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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430 베드로의 회복(요21:15-17)
  작성자 : adminstrator 작성일 : 2023-04-30
  첨부파일:   베드로의 회복(4월 30일 주일).hwp(89K)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영광과 존귀를 받아주시옵소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긍휼히 여기시리라

먼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오니 저희들의 불의와 불순종과 믿음 없는 삶을 용서해 주시고 저희들의 미련하고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깨닫게 해 주시고, 때와 시기를 분별하여, 온전한 믿음으로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 올려드리는 예배 가운데, 성령 충만의 은혜를 부어주시기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5-17)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예수님을 좇았다. 그러나 여종 앞에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사람들 앞에서, 맹세하고 저주하면서, 자신은 예수님과 아무 관계도 없다고 했다. 이에 따라 베드로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고, 그의 위치도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실패했던 베드로를 회복시켜, 다시 사명을 용기를 주고 격려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리도 신앙생활에 실패했다면,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 진정으로 회복되기를 축원한다.

1.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디베랴 호수에서, 일곱 제자와 함께 아침을 드셨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요한은 침묵했지만, 조반 먹은 후에, 예수님이 시몬 베드로와 나눈 대화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추었다. 예수님은 조반을 먹은 후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시몬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부름을 받기 전의 이름이다. 예수님은 시몬에게 (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예수님은 시몬을 본 순간부터 제자들의 대표 역할을 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했다. 베드로라는 이름에 맞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에, 예수님은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러,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다. 시몬이라고 불렀다고, 베드로의 자격을, 박탈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이 그를 시몬이라고 불러, 겸손하게 만든 후에, 다시 회복시켜 주려고 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이 사람들보다는, ‘이것들보다로 번역될 수 있다. 이 구절은 세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네가 이 사람들이(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다른 제자들이, 모두 다 예수님을 버려도, 베드로는 절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항상, 다른 제자들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한다고 장담했는데, 3번 부인했으니, 더 이상 이런 주장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네가 이 사람들(다른 제자들),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이 사람들(동료들이나, 친구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지를 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도 역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네가 이것들(배와 고기 잡는 도구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었다는 견해다. 이 경우에 예수님은, 베드로가 이전의 돈과 직업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지, 물어본 셈이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했다.

(15)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을 때 아가파오를 사용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숭고하고 헌신적이며, 이타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아가파오가 아니라 필레오로 대답했다.

필레오는 인간적인 사랑으로, 조건적인 사랑, 친근하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다. 두 단어는 다르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헌신적이고, 무조건적 사랑으로물었지만, 베드로는 실패한 경험으로, 다소 낮은 우정을 의미하는 말로, 대답했다. 이렇게 해석하면,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15)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그때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입에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게 만들고, 그런 후에, 예수님은 그에게, 예수님의 어린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맡겨주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같은 질문을 3번 한 후에, 비슷한 명령을, 3번 반복한다(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양을, 돌볼 수 있다. 예수님의 양을 돌보고, 양을 치는 일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의 양을 돌보는 선교 사역과 목양 사역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 근거가 되어야만 하며, 결코 다른 동기로는,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없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양 떼를 맡겨준다. 예수님은 자기의 양을 어린 양이라고 불렀다.

베드로가 돌보아야 할 성도는,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처럼, 어리고 미성숙한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미성숙한 자신을 돌아보고, 일으켜 준 것처럼,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세심한 배려를 해야 했고, 그들을 볼보는 일이, 어렵고 힘든 일임을, 각오해야만 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분량과 크기를 잴 수 있는, 유일한 잣대는, 충성과 헌신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는 만큼 충성하고 사랑할 수 있다.

2. 두 번째 질문(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예수님은 두 번째 질문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똑같이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 했다. 그러나 둘째 질문에서는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첫째 질문에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라는 말이 생략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만 물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질문, 즉 다른 제자들보다, 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장담했던 베드로를, 겸손하게 만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베드로가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을 필요가 없었기에, 단순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은 더 이상, 베드로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여부만을 확인했다. 이제 예수님이 듣기 원하는 고백은, 베드로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고백이었다. 그때 베드로가 했던 대답은, 첫 번째 답변과 똑같다.

베드로는 겸손한 태도로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사나이다.”라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대답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자신을 신뢰할 수 없었다. 또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은 다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고 명령했다. 처음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지만, 이제는 내 양들을 치라고 했다.

여기서 치라’(포이마이네, 포이마이노)“(목자로서) 돌보라, 양을 치다, 통치하다!”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자기 양 떼인 교회를 돌보는 일을 위임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택하신 자들을 끝까지 신뢰하신다.

3. 주님의 세 번째 질문(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이라고 불렀다. 진정한 베드로가 되기 위해서, 한 번 더 사랑의 고백을 하고, 사명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앞의 두 질문에서, 예수님이 사랑을 확인할 때 아가파오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베드로는 필레오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 사랑에 대답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 번째 질문에서, 사랑한다고 베드로가 사용한 필레오를 사용했다. 이런 점에서 영어 성경의 하나 Living Bible,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진정 나의 친구인가?”라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사랑을 고백할 때 사용한 말을, 그대로 사용해서, 베드로와 자신을 동일시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사용한 말을 사용해, 그에게 친근한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받자, 근심에 빠졌다.

아마 그는 사랑을 확인하는, 예수님의 질문을, 세 번 반복해서 들으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을 생각했을 것이다. 세 차례 질문은,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일을, 추궁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물론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헌신과 충성은,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더 이상 자신의 충성을, 장담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세 번째 베드로의 대답에는 주여 그러하외다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 그는 세 번째 대답에서, 이 말을 생략하고, 대신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라고 했다.

(14: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예고할때 베드로는, 이러한 예수님의 말을, 수용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려도, 자신만은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말씀이 맞고, 자기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그가 알게 된 사실은 2가지였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충성을 장담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이 자신보다, 더 자신을 잘 알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2:25; 16:30).

그러므로 주님, 모든 것을 아신다.”고 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한 분이다. 베드로는 주님이, 모든 것을 알기에, 자신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잘 알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감히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 고백할 수 없었다.

자신이 넘어진 사건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랑에 대한 고백의 근거를, 자신이 아니라, 예수님의 지식에 기초해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예수님은 그가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안다.’, 앞의 두 대답에서 사용한 말과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앞의 두 대답에서 사용된 안다’(16,17)오이다였다. 이 말은 어떤 사실을, 보고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세 번째 대답에서 사용된 안다기노스코였다.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성숙한 지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베드로는 처음 두 질문에서 단순하게, 예수님이 자신을 알고 있다고 대답했지만, 이번에는 친밀하게 경험하고, 안다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세 번째 고백을 듣고, 그에게 내 양()을 먹이라!’(보스케, 보스코). ‘먹이를 먹이다. 돌보다.’라고 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반복해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세 번 확인한 후, 그에게 세 번 반복해서, 목양의 사명을 위임해 주었다. 예수님은 세 번 넘어진 베드로에게,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게 함으로, 지도자로서의 그의 자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예수님은 그가 이전에 했던 실수를 추궁하지 않고, 사랑의 고백을 통해서, 그를 다시 신임받는 자리로 회복시켜 주었다. 베드로에게 주신 권위는, 교회 내부를 돌보는 지도권과, 목회적 돌봄에 관한 것이다. 이 명령은 선교 명령과는 구별되는 것이다(28:19, 20; 16:15-18; 24:46-48).

선교 명령은,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한 것이다. 반면에, 본문에 언급된 명령은, 이미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을, 인도하고 돌보라는 명령이다. 예수님은 이러한 목양의 사역을, 감당할 지도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임을 가르쳐 주었다.

성도들을 돌보는 목양 사역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근거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목양의 일은, 어떤 일로도, 허용될 수 없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양 떼를,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다. 주님의 양을 먹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임을 기억하고, 주님 앞에 평가받을 날이 있음을 기억하고 최선을 다하자. //

저희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다 아시는 주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오직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실패자요, 도망자요, 배신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하오니 성령님 저희들을 새롭게 하셔서, 진정 주님을 사랑함으로, 주님의 어린 양을 먹이고, 또 주님의 양을 치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베드로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함으로, 다시 회복되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처럼, 저희들도 날마다 주님 앞에서 믿음과 사랑을 고백함으로, 마음의 상처와 죄책감을 치유 받고, 온전히 주님만을 따라가는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함이,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며, 따라가는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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