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22 .11. 13. 하나님의 훈련과 축복(왕상17:1-7) | |
작성자 : adminstrator | 작성일 : 2022-11-25 |
첨부파일: 하나님의 훈련과 축복(주일).hwp(32K) |
하나님 아버지, 거룩한 주일 찬양과 경배로 올려드리는, 저희들의 예배를 받아주시옵소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항상 우리나라를 지켜 주시고, 복음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함으로, 열방의 복이 되고, 주님의 기쁨이 되는, 나라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그런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 교회에서, 그리고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순종의 삶을 결단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길 원하며, 우리 구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1-7)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힘찬 출발 뒤에는, 반드시 낙심되는 과정을 겪었다. 요셉은 그의 꿈에,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자기에게 나와 엎드려 절하는 꿈을 꾼다. 그리나 그 꿈 후에, 그에게 찾아온 것은, 형들의 무서운 미움과 분노였다.
그는 노예로 팔려가고, 옥에 갇히고, 고생을 했다. 이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상황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왜 우리 인생이 꿈과 희망으로 시작해서, 그렇게 낙심, 좌절, 실망을 겪어야만 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어 그랬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훈련으로,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1. 엘리야의 멋있는 모습(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엘리야는 아합 왕 앞에,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내 말이 없으면, 이스라엘에 비도 이슬도, 있지 않게 된다고, 맹세하며 선포했다. 엘리야의 선포는, 아합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이 진노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거짓 신임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정말 악한 왕 아합에게,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멋있는 선포를 했는가? 엘리야는 분열 왕국 시대에, 북 이스라엘을 무대로 활동한, 하나님의 선지자였다. 북 이스라엘은 북한과 같이, 왕들은 모조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악인 열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왕들보다 아합은, 더욱 악한 왕이었다. 바로 그때 엘리야가 활동했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를 향하여, 힘찬 외침이요, 추종자들을 향한, 참 무서운 경고였다.
어두운 암흑의 시대를 밝혀주는, 한 줄기의 횃불이요,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빛을 안겨준 사람이었다. 엘리야의 선포는, 참과 거짓을 분명히 지적했다. 성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과 거짓을, 분명히 지적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는 성도는, 누구를 상대로 하든 당당해야 한다.
(1) 멋진 출발을 했던, 엘리야 모습이 너무 초라했다(2-3).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래서 3년간, 숨어 살았다. 왕이 두려워서 숨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하셨기에 숨었다.
(2) 왜 하나님이 숨으라고 명령하셨나?
① 엘리야를 보호하기 위해 숨으라고 명령했다.
아합은 이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정말 나빴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니까, 엘리야를 보호하기 위해서 피신시켰다. 또 얼마 후에 있을, 기근 속에서, 보호해주기 위해 피신시켰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있기에, 이 험한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 수 있다.
② 엘리야를 훈련시키기 위해, 숨으라고 명령했다.
엘리야의 생애에 평생 잊지 못할, 영적 훈련을 제공하시려고, 엘리야에게 숨어있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요셉이 애굽에서 고난을 통해, 믿음의 사람이 된 것처럼,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훈련 받은 것처럼, 다윗이 사울의 피해 유대 광야에서 훈련 받은 것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을 받았다.
그릿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훈련장이었다. 또한 숨어있는 시간은, 훈련의 시간이었다. 우리도 그릿 훈련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그릿의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하나님 일을 할 수 없기에, 엘리야처럼 훈련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순종해도, 어려움의 훈련은 있다.
2. 하나님의 훈련이 왜 필요한가?
(1) 순종하려면 훈련이 필요하다(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숨어라.’ 명령했다.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그릿 시냇물을 마셔라’도 명령이다.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는 명령을 듣고, 엘리야는 즉각적으로,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거기 가서 숨으면, 무엇을 먹고삽니까?”
그러자 하나님은 (4) “…내가 까마귀들을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약속대로 순종했다.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그릿’은, 2가지 의미가 있다.
① 그릿(크릿, 카라트 끊어진다, 잘라낸다.)라는 말의 명사형이다.
외부 세계와 완전히 끊어진 채, 아무도 없는 작고, 고독한 광야의 시내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훈련장이다.
② 카라트(언약을 자르다, 맺는다.)는 말이다(창15: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언약을 맺을 때, 동물의 반으로 자르고, 반으로 쪼개진 부분을, 서로 마주 놓고, 그 사이를 지나갔다.
어려움에 있을 때에, 언약의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받았다. (시121:1-2)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절박할 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하시는 이유는, 힘들 때 얼마나,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붙드는지를 보기 위해 훈련한다. 우리는 주님이 명령하시면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배워야만 한다. 순종을 통해, 성도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된다.
엘리야는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라고 했다. 엘리야는 즉시 순종했다. 이 순종을 통해서,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머물 때, 하나님은 아침과 저녁으로, 필요를 채워주셨다.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있기에, 이 험한 세상을 이기며 살 수 있다.
(2) 순종은 내 생각을 깨뜨리는 훈련이다.
엘리야는 순교를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아합 왕에게 외쳤다. 그런데 갑자기 숨어있으면 먹어주겠다고 말씀했다. 엘리야는 먹고살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존심이 상하게, 이런 말씀했는가? 순교하라고 하면, 순교도 할 만큼, 가슴이 뜨거운 선지자인데, 왜 하나님은 자존심 상하는 말씀을 했는가? 이해가 안 된다면, 엘리야처럼 불타는 마음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저는 가끔, 순교에 대해 생각을 한다.
“내가 초대교회에 태어났다면, 나도 사자 밥이 되었을 텐데…” 정말 하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엘리야는 정말 받아들일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 하나님은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지, 내 논리에 맞으면,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여리고 성을 돌아라, 말이 되는가? 홍해를 향하여 지팡이를 내밀어라, 요단강을 건널 때, 제사장들이 법궤를 매고 건너라, 요단강에 7번 몸을 씻어라, 75세가 된 노인에게 고향과 가족을 떠나라, 물을 아귀까지 채워라…, 나의 생각으로 이해 되지 않지만, 순종할 때 역사가 일어났다.
따라서 나의 뜻, 나의 의지와 다르게 인도하실 때, 주님의 인도하심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임이, 바로 순종이다. 우리의 간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있는데, 그것은 내 뜻과 안 맞을 수 있다. 전혀 납득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의 훈련을 요구하신다.
그래서 매일매일 순간순간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신뢰하라는, 훈련 법칙 때문에, 우리의 삶의 훈련장으로 이끄시고 훈련시키신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다.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모세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승리했다. 이러한 순종으로 인한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도 넘쳐나기를 바란다.
3. 훈련이 주는 축복은 무엇인가?
(1) 넉넉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그릿은 시냇가다. 강물이 아니다. 큰 강물은 물이 잘 마르지 않지만, 시냇가는 잘 마른다. 그렇기에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얼마 후에 시냇물이 말라버렸다. 이것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훈련임을 보여준다. 순종해도 시련은 있다. 훈련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 까마귀들이 떡과 고기를 가져다주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는 훈련이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돕는 손길들을 보내주신다. 이것이 까마귀들이다. 그런데 이 방법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만일 사람을 보내서 도와주었다면, 누군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모세가 애굽의 궁궐에서, 애굽 왕인 바로의 딸의 손에서 자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을 했겠는가?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는 방법이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도하신다.
일 년 치를 한꺼번에 다 주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날마다 주었다. 만나를 40년 동안 먹었어도, 40년 먹을 음식을 미리 저장하고 먹이지 않았다.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라고, 하나님은 한꺼번에 다 주시지 않는다. 하루 하루 인도하신다.
만약 엘리야가, 자신의 삶에 모든 것이 풍성하고 넘쳐서,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신의 신념과 철학과 돈만 바라보며 인생을 살았다면,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을 것이다. 내 인생이 건강하기에, 하나님을 망각하고 산다면, 그 건강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내게 주신 높은 지능이, 하나님을 거부한다면, 그 지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연약하기에,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연약함은 축복이 될 수 있다.
(2) 이 훈련을 통해, 거짓 선지자 850명을, 무찌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이러한 훈련은 환경을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앗세라 선지자 400명, 도합 850명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고, 승리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훈련을 통해서, 사르밧 과부는, 이렇게 고백한다. (17: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이러한 사건들이 끝난 뒤에, 이제야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임을 평가하게 된다.
따라서 하나님은 단순히, 길르앗에 사는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되도록 훈련시켰다. 단순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증언하는, 선지자로 만들기 위해 훈련시켰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사람이라면, 훈련이 필요하다.
정말 빛나는 인생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는 없다. 반드시 필요한 훈련 과정이 있다. 이런 훈련을 통과하면, 반드시 큰 축복이 있음을 믿고, 믿음으로 순종의 훈련을 받아, 승리하기를~ //
기도하겠습니다. 엘리야에게 세상과 단절되는, 그릿 시냇가의 신앙 훈련을 통해,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신실한 인도하심을 신뢰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 된 저희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온전히 주님만을 섬기는, 하나님의 사람다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며, 하나님의 공급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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