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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1231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빌4:15-20)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4-01-26
  첨부파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송구영신).hwp(87K)

  (15-20)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착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임종을 앞두면, 마지막으로 세 가지를 뉘우친다고 한다. 우리도 23년도 마지막 예배를 드리며, 돌아보기를 바란다.

(1) 베풀지 못하고 살았음을 뉘우친다. 좀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좀 더 줄 수 있었는데, 좀 더 베풀며 살 수 있었는데, 이렇듯 긁어모아, 쥐고 있어도, 결국 쓰지도 먹지도 못하고, 떠나면서 “조금 더,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았을 것을…”하며, 반성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첫 번째 후회다.

(2) 참지 못하고, 살았음을 뉘우친다. 좀 더 참고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쓸데없는 소리를 했지? 그래도 내가 참았어야 했는데… .

(3) 좀 더 행복하게 살수도 있었는데, 좀 더 즐겁게 살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아웅다웅하고 울고불고 왜 그처럼 힘들게 살았나, 괜히 여러 사람을 괴롭혔구나. 그렇게 살 필요가 없었는데… 이것이 인간이 갖는 공통적인 뼈아픈 후회라고 한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며, 여전히 베풀지 못하고, 좀 더 참지 못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했던, 아쉬움을 남긴 채, 또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지난날의 내 인생은, 향기로웠는가? 아니면 상한 냄새를 많이 냈는가? ​먼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편 우리 마음속에 다가오는, 새로운 해에 대한 기대감이 있다. 이 기대감을 생각하면. 우리 가슴이 두근거린다. “새해에는 무슨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직 한 번도 살아 보지 않은, 이 시간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이, 우리 가슴을 뛰게 한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빌립보교회 교우들의 헌신적 봉사에, 한량없는 감사를 느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특히 (18下)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행기로운 제물이라며, 빌립보교회의 헌신을 높이 칭찬해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기 위해, 장작으로 불을 피운 제단 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그리고 그 고기 위에, 포도주를 부은 후에, 구워서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향기로운 냄새를 받으신다는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기분 좋게 받으신다. 내가 제물이 될 때,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된다.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이었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물은, 어떤 제물인가?

1. 초지일관한 봉사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 때, 유럽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다. 그런데 바울의 선교사역을 처음부터 끝까지, 협력하고 후원한 교회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투옥된 후로는, 교회 대표 에바브로디도까지 보내서, 물심양면 도와준 이상적인 교회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바울의 선교사역에, 처음부터 후원하는,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를 생각만 해도, 너무 가슴이 벅차올라, 뜨겁게 칭찬했다. 그들은 어느 교회하고도 비교하지 않고, 그냥 꾸준하게 선교할 뿐이었다. 그리고 바울이 어디를 가든지,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었다.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사도 바울의 부족함을 채워 주려고, 자주 직접 후원했다. (고후11:9中)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빌립보교회는 어떤 일을 하든지, 말없이, 묵묵히, 그리고 꾸준하게 헌신하는 이상적 모델을 제시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봉사와 헌신은, 꾸준한 봉사와 헌신이다. 꾸준하게 하지 못했다면,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한다.

  저는 우리 다운교회 성도들이, 변함없이 꾸준히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에,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말없이, 변함없이 꾸준히 일하며 섬기는 그 모습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우리 교회가 개척된 이래, 지금까지 맡은 분야에서, 꾸준히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 그렇게 고맙고 자랑스러울 수가 없다.

  내년에도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맡아 하시든지, 꾸준한 자세로 헌신하시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 일을 몇 년째 계속하고 있나요?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이렇게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한 부서에서만, 그 자리를 지키라는 뜻이 아니다. 복지부동이 아니다.

  교사를 하다가, 찬양대를 할 수도 있고, 찬양대를 하다가, 새 가족, 부원으로도 안내를 할 수 있다. 일평생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한 마음으로 헌신함이 정말 중요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의 위인들은 하나같이 시종일관 충성한 사람들이다.

  갈렙은 85세가 되어서도, 절대로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모세는 120세가 되기까지, 여호수아는 110세까지, 다윗은 80세까지, 다니엘은 93세까지, 절대로 식지 않는, 열정으로 헌신하였다. 꾸준히 섬기고 일하는 봉사를, 하나님은 향기로운 제사로 받아주신다.

2. 희생적인 봉사다.

빌립보교회가 돈이 많아서, 바울의 선교사역을 꾸준히, 후원하지 않았다. 빌립보교회는, 생활이 굉장히 어려웠었다. 그런데도 힘을 다해, 선교헌금을 보냈다.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우리가 알고 있듯이, 돈이 있다고 헌금하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있기에, 봉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했을 뿐만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헌금을 했다.

  (3)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더 나아가서 그들은 단순히, 돈으로 헌금하는 선교를 하지 않았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바치는 마음으로 헌신하였다. 나는 얼마나 주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봉사했는지 살펴보라. 희생이 없었다면 회개하자.

  (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는, 희생적인 헌신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향기로운 봉사라고 칭찬했다.

  지금까지, 시간과 건강, 재능과 물질, 정성을 다하여 헌신한, 그 희생적 봉사를 우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줄로 믿기를 바란다. 우리 다운교회는, 성도들의 희생으로, 지금까지 성장하고 부흥해왔다. 어떤 축복이 있으려면, 반드시 그만한 피 흘림이 있어야만 한다. 희생이 없이는 성공도 없다.

  탈무드에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왕에게 외동딸이 있는데, 그만 병들어 죽게 되었다. 사랑하는 외동딸이 죽어가니까, 왕이 다급한 나머지 “내 딸의 병을 고치는 자를 사위로 삼고, 내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르도록 하겠다.”고 방을 붙였다.

  그런데 먼 나라의 산골에, 삼 형제가 살았는데, 그들은 저마다 신기한 보화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큰형은 멀리 보는 망원경을 가졌다. 그 망원경으로 임금님이 방을 써 붙인 것을 보았다. 둘째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양탄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을 타고, 삼 형제는 왕실에서 죽어가는 공주에게 가게 된다.

  셋째는, 어느 병이라도 낫게 하는, 사과 한 개를 가지고 있었다. 삼 형제가 망원경으로 멀리서 보고, 양탄자를 타고 와서, 이 사과를 먹여서, 공주를 살려냈다. 그래서 임금님은 이제 사위로 삼아야 하는데, 세 사람 모두 공을 세웠다. 그런데 탈무드는 이렇게 말한다.

  ‘망원경은 도로 가져가면 되고, 양탄자도 도로 가져가면 된다. 그러나 사과는 먹어 없어졌다.’ 그러니 셋째야말로 가장 큰 희생을 했다. 그래서 셋째가 왕이 되었다고 한다. 희생이란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희생해서 내가 없어져야, 참사랑이고,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 받으신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고귀한 희생은 “결코 허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3. 익명의 봉사다.

빌립보교회는 지난 세월, 전혀 말없이 섬기며 봉사해왔다. 선교나 구제한다고 떠들지 않았다. 어디에다 광고를 낸 적도 없다. 그냥 묵묵히, 조용히, 소리 없이, 살며시 선교하고 구제했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립보교회는 절대적인 신앙관을 가진, 교인들이었다. 하나님께 나의 관계에서, 받은 은혜가 너무 많고 커서, 작은 헌신과 봉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렸으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헌신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도로 드렸을 뿐이다. 이것이 다윗의 헌신 철학이었다. (대상29:14中)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오히려 드리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탈무드에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누구에게 주었는지 몰라야 한다.” 내가 누구에게 준 것을 잊어야 한다. 잊어버려야 참 자유인이 된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몰라야 한다.

  은밀한 구제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밀하게 갚아주신다(마6:3-4). 어디 보육원이나 양로원에 가서,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다. 그동안 얼마나 헌금했는지, 일부러 잊어버려야 한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잊어야 한다. 내가 계산을 안 해야, 하나님이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신다.

  (마25장)을 보면, 예수님께 칭찬받고,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한 선행이나 공적에 대해 전혀 기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내가 챙기지 않아야, 하나님이 챙겨 주신다. 따라서 다 잊으시기를 바란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훌륭한 빌립보교회를, 최대한 성대하게 축복해주었다.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도 바울의 목회 기도에 있어, 가장 웅장한 기도요, 가장 거대한 축복기도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드렸던 제사장 기도와 유사하다(민6:24-26).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은밀하게 했는가? 아니면 내 이름을 드러내기 위하여 했는가? 만일 내 이름을 드러내려고 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넘어가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했다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주실 줄 믿는다. 나의 필요한 것 일부분을 채워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한 것, 전부를 다 채워 주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겠다고 결단하고,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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