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6년10월 23일 - 산 제물의 내용(롬12:2)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6-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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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제물의 내용(롬12:2)
바울은 (롬12장)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성도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면서, 윤리적 실천을 하라고 했다. 복음이 요구하는 실천은 강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 스스로 나타나는, 사랑의 실천이어야 한다.
그래서 1절은 성도들에게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권했다.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은 성도들이 마땅히 드릴, 영적 예배라고 했다. 오늘 말씀은 산 제물이 되려는 자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했다.
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2上).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부정 현재 명령으로 말했다. 이미 발생한 동작이 계속되거나, 반복되지 않도록 할 때 쓴다.
‘본받다.’(쉬스케마티조, 비슷하게 꾸미다, 같은 모양으로 만들다. ~에 자신을 꾸미다.) 쉰(함께, 곁에, 같이)+(스케마 : 형상, 조건, fashion, 습관, 태도, 모양). 습관과 조건을 비슷하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말라.’(메, 강한 부정). 성도는 이 세대와 같은 모양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도들은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을 본받는다면,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나?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대를 본받기를 원한다. 이 세대의 물결은 무엇인가?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1) 세속물결이다. 문화의 탈을 쓰고, 세속물결이 다가오고 있다. 오늘의 문화는 대부분 성적문화다. 옷차림도, 영상도, 글도, 연극도, 노래도, 춤, 거리풍경도, 모두 성적인 자극을 주는 문화이다. 성은 우리 주변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 손을 뻗으면, 금방 취할 수 있다.
너무 많아, 홍수를 이루고 있다. 오늘 이 시대의 공기 속에, 성적풍조의 유전인자들이, 가득 들어 있다. 누구든 매연을 마시고 살듯이,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이 성적문화의 풍조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으로, 비디오로 각종 영상으로 넘치고 있다.
청소년들과 젊은 신앙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영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아이들이 바지를 내려 입어, 엉덩이를 훤히 드러내는 것이, 괜히 내리는 것이 아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연예인들이, 그렇게 입기에, 함께 따라하게 된다.
(2) 물질풍조다. 매사를 돈으로 해석하고 판단한다. 돈이 있으면 고상하게 보이고, 귀티나 보인다. 그래서 현대인들에게 물질은, 이미 우상이 되었다. 그래서 누구나 더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반대로 돈이 없으면, 초라해지고, 무시당한다. 힘이 빠지고, 뒷자리로 밀려난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가지려고 총력을 기울이다가, 물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물질의 물결이 너무 거세다. 그래서 이러한 물결에 휩쓸려 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 풍조에 밀려서, 하나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오늘 이 땅에, 이단과 이방종교의 막대한 장학금이, 몰려오고 있다. 그 장학금을 그냥 주겠는가? 신앙의 개종을 강력하게 요구하는데도, 장학금을 받고 유학가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신앙전향을 하고, 장학금을 받아 떠난다. 이러한 것들을, 거절할 수 있어야, 성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3) 자기 사랑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다. 자기에게 몰입하고 도취해서, 자기 몸을 던진다. 그래서 자기실현에 장애가 된다고, 결혼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혼을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도, 아이가 자기 욕구 실현을 하는데,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생각해서, 낳지 않으려고 한다.
왜 결혼해서, 내 인생을 허비하고, 아기를 낳아서, 나를 희생시키느냐고 한다. 자기 아름다움에 집착하고, 자기 고집을 꺾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기 전에는, 모든 삶의 초점이, 다 나 중심이다. 모두 다 나에게 맞춰졌기에, 싸움과 불화가 나타난다. 관계가 악화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아주 강한, 욕망의 덩어리가 있어서, 나를 무섭게 지배한다. 나로 욕심부리게 만든다. 탐욕을 부리고, 미워하고, 더 가지려고 몸부림치고, 더 올라가려 힘쓰다가, 넘어지고, 탈선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신하고, 거부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내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나는 진정 주님의 뜻을 존중하는가?,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선택할 용기가 있는가?” 이런 질문을 늘 던져야 한다. 이런 물음도 없이,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잃어버리게 된다.
세상을 거슬러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용기와 각오와, 판단이 전제되어야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에,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자세다. 이런 마음의 자세로 사는 것이, 진정한 제자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용기가 없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미래는 맡기고, 영적생활에 충실해야 하는데, 먹고 사는 문제로, 이 세상을 본받다 보면,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무엇이 되고자 할 때, 그것이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이 세대를 본받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성도들이 따라야할 본은, 세상이 아니다. 그러면 성도들이 따를 본은 무엇인가? 바로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뜻’이다.
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2中).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를 드리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마음을 바꾼다.’는 말은,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소극적인 생각에서,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꿀 때에, 변화를 받을 수 있다. 생각과 가치, 기준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뀔 때, 변화가 나타난다.
이 세대를 기준으로 삼으면, 절대로 우리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가치, 기준을 버려야 새롭게 될 수 있다.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 마음이 새롭게 변화될 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도록, 사도바울은 2가지 방법으로 제시한다.
① 날마다 마음(누스), 즉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다. ②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 받으실 만하고, 온전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늘 분별해보는 것이다. 생각을 새롭게 하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늘 분별해보고, 검사해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육신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로, 인도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했다. 이 세상은 성도들이 따를, 존재와 모델이 아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의 가치관과, 풍습과 문화를, 모델로 삼을 필요가 없다. 세상은 영원한 것보다 일시적인 것을, 하나님의 뜻보다는, 쾌락과 정욕을 추구한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하나님의 뜻은, 여러 가지 점에서 상반되며, 항상 충돌을 일으킨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이 세상을 좇는 일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사람들은,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새롭게 함으로(아나카이노-시스)는, 아나(위에, 각각) + 카이노스(새로운) = 위로부터 새로워진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뀌어야 변화된다.
변화를 받으라(메타모르포오 변화하다, 바꾸라)는, 메타(함께, 다시, 대적하여) + 모르포오(형상을 이루다.) 위로부터 거듭나야, 새롭게 되고, 변화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수동태 명령으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계속해서, 날마다 변화를 받으라고 했다.
세상을 좇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면, 먼저 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성령님을 따라야 계속 새로워질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사단의 뜻을 좇았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총명을 거둠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게 되고, 세상 풍습과 가치관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녀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총명을 회복시켜 주셨다.
성도들은 성령님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한다.’ 성도들이 성령님을 통해서, 마음을 새롭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할 뿐만 아니라, 어두워진 우리의 총명을 회복시켜 준다.
‘변화를 받는다.’(메타모르포오)는, 예수님이 변화 산에서 ‘변화했을 때’ 사용된 말이다.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 신적 영광으로 변화했다. 이처럼 성도들도, 성령님을 통해, 마음을 신적인 영광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분별해야 한다.
3.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2下).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선하시고(아가스, 구원을 의미), 기뻐하시고(유아레스토스, 용납되고), 온전하신(텔레이오스, 완전히 일치하는)이다.
세상은 내가 기준이 되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기준이 됨을 말씀한다. 우리의 뜻은 우리는 좋지만, 주변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은 경우가 참 많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인간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가장 좋음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성경은 분별하라(도키마제인)고 했다. 도키마조(시험하다, 입증하다, 조사하라.)다. 이교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뜻, 신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의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① 점치기의 한 형태로서 제비뽑기가 있다. ② 징조 찾아보기(간, 골, 막대기, 화살, 드라빔의 신상) ③ 점성술 ④ 운수를 점치기(물, 타로카드, 부적, 수정구, 명상, 환각제) ⑤ 영과 대화(신접, 복술, 사술, 술수, 사이언톨로지, 초심리학과 초현상학, 투영, 영매)등등이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라고 했다. 성경의 뜻과 선은, 구원과 관계된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로 인한 형벌을 감당하도록 하셨을 정도로,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씀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항상 선하다. 하나님의 본성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숨기고, 그리스도인들이 찾아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에게 말씀해주셨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성령님 안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여, 악을 버리고, 선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매사에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큰 유익이 있어도,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하면 안 된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선택함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길이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온전한 분이기에, 하나님의 뜻은 흠이 없다. 영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전하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에 치우쳐서, 공의를 잃거나, 공의에 치우쳐서 사랑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하나님의 뜻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지식으로, 분별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성도들이 성령님을 통해,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환경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지 말라.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관이나 풍습. 또 문화를 모델로 삼지 말고, 성령님과 말씀을 통해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만 한다.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야 변화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다.
이 세대에서 통용되고 있는, 죄의 사고방식을 본받지 말라. 하나님의 사고방식,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기준을 분별하라.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성령님 안에서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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