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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20230205 성도가 남겨야 할 간증(갈2:20)
  작성자 : adminstrator 작성일 : 2023-02-07
  첨부파일:   성도가 남겨야 할 간증(주일).hwp(88K)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아침,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전에 모이기를 더욱 힘쓰고,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과 또한 믿음을 격려하는, 주님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이 시간 올려드리는 예배를 통해, 우리 심령과, 가정과 우리나라 위에, 주님의 크고 놀라운 구원과 생명의 이적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원하오며,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고 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름을 남길 것이 아니라, 위대한 간증을 남겨야 한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함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일이 간증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 간증을 남겨야 한다.

성경적인 간증은, 감정적인 흥분상태에서 생기는, 변화를 말하지 않는다. 진리에 대한 분명한 체험, 말씀 속에 내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한, 분명한 체험을 말한다. 체험적인 신앙이 있을 때, 어려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뒤로 물러나지 않는 사람이 된다. 성경에는 믿음의 사람들이 남긴, 위대한 간증이 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됨을 체험하고, 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듣는데, 만족하지 말고, 간증의 주인공이 되어야, 신앙생활을 재미있게, 또 확실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성도는 어떠한 간증을 남겨야 할까?

1. 십자가의 죽음을 간증하자(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같이 죽었다. 따라서 자신이 죽었다는, 분명한 경험이 있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실패하여 믿음의 낙오자가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이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기 전의, 옛사람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먼저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육신의 뜻대로 살아온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결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갈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십자가뿐이다.

따라서 내가 죽는 십자가를 거치지 않은 회개는, 모두 거짓 회개일 뿐이다. 한 죄인이 십자가에서, 옛사람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는, 결코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없다.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남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구원받았다고, 저절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다. 구원받았다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과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오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저절로 가정에 평화가 오지 않는다. 하나님의 평안과 복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을 살아갈 때, 얻을 수 있다.

우리 가정에 평안이 없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구원받지 못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십자가 없는 성경은, 세속 종교의 경전에 불과하며,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세속 종교에 불과하다.

십자가 없는 체험은, 죽은 정통, 죽은 교리, 죽은 교회를 초래한다. 진정한 회개는, 세상을 포기하고, 십자가로 나아가야 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화를 내지도 않는다. 남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욕심도 없다. 높은 자리를 탐하지도 않는다. 자기 의지가 없다. 낮은 자리에 겸손히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율법을 향하여 죽었기에, 내 생각과 기준으로,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면 안 된다. 내 생각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이해된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것이 틀린 것은 결코 아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상대방을 내 생각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상대방의 다른 생각을 ! 내 생각과 다르구나!’하고,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실천하며 살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사랑이 많으시고 좋으신, 하나님의 성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믿기 전의, 마귀의 속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은혜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신앙생활도 잘해야지,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봉사도 많이 해야지 마음먹는다.

그러나 은혜가 떨어지면, 마귀 속성이 금방 드러나, 낙심하고, 좌절하고, 믿음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인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의인이다. 그리스도인은 2가지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에, 육신의 정욕을 위하여 살아가려는, 나를 죽여야 한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아야만 한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산다. 바울처럼 내가 십자가에 죽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2. 우리 안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간증하자(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이 말씀을, 쉬운 말로 직역하면 이렇다. “나는 산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내 안에서 나를 지배해오던, 옛사람이 죽었으니, 이제 새로운 생명, 그리스도가 나를 지배하는 생애가 전개된다는 말씀이다. 새로운 생명은 그리스도의 영, 성령의 임재를 말한다. 성령님이 나를 지배해야 한다. 믿는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지 않고,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사는 방식이 잘못된 사람이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이 말씀을 통하여, 확실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라고 하는, 육의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애를 살아간다. 이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내 마음과 생각을 붙잡아, 좋은 생각, 좋은 일을 하도록 만드신다. 주님께서 우리 속에 계시니까, 생각과 생활 속에서, 주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주님이 우리 속에 살아계시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임한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 D.L 무디가 사용한 성경을 보면, 온통 T자와 P자로 표기되어 있다. “T자는 Tried, P자는 Proven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시도했더니, 이 말씀이 입증된 말씀 위에는 P자를 적어 놓았다고 했다.

우리가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면, 어려움에 부딪힐 때도, 주님이 주인이 되시기에, 부탁하면 주인이 돌보아주신다. 모르스 부호는 가장 쉽고 유용하게 만들어진, 전신 부호로, 1832년부터 인공위성통신으로 대치되기까지, 주요 해상구조신호로 사용되었다.

이 모르스 부호는, ‘사무엘 모르스교수가 발명했는데, 하루는 그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이렇게 물었다. 교수님은 발명품을 연구하고 실험하는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중단하신 적은 없나요? 여러 번 있었지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고, 그로 인해 모르스 부호를 발명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하나님이 제게, 이런 복을 주심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했기 때문이다.

모르스 교수가, 모르스 부호를 발명한 뒤에, 제일 먼저 보낸 전문이, (3:5-6)이었다고 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이런 신앙이기에, 하나님은 놀라운 전신부호를 발명하여, 생명을 구원하게 하셨다.

우리의 삶의 주권은, 주님께 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다. 주님이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믿고 순종하고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하신다. 이런 간증들이 넘쳐나기 바란다.

3.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간증하자(20).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을 직역하면, “믿음 안에서 나는 산다. 하나님의 그 아들, 나를 사랑하신 자,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자라는 말씀이다. 즉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산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사는 사람은, 아름다운 간증이 있다.

우리 인생에는 무거운 짐들이 많다. 사람마다 조금씩 달라도, 모두 다 인생의 무거운 짐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짐을, 나 혼자 지고 가려고 하면, 교만이고, 불신이다. 주님께 맡기며 사는 것이 믿음이다. 주님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탓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복으로 바꿔주어, 간증을 남기게 하신다.

(1) 여기까지 도와주신, 에벤에셀의 은혜

성도의 과거를 한마디로 하면, 에벤에셀이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 여호와의 도우심에 감사하며, 미스바와 센 사이에, 에벤에셀의 돌을 세웠다. 우리도 지금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에벤에셀의 비석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위기와 어려움을 겪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사고의 위험, 질병의 위험, 생계의 고통, 부부의 갈등, 자녀의 고통, 정말 많다. 그런데 우리가 잊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역경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나요? 영적으로는 또 어떤가? 알게 모르게 지은 죄, 신앙생활의 방황, 시험으로 인한 위기, 어찌 다 열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에벤에셀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도와주셨고, 지켜주셨다. 구원의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짐은, 우리의 자격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받았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있기까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분명히 있었다.

(2)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은혜

성도의 현재 모습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는 한순간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동행하심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예수님은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하셨다.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 붙어 있는, 열매 맺는 가지일 뿐이다. 마지막 임종을 하면서, 웨슬리 목사님은 내 평생에 내가 가장 좋았던 것은, 나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는 신앙인은, 무슨 일이 있든지 담대하고 용감하며,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한다.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성령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3) 앞날의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여호와 이레의 은혜

미래에 대한 성도의 고백은, 여호와께서 모든 것을 준비하신다는 확신이다. 아브라함의 장래 길을 인도하셨듯이, 우리의 장래도 여호와께서 인도하시고, 준비하심을 믿어야 한다.

인간들은 얼마를 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살아야 할 미래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사는 자는, 아브라함의 뒤에 수양을 예비해두신, 여호와 이레의 은혜와 복이 앞날에 있다. 따라서 성도들은 미래를 염려하면 안 된다.

과거에도 함께 하셨고, 지금도 함께 하시는 주님께서, 장래에도 함께 하실 줄 믿고, 전진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등불과 같이 인도하신다. 등불은 비록, 전방 2m 이상은 비춰주지 못하지만,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등불도 전진하면서 길을 밝혀 준다.

결론이다. 올해도 힘들고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잘 살아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을 반역하며, 내 멋대로 살아온 일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죄송할 뿐이지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이르게 해주셨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다. 사자굴 속의 다니엘도, 구원해 내셨고,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은, 그의 세 친구도 구원해 주셨다. 나병 환자도 고쳐주셨고, 귀신에게 끌려다니며, 무덤 사이에 살던 자도 고쳐주셨고, 무덤 속에 장사 된 나사로까지 살려주셨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경험, 그리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

기도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내가 죽으므로,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고,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사는 자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라가며, 낮아지고 겸손한 저희들이 되도록, 날마다 성령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역사해 주시옵소서. 우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되어,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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