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0115 함께 일하는 성도가 되자(골4:7-14)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3-01-19 |
첨부파일: 함께 일하는 성도가 되자(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인이 돌아와 결산할 새,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세워주셔서 주님의 종이 되게 하신 은혜를 감사드리며, 끝까지 주님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히 섬기며 세우는,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어, 날마다 성령 충만한 삶으로, 주님이 베푸신 이적을 서로 간증하며, 복음을 널리 전파하는, 능력의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7-14)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
본문을 읽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두기고,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 에바브라, 누가, 데마가 나온다. 이들은 바울과 함께, 사역한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혼자 사역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기를 즐겨했다. 요즈음 표현으로, 팀 사역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
1. 하나님 나라를 세울 때, 함께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7-9).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여기에 두기고와 오네시모가 나온다. 이들은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했다. 당시는 우편제도가 없던 시절이다.
소식을 전하려면, 2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편지를 써 보내든지, 직접 찾아가든지 해야 한다. 누군가 직접 가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편지를 써서, 두기고와 오네시모 편으로,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냈다. 긴급하고 중요한 교리문제는, 편지에 기록했다.
그러나 모든 소식을, 어찌 글로 다 쓸 수 있겠는가? 그래서 당시 대다수 사람들은, 말로 모든 것을 알게 하도록, 사람들을 보냈다. 물론 편지를 전달함이 그들의 임무이지만, 동시에 말로, 바울의 형편을 알리는 사명도 있다. 바울의 개인사정을 알리려고, 편지를 들고 가는, 두기고와 오네시모의 몫이었다.
이들은 바울의 특사라고 할 수 있다. 두기고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바울의 사역 말기에, 가까이서 사역한 사람이다. 에라스도, 마가, 디모데, 디도와 더불어, 끝까지 바울을 심복처럼, 잘 섬긴 사람이다. 가서 직접 복음을 전하고, 심방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1) 두기고는(7).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형제다. 그런데 두기고는, 신실하고, 사랑 받는 형제였다.
특별히 사도 바울에게, 가깝게 느껴지고, 사랑받는 사람이었다. 함께 예배하는 우리는 다 형제지만, 그 가운데 특히 가깝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도 있다. 특히 소중한 동역자로, 두기고를 아꼈다. 두기고는 신실한 봉사자로, 신뢰할 만한 조력자였다. 23년에 임명된 모든 제직은, 주님의 동역자다.
그러나 모두, 신실한 봉사를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모든 교역자를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을 맡기면, 신실해서 믿음직한 사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신실한 종들이 되자.
(2)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서, 도망쳤던 사람이다.
당시에 종들이 도망치다가, 잡히면 죽었다. 오네시모는 가장 번성한 로마로 도망쳤다.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알고, 잘못을 극복하고, 다시 옛 주인에게 돌려보낸 사람이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골로새 교회에 소개하여,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소식을, 자세히 골로새 성도들에게 전하기 위해, 먼 길을 걸어온 용사였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이들의 수고를 통해 건설되어 왔다.
모두 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어떤 사람은 좋은 소식을 전하고, 서로간의 관계를 연결시키는 사람도 필요하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다 필요한 사람들이다.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만, 주님을 위한 사역이 아니다.
설교가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위해, 다른 면으로, 음향이나 영상, 찬양으로 섬기는 사람들도, 똑같이 주님을 위한 사역하는 자다. 그들의 봉사로, 교회가 유익을 얻고 있으니, 알고, 귀히 여기고 감사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자. 당시의 바닷길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위험한 길이었다.
치안이 보장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육로도 마찬가지로 위험했다. 항상 위험이 따르는 여행길이었다. 하지만 주의 일에 생명을 맡기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신실하게 수고했기에, 신약 성경이 27권이나 되어, 우리 모두에게 영적 유익을 주고 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있기까지, 많은 분들이 수고했다. 청소로, 식사로, 교사로, 운전으로, 찬양으로 수많은 분이 수고했다. 이들은 신실한 조력자요, 사랑받는 형제다. 아름다운 동역이 이루어지려면, 같은 신앙으로 만나야 한다. 동일한 신앙 안에서, 사랑하는 일이 선행되고, 맡은 일에 신실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마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칭찬하시고, 복을 주실 것이다. 이런 칭찬과 상급을 얻기 바란다.
2. 바울이 편지를 쓸 때, 바울과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다.
(10-14)을 보면, 이들 중에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조카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 이 3사람은 유대인 출신이고, 나머지 3사람 에바브라, 누가, 데마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이다.
(1) ‘아리스다고’(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 그것이 전부지만, (행19:29)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여행 동반자로, 바울과 함께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폭동으로 인해, 원형 극장에 끌려 와서, 생명의 위협을 당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고난 받는 자리에도, 함께 하고, 부족한 종과도 함께, 고생하는 자리에도 함께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2) 바나바의 생질 마가(10中).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으로, 마가복음을 썼고, 베드로가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처음 찾은 곳이 마가의 집이다.
(행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하는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마가의 집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중심지였다.
마가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구부로까지 첫 선교여행에 동행한다. 그런데 밤빌리아 지방, 버가에 도착했을 때, 문제가 생겼다. 마가는 더 동행하기를 거부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바울은 이것을 그의 약점으로 간주하고, 2차 선교여행에 데리고 가지 않는다.
그런데 바울이 옥에 있을 때, 바울 곁에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빌레몬서에는 바울의 “동역자”로 언급했다. (딤후4:11) 바울은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마가가 베드로의 영적 아들로 표현한다(벧전5:13).
전통에 따르면, 마가는 베드로를 가까이 수종들은 사람으로, 그가 쓴 마가복음의 내용은, 베드로의 설교를 요약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진감 있는 마가복음의 전개는, 베드로의 급한 기질이 반영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약점은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고, 함께 하는 좋은 동역자가 될 수 있다.
(3) 유스도라고 하는 예수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바울과 함께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말고는, 아는 바가 없다. 예수라는 이름은, 2세기까지 유대인에게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회당에서 문제를 삼기 시작하자, 이 이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11)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이 3명의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유대 율법과 의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입장을 취하여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일하는 이들이다. 바울은 지금 이들의 동역으로 인하여, 매우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며, 그들이 있음에 큰 위로가 된다고 밝힌다.
우리는 동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라는 뚜렷한 공동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동역이 된다. 동시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우리는 사역에 대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헌신하시나요? 찬양대나, 교사로 봉사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해, 우리는 직분을 맡았다.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 위해선,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보다, 현재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강조한다. 지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하실 것인가?
3. 이방을 위한 사도 바울과, 동역하는 이방 그리스도인(12-14)
(1) 에바브라(12-13)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바울이 문안하는 여섯 사람들 가운데, 에바브라에 대해 가장 자세히 말했다. 에바브라는 특별한 문안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보냈다. 골로새 성도들은, 에바브라를 통해서 복음을 들었다.
에바브라는 자기 고향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 복음을 전했다. 바울에 의해 보냄을 받아, 선지자도 대접받지 못하는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는 힘든 임무를 띠고 파송되었다. 바울과 에바브라는, 복음을 위한 수고하는 자들이다. 둘 다 간절히 중재기도의 수고를, 아끼지 않은 사람으로 언급된다.
이들은 골로새 지역에 사는 성도들이, 온전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던 사람이었다. 성도들의 영적 성숙이야말로, 그들의 소원이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 성도들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규칙적으로 간절히, 중재기도를 한 사람이다. (12中)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바울이 가장 길게 소개한 동역자는, 기도의 열정이 있는 동역자,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애써 기도하다.’(아고니조메노스)는, ‘투쟁하다, 상을 위해 싸우는 자’다. 씨름하듯이 매달리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동일한 단어로, 자신의 사역을 복음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투쟁으로 언급한다.
에바브라는 동일한 싸움을, 기도의 골방에서 하는 자라고 소개했다. 바울이 설교를 위해, 강단에서 하는 그 싸움을, 에바브라는 골방에서 하는, 중재기도로 표현하였다. 고향 사람들을 위해, 특히 이단의 유혹을 받는 그들을 도울 수 있도록, 중재기도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일할 수 없는 힘이 없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를 기억하라. 중재기도로 영적 전투를 해주시기 바란다. 에바브라가 애써 기도한 내용은 무엇인가? (12中)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성숙하고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만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온전하게 성취되기를 간구했다.
(2) 누가(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의사 누가라 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다. (행28)을 보면, 멜리데 섬에 구사일생된 바울과 그의 일행은, 불을 피울 때 독사가 나와, 바울의 팔을 물었다.
원주민들은 이 사람은 살인자다, 바다에서 구원받았지마,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한다고 했는데, 바울이 독사를 불에 떨어버렸지만, 조금도 상함이 없자, 그를 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섬에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영접하게 되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다.
이때 바울이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를 낫게 하자, 다른 병든 자들이 와서 고침을 받게 되었다. 이 때 누가가 함께 했기에, 상세한 기록과, 치료를 통해 낫게 하였다. 누가는 배운 의술로 도왔다. 많이 배운 지식으로,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또한 누가는 누가복음을 썼는데, 가장 문학적으로 뛰어나다.
따라서 말로 하는 사역도 중요하지만, 글로 하는 사역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말은 순간적이지만, 글은 지속적이기 때문이다. 주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의 글로, 사역을 위해서 헌신하라. 그 사역은 오래도록 지속될 보람 있는 일이다.
(3) 데마(14中).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데마가 문안한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언급된, 다른 곳이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성경에 그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가룟유다와 같이, 비극적인 동역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첫 출발은 다른 동역자와 함께 했다. 그러나 끝까지 달리지 못하고,, 중도에서 경주를 포기한 불행한 사람이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라고 디모데후서에서 진단한다.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 천국을 향한 경주를, 포기하게 만든 경우는, 에서도 마찬가지다.
떡과 팥죽 한 그릇에,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포기한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 에서와 데마는, 세상 때문에 천국기업을 포기한 사람인데, 그것으로 끝이 나겠는가?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어떤 동역자가 되겠는가? //
기도하겠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그와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보며, 저희들도 복음 전파를 위해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동역자가 되어, 서로를 위로하고 섬기며, 세워주는 그런 성도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바울의 동역자들의 믿음과 수고를 성경이 기록하여 그들을 기억함과 같이, 지금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도, 교회 안에서 헌신과 충성을 다하는, 우리의 사랑의 수고가, 분명 하늘나라에 다 기록됨을 믿으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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