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30101 이적을 경험하는 교회(요9:1-12)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3-01-14 |
첨부파일: 이적을 경험하는 교회(23년도 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2023년 새해 아침,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기뻐 받아주시옵소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100:3)
새해에는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하나님 앞에 더욱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며,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허락하신 새해, 365일 하루하루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이, 아름답고 풍성한 결실로 가득 채우는, 복된 한 해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12)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적을 경험했다. 그것도 가장 큰 이적을 경험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큰 이적은 없다. 그러므로 2023년, 우리 교회는 이적을 경험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이적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고, 하나님의 조건에 맞으면 일어난다. 이적공식은 다음과 같다.
① 이적은 절망 가운데 나타난다. 어려움이 없다면, 이적은 없다. 주님은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신다. 따라서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이적이 나타날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자.
② 이적은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난다. 모든 이적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나타났기에, 순종이 이적의 필수조건이다. 예수님은 ‘물을 항아리에 채우고, 이제는 떠다 주라’고 하셨다.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는 말씀이지만,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나타난다.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면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했다. 예수님이 오라고 말씀하자, 말씀을 믿고, 물로 뛰어 들어, 베드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자.
③ 고난 + 순종 + (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조건) = 이적
가나 혼인 잔치의 이적은,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님께 (구할 때) 나타났다. 또 왕의 신하는 고침받기 위해, (자존심과 자신의 생각을 버릴 때) 나타났다. 베데스다의 이적은, 우연이 아니라, (간절한 소망과 믿음)을 가질 때에 나타났다. 5병2어의 이적은 (사랑의 헌신과 감사가)있을 때 나타났다.
베드로가 풍랑 위를 걸었던 이적은, (말씀을 믿고 도전)하자 나타났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믿음의 조건들이 표현될 때 이적이 일어났다. 따라서 어려울 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철저히 순종하자. 그리고 문제에 맞는 공식을 찾아보아, 이적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1. 해석을 잘하자(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본문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치유되는 이적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고서, 이렇게 말했다. (2中)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제자들은 맹인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그가 맹인 된 이유에, 더 관심을 가졌다.
상대방의 불행을 말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주님은, 맹인의 치유에 관심을 쏟으셨다. 주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죄 값이나 저주나, 천벌로 여기지 않았다. 성도는 남의 불행을 보면,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져야지, 남의 불행에, 관심을 두면 안 된다.
남의 불행을 말하는 사람들은, 교만함이 깔려 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은,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고난은, 죄 때문이라는, 인과응보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성경은 심은 대로 거두는, 인과응보 법칙을 가르치지만, 모든 문제를 그렇게 보면 안 된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인과응보 사상으로 살아간다. 인과응보는 현재의 모습을, 과거에서 원인을 찾다가 ‘지금 고난당함은, 과거의 악업 때문이고, 지금 잘 되는 이유는, 과거의 공덕 때문이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원인을 찾다가, 찾지 못하면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모든 원인을 과거에서 찾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과거 지향적인 생각은, 결국엔 결정론, 숙명론으로 흐르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조금 이루면 교만해지고, 이루지 못하면 절망한다.
“내가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면서, 운명으로 여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았기에, 이 정도로 형통함을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을 바리새인들은 가졌다. 그들은 좋은 집에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해서, 학식이 있었기에,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모든 면에서 평탄했다.
하나님께서 인정한, 의로운 사람이라는, 근거로 삼았다. 잘못된 생각이다. 성경에는 형통한 악인들이 있고, 고난 받는 의인도 있다. 그러므로 과거에 뿌리를 두고, 현재를 평가하는 잘못된 시각은 버려야 한다. 예수님은 불행이나 고통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언제나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셨다.
(3)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일부러 이 사람을 맹인 되게 하셨다”고 해석하지 말라. 어떤 불행이라도, 주님의 은혜를 입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으로 변화된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이적이 나타난다(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이, 예수님께 발견되었기에 눈을 뜨게 되었다. 맹인은 예수님을 볼 수 없고, 찾지도 않았는데, 예수님께 발견되었다.
주님께 발견되는, 은혜가 입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은, 빛을 몰랐다. 어둠에 익숙했고, 빛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 빛을 주기 위해,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원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했지만, 주님께서 빛을 주기 위해, 이 맹인을 만나주셨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먼저 찾아오셨다. 이것이 은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았다. 하나님께 발견된 은혜가, 가장 감사해야 할 큰 은혜다. 그러므로 은혜를 간구하는, 교회가 되자.
대통령이나, 재벌 총수의 눈에 띄기만 해도, 인생은 바뀌게 된다. 하물며 전능하신 예수님의 눈에 띈 사람이라면, 우리 인생은 다 바뀌게 된다. 예수님의 눈에 띄고, 주님을 만날 때, 고난은 축복이 된다. 절망은 희망이 되고, 고통은 환희가 된다. 눈물은 기쁨으로 변화된다. 어둠은 광명으로 바뀌었다.
(6-7)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주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다. 실로암은 경사가 큰 곳으로, 보통 사람들도 내려가기에 힘든 곳이다.
그러나 맹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로암에 가서,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이적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느냐고, 따지지 않았다.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이적이 나타났다. 이 맹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었기에, 순종으로 행동했다.
예수님의 말씀과, 우리의 순종이 만나면, 이적은 나타난다. 순종은 언제나 축복을 가져온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런데 인간의 죄 때문에, 흙으로 만든 인간이 병들었다. 육은 병들고 영의 눈이 어두워졌기에, 영의 눈을 열어주시기 위해, 흙을 물로 씻으라고 하셨다.
병든 육체와 영이, 고침 받도록, 실로암에서 씻으라고 하셨다. 실로암 못은 히브리어로 (
"
이전글 : 2022. 12. 31. 새해를 위한 결단(눅13:6-9) | |
다음글 : 20230108 열리고 풀리는 이적(막7:31-37) | |
이전글 다음글 | 목록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