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0806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행3:11-19) | |
작성자 : 윤성은 | 작성일 : 2023-08-09 |
첨부파일: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주일).hwp(93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 세계 곳곳에서도 이상 기후와, 지구 열대화 현상으로, 기후 위기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커지는 이때,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로,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환경을 파괴한,
저희들의 잘못된 삶을 돌이켜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시옵소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날마다 주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회개의 삶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거듭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이 시간 올려드리는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을 받아주시고, 교회와 모든 성도들 위에, 생명과 구원, 그리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11-19)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는, 성전 미문에 앉아서, 40이 되도록 구걸하며, 한 번도 성전 안에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이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일어서서 성전에 들어갔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한 사람들은 없었다. 그래서 성전에 모인 사람들은 놀랐다. 어떻게 된 일이냐? 누가 이렇게 놀라운 일을 했느냐? 무슨 약을 썼느냐? 네가 과연 그 사람이 맞냐? 물었을 것이고, 이 사람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
예수님이 이적을 이루셨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고쳐 준 줄 알고, 그들을 붙들었다. 하나님의 이적은 항상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다. 부흥하는 교회에는, 거룩한 충격을 주는 이런 놀라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솔로몬의 행각이라는 장소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다(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보면, 이들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해도, 누구도 의심하거나, 욕할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주님이 행했기에,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오늘도 능력이 나타났을 때, 이렇게 사기 치는 사람이 있다. 이적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 그 일을 행한 것처럼 자랑하면 속지 말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역사가 일어면, 자기가 그런 일들을 한 것처럼 주장하면서, 자기가 영광을 받으려는 자가 있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성도들은 순진해서, 사기를 잘 당한다.
그래서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 판매에 80% 이상이, 교인들이라고 한다.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친 후에, 모든 사람이 그들을 주목하자, 영적인 교만에 빠질 수 있기에, 분명히 했다. “우리가 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이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높이기를 바란다.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기에, 그 이름을 믿을 때 일어난 기적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못 걷게 된 자에게,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준 것뿐이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다.
안수기도를 얼마나 세게 하느냐? 특별한 기도에 따라, 병 고침이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신뢰하고 믿을 때, 병 고침을 받기도 하고, 귀신이 떠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된 일을, 마치 자기의 능력으로 된 일처럼 주장하거나, 자랑하면 영적 교만이요, 타락이다.
베드로는 사람들이, 왜 자신에게 몰려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① 왜 이 일을 놀랍게 여기느냐?
하나님께 초자연적인 역사는, 아무것도 아니고 당연하다. 하나님이라면 충분히 하실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이며, 믿음을 가지면, 놀라운 일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②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들의 겸손했고 정직했다. 그들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적을 만들지 않았다. 나를 통해 이루신 이적이지, 내가 이룬 이적이 아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이적을, 사람을 붙들고 바라보면, 문제가 생긴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 지점에서 교만해져, 넘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을 팔아서, 내가 스타가 되면 정말 문제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정말 귀한 교훈이다. 사역의 열매가 클수록, 하나님께 영광을 더욱 돌려야 한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의 겸손과 정직성을, 본받아야 한다. 주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겸손과 정직은 생명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설교를 잘해서, 감동을 주어도, 자기를 추종하려는 자들을, 예수를 추종하게 하는 목회자가, 올바른 목회자이다. 목회자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기를 바란다. 베드로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예수를 소개한다.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2. 그 시선을 예수님에게 돌렸다.
베드로는 엄청난 기적을,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다. 복음을 전할 때, 타이밍이 중요하다. 이적으로 사람들이 충격받고, 마음이 열렸을 때, 살아 있는 말씀을 전했다. 짧은 설교에, 복음의 핵심이 담겨있다.
(1) 사람들의 죄(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그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접촉점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전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은 예수님을 영화롭게 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이적을 베풀어주고, 영화롭게 하셨다. 그런데 너희는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① 예수님을 거부하고, 거절 함이 죄다(14上).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로마인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해 보고, 아무 죄가 없음을 알고, 놓아주려 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인이,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예수님을 놓아주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했다며, 그들의 죄를 지적하였다. 죄를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죄를 범했다고 하면, 문제가 심각해지고 충격을 받는다.
②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죽임이 죄다(14中-15上).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너희의 죄와 교만이, 살인자인 바라바를 놓아주고, 생명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했다.
죄를 깨닫게 되면, 마음에 찔려, 괴로워서 통곡하고, 자복하게 된다. 이 괴롭고 불편한 소리를 들어야 비로소 회개할 수 있고, 구원이 임한다. 회개한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기에 할 수 있다. 보통은 그를 죽이려고 든다. 그래서 돌을 던져 복음을 전하는 자를 죽이려고 한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가슴을 치며 통곡할 사람이 유대인이다. 그들이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생명의 주이신 메시아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면서, 영적으로 제일 무식한 민족이 유대인이다.
(2) 생명의 주(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러나 너희가 죽인 예수님이지만,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부활의 주님은, 지금 내 안에 살아계신다. 만약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끝났다면, 생명의 주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해서, 지금도 생명의 주가 되신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부활의 증인이라고 선포했다.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영혼이 다시 살 수 있다고 외쳤다.
부활의 예수님이, 나면서 못 걷게 된 자를 고쳤는데, 지금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이적을 체험할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했다. 이 일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을 말한다. 그것을 다 지켜보았고, 경험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주인이라고 외쳤다.
(3) 믿음의 능력(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못 걷게 되 자를 고침은, 어떤 특별한 수단과 방법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때 나타난다. 지금도 믿으면, 표적과 생명의 역사가 나타난다. 믿음이 중요하다. 그런데 믿음의 역사는, 내가 만들어 낸 믿음이 아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디아, 통하여, …에 의해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에 의해서 난 믿음이, 바로 능력이다. 믿음 자체를 우상으로 여기면 안 된다. 긍적적인 믿음, 나는 잘될 거라 믿는다며, 반복한다고 되지 않는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철저하게 의지함이 믿음이다. 이 믿음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바라보게 함이 전도다.
예수님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믿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이 일을 증언한다. 사람을 가리지 않고, 증언하던 중에, 못 걷던 자가 낫게 되었다. 우리도 예수님이 구원해 주셨으니, 예수님이 생명의 주가 되심을 사람들에게 증언하기를 바란다.
3. 시선을 바꾸면(17-18).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리들도 그리한 줄 아노라,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생명의 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은, 너희가 알지 못해서 했다.
설교의 목적은, 사람을 정죄함이 아니다. 그래서 너희가 알지 못해서 그런 줄 안다며, 다정히 말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눅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의 영이, 베드로에게 임했기에, 이렇게 설교할 수 있었다.
유대인은 구약성경에 정통했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는, 영적인 눈이 없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왔지만, 메시아가 되심을 몰랐다. 이를 알도록 많은 기적을 행했지만, 깨닫지 못했다. 예수님의 고통만 보면, 연약하기에 믿을 수 없지만, 그의 고통은 구원의 완성이었다.
성경은 예수님이 고난으로 구원을 말씀했지만, 유대인들은 원하지 않았다. 로마를 깨부수고, 구원해 주는 메시아를 원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믿지 않고, 도리어 신성 모독죄로 고소해 죽였다. 인간의 죄 중에는, 죄인 줄 알고 범하는 죄가 있고, 모르고 범하는 죄가 있다.
모르고 지은 죄는, 정상참작 할 수 있다. 예수님을 죽인 죄는,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지만, 모르고 했기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 목적이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알지 못해 그런 것이니,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말씀한다. 우리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시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어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만 하면, 다 용서해 주고, 죄를 없이해 주신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고, 그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서, 죽이는 죄를 범했어도 죄를 회개하고 돌이켰을 때, 다 용서해 주셨다. 그러나 회개하기를 거부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회개하면 크게 2가지의 축복이 온다.
① 죄 없이 함을 받는다(19中).
(엑살레이포)는, ‘석회를 바른다. 무엇을 위에 칠한다.’이다. 따라서 ‘씻어버린다, 지워버린다.’는 말이다. 죄를 지으면 마음이 어두워진다. 양심의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지만, 회개하고 돌이키면 어두워진 마음이 밝아지고, 양심이 자유를 찾게 된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의 마음 속에는 평안과 기쁨이 없다. 죄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아서는 것뿐이다.
② 새롭게 되는 날이 이른다(19下).
(아납쉭시스) 바람으로 서늘하게 만들어, 원기를 회복함을 말한다. 온전한 휴식과 구원을 가져온다는 말이다. 끔찍한 죄와 마귀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는가? 회개하지 않은 죄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사는 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키라.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하고, 평안을 누리시기를 축원한다.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무엇보다 긴급하며 본질적 문제는, 회개임을 깨닫게 하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예수님께 주목하며, 날마다 진정한 회개의 삶으로,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며, 치유의 역사를 경험하며, 다가오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주시옵소서.
날마다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고, 복음 전도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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