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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423 '나는 어떤 종인가요?'(마25:14-30)
  작성자 : 윤관 작성일 : 2023-04-23
  첨부파일:   20230423 주일 설교(마태복음 25장 14-30절 (달란트 비유)).hwp(92K)

본문: 마태복음 2514-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제목: 나는 어떤 종인가요?

서론

최근 어느 한 목사님의 설교 영상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설교 영상 같은 거 잘 안 보는데, 그날 따라 왠지 봐야 할 것만 같아서 봤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보게 하신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영상을 보고 우리 교회도 꼭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3부 예배 때 하려고 감추어 두었던 거예요.

닥터 레너드 스위트라는 분의 어떤 논문인데요. 그 논문의 내용 중에는 오늘날 교회는 4M church, 4가지 종류 M의 교회가 있다. 그 첫 번째, “Mission church”, 선교적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를 초대교회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 초대교회가 바로 여기에 속한다는 거지요.

가장 바람직하고 본질적인 교회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모든 일을 집중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우선하는 교회, 그 교회가 Mission church, 선교적 교회라는 겁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ministry church”, 목회적 교회입니다.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조금씩 잃기 시작하면 목회적 교회로 변한다고 해요. 전도 중심, 선교 중심의 교회가 주님을 향한 열심을 잃어버리면 곧바로 이 종류로 변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않고 목사도 더 이상 복음전도를 설교하지 않는 교회. 목회자나 교인들이 영혼 살리는 일과 복음 전하는 일에는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고, 그냥 사역 중심, 목회 중심, 행정 중심으로 탈바꿈 한다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볼까요? 그냥 지금 다니고 있는 우리끼리 잘 뭉쳐보자! 전도만큼이나 심방이 더 중요해. 이런 생각이 교회에 있으면 그게 목회적 교회로 이미 탈바꿈이 되었다는 겁니다.

세 번째, “Maintenance church”, 현상유지 교회입니다. 목회적 교회에서 더 나쁘게 변질된 모습입니다. 지금 이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 힘쓰는 교회이지요. 더 이상의 부흥은 없고 그냥 안주하는 교회로 변질된 것입니다. 복지부동이라는 사자성어가 잘 어울립니다. 모든 것을 귀찮아하며 형식만 남아있는 껍데기 교회라는 것이지요.

아무 움직임이 없는 교회. 그런 교회가 Maintenance church, 현상유지 교회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뭘까요? 말 안 해도 어느 정도 사이즈가 나오지요? “Museum church”, 박물관 교회입니다. 여기는 생명력도 없고, 열정도 없으며, 눈물도, 기도도, 헌신도, 순종도, 다 옛 이야기가 되어버린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아직까지는 박물관 교회는 없는 듯합니다. 이 유형은 유럽 교회가 대표적이지요.

박물관에 무엇이 있나요? 역사적 잔재들만 있을 뿐입니다. 흔적만 있고 살아있는 건 없는 곳. 그게 박물관 아닌가요?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전혀 없는 교회. 그것이 마지막 네 번째. 박물관 교회입니다.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유형이지요? 확실한 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1번과 4번은 아닙니다. 그럼 2번과 3번일 텐데. 어디지요? 사실 중요한 건 1번이 아니면 문제가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 다운교회가,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대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은 우리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 다운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땅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리고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많은 성도들이, 그리고 많은 교회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에서 그 오해가 시작이 됩니다.

여하간 달란트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적게 받은 사람일수록 더 적게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는 의문인 거지요.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이 5달란트 받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1달란트, 혹은 조금 자존감이 높다거나 교회에 열심이 있는 사람은 2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생각한다는 겁니다.

교회에 소속감이나 헌신도가 적고, 말씀에 대한 이해도가 적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을수록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도 적으니까 적게 받은 만큼 적게 봉사하고, 적게 섬기는 게 맞지~ 신앙이 참 계산적이지요? 그런 생각은 이 비유를 올바르게 해석한 것도 아니요, 심지어 그 근본 생각이 이미 정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비유는 각 성도들에게 주어진 기회나 특권, 재능과 은사는 다 다를 수 있지만 그와 관계없이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실 그날까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올바른 믿음, 올바른 신학, 그리고 올바른 신앙의 도전을 받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본론

1. 청지기의 태도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14-18)

14절을 볼까요?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원문에서는 14절 맨 앞에 왜냐하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앞에 적힌 열 처녀 비유와 이어지는 내용이라는 거예요. 읽지는 않았지만 13절에 뭐라고 적혀 있지요? “그런즉 너희는 깨어 있으라그리고 이어서 왜 깨어 있어야 하는지,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 건지 알려주는 게 이 달란트 비유인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이예요.

주인은 언젠가는 옵니다. 열 처녀 비유에서도 신랑이 오기까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이지요? 언젠가는 오는데 언제 오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달란트 비유도 똑같습니다. 주인이 오긴 오는데, 언제 오는지 몰라요.

그런 상황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기고 가거든요? 재밌는 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주인이 종들에게 무엇을 하라는 어떤 구체적인 명령이 나와있지 않아요. 그런데 주인이 굳이 자신의 소유를 맡기고 갔다는 건 종들이 청지기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의미거든요?

청지기가 뭡니까? 주인 대행을 하는 게 청지기입니다. 이 청지기가 오늘날 누구지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비유에 나온 청지기, 곧 주인 대행인 이 종들과 우리는 크나 큰 한 가지 고민을 갖게 될 겁니다. “주인이 나에게 굳이 재산을 맡기고 간 목적이 뭘까?”, “주인이라면 이 달란트로 무엇을 했을까?”

이 해답은 너무나 쉽습니다. 환율이야 어떻든지 간에 16년 가량을 일 안 하고 띵가띵가 놀면서 쓸 수 있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게으른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 그냥 썩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주인은 그걸 바란 것입니다. 청지기라면 주인의 그 마음을 빨리 캐치해야 하겠지요. 그래서 주인의 마음을 빨리 알아챈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는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해냅니다.

이것은 비유에 나온 종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도 그런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는 자들이라고 가르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동 사명, 궁극적인 사명이 무엇인지 매일 매순간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사명을 수행하라는 말씀이 바로 달란트 비유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청지기적 사명을 가볍게 여기고 주인의 마음도 몰랐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1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그런데 이런 맥락도 모르고 많은 성도들과 교회들이 자신은 1달란트 받은 자라고 한다는 거지요.

자기가 1달란트 받은 자와 같다는 말은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을 아직도 모르고 또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고백과 같습니다. 무지한 발언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5달란트 받은 자, 2달란트 받은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이 비유에서는 자신이 가진 것이 많고 적음에 주목하면 핀트를 잘못 잡은 겁니다. 주어진 내 상황 속에서도 얼마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고 힘 쓰는가? 오늘 달란트 비유는 그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세요.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맨 앞을 다시 볼까요? “각각 그 재능대로각각 그 뭐대로요? 재능대로. 비유에 나온 종들은 재능대로 달란트를 사용했거든요?

이 부분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5달란트라고 해서 재능이 다섯 가지라는 말이 아니예요. 재능을 많이 가졌다는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인이 준 그 5달란트를 그저 자기 재능대로 사용했다는 겁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지요?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인이 주신 것을 가지고, 다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주인을 기쁘시게 만들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실천했다는 거예요. 그게 청지기라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재능이라고 쓰여진 말은 번역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원문은 뒤나민이라고 적었는데 능력입니다. 각각 그 능력대로, 역량대로,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서 달란트를 사용했다는 거예요.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해서 임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도전을 주는 말씀이 16절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어떻게 했다고요? “바로 가서!”, “즉시로장사를 했습니다. 주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신속하게 진행했다는 겁니다. 무엇을요? 자신에게 맡겨진 청지기적 사명 감당을요.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둬요.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현대에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큰 보물이나 재산이 생기면 땅에 묻는 관습이 있었다고 해요.

마태복음 13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지요? 우리가 들었을 때는 땅에 묻어두면 나도 까먹을 수 있고, 아무도 모르게 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는 거예요. 재산을 지켜야 하니까요. 나만 알아야 하니까.

그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5달란트 받은 자, 2달란트 받은 자 같은 부류가 더 이해가 안 됐을 겁니다. 그렇게 장사를 하면 가지고 있던 재산마저 탕진해버릴 수 있잖아요. 왜 굳이 그런 안전하지 않은 길을 가냐는 거지요. 그러나 주인의 마음은, 주인이 원하는 모습은 그런 게 아닙니다. 종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주인을 기쁘시게 만드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그 모습. 그 모습을 주인은 원했던 거지요.

종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달란트를 받은 상태였다는 거예요.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이 있었다는 거지요. 또 주인은 종들에게 제각기 달란트 액수를 다르게 주었는데, 주인은 종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다 다르게 주었을 겁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시켜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이건 다시 말해 우리에게도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액수, 종류가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성격을 아시고, 특징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 말씀 앞부분에서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자신이 1달란트 받은 자인 것처럼 생각한다고 했지요?

1달란트의 값어치,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들어왔습니다. 앞에서도 잠깐 이야기 했었는데요. 1달란트는 무려 한 노동자의 16년 정도의 연봉이 넘는 액수입니다.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1달란트 밖에 안 받으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는 어쩌면 1달란트를 감당하기도 버거운 사람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이 곧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주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을 때 결코 적게 주지 않으셨다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분에 넘치게 주셨습니다. 문제는 너무 비교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남의 떡을 더 크게 보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누가 더 많은 달란트를 받았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 나에게 달란트를 주셨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지요. 나 같은 사람에게도 달란트를 맡겨 주신 것이 큰 은혜 아니겠습니까? 나 같은 사람에게 뭘 믿고 달란트를 주시나요? 그런데 맡길 만 하니까 주신 것입니다. 믿을 만 하니까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나를 믿고 맡겨 주신 그 달란트를 가지고 주님을 기쁘시게 만들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각자의 능력, 각자의 역량대로 주신 그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주님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자,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시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2. 신실한 종은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됩니다. (19-23)

19절을 볼까요?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19절 앞에 오랜이라는 말은 원어로 폴륀이라 하는데, 그냥 오래 지난 게 아니라 아주 상당히 오래 지났다는 뜻입니다. 주인이 진짜 오려나? 죽은 거 아니야?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상당한 시간을 말하는 거예요.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기에 주님 오시기 전인 지금이 하루 하루가 매출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겁니다.

고린도후서 6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아멘. 지금이 주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때라는 거지요.

그런데 19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또 다른 도전을 줍니다. 19절을 보시면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라는 말씀이 보이시지요? 여기서 돌아오다는 말과 결산하다는 말이 시제가 현재입니다. 시제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지금 당장 돌아온다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주님께서 이제 곧 다시 오셔서 얼마나 매출을 냈는지 결산하게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바로 오늘이 그날이라고 항상, 그리고 끊임없이 의식해야 한다는 거지요.

예수님이 다시 오실 최후의 날에는 결국에는 결과물을 내어드려야 하는데, 결과물이 있는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고 주인과 함께 즐거움에 참여하게 된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20절과 21절 우리 함께 읽어볼까요?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그런데 그 결과물은 결산할 때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주님께서 결산하십니다. 우리는 그저 그 날을 맞이할 뿐이고, 결과를 기다릴 뿐입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두 종에게 했던 주인의 마지막 말인데요. 20절부터 23절의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특별히 21절과 23절 끝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얼핏 보면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될 것을 말하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근데 그런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을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맡겼지요? 맡긴 이유가 뭐라고 했었나요? 단순합니다. 재산을 더 불리라고 맡긴 겁니다. 주인은 재산을 불리는 것을 원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는 말은 니가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라는 말도 사실 아예 틀린 건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는 그 일을 너도 참여하게 될 거야~” 라는 말입니다. 그 일이 무엇이든지 말이지요. 어떤 이는 영원한 교제가 하나님께서 즐거워하는 일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더 크고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즐거워하신다고도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불러모으는 일을 말하는 거겠지요.

아무튼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우리는 주님이 즐거워하시는 일을 우리도 즐거워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또 주님이 즐거워 하시는 그 일에 우리가 참여할 수 있음에 감사할 줄 알아야겠지요.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주님이 기뻐 받으실 만한 삶이 되는 줄 믿습니다.

3. 악하고 게으른 종의 결국 (24-30)

이제 마지막으로 세 번째 종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 종은 주인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청지기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24절과 25절을 볼까요?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이 종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과 혹여라도 이 재산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주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했고, 주인에게 순종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종이 어떤 대우를 받게 되지요?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며 책망을 받게 되지요.

그는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거나 위험을 무릅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실패한 이유는 주인 때문이라고 오리발을 내밀기까지 하지요. 24절에서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 급급했던 겁니다.

굳었다라는 말은 원어로 거칠다”, “잔인하다”, “무자비하다”, “엄하다라는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세 번째 종이 당신은 굳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다시 말하면 당신은 가진 것 없는 종들을 이용해서 무자비하게 착취나 할 줄 아는 게걸스러운 탐욕가입니다!”라는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하극상도 이런 하극상이 없지요.

1달란트의 액수를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큰 은혜를 받고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세 번째 종은 그 주인에게 26절과 같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포악하고 악질인 사람으로 매도 시켜 버렸습니다.

다시 말합니다. 많은 교회와 많은 성도님께서 이 달란트 비유를 많이 오해하고 계세요. 또 자신이 마치 1달란트 받은 종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고백한 자신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스스로 자백하는 격이 된다는 거예요. 또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은 포악하고 악질인 분이며, 우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만 취할 줄 아는 그런 게걸스러운 분으로 말하는 격이 됩니다.

제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비유에서 주인이 종에게 준 달란트는 실제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5달란트 받은 종과 2달란트 받은 종은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통해 주님께 기쁨을 드리려고 했지만 1달란트 받은 종이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는 건 시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대해서 철저히 자기 방식대로 생각하고 원망과 불평으로 살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럼에도 내가 1달란트 받은 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1달란트 받은 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감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앞에서 버릇이 없는 겁니다. 이기심의 끝을 보이는 사람입니다.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자입니다.

우리는 1달란트 받은 종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가 필요한 것이고요. 또 내가 저런 모습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지 내가 1달란트 받은 자와 같다고 말하는 미련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이 주인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5달란트 받은 자, 2달란트 받은 자처럼 행동했을 것입니다. 자기 안위만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은 주님에 대한 믿음의 헌신을 막는 큰 장애물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은 그런 이기적인 세 번째 종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내가 만약 약한 자를 이용해서 내 유익만 취하는 자인 줄을 네가 알았더라면~ 적어도 네가 내 돈을 은행에다 맡겨서 원금과 이자라도 받아냈어야 하지 않았겠느냐?”

이게 무슨 말이지요? 세 번째 종이 변명한 말은 앞뒤가 안 맞다는 겁니다. 만약 주인이 정말 자신의 유익만 취하는 자였다면 너는 달란트를 땅에 묻어둘 것이 아니라 네가 일을 하지 않을 망정 소출은 냈어야지~ 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그런데 1달란트 받은 자는 일도 안 하고, 소출도 내지 못했지요.

눈치 빠른 5달란트 받은 자와 2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이 매출을 더 많이 내는 것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바로 매출을 내려고 장사를 한 겁니다. 우리도 마땅히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주인이 무엇을 좋아하실까? 빠르게 알아내야 합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흘려 들으셔도 됩니다. 만일 1달란트 받은 자와 같이 눈치가 없을지라도 그저 순수하게 주인을 위해서 달란트를 사용했다면 주인은 그 마음을 기뻐했을 겁니다. 매출이야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다 가진 분이신데요. 또 주님이 함께 하시면 소출이 없을 수가 없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 전능하신 분이시니까요.

그러나 1달란트 받은 자는 그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변명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악한 종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도 주인에게 도로 빼앗기고 주인은 빼앗은 것을 자신이 믿을 만한 자에게, 그 종에게 주어 더 많은 보상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8, 29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그리고 마지막 30절은 뭐지요? 악한 종은 절대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지 못한 모습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결론

착하고 중성된 종들과 악하고 게으른 종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차이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 누구신지 확실하게 알았기 때문에 주인이 원하시는 게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일을 하려고 했지만 악하고 게으른 종은 주인의 마음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고, 결국 주인이 원하시는 일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지요. 자신이 주인에게 은혜를 받은 자인지도 전혀 모르고 살았던 겁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인 지금 이 때에 우리 삶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5달란트 받은 자, 2달란트 받은 자처럼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1달란트 받은 자처럼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미련하게 살고 계십니까? 주인은 언젠가는 결산하러 올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결산하러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때문에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자들은 지금도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을 테지만 반대로 자신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자들은 여전히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나는 누굽니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이미 착하고 중성된 종으로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정말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고 있나요? 아니면 그저 오늘 하루를 나를 위해서 살고 계십니까?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주님 앞에 변명만 늘어놓는 자가 되지 마시고, “주님, 내가 주님을 위해 이만큼~ 소출을 냈습니다! 주님 받아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할 줄 아는 착하고 충성된 우리 다운교회 모든 성도님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

오늘 우리에게 어떤 종인지 물어보시는 주님, 우리가 주 앞에서 살아갈 때 그저 형식적인 교인으로 살아갈 것이 아닌 진실함으로, 열정적으로, 순수함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청지기의 자세를 갖길 원합니다. 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일지 깊이 고민하며 행동할 줄 아는 우리 다운교회가 되게 해주시고 그래서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도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는 칭찬과 동시에 주인의 즐거움에도 참여하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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