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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326 지옥은 있다(눅16:19-31)
  작성자 : 윤관 작성일 : 2023-03-26
  첨부파일:   지옥은 있다(주일).hwp(178K)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영과 진리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주님 먼저 회개하오니, 저희들의 악하고 추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십자가 보혈로 정결하게 씻어 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사순절, 주님을 깊이 생각하며, 주님의 희생과 사랑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세상에 속한 탐욕과 이기주의가 가득한, 이 악한 세대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이 되도록, 성령님 역사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올려드리는 예배를 통해, 저희들의 심령이 치유되고, 모든 예배가 회복되며, 우리 교회가 부흥하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6-31)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어떤 도둑이 도둑질하려고, 어떤 집에 들어갔다. 문틈 사이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니가 말했다. “여보! 나 먹을 것이 없어요.” “똥이라도 먹어.”, “먹을 것이 정말 없어요.” “똥이라도 먹으라니까.” 도둑은 중얼거렸다. “내가 너무 가난한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 왔구나. 가자.”

그리고 문틈으로, 살며시 집안을 들여다보았다. 두 노인이 화투를 하는 중이었다. 문틈으로 소리가 종종 흘러나올 때가 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지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들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다.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다. 그런데 그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투성이로 살고 있었다.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음식을 먹으며, 비참하게 살다가, 둘 다 죽었다.

(22-24)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말했다.

(25-26)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지옥은 있다. 웨슬레는 지옥 설교를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네 손가락을 불에 직접 대어 보라. 참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온몸을 불 속에 넣었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육과 영의 괴로움은 중단이 없다. 고통의 연기가, 영원히 피어오르고, 그 고통은 극심해도, 단 한 순간도 감소 될 가능성은 없다.”

무디도 말했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시간을 드려서,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 성경은 모두 다 불태워야 한다. 만일 지옥이 없다면, 많은 돈을 들여, 교회를 지을 필요도 없다. 지옥이 없다면 있는 예배당도, 모두 오락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1. 지옥이 분명히 있는 이유가 있다.

(1) 성경에 있다.

지구상에서 제일 진리를 말하는 책은, 성경책인데, 성경은 지옥이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지옥이 있다고 말씀했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경고하시는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가 지옥에 가지 않도록 오셨다. 사도들도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가르쳤다. 십자가와 지옥은, 하나님의 공의를 표현한다.

(2) 사람들의 양심이, 지옥이 있음을 증거 한다.

지옥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지옥에나 가라라고 하면, 굉장히 화를 낸다. 지옥이 없다고 믿으면 화낼 이유가 없다. 그러나 그의 양심이, 지옥이 있는 것을 알기에 화를 낸다.

(3) 본 사람이 있다.

만일 강원도 산속에, 호랑이를 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호랑이는 있다. 남한 사람 5천만이 다 못 보았어도, 한 명이 보았으면 있다. 그런데 지옥을 본 사람은 수없이 많다. 지옥은 분명히 있다.

지겨운 군대는, 제대할 날이 있다. 공부하기 싫은 학교도, 졸업이 있다. 그러나 지옥은 나올 수 없다. 프랑스의 무신론자 볼테르(1694-1778),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가 건설되기까지, 수 세기가 걸렸다. 그러나 50년 안에, 기독교를 다 파괴하는 것을 보여주겠다.”

그는 무신론자로서 많은 책을 저술했지만, 죽는 순간 몸을 떨며 말했다. 의사 선생님!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달라. 내 재산의 반을 주겠다.” 의사가 “6주간도 못 한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지옥 가는데 같이 가 달라.”, 숨을 거두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나는 지옥에 간다.”

지옥은 분명히 있는데, 지옥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고, 사람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듣기 싫어도, 성경이 지옥을 말하고 있기에 들어야 한다.

(4) 지옥이 없다는 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영원히 고통받게 하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며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다. 그러면 공평이 불공평이고, 불공평이 공평이 된다.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성실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상을 준다. 공부 안 하고, 못된 짓이나 하는 학생은, 낙제시키고 벌주는 줌이 공평하다. 성실한 학생이나, 불성실한 학생을 똑같이 취급하면, 오히려 불공평이다. 나라를 위한 애국자에게, 훈장을 주고, 나라에 해를 끼치는 자는, 감옥에 가둠이 공평하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지팡이와 막대기를 가지셨다. 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사랑의 도구지만, 막대기는 양이 딴 길로 갈 때, 때리는 채찍이다. 지옥이 꼭 있어야 공평하다. 지옥이 없다면, 내 마음대로 살게 되기에, 공의의 하나님은 지옥을 만드셨다.

짧은 인생을 살면서, 잠깐 지은 죄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주면 불공평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을 총으로 쏘면, 1초면 사람을 죽이지만, 몇십 년 징역이다. 잠깐 지은 죄라도, 벌은 아주 무섭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지옥에 가지 않고, 피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은 주셨다. 살리는 법을 따르면 되는데, 이 법을 따르지 않으면서, 왜 벌을 주느냐, 왜 힘든 법을 만들었느냐고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지옥에 가지 않도록, 성경을 통해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다.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불가능하다.

불은 타다가, 언젠가 꺼지게 되어 있기에, 지옥 불이 영원할 수 없다고 하지만, 태양을 보면 영원함을 안다. 우리가 보는 태양은, 45억 년 동안 식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뜨거워지고 있다.

2. 그러면 지옥은 어떤 곳인가?

(1)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이 있다(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20: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3:42)에서는 지옥을 풀무 불이라 했다. 풀무 불은 불이 완전히 갇혀서, 바람만 통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몇 배는 더 뜨거워진다고 한다. 지옥은 불타는 곳인데, (벧후2: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온통 불천지인데, 어두운 구덩이는 무엇인가? 천국에도 등급이 있듯이, 지옥에도 등급이 있다. 불의 색깔은, 온도에 따라서 변한다. 불의 온도가 가장 낮을 때는 빨간색이다. 그 다음 단계가 주황, 노랑, 파랑, 흰색 순이고, 온도가 가장 높아질 때, 검은색으로 변한다고 한다.

타락한 천사들이, 지옥 어두운 구덩이에 던져짐은, 가장 뜨겁고, 고통스러운 장소다. 태양표면 온도는 약5,700도다. 태양의 중심부 온도는 1,500만 도다. 지옥의 고통을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뜨거운 장작불에 소금을 뿌리면, 소금이 , 소리를 내면서, 튄다. 지옥 불이 얼마나 뜨거우면, 튈 정도이겠는가? 사람의 시체를 화장할 때, 온도가 900도라 한다. 900도 정도면, 뼈는 추릴 수 있다. 그런데 쇳물의 용광로 온도는, 1,500도가 넘는다. 용광로에, 들어가면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71년 대연각호텔에 큰불이 났다. 그때 호텔 안의 사람 중에,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다. 정말 뜨거운 불길에 견딜 수 없어,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내렸다. 얼마나 뜨거우면, 죽을 줄 알면서도 뛰어내렸을까? 부자는 너무 고통스러워 나사로에게 (24)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하였다. 영원히 고통스러운 곳이 지옥이다.

(2) 영원히 고통받는 곳이다.

성경은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을 말한다. 첫째 사망은 육체의 죽음이다. 둘째 사망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다. 지옥에 떨어짐을, 둘째 사망이고, 셋째 사망은 없다. 지옥에 떨어지면, 고통이 끝이 없다.

(9:48-4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기에, 그 고통은 영원하다. 사람은 쉽게 구더기를 죽일 수 있지만,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 않는, 영원한 고통이 있다.

쓰레기를 모아서 불을 지르면, 다른 종이는 다 타는데, 껌 종이는 잘 타지 않는다. 지옥의 불은 모든 것을 태울 만큼 뜨겁지만, 지옥에 떨어진 사람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토록 고통을 당한다. 뜨거움을 잘 참는 사람들이 있다. 불가마에 들어가서, 잘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불가마에서 잘 견디는 사람도, 가스 불에 손을 데면, 견디지 못한다. 지옥 불은 가스 불과 비교가 되지 않게 고통스럽고, 그 고통은 영원하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런 사고는, 교통사고가 아니라, 화상이라고 한다. 화상은 치료 기간이 가장 길고, 수술 횟수도 많고, 고통도 크다.

3. 그러면 지옥에는 누가 가나요?

(1) 마귀(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은 본래 하나님을 반역한, 마귀를 가두려고 한 곳이다.

지옥은 우리 인간이, 갈 곳이 아니다. (7:49)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했다. 저주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순간, 임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해결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

(2) 불신자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도,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간다.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님이 우리 저주를 십자가에서 해결하려고 오셨다. 지옥을 면하는 길은, 오직 한 길,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미켈란젤로는 젊어서, 미술 공부를 하려고, 유럽 각 도시를 거닐면서, 박물관 미술관들을 다 돌아다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림이, 2장 이상씩은 다 있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예수님은 잠깐 십자가에 못 박혀 계셨다. 그것도 끔찍한 장면이다. 그런데 왜 이런 십자가 그림은, 세계를 덮고 있나?” 이런 생각을 하던 그는, 그 비결을 알아냈다. 십자가만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필요 없는 곳은, 아무 곳도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필요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한번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

(16:27-28)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지옥은 큰 고통이 있기에,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말하고 있다.

결론이다. 나사로는 가난했지만 구원받았다. ‘나사로’(라아자르), ‘그 도움으로라는 뜻이다. 나사로는 우리 주님의 도움으로 구원받았다.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라는 외침, 지옥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를 듣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하겠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는 지옥은, 사람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영원한 형벌이 있는 곳임을 알게 하시고, 끝까지 믿음으로 지키고, 천국에 들어가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 죄인들이 지옥을 면할 오직 한 길, 예수님을 끝까지 붙들게 하옵소서. 지금 이 땅에 살고있는 순간만이, 구원받을 은혜의 시간이며, 죽은 다음에는 기회가 없음을 명심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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