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40915 성도의 추석(레23:33-34)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4-10-02 |
첨부파일: 성도의 추석(주일).hwp(90K) |
(33-3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레23장)에 나오는, 일곱 절기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요, 그 실체는 바로 그리스도이다(골2:16-17). 일곱 절기만 아니라,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이 맞춰졌다(요5:39, 눅24:44). 예수님은 하나님의 비밀이기에, 예수님으로 하나님의 절기의 뜻을 알 수 있다.
유월절은(4-5) 그리스도의 죽음이요, 무교절(6-8)은 그리스도가 무덤에 들어가는 장사다. 초실절은(9-14)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부활을 말하며, 칠칠절(15-22)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의 임하심이요, 나팔절(23-25)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속죄절(26-32)은 그리스도의 속죄 언약의 완성을 말한다.
초막절(33-43)은 그리스도의 추수를 말한다. 따라서 초막절은 우리나라 추석에 해당한다. 초막절이 주는 교훈은, 추석이 주는 교훈이다. 초막은 풀로 만든, 원두막 같은 어설픈 집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부터 지금까지 초막절이면, 초막을 만들고, 그곳에서 일주일을 지낸다.
뜰이 있는 집은, 뜰에 초막을 세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베란다에 초막을 만들어 놓고, 밤에는 초막에서 잔다. 세 들어 살고 있기에, 초막을 만들 수 없는 사람들은, 회당에 공동 초막을 만들어 놓고, 밤에는 그곳에 가서 잔다. 배를 타는 사람은, 배 갑판 위에 초막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잔다.
여행자는, 자기가 머무는 호텔에 풀을 뜯어다 놓고 지낸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초막절을 지킨다. 초막절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지내야 했다. 따라서 이렇게 지내는 초막절, 추석에는, 우리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교훈을 살펴보기를 원한다.
1. 추석에는 감사를 생각하여야 한다(37-41).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날에 드릴지니,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초막절은 한 해 동안 농사하여 거둔, 각종 곡식과 과일 등, 열매를 추수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알곡을 바쳐서, 감사하는 가을 추수 감사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즐거워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40).
초막절에 풍성한 예물을 드리고, 불사르는 화제로 하나님께 드렸다. 이는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 한다. 죄 사함과 성령의 은혜, 또 천국에 들어감은, 오직 예수님의 공로다. 우리는 무엇을 받을 때, 당연하게 받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자녀를 위한, 부모님의 수고와 헌신을, 자녀들이 당연하게 받지만, 당연하게 받지 말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받아야, 아름다운 관계가 계속되고 행복하다.
행복은 ‘감사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우리는 하루도 빠짐 없이,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재난 소식을 듣는다. 지진, 태풍, 가뭄과 호우 같은 자연재해, 화재, 교통사고, 수많은 사건 사고 등, 얼마나 많은 재해와 재난이 있는가? 이런 현실 속에, 우리 가족이 무사한 사실 하나만도, 얼마나 감사한가?
각종 재해와 사고가 없고, 건강하고, 평안해도, 감사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혹시 병원에 입원해서 죽는다고 했다가 살아나면, 그때는 감사한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더욱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감사하라면 대부분, 육신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최고의 이유는, 내 영혼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영혼의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지만, 신실한 성도들은 어려운 환경과 고난 중에도,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하며 감사한다. 기도하면 사자 굴속에 던져지는 상황에서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처럼 가장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림을 보면 ‘감사는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감사는 개인의 신앙의 문제이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이 없으면, 감사하지 못한다. 내 인생의 감사 지수가 얼마인지 살펴보고, 감사하는 추석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추석에는 심판을 생각하여야 한다(슥14:16-18).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알곡은 모아 창고에 저장하기 때문이다(출23:16). 알곡 성도들은 마지막에 천국 창고에 들어가고, 쭉정이는 불 속에 넣는, 최후 심판 날이 수장절이다. 성경은 알곡과 쭉정이를 분명히 구분한다. 이처럼 초막절 추석은, 마지막 심판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추석에는, 햇곡식과 과일을 먹으며, 맛과 즐거움을 느끼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자. 사람은 마지막인 심판을 생각하면, 삶의 목표가 달라지고, 차원이 달라진다. 마지막은, 신자와 불신자 모든 사람이 받는 심판으로, 흰 보좌 심판이라고 하며, 이때 2가지로 나타난다.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① 불신자들이 받는 심판으로, ‘책들’(비블리아)에 기록되었다. 죽은 자들은, 책들에 쓰인 대로,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는다. 불신자를 성경은, 죽은 자들이라 한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②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구원받은 자는, 생명“책”(비블리온)에 기록되었다.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생명책은 한 권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책들은, 많다. 생명책은 천국 호적이다. 자녀가 한번 호적에 올라간 이름은, 죽어도 끝까지 있다. 말을 잘 안 듣는다고, 호적에서 빼냈다가, 말을 잘 듣는다고 다시 올리지 않는다. 완전히 법적으로 갈라서면 몰라도, 빼내지 않는다. ‘결코’(우 메)는 이중 부정어다.
‘속된 것, 가증한 일’은,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거짓말하는 자’는 거짓된 신앙 즉 예수님의 보혈을 믿지 않으면서,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말한다. 이런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이단에 미혹됨이 무섭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공의의 심판을 받는 자도 있고, 자비의 심판을 받는 자도 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자비의 심판이 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용서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구원받은 우리가 속을 썩이면, 속을 썩이는 자식일 뿐이다.
이처럼 한 번 거듭나서 구원받았다면, 영원히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믿기를 바란다. 하지만 흰 보좌 심판에서, 공의의 심판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행한 대로 받는데 그 결과는, 불못 곧 지옥에 던져진다고 했다.
“불못”은 불신자들이 가야 할 지옥, 그곳은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곳이요,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불못은 (마25:41)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용서받지 못해 버림받은, 쓰레기와 같은 인간들이, 들어가는 곳이, 지옥의 불못이다.
지옥의 고통이 얼마나 무서운지, 예수님은 (마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만큼 지옥의 고통이, 극심하다는 말씀이다.
3. 추석에는 나그네 인생으로, 영원한 천국을 생각해야 한다(42-43).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가나안에 거주하기까지’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나그네다. 본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매년 추석에는, 고향을 찾아가는, 민족 대이동이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시간이, 미국 가는 시간만큼 걸린다고 해도 간다.
이스라엘 백성은 내년 초막절에, 초막에서 7일간 지내며,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이 땅은 본향이 아니며, 이 땅의 삶은 나그네 여정이다, 내가 가야 할 곳은, 영원한 천국임을 생각해야 한다. 이 땅의 내 집이, 아무리 멋있고, 훌륭한 집이어도, 광야의 초막 같은, 일시적인 집에 불과하다.
산소에 가서 벌초할 때, 인생은 나그네임을 깨닫고, 숙연해진다. 언젠가 우리도, 무덤으로 들어가야 할, 나그네임을 느낀다.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고, 그리운 사람들을 만난다. 이처럼 사람은 고향을 찾고 싶어 하는데,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천국이다.
천국을 바라보며 사모하는 마음이, 추석을 통해서, 뜨겁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무리 길이 막히고, 힘든 고생길이어도, 고향 가는 길은 설레고 즐겁다. 이처럼 천국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설레고, 고대하는 길이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즐거워야 한다. 천국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가족을 비롯한, 그리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천국 가면, 그리운 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 사랑했던 부모님을 만날 것이다. 어떤 분은 먼저 가신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또한 먼저 보낸,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 또한 자녀들을 다시 만날 것이다.
사람들이 추석이면, 고향을 찾지만, 우리의 진짜 고향은 천국이다. 천국에서만 인간은 참된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 성 어거스틴의 말대로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하나님 안에서만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천국을 더욱 사모하는, 그런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절기는 혼자 기뻐하는 날이 아니다. 다 함께 기뻐하는 날이다. 그래서 추석은 나누는 계절이다. 추수하는 계절이기에, 빈부 차가 심하게 느끼는 절기다. 추수한 사람은 부요하지만, 추수할 것이 없는 사람은 가난했기에, 하나님은 추수할 때, 모두 추수하지 말고, 남겨두라고 하셨다. 나누라는 말씀이다.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가난한 자들과 같이, 추수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다.
추석은 나누는 절기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는 우리 민족이 추석 때, 늘 하던 말이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 고통당하는 이웃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힘든 자들은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 말한다. 추석은 밝은 보름달 밑에서, 강강술래 하며 춤추면서, 함께 즐겼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함께 즐거워했다. (40)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까치밥’이라는 풍습이 있다. 가을에 감을 딸 때, 꼭대기 것은, 까치 양식으로 남겨두었다.
우리는 예부터 동물에게도, 온정을 베푸는 좋은 풍습이 있는데, 이웃을 섬기며 나누는 일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 (요일3: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말했다.
이번 추석에는 성경의 초막절, 추석이 주는 교훈을 생각하자.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하고 있는지 생각하자. 장차 있을 심판을 기억하자. 쭉정이가 아닌 알곡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추석에는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생각하고, 온 가족과 더불어 감사와 기쁨을 나누며, 무엇보다 소외되고 힘든 이웃을 돌아보고, 나누고 베푸는 사랑과 은혜가 넘쳐나는, 풍성하고 복된 추석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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