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2015년 2월 1일 -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 |
작성자 : 이건기 | 작성일 : 2015-02-01 |
첨부파일: 양과 염소의 비유.hwp(40K) |
양과 염소의 비유(마25:31-46)
지난주의 달란트 비유는, 재림에 대한 두 번째 비유다. 주인은 종들을 사랑하고 믿었기에, 자기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겼다. 달란트 비유는, 종말을 사는 성도들이, 받은 은혜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보여준다.
충성한 사람은 칭찬을 받고, 그들에게는 많은 것을 맡겨주고,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혹독한 분으로 간주하고, 쾌락에 빠져서, 받은 은혜와 은사를 낭비한 사람, 천국과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를 거부한 자들은, 엄히 책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주었던 것들을 빼앗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쫒아낼 것이다. 그들은 그 곳에서 슬피 울면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오늘 말씀은 마지막 때의 3번째 비유,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비유이다.
1. 양과 염소의 비유(31-33).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인자(휘오스 투 안로푸)는 예수님이다. 영광의 모습으로, 모든 천사들과 함께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게 된다. 그때 모든 민족들을 그 앞에 모으고, 심판할 것이다. 예수님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모든 민족을 나누게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 이 장면은 쉽게 볼 수 있었던 장면인데, 이를 통해, 종말에 있을 우주적인 심판을, 보여준다. 목자(포이멘)는, 양(트로바톤)과 염소(에피포스)를, 동시에 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가뭄에, 염소들을 울타리 안에, 키우기 어렵다. 그때 목자는, 염소들을 양과 같이 방목하여 키웠다.
양과 염소는, 함께 섞여서 활동했다. 그러나 이들은 잘 어울릴 수 없는, 기질을 갖고 있다. 저녁이 되면 양은,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만, 염소는 목자의 소리를 외면했다. 염소는 옥내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양은 옥외에 있기를 좋아했다. 양은 풍성한 털이 있기에, 추위나 감기를 이길 수 있다.
그러므로 저녁이 되면, 목자는 양과 염소를 분리했다. 본문을 보면, 목자는 양을 오른편에 두고, 염소는 왼편에 두었다. 유대인들은 앞쪽을, 동쪽이라고 했다. 따라서 남쪽은, 자연히 오른편이 된다. 태양이 밝게 빛나는 때는, 오른편, 즉 남쪽에서 비췰 때다. 가장 어두운 때는, 왼쪽, 즉 북쪽이 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좋은 의미는 오른쪽(덱시오스, 데코마이, 영접하다)이, 좋지 못한 의미는, 왼쪽이 된다. 오른편은, 항상 옳고 선한 것을 의미했으며, 왼편은 어둡고, 사악한 것을 의미했다. 목자가 양을 오른 편에 두고, 염소를 왼편에 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명예와 수치를 상징한다.
양이 염소보다 가치가 더 있었으며, 양이 가진 흰 털은, 의인의 상징이 되었다. 이에 반해, 검은 털을 가진 염소는, 악인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 양은 명예를, 염소는 수치를 상징한다. 양은 온순하지만, 자신에게 속한 가족을 목숨을 걸고 지켜내는, 가장 명예로운 동물이었다.
반면에 염소는 자신의 암컷이, 다른 수컷에게 유린당해도, 별로 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명예를 위해, 하나뿐인 목숨까지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다. 남자는 자신에게 속한, 아내와 자녀들을,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냄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유지했다.
이 세상 마지막에 모든 민족들은, 양과 염소처럼 분류된다. 예수님은 장차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들을 불러 모을 것이다. 천사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사방에서 사람들을 불러, 심판대에 서게 된다. 사람들은 재판장이신, 예수님 앞에 서는데, 그들을 둘로 구분된다.
예수님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모든 민족들을 구별할 것이다. (34)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앞에서 예수님은 ‘인자’로 불렸지만, 이제는 ‘임금’으로 불리고 있다. ‘인자’는 예수님이, 자주 사용한 명칭이었다(바르 에노스 단7:13-14). 그때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한다.
오른편의 사람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이다. 하나님께 복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이 예비(헤토이마조, 공급하다)한 나라를, 상속할 자들이었다. 예비 된 나라를, ‘상속’(클레로노메오)은 얻었다. 상속받음은,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다. 믿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복과, 선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들의 선한행위는, 은혜로 받은 구원에 대한, 자발적인 감사의 행위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나라가 상속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신실한 행위로 얻어진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구약성경에는 믿음 대신에, 신실함(에무나)이란 말을 썼다. 신약에는 신실함을, 믿음(피스티스)으로 사용했다. 따라서 믿음은 신실함이다. 신실한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따라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이 신실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2.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다(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때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칭찬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런 일은, 하나님이 하는 일이다.
이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닮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도 없다. 오른편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은 오른편 사람들에게, 6가지 모습으로,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다고 칭찬했다. 그들은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모습을 나타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웃들과 나누었다. 지극히 작은 일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육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내었기에, 칭찬을 받았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만큼, 닮아가게 된다.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을 닮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육체의 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요일4:20) 그것은 보이는 육체의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가능하다. 공동체를 돌보는 것이, 사람들의 명예다.
(37-39)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오른편에 선 의인들은, 자신들이 언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따라서 최후의 심판에서, 결국 그 사람의 신실한 행위로, 심판을 받는다. 심판 때에 자신의 믿음이, 행위로 드러난 증거가, 하나님 앞에 자료로 제출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신실함으로 나타난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런 일을 하러 오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지극히 작은 자를, 자신과 동등시하며, 돌보았다.
예수님은 생전에도, 자기를 좇는 제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였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마18:5-6)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히 여기는, 삶의 모습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들이며, 예수님의 대변자이고, 예수님의 복음을 증언하는 사자들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대접하는 자들을, 자신을 대접한 자로 간주해서, 그들에게 합당한 보답을 해줄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먼 산만을 바라보며, 살 필요가 없다. 성도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날마다 재림할 예수님을, 대접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
3. 저주를 받은 자들아,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1-43).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오른편에 선 의인들을, 복 받을 자라고 한 후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왼편에 선 자들은, 예수님께 정죄 받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로 떨어지고,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되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이렇게 책망할 것이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했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했으며,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인하거나, 간음하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좇는 형제들을 박대했다. 예수님을 믿는 형제를 대접하지 않은 일을, 예수님은 자신을 대접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책망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들이 마땅히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았다고, 책망할 것이다. 형제를 섬기고, 대접하는 일은, 특별한 믿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러나 왼편에 선 자들은, 예수님을 좇는 형제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돕기를 거절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믿고 따르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을 해야만 한다. 예수님에 대해서, 중간지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마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가 되어, 마지막 날에 예수님의 왼 편에 서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접하지 않은 자로 간주되어, 마지막 날에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불에 떨어지게 된다.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왼편에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예수님을 대접하지 않았느냐?’ 항의하게 된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반대하거나 거절한 적도 없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언제 예수님을, 대접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은 그때 예수님을 따르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을, 자신을 대접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좇는 형제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 냉정하게 거절했으며, 목말라 할 때, 마시기를 거절했고,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거나 옥에 갇혔을 때, 찾아가 위로하지 않았다. 그들은 행위로, 자신이 그리스도 편이 아니라, 원수의 편에 선 것을 증언했다.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사단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던져질 것이다. 양과 염소의 비유는, 마지막 심판에 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목자가 저녁에,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이,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들을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할 것이다. 그 날에 모든 민족들은, 예수님 앞에 설 것이며, 예수님을 대접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뉠 것이다. 예수님을 좇는 성도들은, 계속 모든 민족을 찾아 가서,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들을 영접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형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돌보아 준 자를, 마지막 날에 의인으로, 간주할 것이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대접하면, 자신을 대접한 것으로 간주하고, 상급을 줄 것이다.
마지막 날에 의인으로, 예수님의 오른 편에 서게 된다. 그들은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복 받을 자라고 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반대한 자들을, 마지막 날에 악인으로 본다. 예수님은 그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거부함을, 자신을 거부했다고 보고, 그들을 책망할 것이다. 마지막 날에, 악인으로 분류되어, 예수님의 왼편에 서게 된다. 그리스도의 편이 아니라, 사단의 편임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그들이,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에 던질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마지막 날에, 의인은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인은 영원한 불로, 던져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성품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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