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11월 22일 -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롬5:1-4)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11-22 |
첨부파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hwp(38K) |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롬5:1-4)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실패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게 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함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했고, 그를 믿는 자마다 의롭다고 인정해 줄 것을 약속했다. 다윗은 ‘일한 것이 없이…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4:6-7)고 했는데, 의롭게 된 축복의 결과가, 무엇인지 말씀한다.
1.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화평은 “솰롬, 에이레네”인데, ‘평화, 화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하나님과 단절되었으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무죄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를 보고,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심판과 진노를 거둘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안정과 화평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성경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지만, 직역하면 ‘우리가 평화를 가지고 있다.’이다. 믿음으로 의인이라고 인정받은 사람은, ‘이미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었다!’고 선언한다. ‘화평, 평화’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평화가 사라진 가정은, 다툼으로 시작해서 이혼으로 끝나고, 평화가 사라진 사회나 국가는, 전쟁이라는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평화 중에서 가장 중요한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다.
모든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해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사람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없다.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고, 하나님과 화평하지 못한다. 타종교들이 만든 신상들을 살펴보라. 그들은 신의 모습을, 무시무시한 공포의 상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천둥과 번개를 몰고 오는 신, 창이나 칼을 들고, 위협하는 신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었다. (2上)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고 했다. 무슨 뜻인가?
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으로 믿음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옛날 중동 지방의 왕가의 습관은, 왕을 만나려면, 왕이 먼저 불러야만, 그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심지어 왕비라 하여도,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고, 만약 왕의 부름 없이 나아가면, 죽게 되었다.
왕비 에스더는, 자기 삼촌 모르드개의 요청을 받고, 유대 민족의 억울한 사정을 탄원하기 위해서, 왕 앞에 나아가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러면 죽게 된다. 그래서 금식 기도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을 한 뒤에,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갔다.
그런데 자기 마음대로,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가 있었다. 왕이 홀을 내밀 때에, 그것을 잡으면 살 수가 있었다. 왕은 에스더 왕비를 본 순간, 갑자기 그녀가 사랑스러워서, 홀을 내밀었고, 에스더 왕비는 홀을 잡아서, 살아날 수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홀을, 믿음으로 내밀 때 하나님이 받아주셨다.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고 했다. 그냥 나가는 것이 아니라, 담대히 나아가자고 말씀한다.
②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을,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궁전 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믿음으로 얻은 은혜는,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왕의 총애를 얻고, 잃기도 한다. 그러나 믿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은혜와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은혜다.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다. 우리는 의롭다함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으로 대접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들어갔다’(프로사고게)는 ‘앞으로 인도한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석될 수 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 함(2下).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또 다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한다!’고 말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는, 명예나 재물로 기뻐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즐거워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종말에 만날 ‘하나님과 천국’을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 이 영광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가장 크게 나타났다.
하나님의 영광은 현재, 교회와 말씀과, 여러 가지 표적들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가장 완전하게 나타날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심판을 벗어나서, 이러한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나타날 때, 성도들은 예수님 같이 변화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우리만 아니라(8:17), 피조물까지도 ‘썩을 것의 노예가 되는데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유로운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8:21).
온 세상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찰 것이다. 이런 모든 의미가,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영광’에 포함되어 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대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즐거움 속에 살 수 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그 소망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동시에 소유할 수 있다.
(3上)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할 것을 바라보면서 기뻐한다. 그러나 성도들의 기쁨은 미래에만 있지 않다. 현재에도 그리스도로 인해 당하는, 환난과 시련도 기뻐한다.
성도들은 현재 상황에 눈을 감고, 미래의 영광만 바라보며, 살지 않는다.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환난을 당하지만, 기쁘게 참여한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한다.
‘환난’(립시스)은 ‘시련’을 의미한다. 이것은 ‘리보’(모여들다, 에워싸다.)에서 유래되었다. 상처받음, 고뇌, 핍박, 환란, 고통을 의미한다. 아픔, 고통, 두려움, 좌절, 상실, 실망보다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세상의 반대와 핍박(압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종말이 오기 전에 당해야 할, 고난을 의미하는 전문용어다(막13:19, 24, 계7:14).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했다(요16:33). 바울도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환난을 받을 것’이라 했다(행14:22).
3.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인품으로 만든다(3下-4).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성도들이 당하는 환난은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나타낸다.
이는 성도의 유익을 위해 허락된 환난이다. (3下) ‘…이는 환난은 인내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 받는 환란을, 어쩔 수 없이 견디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시련과 환난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유익을 위해, 환난을 주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난이 올 때, 하나님이 주신 환란의 이유와, 장차 그것이 가져다 줄 결과를 묵상함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훌륭한 장교가 되기 위해, 육사에 입학한 생도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 훈련이, 자신을 훌륭한 지휘관으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훈련이 자신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주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유능한 지휘관이 될 꿈을 가지고, 그 훈련 과정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바울은 우리에게 주어진 ‘환난’이, ‘인내력’을 갖게 해준다고 했다.
여기서 ‘인내’(휘포모네)는 ‘밑에 머무르다, 견디는 힘’을 말한다. 군인들은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보통 40Km씩 걷는 훈련을 한다. 처음에 이러한 행군을 하면, 온 발바닥에 물집이 잡힌다. 그러나 훈련이 거듭되면서, 체력과 인내력이 생겨서, 쉽게 행군할 수 있게 된다.
장교들은 사병을 지도해야만 하기에, 더 먼 천리 행군(400km)을 한다. 이렇게 힘든 훈련을 하는 이유는, 전쟁 시에 사병들을 인도해서, 먼 거리를 행군할 수 있는 체력과, 인내력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받을 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힘든 훈련을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 한다.
힘든 훈련 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과 체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녀를, 성숙한 자녀로 만들기 원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자녀들이 심한 박해와 고난을 통과하게 만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에 인내를 갖게 하려고,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에, 25년이나 기다리게 했다. 그 기간에 아브라함은, 여러 번 낙심하고 포기했고, 불신앙으로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100세가 되었을 때, 약속하신 아이를 주셨다.
아브라함은 기나긴, 신앙의 훈련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인내력을 갖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은 욥에게도, 신앙의 인내를 갖게 하려고, 극한 시련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 기간 중에, 욥이 아무리 부르짖어도 침묵했지만, 인내와 아름다운 성품을 갖게 되었다.
바울은 ‘인내’(휘포모네)가 ‘연단’(도키메)을 만든다. ‘연단’은 ‘인정된 성숙한 성품’을 성품을 만든다. 남자가 군대에 입영하면, 처음 훈련소에서, 기본훈련을 받을 때, 어려운 일을 만나면, 두려워하거나 불평한다. 그러나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나면, 어려운 일을 만나도 침착하게 행동한다.
훈련을 통해, 비슷한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환난을 주어서 환난을 통해 인내력을 길러주고, 인내를 통해서 그들이, 성숙한 성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하나님은 긴 인내의 과정을 통해, 야곱을 거룩한 성자로 만들어주었다.
시련을 통해서 욥을, 인내심과 믿음을 가진 성인으로 만들어 주셨다. 이처럼 인내의 기간을 통해, 하나님은 자녀들을, 성숙한 성품을 갖춘 사람으로 만들기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도들은, 어려운 과정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맞이한다.
바울은 ‘연단’(도키메)이 ‘소망’(엘피다)을 이룬다고 말했다. 여기서 ‘소망’은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소망’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현재 당하는 고난들을 통해, 장차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IS와 같은 무리가 많아지면서, 말세에는 성도들이, 많은 박해를 받는다고 하신 말씀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리고 빨리 주님이 오셔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군인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받는 훈련 과정들이 있다. 힘든 훈련 과정들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점점 더 멋있는 군인이 된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지 않는 성도들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분명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련을 많이 받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것을,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시련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영광에 참여할 것을 확신한다. 스데반은 순교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 복음을 위해 극한 고난을 받은 사도들도,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시련과정을 통해서,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소망을. 분명하게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다. 오늘의 영광과 손해, 내가 받는 중상과 모략, 슬픔과 짓밟힘 등, 이 모든 인생의 역경과 힘든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나를 세우기 위해, 환난을 통과하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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