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 9월 20일 - 믿음의 법과 아브라함(롬4:9-1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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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법과 아브라함(롬4:9-16)
이미 살펴본 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법은, 신약시대만 아니라, 구약시대에도 적용된 법이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입증하기 위해, 아브라함과 다윗을 그 예로 들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경건하지 못했지만,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았다.
이스라엘의 성군 다윗도, 살인과 간음죄를 범했지만, 은혜로 용서받았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제,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이,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면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인가를 말한다.
이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또 다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다. 믿음을 보고 의롭게 여겨주셨다는 말이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벌써 이해했기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울은 계속 반복해서 말한다. 이렇게 반복하는 이유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1. 무할례자의 조상 아브라함(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이 복은 행복을 말하는데, 하나님이 의로 여기는, 사람의 복이다(6).
불법이 사함 받고, 죄가 가리어진 사람의 복이요(7),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기지는 복이다(8). 사도 바울이 말하는 복의 개념이, 우리가 말하는 복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육신에 만족을 주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복이다. 그러나 진정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좋게 만드는 복이야말로, 참된 복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물질이 많고 적음에 달려 있지 않다. 왜냐하면 물질이 많아진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 없고, 물질이 없다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를 좋게 만드는 복은, 믿음으로 받게 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가, 이러한 복을 주고, 하나님이 유대인을 받아주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할례에 순종하면, 구원이 확보된다고 믿었다. 모세의 책에는 ‘할례 받은 사람은, 결코 지옥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랍비들은 말했다고, 되어 있다.
아브라함이 지옥 대문에 앉아서, 할례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리로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다. 바울도 회심하기 전에는, 그들과 동일한 입장이었다. 그들보다 철저한, 유대 주의자이었다. 바울은 할례를 받음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할례를 받기 전에, 아브라함은 무할례자였다. 하나님은 의롭다고 말씀하신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했다. 그러면 할례를 받아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의롭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10-11)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은 때는, 분명히 할례 받기 전이라고 말하며, 유대인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그를 의롭다고 인정한 기사가, (창15장)에 나온다.
그리고 13-14년이 지난 후 (창17:10-11)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창17장)에서 명령했다.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했고, 그 표시로 할례를 했다. 그러므로 할례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증언해 주는 표시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인정해주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표시하기 위해, 할례를 받게 했다.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았음은,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할례 받지 못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의인이 되기 때문이다.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지시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따라서, 할례를 행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유대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할례 받은 유대인과, 할례 받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의 조상이 되었다. 따라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니까, 할례자(유대인)와 무할례자(이방인)를,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바울 당시 로마 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서로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공통점도 많았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바울은 그들이 할례 문제로 인해서, 유대 기독교인들과 이방 기독교인들이 나뉘면, 안 된다고 했다. 유대인은 아브라함이, 할례 받은 자들의 조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모두 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한 가족이 되었다. 할례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아무 의미가 없다. 다만 구원에 이른 신자의 믿음을, 인 쳐주는 기능을 할 뿐이다.
2.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상속자가 된 아브라함(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상속자(클레로노모스)는,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상속자는 아들이다. 어떤 다른 사람이, 선한성품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착하게 산다고 해서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 되는 것은, 은혜로 된 것이지, 무슨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구원도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은혜와 축복으로 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겠다는 언약은, 율법이 아니라, 오직 믿음의 의로 된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은, 율법 때문이 아니었다. 율법은 아브라함이 세상을 떠난 지, 수 백 년 이상 지난 후에,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율법을 받고 지켰기에,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율법을 받은 적이 없다. 율법과 관계없이,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되리라고 했다(창15:5).
또한 그들을 통해서, 온 땅의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바라보는, 북남동서의 영토를,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창13:14, 17).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를 통해,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 세상의 상속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행위나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주어졌다. (14-15)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 되었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하나님이 율법에 속한 사람들, 유대인들과 행위를 의지하는 사람들을, 상속자로 삼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되었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었을 것이다. 율법이나 행위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믿음이 ‘헛것이 되고’(케케노타이, 케노오)는 ‘텅 비게 하다, 격하시키다.’는 말이다. ‘폐지되었다’(카테르게타이, 카타르게오) ‘쓸모없게 되었다, 파괴하다.’는 의미이다. 100M를 1초에 뛰면, 1조원을 상금으로 주겠다고 하면, 인간은 할 수 없기에, 소용없는 상금이 되고 만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율법을 의지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율법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진노도, 함께 따라오지만, 율법이 없었다면, 율법을 범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법이 없으면, 정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진노를, 진노되게 하기 위해서 선포된 것이라고 했다. 모세의 율법이 선포되기 이전에는, 변명할 수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문화된 율법이 구체적으로 주어지지 않았기에, 어떤 조항을 여겼는지 몰랐다는 말이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자면, 율법이 주어지자, 이전부터 있었던 죄가, 더욱 죄 된 모습으로 분명히 드러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3. 아브라함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서, 믿음으로 상속자가 되었다(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상속자가 되는 그것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된다고 했다. 하나님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을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만일 하나님이 율법의 행위로, 우리를 의롭게 하려고 했다면, 우리는 항상 불안하게 된다.
우리는 율법을 다 행할 수 없기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무효가 되고 만다.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만들었다. 하나님은 자신이 하신 약속은, 우리 행위와 관계없이, 변하지 않는 약속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한 것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의 조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내기 위해, 우리의 공로나 행위를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값없이, 그냥 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공로를 드리는 것과, 은혜를 받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 우리의 공로나 행위를 드리려고 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깨지고 만다.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우리 모두가 되기 바란다. 결론적으로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하나님과 크게, 2가지로 연결 된다.
(1) 관계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는, 은혜로 된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인간의 아버지가 되므로, 부자지간이라는 관계가 형성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은혜와, 그 선택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자꾸, 사람들의 행위로 아들이 되려고 하니까, 그것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 된다고 말씀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함으로 된다(요1:12).
(2) 교제다. 관계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교제가 있다. 반대로 나와 아무 관계가 없다면, 교제 또한 없게 된다. 교제가 있으면, 반드시 어떤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만일 관계가 있는데, 교제가 없다면, 큰 문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교제가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된 다음, 교제를 회복해야 한다. 관계가 없는 교제의 회복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구원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과 좋은 교제를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멋있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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