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1112 성막의 울타리와 문(출27:9)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3-11-25 |
첨부파일: 성막의 울타리와 문(주일).hwp(83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저희들이 올려드리는 이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어둡고 죄악 된 이 세상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저희들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용서하시고, 정결케 해 주셔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예배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시간이 빠르게 흘러, 절기는 입동이 지난 지금,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주님이 주신 목표대로, ‘하나님의 이적을 경험하는’ 성령 충만한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쪽을 당하게 할지니.”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성막의 모양을 주실 때, 어떻게 지을 것인지,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지을 때, 자세히 가르쳐주셨다. 방주와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신약에 오실 예수님을 나타낸다. 왜 노아와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했나?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함은 ‘노아’(노아흐) ‘평안함을 얻다, 안식하다.’이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예수님을 모형인 방주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주려고, 정확한 치수로, 방주를 지으라고 했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정확하다. ‘모세’(모셰)는 ‘보호하다, 지키다, 건져내다’ 뜻이다. 예수님의 모형인, 모세를 통해 구원받고, 영원히 천국에서 안식함을 상징한다.
1. 세마포 울타리
(1) 세마포 울타리를 친 장소는, 거룩한 장소임을 알리는 표식이다. 똑같은 땅이지만, 세마포 울타리가 쳐지면, 그곳은 거룩한 성소가 된다. ‘거룩’(카도쉬)은 ‘구별하다, 구별시키다.’라는 뜻이다.
똑같은 땅이지만,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해 놓은 공간은 ‘거룩한 장소, 성소’다. 똑같은 물건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성물’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택한 날인 주일은 성일이다.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을 위해 거룩히 구별하여 지켜야 한다.
주신 물질 가운데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십일조를 비롯한 ‘성물’이 있다. 또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성도’라 부르신 이유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고 ‘성도’라 불러주셨다. 성도라면 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2) 세마포 울타리는, 합당치 않은 자가 접근을 막는 역할을 했다.
이곳은 거룩히 구별된 장소임을 알리는 동시에, 합당치 않은 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다.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 곳이니,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역할을 했다.
이 땅의 교회들도, 세마포 울타리를 치고, 세속의 물결이, 교회 안에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내야 한다. 기복주의 사상, 뉴에이지 사상, 물신숭배 사상이, 이단 사상이 교회 안에 침투하여, 교회를 변질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3) 세마포 울타리는, 성막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했다.
세마포 울타리는, 사나운 짐승이나 대적들로부터, 성막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주었다. 여기 들어오면 도피처가 되었다. 성막 울타리는 죄에서 구원하고, 보호하여,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주심을 말한다.
(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지니, 남쪽을 향하여 뜰 남쪽에, 너비가 백 규빗의 세마포 휘장을 쳐서, 그 한쪽을 당하게 할지니.“ 성막 울타리는 세마포 휘장을 쳐서 만들었다. ‘휘장’(켈라) ‘아로새기다, 내던지다.’ 뜻이다. 세마포 휘장은 하얀색인데, 이 휘장을 울타리로 만들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나타낸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외부 공격을 차단하지만,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가 들어오려면, 들어갈 수 없기에 내던진다. 성막에 들어온 자는, 생명책에 완전히 아로새겨, 기록해 주신다.
① 휘장 울타리를 치려면, 놋 기둥을 세워야 한다. 놋 기둥이 없으면, 절대로 휘장을 세울 수가 없다.
(10) ”그 기둥이 스물이며, 그 받침 스물은 놋으로 하고, 그 기둥의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할지며.“ 성막의 울타리를 세우기 위해, 놋 기둥을 세웠는데, 60개의 기둥이 필요했다.
‘기둥’(암무드) ‘변하지 아니하다, 보존하다, 택하다, 붙들리다’ 뜻이다. 울타리 기둥은, 절대 변하지 않는 진리인 예수님을 상징한다. 울타리의 기둥은, 택한 백성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받고, 말씀으로 붙들려, 영원히 보존된다. 울타리의 기둥이 무너지면 성막은 존재할 수 없다.
광야의 거센 바람에, 40년 동안 버틸 수 있음은, 단단한 기둥 덕분이다. 우리가 구원에서 탈락하지 않음은, 울타리 기둥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갈고리와 가름대는, 은으로 만들라 했다. ‘은’(케셰프) ‘창피를 당하다, 치욕을 당한다.’이다. 이것은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다.
휘장을 연결하는 고리, 갈고리와 가름대가 없으면, 휘장이 연결되지 않는다. 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이 창피를 당하고, 모욕당해서, 성막에 들어오는 자들을 구원해 주신다. 휘장은 세상의 사람과 성막에 들어오는 하나님의 사람을,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② 울타리 흰 세마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의미한다. 깨끗하고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1:8)이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의 아무 죄도 없는, 옳은 행위를 말하고 있다. 세마포를 걸은 놋 기둥은, 율법을 상징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으로도, 아무 흠이 없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으며, 율법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기 위해, 율법으로도 아무런 흠이 없어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신자들도, 아무 흠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다.
2. 성막의 문(출27:16).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 문은 울타리에 비해, 넓게 만들어졌다. 총길이가 25m인데 10m가 문이다. 넓은 문이며, 이 문으로만,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1) 예수님은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하셨다(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양의 문이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라고 했다.
성막 문을 통과하지 않고, 세마포를 찢고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요 강도다. 이것은 복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율법으로 구원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려는 자들이다. 예수님의 의로운 십자가를 거부하고, 자신의 행위를 주장하여, 구원에 이르려는 자다. 이런 자는 영원한 불 못으로 던져지게 된다.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는 문은 넓다. 항상 구원의 문은 열렸지만, 들어가는 자는 적다. 복음을 외쳐도 악한 인간은 이 문을 통해,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성막 문은 하나밖에 없다. 다른 문은 절대 없다.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요10: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선언했다. 이 문을 통하지 않으면 살길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으면, 절대 구원이 없다. 성막 문은, 4가지 색으로 되어 있다. 청색, 자색, 홍색, 가늘게 꼰 베실로 수놓아져 있다.
(2) 4가지의 색깔은, 예수님을 소개한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4 복음서가 소개한다.
① 유대인에게 청색은, 하늘의 색이다. 하늘이 파란색이니 하늘로 생각했다. 하늘을 상징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임을 강조하여서 말한다.
② 자색은 뿔 고등에서, 염료를 채취하여, 만들었던 옷이다.
염료가 너무 귀해, 왕족과 귀족만 입었던 옷이었기에,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증언하는 책이 마태복음이다.
③ 홍색은 유대인의 개념에, 속죄와 희생을 상징하는 색이다.
예수님이 피를 흘리고 죽으신, 놀라운 사건을 증언하는 책이, 마가복음이다.
④ 가늘게 꼰 베실은, 하얀색으로서 정결, 깨끗함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어떠한 죄도, 흠도 없음을 나타내는 책이, 누가복음이다. 이렇게 성막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이 문을 통과할 때,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자신의 의지로는, 절대 성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성막 울타리의 높이가 2.5m이기에, 밖에서는 안을 절대 볼 수가 없다.
3. 울타리를 치는 목적
(1) 율법을 통하여, 구원 얻으려는 자는, 절대 성막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울타리는 율법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성막 문을 통과해서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을 격리하여, 세상과 혼합되거나, 물들지 못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 항상, 양의 문을 통과하여,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
율법주의자는 강도요 도둑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마포를 자기 뜻대로 찢고, 들어가는 자다. 이런 자는 구원에서 탈락하고, 심판받는 자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다. 진리를 모르고 들어가는 자는, 의의 옷을 입지 않았기에, 반드시 쫓김을 당하게 된다.
(마22:11-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임금이 잔치에 초청했는데, 예복을 입지 않고 왔다.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오면, 초청한 주인에게 엄청난 수치를 준 것이다. 잔치가 시작하기 전에, 주인은 나와 손님의 자리를 배치해 주는데,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었다. 잔치에 참석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손발이 묶여, 바깥 어두운데 내던져, 슬피 울면서 이를 갈게 된다. 율법으로 천국에 들어간 자는, 반드시 내쫓김을 당하게 된다. 예수님의 보혈로 이루어진, 의의 옷을 입고 들어가야 한다.
(2)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서 우리는 안전하다. 울타리는 높아서, 밖에 있는 사람이 안을 볼 수가 없고, 안에 있는 사람도, 밖을 볼 수가 없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세상 밖의 삶을 바라보지 말라는 의미다.
구원받고 주님과 함께 있으면, 세상의 쾌락과 육체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누구든지 성막 안에 들어오면, 더 이상 정죄함이 없다. 예수님 안에서는, 절대 정죄함이 없다. 모든 죄를 예수님이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결코 정죄함이 없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시켜 주기 때문이다.
성막 안에 있으면, 어떠한 죄인도, 울타리 안에 있으면, 흰 세마포가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밖에서 아무리 보아도, 죄가 보이지 않고, 흰 세마포, 예수님의 의로움만 보이게 된다. 나는 죄인의 모습이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의가 나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를 보고, 더 이상 나를 죄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시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택해 주시고,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다고 고백했다. 항상 성막 뜰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즉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고, 교회에 나와 항상 주님과 마주하는 인생을 살아야, 복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택하심을 얻었다면, 이제는 세상 쾌락을 끊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막 안에 있으면서도, 아직도 밖이 궁금하면 안 된다. 성막 울타리를 치는 목적은, 담 안에 있는 사람과 담 밖에 있는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다.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 313장의 내용이다.
1.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죄인이 주님 앞에, 한 없는 은혜 받고서, 내 생명 모두 드리오니, 그 풍성하신 은총을, 주 내게 내려 주소서.
2.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내 허물은 덮으시고, 주 십자가에 흘리신, 그 피를 믿는 마음 보사, 내 중한 죄를 사하여, 참 평안한 맘 주소서.
3.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주 은혜에 감격하여, 한 없는 감사 찬송을, 내 주님 앞에 드리오며, 내 맘과 정성 다하여, 늘 기뻐하며 살리라.
4.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이 마음과 이 천한 몸, 그 보배피로 값주고, 주 친히 사신 것이오니, 나 이제 사나 죽으나, 주 뜻만 따라 살리라.
이 찬송은 미국의 ‘히윗’여사가 작사하였다. 히윗은 교육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에, 교사가 되어, 후학들을 열심히 가르쳤으나, 척추를 다쳐서, 교육계를 떠나, 평생 독신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학교 교육에 전념했다. 주님 주신 사역, 어떤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완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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