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11월 1일 - 간음한 여자와 예수님(요7:53-8:11)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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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한 여자와 예수님(요7:53-8:11)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타낸 반응들은 다양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모세가 예고했던 선지자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메시아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오기에, 갈릴리 출신 예수님이,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무리 중에는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산헤드린에서 파견한, 아랫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체포할 기회를 찾을 수 없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당국자들은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예수님을 체포하지 않았음을 책망했다. 아랫사람들은 ‘그 사람처럼 말하는 사람은, 이때까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바리새인들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역정 내며, 율법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에게 미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때 니고데모가 나서, 사람을 만나 보지도 않고, 미리 정죄한다면, 율법에 위반된다고 항의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니고데모에게,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올 수 없다.’는 내용이 앞에 나오는 (요7:40-52)의 내용이다.
1. 간음한 여자와 예수님(7:53-8:2).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바리새인들과 니고데모의 열띤 논쟁 후에, 사람들은 각각 다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에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다. 이때는 초막절인데, 초막절 절기 첫 날과, 마지막 8일은, 노동하지 않는 특별한 성일이라 했다(레23:36, 39).
여기서 ‘아침’은, 초막절 7일의 축제가 끝난 다음날의 아침, 즉 초막절 8일째를 가리키는, 특별한 아침이다. 이날에는 성전에서, 암소 한 마리를 바치는, 추가적인 희생 제사를 드렸다. 7일째 저녁에 제사장 뜰에서 행사한 후, 번제단을 7번 돌며, 호산나의 기도문을 드린다.
그리고 해가 지면, 바로 옆의 장소, 여인의 뜰로 옮겨진다. 순례자들은 ‘관제의 축제’로 불리는, 올나이트행사를 한다. 이렇게 뛰놀던 축제가, 새벽닭이 울면 마무리한다. 제사장은 “이 성전에 계신 아버지여, 우리 눈은 여호와를 향합니다.”라고 외친다.
이때는 나이가 지긋하고, 학식이 있고, 경건한 랍비들이 행사를 주관하면서 ‘죄를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이어진다. 어른 랍비 : “오 기쁨 우리의 젊은이들, 헌신된 자들, 현인들이여, 우리 노인들에게 수치를 돌리지 마소서”라고 말한다.
참석한 무리들은 “오 기쁨! 우리는 노인들과 함께, 젊은이들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하면, 이때 함께 “네, 젊은 때의 죄를, 사함 받은 자의 복이 있을지어다. 죄를 지었지만, 이제 사함 받는 자는 복이 있을지어다.” 한다. 죄를 사해주시는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행사가 마무리 된다.
유대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기쁨을 맛보는 날이다. 이렇게 행사가 마치고 나면, 아침 태양이 떠오른다.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전에 들어오셨고, 또 바로 그 시간에 본문 내용이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 일행들은, 감람산에 갔기에, 축제의 현장에 있지 않았다.
예루살렘 성전에 도착하자, 무리가 성전으로 몰려들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보고, 성전에 앉아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바로 그 시간에, 오늘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이들은 조금 전까지, 관제의 축제에 참석하여, 용서해 달라고 했다.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을 목청껏 찬양하고, 그들은 그 여자를, 무리들 가운데 세웠다. 여자를 끌고 온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 전문가였다. 율법을 연구하고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율법 준수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함께 행동했다. 복음서를 보면, 이때 서기관들은 바리새인들만 아니라, 사두개인들과도 함께 행동했다. 학자들은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본 후에, 이 여자가 모함에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 이유는
① 간음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남녀가 간음하는 현장에서, 체포해야 했다. 유대 법은 남녀가 한 방에 같이 있다고, 송사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남녀를 간음죄로 고발할 수 있는 경우는 간음하는 현장을 목격한 경우다.
간음 현장을 덮치기 위해, 사전에 이들의 관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의도적으로 덮칠 기회를 잡지 않으면, 간음현장을 덮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고발자는 처음부터, 두 남녀의 관계를 알고, 그들을 고발할 기회를 잡기 위해, 사전에 준비했을 가능성이 높다.
② 유대법은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면, 간음한 남자도 함께, 끌려왔어야 했다. 그러나 남자는 도주하게 만들고, 여자만 체포해서 끌고 왔기에,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모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③ 간음한 여자를 고발하는 경우에, 사전에 미리 경고하도록 되어있다. 만일 경고한 후에도, 그녀가 계속 간음하는 경우에는, 현장을 덮쳐서 증거를 잡은 후, 고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전에 경고를 했다는 언급이 없다. 이런 정황들을 고려하면, 의도적으로 이 여자를, 함정에 빠뜨린 것으로 본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으로 끌고 와서, 공개적으로 고발한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 매장시킬 의도가 없었다면, 그녀를 조용히 법정으로 끌고 가서, 고발했을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물어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수치를 드러냈다.
2. 율법은 이렇게 명했다(4-5).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고발자는 예수님을 ‘선생’이라 부르며,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에,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명했다고 하며, 예수님께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레20:10), (신22:22)을 보면, 간음한 남녀는, 함께 처형하도록 지시했다. 그런데 ‘이러한 여자’는 ‘여성형’으로 여자만 정죄했다. 그들은 율법에 따라, 간음한 남자와 여자를, 모두 다 처형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자만 끌고 와서, 정죄의 화살을 쏘아댔다.
구약성경에는 간음한 남녀를 처형하라고 했지만, 어떻게 처형해야 하는지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율법에 죄인을 돌로 쳐 죽이는 경우는, 남자와 혼인을 약속한 처녀가, 간음한 경우이다(신22:23-). 고발자는 이 여자를 처형하는 것이, 율법을 따르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어떻게 처리할지 물었다.
(6上)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서,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했다.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 있었다.
① 법을 이용해서, 고발할 수 있었다. 당시 로마법은 간음한 자에게, 가혹한 처벌하도록, 규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 여자를 처형하라고 하면, 예수님은 로마법을 어긴 죄로, 고발당할 수 있었다. 반대로 처형하지 말라면, 모세의 법을 어겼다고, 고발당할 수 있다.
② 관용과 사랑을 이용해서, 예수님을 고발할 수 있다. 예수님은 무리에게 계속, 관용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고발자들은, 예수님이 간음한 여자에 대해, 관대하게 처리하라고 말할 것으로, 기대했을 수 있다. 예수님이 그녀를 용서하라고 말하면, 예수님이 모세의 법을 어겼다고, 고발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그녀를 처벌하라고 하면, 예수님이 가르친 사랑과 관용을, 실천하지 않았다고, 비난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해도, 고발자들의 올무에, 걸리도록 되어 있었다. 예수님은 이러한 고발자들에게, 어떻게 대답했나?
(6中-7) “…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한 생각을 잘 알았기에, 그들의 질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침묵한 채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 요한은 이때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쓴 이유와 그 내용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땅에 글을 쓰신 이유와, 그 글의 내용에 대해 확인할 수 없다. 그 동안 이때 예수님이, 땅에 쓴 내용이 무엇인지에, 여러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Derrett)은 이때, 예수님이 땅에 쓴 글이 (출23:1下)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라 했기에, 위증하지 말라고 썼다고 한다. 그러나 확인할 수 없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한 여자를 동원해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간교한 마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들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예수님은 몸을 굽혀, 땅에 쓰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양심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질문에 답변하기 곤란해서, 침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답변을 재촉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했다. 유대법은 공개적으로 사람을 처형할 경우, 피고인의 죄를 목격한 증인이, 먼저 돌로 치게 되어 있다. 이러한 경우에, 먼저 돌을 던진 사람은, 피고인의 죄에 책임져야 했다.
후에 그 피고인의 무고함이 밝혀지면, 그 책임은 먼저 돌을 던진 사람이, 져야만 했다. 예수님은 그녀의 유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그녀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면, 침묵하자.
조금 전만 해도,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녀가 모함에 빠져, 그 자리에 끌려왔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죄에 대해서, 책임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전에 그 여자에게, 경고하지도 않았고, 간음한 남자를 도피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했나?(8-9).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님은 이 말을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글을 쓰셨다. 이때 예수님이, 땅에 쓴 글은, 그녀를 고발한 사람들이 지은, 죄의 목록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은 죄 목록들을 땅에 썼고, 고발자들은 죄 목록들을 보고, 양심이 찔려서, 그 자리를 떠나갔다고 말한다.
이때 먼저 자리를 떠난 사람들이, 어른, 연장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언급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당시 유대법에 의하면, 마을에서 일어난 중요한 재판은, 그 자리에 있던 최고 연장자가 책임을 졌다.
그러므로 재판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최고 연장자들이, 그 재판의 합법성에 대해 증언해야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참석했던 연장자들은, 그 재판의 합법성을, 책임질 자신이 없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이 재판이 정당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재판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고 떠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 연장자들도, 그 자리를 떠나갔다. 이러한 이유로 그 날 사람들은, 나이 순서대로, 그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되었다.
(10-11)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사람들이, 모든 떠난 것을 보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재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이제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여자만 남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예수님 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심판주이기에, 그녀를 얼마든지 심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여’라고 고백한 그녀를, 정죄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이제 그녀를 정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정죄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예수님은 그녀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은 그녀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가 죄를 용서 받은 후에, 똑같은 죄를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용서받은 사람들이, 죄 안에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서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씀한 내용을 그대로 행하는 분이지만, 사람들은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면서도 그렇지 않았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실 것이다. 그때 우리의 죄는, 들어나게 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말씀한 대로 진실하게 살고, 죄를 멀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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