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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40414 부활의 주님이 주신 선물(요20:19-23)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4-16
  첨부파일:   부활의 주님이 주신 선물(주일).hwp(91K)

  (19-2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도 있을 수가 없고, 그리스도도 없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보면,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부활 신앙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죽은 예수님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방부제를 들고, 아침 일찍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1-). 그래서 날이 밝기가 무섭게, 무덤을 찾아갔다. 열심은 있었지만, 죽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다. 그래서 무덤에 가 보았더니, 부활하신 예수님의 무덤은, 텅 비어 있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지 않고, 죽어 무덤에 계신, 예수님만을 찾고 있다. 지금도 천주교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놓고, 무덤 속에 계신, 주님을 찾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의 십자가는, 빈 십자가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셨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비어 있다.

  성도가 부활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항상 과거에 매여 산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과거에 매여 낙심하기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낙심하고 절망하게 된다. 믿는다고 하면서, 낙심하고, 후회하고, 두려워하여, 현실에서 도피하려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지면 자신도, 세상도 변화시키는, 능력의 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무덤 속의 예수님을 찾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자. 그때 성령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새 인생이 시작되고, 새 믿음이 주어진다. 우리가 부활의 예수님을 믿고, 만나게 되면, 우리에게 3가지 선물을 주신다.

1. 두려움을 이기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19上-20).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시는 장면인데, 제자들은 불안하고 두려워서,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다.

  아직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때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에게 정말 실망했다. 모두 나를 버려도, 절대 부인하지 않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내가 매 맞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는 동안, 어디에 있었느냐? 정말 실망했다”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했다. 따라서 제자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벗어나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성도들이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영적 지식에 대한 무지 때문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이 만났다고, 제자들에게 전해주었으나, 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들이, 자기들에게도 조만간 닥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환난에 대한 예고가 이미 있었기에,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성도들은 핍박과 환란을 당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믿음을 지키기가, 정말 힘들다.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과 마귀를,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음은 인류 최대의 적인데,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평화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를 (히2:14中-15)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죽음은 이길 수 없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리 위대한 위인들이라도(부처, 공자, 세종대왕, 아인슈타인…), 아무리 큰 권세를 가졌던 자도(칭기즈 칸, 나폴레옹, 진시황…) 큰 영화를 누린 사람도, 죽음이 찾아오면 어쩔 수 없다(솔로몬, 록펠러…)

  죽음 앞에서는, 돈도, 학식도, 사랑도, 권력도 다 필요가 없다. 누구도, 어떤 것도, 죽음을 두려워하여 떨 수밖에 없다. 제자들은 죽음이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떨고 있었다(19). 그런데 예수님은 솰롬하시며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이시니,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알고 기뻐했다(20).

  ‘부활’(아나스타시스)은 ‘다시 일으키다, 다시 살아난다.’라는 뜻이다. 마치 잠에서 일어나듯,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음을 말한다. 이처럼 주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해서, 첫 열매가 되셨다. 그래서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은, 바울처럼 이렇게 외칠 수 있다.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세력을 예수님은 정복했기에 (벧전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그런데 스스로 메뚜기같이 생각하면서, 어둠 가운데 문을 걸어 잠그고, 왜 떨고 있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니,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성도의 능력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데 있다. 문을 잠그고, 벌벌 떨고 있는 자들에게 찾아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거부하지 마시고, 만나기를 바란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이, 우리 모두에게 넘쳐나기를 축원한다.

2.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이 숨은 하나님의 숨결로,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성령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만, 생기가 흐른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도 성령의 역사로 부활하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성령을 받으라는 ‘영접하라.’(요1:12)는 뜻이다. 성령을 ‘환영하고 모시라’는 말씀이다. 이렇게 성령님을 영접하면, 어떠한 변화가 있나? 성령 받기 전 제자들의 모습은, 사명 감당은커녕, 두려워서 문을 잠그고 있었지만, 성령 받은 후에, 제자들의 모습은, 담대히 외쳤다.

  능력 있는 전도자로 변했다. 전도는 인간의 말과 능력과 재주로 되지 않는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자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 성령을 받고 나가서 전하자, 무리가 주께 돌아오게 되었다(행11:21). 성령 받기 전의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쩔쩔맸다(막9:18).

  그러나 성령 받은 후,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을, 데리고 나오는 자마다, 다 나음을 얻었다. (행5:16) “예루살렘 부근의 수 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누구든지 신앙과 사역에서, 승리하기를 원하면, 성령님과 함께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성령님의 역할을 보혜사라고, 자세히 말씀해 주셨으므로, 그 중요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씀하셨다. 성령은 죄를 깨닫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고백해서, 깨끗하게 만들어 준다. 그릇이 더러우면 맛있는 음식을 담을 수 없다.

  사람의 심령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심령이 죄악으로 인해서, 더러워져 있으면,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시지 않는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고, 용서받을 때, 하나님은 성령을 공급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살게 해 주신다. 그러므로 잘못과 허물을, 주님 앞에 고백하고, 깨끗함을 받아야 한다.

  죄가 무엇인가? (요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26:32)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전에 하신 말씀인데, 4번 기록되었지만, 그들은 부활하셔서, 갈릴리로 먼저 가신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이것은 죄니, 주님과 관계를 회복해야 하기에, 죄를 용서해 준다는 말이다. 주님과 관계가 회복되자, 용서하는 하나님의 권세가 나타난다. 제자들의 설교를 듣고 물었을 때, (행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했다.

  성령을 받았다면, 진심으로 회개한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려세울 수 있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성령 받고, 이 권세를 들고 세상을 향해 나가,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21中)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복음이 전파되면, 주님의 자녀와, 세상 자녀가 구분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2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① 복음을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게 되고, ②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게 된다(막16:16). 이 세계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

3. 믿음을 주신다(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있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24).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고 예수님의 부활하신다는 말씀도, 본 사람들의 증거도, 믿지 못했다. 지금도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씀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는, 간증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도마처럼 의심 많은 사람이다.

  의심이 왜 생기는가? 도마는 똑똑했지만,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 없으면, 꼭 다른 짓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자리를 떠나면 안 된다. 도마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어떻게 사람이 부활하느냐고 의심했다. 그런데 주님은 인자하게도, 도마의 믿음 없음을 치유해 주신다. 

  (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다. 결국 믿음이 중요하니, 믿음의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다.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서, 무너졌으니, 네 믿음을 회복하기를 원한다는 말씀이다.

  신앙은 보고, 느끼고 만지는 것보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믿어야 한다. 말씀은 언제나, 환경보다 앞서간다. 부활의 사건이 있기 전에, 먼저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의 역사는, 나중에 의미를 둔, 사건이 아니라, 먼저 말씀하시고, 그대로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마12: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대로 이루어졌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말씀을 믿지 못하고 산다.

  다른 것을 다 믿어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거나, 자신의 부활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요11: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셨다.

  또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헛된 믿음을,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믿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고 했다(고전15:2-4). 그러므로 부활 신앙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바울이,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까닭은 무엇인가?

  부활하신 주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기 때문이요, 자신이 부활과 영생 천국을 믿었기 때문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다(고전15:19).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니, 구원도 없고, 예수 믿을 필요가 없다(고전15:17).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축복이다. 성경을 왜 기록했나? 우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함이다.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결론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먼저 증거하시고, 우리에게 가라고 말씀하신다.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복음을 들고, 가야 한다. 그러나 그냥 가면 안 된다. 또한 갈 수도 없다.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행1:4-8).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이 부활의 소식을, 힘을 다해 전해야 한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 평안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사명을 감당하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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