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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0728 구원의 방주(창6:13-14)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7-31
  첨부파일:   구원의 방주(주일).hwp(92K)

  (13-14)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지난주, 토요일에 ‘노아의 방주’를 보았습니다. 볼 때 아~ 대단히 수고했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한 편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노아의 방주를 보았다면, 예수님을 믿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느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못했기에, 정말 안타까움이 많았다. 그래서 방주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건과, 인물, 제도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예표 한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구약성경을 바라보는 관점을 “모형론, 예표론”이라고 한다. 구약은 “예표, 모형”이고, 신약은 “실체, 원형”이다. 그림자와 실체이다.

  영화로 말하면, “예고편”과 “본편”처럼, 구약성경에는 장차 오실, 예수님에 관한 모형이, 많이 나타난다.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양은, 장차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광야의 놋뱀은,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 인류의 구원자가 되실 것을, 예표 한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물로 드려지는 것은, 장차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을 예수님을 예표한다. 오늘 말씀 가운데, 노아의 방주는, 예수님이 장차 그의 피 값으로 세우실, 교회를 예표 한다. 이 시간 노아의 방주에 대해,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겠다.

1. 노아의 시대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다(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율법의 눈이다. 노아 시대에는 죄악이 가득했다. 사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다.

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세상이었다(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노아 시대는, 일부일처가 아니다.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아내로 삼았다.

  그 기준은 외모였다. 믿음은 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육체의 소욕을 따라 좋아했다. 하나님은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자를 싫어하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다. 믿음의 후손인, 셋의 자손들이, 믿음이 타락하여, 육신 중심의 삶에 치중하여, 외모만 보고 결혼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즉 육신이 기준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함께 하다”는 히브리어로는 (딘)이다.

  “(옳고 그름을) 다투다, 재판한다.” 인간과 더 이상, 누가 옳은지 그른지, 다투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더 이상 육신을 따르는 자들을,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일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제는 침묵하시며, 심판과 구원을 준비하시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 상황을 말한다.

② 죄악이 땅에 가득했다(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부패와 포악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내면도 외면도, 모두 악했다기에, 이렇게 말씀했다.

  (6-7)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그들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고, 죄 된 삶을 선택했기에, 하나님의 기쁨과 교제의 대상이 아니었고, 이제는 하나님께, 근심과,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 세대의 모습은, 성적으로 타락했다. 인간의 생각과 계획이, 너무 악해서, 죄악이 넘쳐흘렀다. 세상 어디를 봐도, 온전한 곳이 없었다. 죄는 본질을 변질시켜서, 수많은 죄악을 낳았다. 이렇게 인간의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발생한다. 질병, 고통, 음란, 살인, 죽음, 등, 모든 문제가, 죄로부터 온다.

  율법을 보면, 죄는 인간을 죽게 만든다. (롬6:23上) “죄의 삯은 사망이요…” (3)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이,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시니라.”고 하셨다. 그들이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기간을, 120년 준다는 의미다.

③ 그리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 했다(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노아는 120년을 동안, 방주 만들었고, 그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홍수에 죽었다. 결국 회개하지 않았기에, 홍수에 멸망했다.

  노아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노아”는 “쉬다, 위로하다, 안식하다.”라는 의미이다. 노아는 심판에서 구원하고, 인류에게 진정한 안식과 위로를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하나님은 물로 멸하시는 심판 가운데, 방주를 미리 준비시켜 놓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셨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할 때, 구원과 안식과 위로, 평화를 주시는 분이다. (요14:2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장차 재림하셔서, 불로 심판하실 때, 성도들을 구원하여, 참된 안식과, 위로가 있는, 천국으로 인도하신다. 그러기에 이 땅에서 기회를 주실 때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사명으로 알고, 방주를 만들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노아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인다. 노아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심판 날에는, 과연 누가 어리석은 자인지 알 수 있다.

2. 타락한 세상에서, 노아는 여호와의 은혜를 입었다(8-9).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복음의 눈이다.

①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8).

원어 (노아 마짜 헨 브엔네 아도나이) 직역하면 “노아는 주님의 눈 안에 (있는), 은혜를 발견했다.”이다. 은혜”(헨)는 “하난”(은혜, 호의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 간구하다.)에서 유래한 단어다.

  따라서 은혜를 입었다는 “호의를 베풀다, 긍휼을 간구했다.”는 뜻이다.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있음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보았다. 하나님 눈 안에서, 죄인들을 당연히 쓸어버려야 하는,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을 보았다.

  노아는 하나님 마음을 읽고, 하나님의 고통과 슬픔이, 은혜임을 깨달았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고,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할 것을 믿었다. 그런 노아를 하나님은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 하셨고, 구원의 방주를 짓기까지, 120년 동안 그의 곁에 함께 하셨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였다.

②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로, 하나님과 동행했다.

이는 노아가 전혀, 죄짓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타락한 세태에, 물들지 않았다는 의미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

  하나님만 따라 걸었기에, 그 세대의 악한 환경에 물들지 않았고, 그들의 죄악 된 풍습을, 따르지도 않았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음은, 하나님이 “은혜를 입혀 주셨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로울 수 없는 인간을, 죄에서 건져 주시고,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여호와의 은혜가 있었다. 노아는 여호와의 긍휼을 간구했기에, 그 시대 사람들이 모두, 물로 심판받을 때,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았다. 오늘, 죄악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도, 이러한 구원이 필요하다.

  구원은 노아처럼,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 구원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나님이 사람들을 다 살펴보시고, 죄악이 가득하다고 판단하시고, 먼저 죄를 지적하고, 죄로 충만한 땅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했다. 하나님은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역청’(코페르)은, ‘속량, 속죄’의 뜻으로 “(카파르) ‘덮다, 속죄하다, 용서하다, 화해하다, 지워버리다. 화목하다.’에서 왔다. 덮어주어 화목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고페르 나무로 방주를 만들어,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역청으로 안팎을 칠해야 한다. 물이 들어오면, 방주는 가라앉게 된다.

  역청을 칠한 이유는 세상 유혹에 빠져, 심판에 이르지 않도록, ’피의 대속물을 드림으로, 속죄함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방주 안으로 들어오면, 그 피로 속죄함을 받는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속죄를 받아, 죽지 않게 된다.

3. 방주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방주‘(테바)는 구약성경에 2번 등장한다. 노아의 방주(창6:14)와 모세의 갈대 상자(출2:5)이다. 노아의 방주는, 큰 테바이고, 모세의 갈대 상자는 작은 테바다. 선민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방주는 물 위에 떠 있기만 하면 되니, 키, 노, 돛이 필요 없다. 방주는 물결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떠 있기만 하면 된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 이 세상을 헤쳐 나가야만, 구원받음이 아니다. 하나님이 조정해서 이끄신다는 의미며,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중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방주의 창문은, 하늘로 향해 만들도록 했다. 옆을 보면, 주변 환경이 보면, 더욱 힘들어진다. 오직 위만 바라보아야 한다.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방주는 ’키‘가 없다. 방주를 운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교회도 하나님이, 주관하셔야 한다. 하나님이 선장이시니, 우리를 안전하게 이끌어주신다. 문은 옆으로 냈다. 심판이 시작되면, 다시 들어갈 수 없음을 말한다. 방주의 입구는, 단 하나며, 살기 원하는 자는, 방주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 방주의 문이 닫히고, 홍수가 시작되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한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구원의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심판받을 이 세상에서, 방주 안에 들어가야 한다. 방주는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 교회의 모형이다. 역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다. 주님의 보혈을, 우리 심령에 칠해야만 한다.

  다른 길은 없다. 이 시대에 믿음으로 살기가 힘들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하거나 결코 뒤돌아, 서서는 안 된다. 갑갑하다고, 방주에서 나오면, 절대 안 된다. (벧전3:20下)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런데 ’테바‘는 단순히 떠 있는 배지만, 현대 히브리어의 테바는 “귀중품을 넣는 안전한 금고”를 의미한다. 노아와 모세는, 모두 하나님의 귀중한 보물들이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보물임을 믿고 사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릴 때, 노아와 그의 가족만은, 귀중품을 다루듯이, 하나님의 금고에 들어가게 하셨다. (7:16中)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방주의 문은, 하나님만 열고, 닫으실 수 있다. 하나님이 방주 문을 열자, 노아가 들어갔고, 하나님이 방주 문을 닫았다. 노아가 닫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멸망할 때, 노아는 방주 문을, 열 수 없었다. 노아의 방주는, 죽어가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온 자들을, 구원하는 교회다.

  그러므로 노아의 교회를, 모이는 교회라고 한다면, 모세의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교회이다. 교회는 모여서 은혜를 받고, 죄악 된 세상으로 나가, 죽어가는 저들을 구원해야 한다. 은혜를 받은 후에, 세상으로 나가는 교회, 모세의 방주가 되어야만 한다.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려면,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주님의 능력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서 나타난다. (막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노아처럼 자기 가정 식구는, 다 건져내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가족들을 소중한 보물처럼 여긴다면, 구원의 방주 안으로, 꼭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들을 수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이다. 노아 방주 전에 많은 사람의 모습이, 귀가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없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까? 노아는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했다. 귀가 있다면 말씀대로 따르자. (22) “노아가 그와 같이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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