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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0901 용광로 훈련(왕상17:8-16)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9-04
  첨부파일:   용광로 훈련(주일).hwp(96K)

  (8-16)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는 하나님의 1차 훈련이 끝났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훈련장을 옮기셔서, 새로운 훈련을 시킨다. (8-9)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 장소는 ‘사르밧’(짜르파트, 용광로)인데, ‘짜라프’(정련하다, 단련하다, 시험하다.)에서 왔다. 용광로는 쇠를 녹이는 큰 통이다. 아무리 단단한 쇠도, 용광로에 들어가면 녹는다.

  하나님은 이 ‘짜르파트’에서, 엘리야의 성품을 녹이고, 인격을 만들며, 그의 믿음을 더욱더 단단하게 단련해 가는 하나님의 훈련소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순금으로 만드는, 훈련 장소다. (욥23:10)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우리도 엘리야와 같다. 점점 더 어두운 시대에,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짜르파트’라는 믿음의 훈련장에서, 어떤 훈련과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인지를, 본문을 통해 살펴보자. 역사서를 보면, 이야기 속에, 등장인물과 주인공이 나온다.

  우리는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본문을 봐야 한다. 따라서 내가 엘리야가 되고, 사르밧 여인의 입장이 되어서, 본문을 봐야 한다.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크릿 시냇가에서 엘리야는, 자기 생각과 의지, 주장, 철학… 등을, 잘라내고, 세상과 단절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의 음성보다, 자기 생각과 말이 앞섰다. 그래서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엘리야는 크릿 시냇가에서, 1차 훈련을 끝마치고, ‘짜르파트’라는 곳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엘리야를 주목하자.

1. 시돈으로 가라(9上).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엘리야는 “왜 하필이면, 시돈 땅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다.

  ‘시돈’(찌돈)은 ‘쭈드’(잡는다, 사냥하다, 엎드리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시돈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과 싸우고 있는, 이스라엘의 적지다. 또 지금 엘리야가 싸우는 주적인, 우상 바알의 본산지가 시돈이었다. 이스라엘을 바알을 섬기는, 부패한 나라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 왕비 이세벨의 고향이, 바로 시돈이다.

  (16:31)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예배하고” 이스라엘 왕 아합이, 왕비로 삼았던 여인이 이세벨이었고, 그 이세벨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부 타락하게 되었다.

  이세벨이 바알을, 자기 고향, 시돈 땅에서 가져왔다. 그래서 이세벨의 아버지의 이름은, 엣바알인데, ‘에트바알’(에트, 가까이, …와 함께, 곁에 + 바알), 바알을 가까이하는 자, 바알과 함께하는 자다. 지금 엘리야에게 크릿 시냇가에서, 시돈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이해되는가?

  엘리야는 “왜 위험하기에 짝이 없는, 이세벨의 고향, 바알 귀신의 본산지로 나를 보내시는가?”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던졌을 것이다. 또한 하필이면, 왜 혼자된 가난한 여인에게 가는가? 요즘은 돈 많은 미망인들이 많지만, 당시 엘리야 때만 하더라도, 이들은 가장 가난하고, 굶주린 소외계층이었다.

  그릿 시내가 말랐으니, 이제는 먹을 것도 풍족하고, 살만한 곳으로 보내 주셔야 원칙이지, 보나 마나 그녀도 살아가기에 막막한, 혼자된 여인에게 가서 붙어살라니, 말이 되는가? 짜르파트에 가도, 주님이 이적을 베풀어주셔야만, 살 수 있는 형편이다.

  어차피 이적을 베풀어야 할 형편이면, 그나마 좀 익숙해진, 그릿 시냇가가 더 낫지 않겠는가? 떡과 고기를 까마귀들이 날라다 주는, 이적이 벌어지는데, 물 한 병 첨가해서 날라다 주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가? 그것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실 수 있다.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적응하면 살 수 있다.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적응되었는데, 또 다른 장소로 옮기는, 하나님의 이상한 방법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해되지 않는 명령이지만, 걱정하지 않고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믿음의 훈련임을 그는 알았다.

  훈련이 힘든 이유는, 쉽게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지시가 있을 때, 또다시 순종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래서 (8-9절)은 (2-4)절은 형식이 똑같다. (8)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3-4)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크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장소가 그릿 시냇가에서, 시돈 ‘짜르파트’로 바뀌고, 방법이 까마귀에서, 혼자된 여인으로 바뀌었다. 1차 훈련이 끝나고, 2차 훈련으로 넘어가면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하나님의 명령에 한 번 순종했어도, 또다시 순종해야 한다는 훈련이다. 반복되는 문제가, 가장 어려운 문제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한번 열심히 해서, 벗어날 수 있다면, 코피가 터지더라도, 열심히 해서 할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의 문제는, 무엇이든지, 한 번 훈련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 번으로 끝나는 법은 없다. 똑같이 훈련과 시험이 계속된다.

  한 번 겪은 시험인데, 또 다른 시험이 있다. 모양은 다를지 모르지만, 또 다른 시험이 온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이제는 됐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순종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반복이라는 훈련을 통해 세워나가신다.

  한 번의 훈련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한 번 열심히 뛴다고, 마라톤에 이길 수 있다면, 마라톤은 쉬운 경기다. 역기 한 번 들었다고, 근육이 생긴다면, 누가 운동을 하지 않겠는가? 그걸 밥 먹듯이 계속해야 하니까, 포기하게 된다.

  성경을 한 번 읽고 믿음이 좋아진다면, 신앙생활의 훈련이 뭐가 어려운가? 새벽기도 한 번 나오고, 금식을 한 번 했다고, 문제가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은가? 열심히 하루 공부해서 좋은 점수가 나오면, 누가 좋은 점수를 못 받겠는가? 그러나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계속해야 하기에 어렵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유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8:3中)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단순한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광야 훈련을 하셨다. 반복훈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한다.

2. 한 여인과의 만남(10上).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엘리야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않고, 순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종임을 증명했다. 종의 길은, 순종의 길이기 때문이다. 순종의 길을 가지 않는다면, 그는 종이 아니다.

  우리가 순종의 길을 걷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행할 수 있는가? 짜르팟으로 가라는 명령에, 즉각 순종하자, 절묘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엘리야는 마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성문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줍고 있는, 혼자된 여인을 만난다.

  (10中)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그녀는 너무 가난해, 땔감도 없어, 자기를 위해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다. 이런 형편을 보고, 엘리야가 어떤 위로를 얻을 수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할 때마다, 이렇게 절묘하고,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다.

  엘리야는 이 과부에게, 무례한 요구를 했다. 그렇지만 공손한 태도로 요구했다. (10下)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기근이 계속되니, 물을 얻기에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온몸에는 먼지가 가득했을 것이다.

  지금 이 여인은, 오늘 우리처럼, 물이 줄줄 나오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내일이면 죽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한 번도 보지 못한 남루한 복장의 한 사내가, 물을 달라고 하면, 나도 마실 물이 없는데, 쉽게 줄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혼자된 과부는 달랐다.

  그녀는 요청받는 순간, 그렇게 행동 한다. 그런데 엘리야는, 한 걸음 더 나갔다. (11)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지금 이 여인은 물 한 잔 요청도 힘든데, 떡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에 말했다(9).

  그런데 (12)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하였다. 참 가련한 여인이다.

  이 여인은 어떻게,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았을까? 엘리야가 순종하니까, 영력이 나타났다. 영력은 하나님께 순종할 때,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아본다. 이 여인은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이 조금 있는데, 이것으로 한 끼 해 먹고, 죽을 날만 기다리려고 한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한다. (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언뜻 생각하면, 참 파렴치한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엘리야는 (1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고 약속한다. 엘리야가 먼저 먹겠다는 말이 아니다. 이 약속을 믿을 수 있다면, 떡을 만들어 오라는 말이다.

  엘리야는 이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마6:33)의 말씀처럼, 과연 이 여인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그다음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시리라는 사실을, 믿고 있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을 뿐이다. 내 생각이 다 녹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말하는 훈련이다.

  바알이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그 믿음의 징표를 내게 보이라는, 권고하는 말이다. 우리가 혼자된, 이 여인의 입장이 되어보자. 과연 이런 환경 속에서 순종할 수 있는가? 믿음은 곤경에 처한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직 말씀에 지배받는다.

3. 위대한 순종(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마지막 식량인데, 하나님 말씀만 믿고, 드렸다. 이런 사람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은, 미쳤다고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순종이라고 한다.

  엘리야는 이미, 순종했던 사람이지만, 이번에 그의 눈에 비친, 이 과부가 위대한 여인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선지자를 놀라게 한, 혼자된 여인의 순종에서, 몇 가지 교훈을 살펴볼 수 있다.

(1) 한 사람의 순종은, 또 다른 순종을 낳는다.

내가 순종하면, 또 다른 사람이 순종한다. 순종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는다.”라는 말처럼, 계속 믿음의 복을 내려 주신다. 내가 순종하는 사람인가 먼저 살펴보라.

(2) 순종은 위대한 역사를 이룬다.

이 여인은 순종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걸었다. (15上)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순종은 참 단순하다. 증거가 있고, 합리적인 설명이 있기에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한다.

  이 여인이 드린 것은, 한 끼 식량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드린, 한 움큼의 가루와 기름은, 그들의 생명줄이 되었다. 이 생명줄을 드려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었다. 순종을 통한 보상은, 컸다.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

  헌신은 시간이 남아서,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상황이 힘들어도 하나님께 드릴 때, 온전한 헌신이 된다. 이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있다. 물질도 재능도 마찬가지다.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에, 올바르게 순종할 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평생을 책임져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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