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내용
•홈  >  말씀과찬양  >  설교내용
  제  목 : 20231217 엘리사벳의 찬양(눅1:39-45)
  작성자 : 윤성은 작성일 : 2023-12-20
  첨부파일:   엘리사벳의 찬양(주일).hwp(93K)

  (39-45)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본문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친척이며,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다.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 나사렛에 살았고, 엘리사벳은 남쪽 유대 ‘에인 케렘’에 살았다. 엘리사벳은 늙었고 임신하지 못했던 불임여성이었는데, 성령의 역사로 임신하게 되었다.

  사람이 결혼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아이를 갖기 위해서다. 사람은 자기의 혈통인 자손을 갖고 싶은데 불행하게 엘리사벳의 가정에는, 아이가 없었다. 나이가 많을 때까지, 자녀가 없었다.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대를 잊지 못하면, 가문의 의무를 지키지 못하니, 저주로 악으로 여겼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노년에 잉태하자, 하나님께서 자신을 돌아보신 증거로 보고, 크게 감격했고,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끄러움을 없애주시는 분임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한다.

  반면 마리아는 동정녀인데, 성령으로 아들을 배었다. 두 여자는 모두, 아이를 밸 수 없었지만, 각자 태중에 아들을 배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행한,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임신하게 되었다. 드디어 두 여자는 함께 만나,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서로 나누었다. 엘리사벳이 찬양한다.

  두 사람이 만나, 처지를 확인했을 때, 이들의 어두운 그늘이 벗겨졌다. 한 사람은 ‘불임여성’, 다른 한 사람은 ‘미혼모’라서, 따가운 시선,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있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함께 한 자리에서, 서로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처녀가 갖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서로 만나,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게 된다. 교회는 서로 다른 처지인 사람들이 만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쉼과 용기를 얻고, 희망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1. 문안하며 찬양(39).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골로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앞에서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러자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물었다. 천사는 (35)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너의 친족 엘리사벳은 늙었고,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여자였는데,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어, 그녀도 아들을 잉태했다고 했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믿었지만, 믿음을 확고히 하려고,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만나러 간다. 이스라엘 땅에는 산이 많아, 동네를 만들 때, 흔히 산 위에 만든다. 예루살렘도 산 위에 있고, 나사렛도 산 위에 있다. 헤브론도 산 위에 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가 찾아간 동네도, 유대 산골에 있었다. 그 산골은 예루살렘 근교에 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50km 산길이다. 따라서 당시에는, 5일 이상 걸리는 먼 여행길이지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갔다.

  그만큼 마리아는, 그의 친족 엘리사벳을 만나서, 자기 경험과 감격을 서로 나누고, 축하하기를 원했다. 드디어 마리아는, 엘리사벳이 사는 동네에 이르렀다. (40)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여기서 문안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는 뜻이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자세히 말해 주었다. 마리아 말을 들은 후에, 엘리사벳도 그에게 있었던 일을, 마리아에게 들려주었다. 엘리사벳은 임신 여섯 달이 되었으니, 불룩해진 그의 배를, 마리아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그때 사가랴는 말을 하지 못했다(20).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천사의 말이 엘리사벳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천사의 말이 자신에게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문안과 축복을 통해,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를 바란다.

2. 복중에서 찬양(41上).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할 때,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었다. 자기도 똑같은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뛰놀았다. 6개월 정도 되었기에, 아이가 복중에서 뜀은 매우 자연스럽다. 아이가 복중에서 단순한 뒤척이지 않고 ‘기쁨으로’ 뛰놀았다. 이처럼 태아도 영적으로 반응하니, 말씀과 기도를 항상 가까이하고, 낙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엘리사벳의 복중에는, 위대한 선지자가 될, 침례 요한이 자라나고 있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앞에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임을 증언하는 사명이었다. 이를 위해 침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15).

  침례 요한에게는, 선지자의 사명이 있었기에, 복중에서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해야 했기에, 모태에서부터 성령 충만했다. 침례 요한은, 태중에 있기에, 얘수님을 증언하는 방법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좋은 일이 있으면, 주님을 찬양한다.

  (요3: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침례 요한은 신랑의 음성을 들었기에, 기쁨이 충만하다고 했다. 여기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신랑의 친구는, 침례 요한을 가리킨다.

  (41下)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누구든지 성령으로 충만하면, 반듯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찬양이다. 엘리사벳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 찬양했다. 죄악 된 세상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또한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는 예언을 전했다.

  (벧후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여기에서 예언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선포함을 말한다. 엘리사벳은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그 결과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께 받은 예언,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 엘리사벳의 입에서 나오는 예언으로, 마리아는 천사의 말을 확인했다. 믿는 사람은 찬양하니, 기쁨으로 주님의 은혜를 나누고, 서로 축복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3. 큰 소리로 찬양(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은, 확신에 찬 목소리를, 크게 외쳤다. 그의 마음이 그만큼, 감격스러웠다.

  큰 소리로 외침은, 하나님 말씀이, 분명히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엘리사벳의 외침은 찬양이요 축복이다. 그녀의 찬양에 나오는 복된 대상은, 모두 다 넷이다. ① 마리아 ② 마리아의 태중의 아이 ③ 엘리사벳 ④ 하나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이다.

①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찬양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모든 여자 중에서, 마리아가 가장 복을 받은, 여자라는 뜻이다. 최상급이다. 옛날 이스라엘에서 여자의 복은, 그의 자녀를 보고 판가름했다. 마리아는 가장 위대한 아이를 배었기에, 최상의 복을 받았다고 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었기에, 성령 충만함을 받아, 여자 중에, 가장 복이 있는 여자라고, 큰 소리로 찬양했다. 침례 요한도 주님 앞에서 큰 자였다. 엘리사벳도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선지자일 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지만, 침례 요한은 피조물,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엘리사벳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리아는 자기보다 크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음을 밝혔다.

②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도, 복이 있음을 선포했다.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축복이 아니라, 찬양이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는, 예수님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졌기에,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 꿇고,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님은 온 우주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며, 천하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이름 중에,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구원의 이름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받는다. 예수 이름을 붙드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43)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내 주의 어머니가, 자기를 찾아왔기에 너무 놀라워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이는 분명히 엘리사벳에게, 지극히 큰 영광이며, 축복된 일이었다. 주님 안에서의 교제는, 정말 기쁜 일이요, 축복이다.

③ 엘리사벳은 ‘이 어찌 된 일인가?’라고 했다. 자신이 넘치는 복을, 받았다는 말이다. 이때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가리켜 ‘내 주의 어머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엘리사벳은, 마리아 태중에 있는 아이가, 자신의 주님이심을 밝혔다. 그 아이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눅1,2장)에 “주”라는 단어가 30회 이상 사용되었다. 다 하나님을 뜻하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엘리사벳은 성령에 감동되어,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고 밝혔다. 물론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나의 주”라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마리아를 ‘내 주의 어머니’라고 불렀을 뿐이다.

  마리아는 하나님을 낳은 것이, 결코 아니다. 유한한 인간이 영원 무한하신, 하나님을 낳을 수는 없다. 성경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 마리아는 하나님인 예수님을 낳았을 뿐이다. 예수님의 인성만 낳았을 뿐, 신성을 낳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마리아를 ‘주’로 부르거나,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하면, 안 된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귀한 일에 쓰임 받았을 뿐, 우리와 똑같은 죄인으로, 역시 구원받아야 할 분이다. 마리아를 신성화하면 이는 명백한 우상 숭배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이다.

  (44)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침례 요한은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다. 침례 요한은,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엘리사벳의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다.

  엘리사벳도 성령 충만함을 받았다. 엘리사벳의 복중에 아이가 뛰놀았음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기쁨으로 뛰놀았다. 이처럼 가장 좋은 태교는 성령 충만함이다. 태중에 아이도 기뻐한다. 자녀를 잉태한 어머니는, 더욱 주님을 가까이해야 한다.

④ 축복의 대상(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여기서 말한 그 여자는 일차적으로 마리아다. 마리아는 믿었기에, 복이 있었다.

  엘리사벳은 42절 말씀처럼, 2인칭으로 ‘너에게’라고 말하지 않았다. ‘믿은 그 여자에게’ 3인칭을 써서 말했다. 누구든지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 믿은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함이다. ① ②는 하나님께서 순종할 때 주시는 축복(바라크)을 말한다.

  그러나 ④은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는 복이다(아샤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축복이며, 올바른 관계를 맺는, 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올바른 관계가 아니면, 우리는 축복과 복을 받을 수 없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본보기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믿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와서, 우리를 구원했다. 말씀의 성취를 경험한 성도가, 이웃 성도에게 확신을 심어주는 아름다운 교회를 나눌 수 있다. 말씀을 확실히 믿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기쁘게 찬양하는 삶이, 주님과의 교제요, 성도의 교제다. 이런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

  이전글 : 20231210 복 받은 여인 마리아(눅1:26-38)
  다음글 : 20231224 마리아의 찬양(눅1:46-56)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