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0521 행복한 부부 되기(마5:27-30)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3-05-23 |
첨부파일: 행복한 부부 되기(주일).hwp(94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5월 가정의 달, 특별히 부부의 주일에, 우리의 가정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새롭게 해 주셔서,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 되어, 화목하고 사랑이 가득한 복된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기쁨과 고난을 함께 나누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아름답게 세우는 칭찬받는 믿음의 부부, 또 모든 가족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 주시는 큰 은혜가, 우리 가정마다 가득 임하길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27-30)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어떤 젊은 부부가 있었다.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였다. 그런데 아내가 병들어서, 죽게 되었다. 아내는 죽기 전에, 남편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여보, 나는 지금까지 세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그 세 남자 모두를 내 생명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면서 사랑했습니다.”
뜻밖의 고백에 남편은, 다소 놀란 표정이었다. 아내는 계속 이렇게 말했다. “내가 첫 번째로 사랑했던 남자는, 내가 어릴 때 옆집에 살던 오빠였습니다. 두 번째로 사랑했던 남자는, 대학교에 다닐 때, 같은 과에서 공부하던 선배였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한 남자는, 지금의 내 남편이 된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나는 이 세 남자 모두를 지극히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인해, 비록 짧은 삶을 살다 가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 한없이 울었다. 왜냐하면 아내가 사랑했던 세 남자는, 모두 남편인 자기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한평생 한 남자인, 자기만 사랑했고, 그 사랑으로 인해, 그의 아내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나의 아내와 남편을, 변함없이 사랑하고, 또 사랑받으며 살아간다면, 참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했을 때,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겨, 아담을 위해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다. 두 사람을 짝지어, 부부가 되게 했다.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한 남자에, 여러 명의 여자를 만들 수 있고, 한 여자에 여러 명의 남자를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 남자를 만들거나, 두 여자를 만들지 않았다. 오직 한 남자에, 한 여자만 만드셨다. 그리고 두 사람을 짝지어, 부부가 되게 하셨다. 남자는 자기 아내만을 사랑하고, 여자는 자기 남편만 사랑하라는 뜻이다. 그것이 부부의 행복을 위하는 길이요, 가정의 천국을 이루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주신 이유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에게 눈 돌리지 말고, 남자는 자기의 아내만을 사랑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만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이다. 오늘 5월 21일은, 법정 기념일로 부부의 날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준,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며 살아서, 행복한 부부가 되기를 바란다.
1. 간음에 대해 잘못된 해석(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님은 너희가 지금까지는, 간음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부정적인 차원에서 말씀하셨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너희가 들었다는 말씀은, 간음하라는 말이 아니다. 간음에 대한 해석이, 잘못되었다 뜻이다. 간음은 십계명 가운데, 일곱 번째 말씀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에 대한 해석을 잘못했다는 말이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십계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해 주었다. 이들은 간음을 오직 불법적인 성행위로 해석했다. 따라서 불법적인 행위만 하지 않으면, 계명을 지켰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7계명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 계명의 기본 정신을 강조하지 않았다.
바리새인들은 항상, 문자와 형식을 강조하고, 법의 정신은 벗어났다. 그들은 사람이 마음으로, 음욕을 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와 결과에만 치중했고, 그것만을 문제 삼았다. 그들의 잘못된 해석은, 당시 사람을 성적 방종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다스려야 했는데, 그 음욕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음욕의 노예가 되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음욕을 이루기 위해, 아주 쉬운 방법, 이혼을 사용했다. 당시 사람은 이혼을 쉽게 생각했고, 이혼을 통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은,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는 물론이고, 사람들 앞에서, 남편에게 무안을 주었을 경우도,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 심지어는 아내가 요리하다가 음식을 태웠을 경우, 음식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든 경우도, 이혼의 사유가 되었다.
하여튼 남자는,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별의별 사유를 붙여서, 아내를 버렸다. 남편은 아내에게 이혼증서 한 장만 써주면, 자기의 마음에 드는 여자와 합법적으로, 잠자리를 할 수 있었으니, 그 당시 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했는가?
(마19장)을 보면, 하루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혼에 관해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난 뒤,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19:9)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그때 주님 곁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다.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이혼하기에 그렇게 어려우면, 장가들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낫겠다고 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도, 그런 말을 할 정도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이혼을, 쉽게 생각했는지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요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동네에 살던 어떤 여자이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16)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그러자 그 여자는 (17)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했다. 그 여자는 이러한 말로, 자기의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삶을, 감추고 싶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17下)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이 여자는, 남자로부터 다섯 번씩이나 버림받았다. 이혼을 다섯 번씩이나 했으니, 얼마나 이혼이 지긋지긋했을까? 그래서 이제는 아예, 결혼도 포기하고, 다른 여자로 얹혀살고 있었다.
이렇듯 그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해석은, 사람들을 성적 방종으로 몰아가, 도덕적으로 문란한 세상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당시 사람들을 가리켜 몇 번씩이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마12:39, 16:4)라고 말씀하면서 탄식했다.
2. 간음에 대한 바른 의미(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의 권세로 말씀하셨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음란한 마음을 품으면, 이미 간음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 여자 앞에서는 눈을 내리고, 땅만 보며 지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을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다. 따라서 성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거룩하고 선하다.
가정도 하나님의 작품이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드시고, 직접 그녀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고,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다. 에덴동산에서 최초의 주례자가 되어, 한 몸을 이루라고 선언했다. 이 과정을 통해 가정이 탄생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순결한 관계를 이루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깨뜨리며 말씀하셨다. 왜? (마23:25)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 도다.” 그들 마음속에, 음욕이 불과 같이 일어났지만, 자신들은 계명도 잘 지킨다고, 스스로 의롭게 생각했다.
마음에는 음욕이 불과 같이 일어나는데, 겉으로는 계명을 잘 지키는 자처럼, 자처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간음죄가 드러나면, 아주 혹독하게 다루었다. 그 예가 (요8장)에 잘 나타난다. 하루는 예수님이 성전에 가셔서,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그때 한 여자가 예수님 앞으로 끌려왔다.
그 여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였다. 그를 예수님 앞에 끌고 온 사람들은, 살기 등등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4-5)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돌로 치려고 했던 자들이,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몸을 굽히고,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그런데도 그들은, 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예수님은 일어나 (7中)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제야 그들은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 자리를 떠났다. 그들은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이라고 질책하셨다.
그러니 어찌 그들의 의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나? 예수님은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들의 의는 외식이요, 형식이었다. 우리도 말씀에 비추어보면 역시 음란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리는 나의 부족과 허물을, 너무 잘 알기에, 스스로 의롭게 여기지 않고, 세리처럼 애통한 심정으로 기도한다.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에, 긍휼히 여겨주신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셨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혀 주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없는, 의가 있다. 그들보다는 더 나은 의가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의다. 온전한 의다. 그리스도의 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살고 있기에, 천국 시민이 되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 된 교회를 사랑하듯,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아내와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가니, 행복한 부부다.
3.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29-30).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예수님은 욕구와 음욕을 구분해야 하며, 천국의 영광을 말씀하며, 천국 소망을 갖게 하셨다. 때론 지옥의 끔찍한 광경을 말씀하시면서,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셨다. 죄와의 전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어찌하든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어, 지옥의 두려움을 일깨워 주셨다. 예수님은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은 문자적인 의미로, 결단코 말씀하지 않았다. 우리의 눈이 실족하게 만든다고, 빼어 내버렸고 가정해 보자. 두 눈이 없으면, 실족하게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가? 실족하게 한다고 해서, 손과 발을 찍어낸다면, 손발이 없는 모습만 될 뿐이다. 또 음욕은, 마음으로 품는 죄인데, 심장을 빼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문자적인 의미로 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접촉이 없어도, 마음으로 음행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뜻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필만을 바라보며,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뜻이다. 죄와의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이다.
마음으로 다른 여자, 다른 남자에게 한눈팔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내 아내만, 내 남편만을 온 마음을 다하여, 극진히 사랑하라는 말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불행은, 눈이 계속해서 그들을 실족하게 했지만, 그들은 그것을 빼내서, 버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자기 죄를 모두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들의 온몸은,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부족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이 친히 짝지어 주신 사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에게 가장 좋은 아내와 남편을, 허락해 주셨음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내 남편, 내 아내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부부인가?
그러므로 죄의 자리를,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기도해야 한다.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죄의 결과는, 파멸과 지옥으로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의 마음을 쳐서 복종시킴으로, 아내에 대한 우리 모두의 사랑이, 남편에 대한 우리 모두의 사랑이, 정말 아름답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말씀대로 남편에게 순종하는 아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 화목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가정, 또 온 가족이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영육 간에 잘되고, 복된 가정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부부되고, 부모님을 섬기고 공경하는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믿음의 가정으로 세워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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