차별금지법 · 평등법’ 반대에 한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특별히 우리 다음 세대, 내 자녀의 삶이 불행해지고 또 파괴되는 일이 없도록 정신을 차리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그런 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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